'웰빙'과 '슬로푸드' 등이 대중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런 '웰빙 열풍'이나 '슬로푸드'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1986년 미국 맥도널드사가 이탈리아에 진출하자 전통 음식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의 국제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슬로푸드 국제본부 부회장 자코모 모욜리는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슬로푸드' 운동은 대안 문명을 지향하는 운동**
자코모 모욜리는 "슬로푸드 운동은 단지 몸에 좋은 음식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 문명을 되돌아보고, 자연과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것을 지향하는 대안 문명을 지향하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내 몸, 내 가족의 건강만 챙기겠다며 환경과 이웃의 삶에 무관심한 국내의 '웰빙 열풍'은 슬로푸드 운동과 무관하다는 따끔한 지적이다.
처음 패스트푸드를 반대하는 운동으로 시작한 슬로푸드 운동은 지금 세계 60여개 나라에 7백50개 지부를 두고, 회비를 내는 회원의 수가 8만여명이나 되는 국제적 운동으로 성장했다. 특히 이 운동은 1989년 11월9일 프랑스 파리에서 '슬로푸드 선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속도'에 지배당하는 현대인들에게 '느림'이란 화두를 던졌다.
슬로푸드 운동은 느림의 상징인 달팽이를 상징으로 하고 있으며 국제적 계간지 <슬로>를 이탈리아어, 영어, 독일어 등 3개 국어로 발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슬로>에 실린 글을 엮은 <슬로푸드-느리고 맛 있는 음식 이야기>(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ㆍ이경남 옮김, 나무심는사람 펴냄)가 나와 있다.
모욜리는 "1919년에 시인 필리포 마리네티는 프랑스 파리에서 '속도'를 화두로 내건 '미래파 선언'을 발표했다"면서 "70년이 지난 후 같은 장소에서 '느림'을 화두로 내건 '슬로푸드 선언'이 발표된 것은 현대 문명의 중심축이 바뀌고 있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소농 중심의 대안농업 가치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자코모 모욜리는 "현재의 농업은 대기업의 이윤 추구의 장으로 전락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지역에 기반을 둔 토착 농업은 점점 고사(枯死)될 수밖에 없고 슬로푸드가 확산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모욜리는 "소농 중심의 대안농업이 토착 농업을 지키고 저개발 국가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면서 "슬로푸드 운동은 유기농업과 같은 소농 중심의 대안농업의 가치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확산하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슬로푸드 운동은 현재 학교 급식이나 병원 식사에 질 높은 음식을 제공하는 운동과 함께 멸종위기에 놓인 식품, 종자, 동식물 등을 보존하는 활동도 벌이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은 또 오는 10월 20~23일까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인 5천여명의 대안농업 종사자 등이 모여, 다양한 대안농업의 경험을 공유하고 장기적인 네크워크를 꾸릴 예정이다.
슬로푸드 국제본부 국제담당인 릴리아 스멜코바는 "10월에 개최될 '테라 마드레(Terra Madre)' 행사는 질 높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그것의 재료를 생산하는 땅과 그것을 재배하는 방식에 대한 슬로푸드 운동의 지속적인 관심의 결실"이라며 "이 행사를 통해서 각국의 고유한 음식 문화를 지키고 대안농업을 확산할 슬로푸드 운동의 활동가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그 의미를 밝혔다.
신대식 (사)슬로푸드한국위원회 공동회장은 "한국에서도 현재 5명 정도가 참가단을 꾸려서 참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음식 문화와 여행을 다루는 전문지 기자로 슬로푸드를 취재하다 이 운동에 발을 들여놓아, 벌써 15년째 활동하고 있는 자코모 모욜리는 <프레시안>과 만나 슬로푸드 운동을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자코모 모욜리와의 인터뷰는 20일 오후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2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자코모 모욜리 인터뷰**
프레시안 :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을 듣고 싶다.
모욜리 : 나는 항상 다른 나라로 여행할 때, 마치 안테나를 곤두세운 것처럼 모든 정보를 빨아들이려고 한다. 오늘도 새벽에 경동 시장에 가서 이 나라가 가진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접할 수 있었다. 한국은 오랜 전통과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가진 매력적인 나라이다. 한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문화유산을 보는 것을 포함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나는 음식 문화를 통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파악한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프레시안 : 한국은 슬로푸드 운동의 중요한 축인 '느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나라이다.
