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군 내린천 미산계곡에 자리 잡은 개인산방(開仁山房)에서 2주에 1번씩 열리는 더불어숲학교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뭘까? 군 생활 동안 지겹게 보아온 홍천·인제의 자연 경관은 처음부터 기자의 관심 밖이었다. 오히려 관심이 가는 것은 주말 이틀을 굳이 강원도 산골짜기로 모여드는 사람들, 바로 그들의 사연이었다.
지난 5월8일에도 30여 명의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내린천 미산계곡의 개인산방으로 더불어숲학교 11강을 수강하기 위해서 모여들었다.
***30년 만에 만난 군대 친구**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가 내린천 미산계곡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돼 11강을 진행할 한겨레신문사 홍세화 기획위원이 도착했다. 홍세화 위원이 잠시 쉴 틈도 없이 잔디 마당에 둘러 앉아 첫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더불어숲학교의 공식 일정이 시작됐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기소개가 계속되면서 여기저기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관심을 끌었다. 친구와 의기투합해 동생까지 데리고 대구에서 올라온 대학생들, 신청 때부터 '연령 제한'을 묻더니 결국 아이들까지 몽땅 데리고 온 3형제, 대학 신입생인 딸의 손을 잡고 찾아온 어머니.
그 중에서도 교사를 하다 은퇴하고 현재는 부동산중계업을 한다는 전병원(53)씨가 특히 눈에 띄었다. 그가 미산계곡을 찾은 이유는 특별했다. 바로 홍세화 위원과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홍 위원이 1970년초 민청학련 사건으로 강제 입대돼 의정부로 배치됐을 때, 바로 위 선임병이 전씨였다.
"홍 위원이 군대 입대하자마자 얼마 안 있어 중정에 끌려갔다 왔어. 20대 초반의 나는 상상도 못할 모진 꼴을 당하고 왔을 텐데, 너무 당당하더라고. 그래서 반해버렸지. 후임병이지만 3년 군 생활동안 친구처럼 지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배웠어."
그렇게 군대에서 인연을 맺은 지 30년, 전씨는 홍 위원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비 펴냄)를 통해 그의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귀국했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재회는 계속 미뤄졌다. '컴맹'인 전씨가 우연히 '더불어 숲' 학교 소식을 접한 것은 '이제 다시 만날 때가 됐다'는 하늘의 뜻이었으리라. 온갖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보았을 두 사람은 이렇게 30년 만에 만났다.
***똘레랑스, 한국 사회의 필수적 가치**
저녁을 마친 후 홍세화 위원의 '똘레랑스,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강연이 시작됐다. 미산계곡 인근 서석 고등학교 안창용(38) 선생과 같이 온 3명의 고등학생을 포함한 30여 명의 수강생