모욜리 : 그렇다. 슬로푸드 운동은 공업화된 나라의 삶의 리듬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느리지 않는 곳에 우리 운동의 기회와 보람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고도로 공업화되고 정보화된 사회에서 더 이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리듬을 바꾸지 않고서는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 이제 사람들은 겉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삶의 본질적인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슬로푸드 운동은 그 중요한 돌파구가 음식 문화에 있다고 본다.
***슬로푸드 운동은 대안 문명 운동**
프레시안 : 한국에서 슬로푸드 운동은 단순히 패스트푸드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은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가?
모욜리 : 슬로푸드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시작했지만 이미 국제적인 운동이 됐다. 그것은 1차적으로는 세계 각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음식 문화를 보호하고, 재발견하고, 널리 알리는 운동이다.
하지만 그렇게 음식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즉 올바른 음식, 안전한 음식, 공정한 음식은 그것이 위치한 맥락, 생태 환경과 사회 환경을 떠나서 얘기할 수 없다. 그 음식의 원료가 생산되는 땅과 바다, 또 그것이 유통ㆍ가공되는 사회ㆍ경제적 조건에 우리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운동은 생태ㆍ환경운동 또 사회ㆍ경제적 운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은 또 그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음식 문화의 전통을 되찾고, 그것의 의미를 발견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각 나라마다 고유의 음식과 그것의 원료를 재배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그 나라의 문화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전 세계적인 소비문화가 창궐하면서 이런 각 나라의 고유의 문화가 소멸되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은 멸종할 위기에 처한 음식, 농산물, 고유문화를 살리고 가치를 부여하는 의식화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슬로푸드 운동은 '대안 문명을 지향하는 운동'이다.
***슬로푸드는 생산-유통ㆍ가공-요리ㆍ섭취를 다 고려한 것**
프레시안 : 슬로푸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지칭하는가?
모욜리 : 지역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음식은 다 슬로푸드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예를 들자면 '파스타'가 있다. 그것은 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음식이자만 이탈리아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이탈리아 음식이 됐다. 파스타에는 스파게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음 3가지를 다 고려해야 한다. 파스타의 경우에는 밀은 어디서 왔는가, 그것은 어떤 환경에서 재배되고 수확되었는가, 둘째 밀이 어떻게 가공됐는가, 셋째 최종적으로 파스타를 어떻게 요리했는가, 슬로푸드는 이런 3가지 측면에서 정의돼야 한다. 우리가 슬로푸드 운동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든 최종산물은 그것이 완성되기까지 역사가 있다'는 점이다. 최초의 원료를 어떤 토지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재배했는가?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가공되었는가? 이런 것들을 모두 추적할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좋은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자세도 관심거리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녹차를 많이 마신다. 일본에 10번쯤 갔는데 그 때마다 일본 '다도'에 깃든 정신이 슬로푸드 운동의 철학과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다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은 녹차를 마시려면 제대로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 때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바로 슬로푸드 운동이 지향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슬로푸드 운동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가?
모욜리 : 슬로푸드 운동에서는 크게 3인의 운동 주체가 있다. 생산자, 소비자, 활동가(지식인)가 그들이다. 그들 3인은 일체가 되어 정보 교환을 하고, 소비자 교육을 통해 대중들이 질 좋은 음식에 대한 안목을 기르는 데도 신경을 쓴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현재 슬로푸드 운동은 음식 문화를 넘어서 생활 습관을 바꾸는 운동('슬로 라이프'), 사회ㆍ경제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세계 70여개 도시에서 이 운동의 철학을 받아들여 주변 환경과 조화로운 도시계획, 대체 에너지와 교통수단 등을 연구하는 슬로시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정부의 농업 정책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다국적 기업인 몬산토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을 판매하는 것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슬로푸드 운동에 영향을 받은 소비자들의 거부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일본 등에서는 학교 교육에 맛 즉 '미각의 교육'을 도입하고 있다. 학교 교육에서도 올바른 음식과 식사가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쁜 음식을 먹으면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가? 그 결과인 비만은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나쁜 음식을 많이 먹어서 생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교육을 통해 가르치고 있다.
올해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세계 각국의 슬로푸드 운동의 정보를 교환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다. 이것은 2년에 한번씩 열린 행사로 올해는 5번째 이다. 전 세계에서 5천명의 농업, 어업의 장인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새로운 대안농업에 대한 생각이 교환될 것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현재 이루어지는 농업에 대해서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지금 농업은 큰 기업이 단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대안농업이 필요하다.
***소농 중심의 대안농업은 빈곤 퇴치에도 도움이 될 것**
프레시안 :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산업국가에서는 소농 중심의 농업은 사라져가는 추세다.
모욜라 : 앞에서 말했지만 지금의 농업은 거대 기업의 배를 불리면서, 지역에 기반을 둔 토착농업을 고사시키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슬로푸드 역시 가능할 수 없다. 슬로푸드 운동에서는 소농이 중심이 돼 유기농 같은 대안농업을 하는 것이 이런 지금의 방향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런 소농 중심의 대안 농업은 남반구의 빈곤한 국가들에서 기아를 해결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토착 작물과 가공 식품을 생산해 그들의 빈곤 탈피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만의 생각이 아니다.
세계식량기구도 우리의 존재를 무시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인도, 브라질, 멕시코 정부에서도 빈곤 문제에 대해서 슬로푸드 운동이 해결의 실마리를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 같은 경우 "브라질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는데 슬로푸드 운동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직접 표시한 적이 있다. 어제 농림부를 방문해 차관을 만났는데 우리 운동에 큰 관심을 표시하더라.
프레시안 : 한국에서는 시민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우리 농산물을 먹이자는 법 제정 운동을 벌이고 있고, 농업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운동도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운동에 소극적이다. 심지어 '가전제품을 수출하기 위해서 우리 농업을 일부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논리가 유포되기도 한다.
모욜리 : 나는 한국의 사정을 잘 모르지만 출국하기 전까지 그런 분위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공산품을 수출하기 위해서 농업을 희생해도 좋다는 논리는 매우 어리석고, 장기적으로는 큰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다. 세계 식량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한국이 항상 외국으로부터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매우 순진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슬로푸드 운동의 전제는 소비를 줄이는 것**
프레시안 : 슬로푸드 운동은 주로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운동이다. 그런데 사회ㆍ경제 체제를 바꾸지 않고서 그렇게 의식이 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욜리 : 물론 그런 비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존 사회ㆍ경제 체제를 바꾸지 않고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행동해야 할 때이다. 이 대중소비사회에서는 소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생활이라고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 쓸데없는 물건을 너무나 많이 사들이고 있다. 그것은 삶의 질을 고양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슬로푸드 운동은 먼저 인식한 사람들부터 생각을 바꾸고, '소비하는 것이 미덕이다'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제 현대인들은 소비를 적게 하는 대신 질 좋은 것을 소비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외식도 마찬가지다. 1주일에 서너 번 외식하는 대신 한번 외식할 때 좋은 것을 섭취하는 것, 고기를 1주일에 서너 번 먹지 않고 1번 먹더라도 좋은 음식을 먹는 것. 이런 소박한 실천들이 결국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사회ㆍ경제 체제의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는 '웰빙'이라는 생활 스타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일견 슬로푸드에서 지향하는 것과 유사해 보이는 이 생활 스타일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자들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보다 가격이 비싸,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그 소비를 주저하게 된다.
모욜라 : 첫 걸음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과소비를 하면서 슬로푸드를 섭취하는 것을 일종의 '부의 상징'처럼 여기는 것은 슬로푸드 운동과는 무관하다. 여러 번 강조했듯이 슬로푸드 운동은 단지 몸에 좋은 음식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 문명을 되돌아보고, 자연과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것을 지향하는 대안 문명을 지향하는 운동이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와서 '유기농이 비싸다'는 이런 얘기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올바르게 먹는데 정말 그렇게 돈이 필요한지 굉장히 의심스럽다. 한 가지 예를 말해주겠다. 스페인에는 가장 비싼 '생햄'을 파는 가게가 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비싼 햄을 살까 유심히 관찰했다. 놀랍게도 그 좋은 햄을 구입하는 사람은 대개 아주 소박한 옷차림의 평범한 주부들이었다. 단 그들은 고가의 그 햄을 2~3조각 구입했다. 이것은 내가 만들어낸 얘기가 아닌데,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크게 깨달았다.
오늘 경동시장에서 인삼을 샀는데 인삼도 10년 이상된 것은 매우 비싸다. 그런데 사람들이 물건 사는 것을 보니, 어떤 사람들은 비싼 인삼을 사기 위해 다른 소비를 줄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바로 이것이 슬로푸드 운동에 다가서는 핵심이다.
우리는 자동차, 휴대폰, 전자제품, 옷차림에 쓸데 없는 돈을 소비하고 있는 반면에 음식에 대해 너무나 적게 쓰고 있다.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음식에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삶의 질'과 직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젊은 사람한테 높은 '삶의 질'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좋은 집이 있고, 차가 있고, 휴대폰이 있고 이런 답이 나올 것이다. 이런 현실을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소비를 줄이는 대신 '삶의 질'과 연관된 꼭 필요한 곳에 소비를 하는 것. 이것이 슬로푸드 운동이다.
나는 '삶의 질'은 올바로 먹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삶의 질'은 '음식의 질'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슬로푸드, 슬로라이프,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소중한 재산이다.
***느림은 나와 이웃과의 관계의 회복**
프레시안 : 시간의 가치를 얘기했다. 결국 느림의 화두를 다시 던졌는데 느림이 현대 사회에서 갖는 가치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느림을 추구해야 하는가?
모욜리 : 느리게 살면 어떤 가치가 있을까? 우선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자신과 더불어 있으니 바쁘게 살 때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을 얻을 수 있다. 느리게 살면 다른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가 바뀐다.
가족과 이웃, 사회 그리고 주변의 자연환경 이 모든 것과의 관계가 달라진다. 우리는 너무 빨리 살면서 스스로도 잃어버리고, 가족, 이웃과 주변 자연 환경의 중요성도 상실했다. 나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들과 이런 실험을 해보았다.
천천히 디자인을 하고 일을 하는 것과 빨리 디자인을 하는 것을 비교해본 결과, 충분한 시간을 갖고 주의 깊게 사물을 관찰한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 유행하는 신경제는 전혀 우리에게 도움을 안 줬다.
프레시안 : '느림의 철학'을 실천하는 데는 의(衣)생활이나 건축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그런데 왜 음식 문화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모욜리 :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사람의 육신과 정신에 작용하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의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음식 문화다. 음식 문화는 생명을 가진 누구나 접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음식 문화를 통해서 '느림의 철학'을 구현하는 것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유쾌한 삶을 지향하는 운동**
프레시안 : 한국의 음식은 많이 접했는가?
모욜리 : 어제(19일)부터 완전히 한국 음식만 먹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 음식을 여기 있는 동안에 많이 맛보고 싶다. 가장 소박한 음식으로부터 상당히 고급 음식까지 다 맛보고 싶다. 한국에서는 김치, 된장, 고추장과 같은 발효 식품이 많다. 발효 식품이 좋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슬로푸드 정신이 잘 구현된 음식이라 더욱더 관심이 간다.
프레시안 : 슬로푸드는 채식주의와 통하는 면이 많은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욜리 : 많은 관련이 있지만 아주 다른 측면도 있다. 슬로푸드는 사는 기쁨, 즐거울 권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채식주의는 굉장히 '슬프'고 '금욕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적당한 육식과 채식이 섞여야 삶이 더 즐겁지 않겠는가? (웃음)
프레시안 : 채식주의자는 아닌 모양이다. (웃음) 15년이나 슬로푸드 운동을 해왔다. 어려운 점은 없었는가?
모욜리 : 나는 그 질문이 매우 낯설다. 슬로푸드 운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전혀 없었다. 나는 아주 보람되고 하고 싶은 일을 해왔고, 우리의 생각을 이탈리아는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도 쉽게 받아들였다.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정치가, 기자, 농부 등을 만나면서 나는 슬로푸드 운동이 단지 낭만적인 운동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방법과 길을 제시하는 운동이라는 확신을 굳혔다. 한국에서도 이 유쾌한 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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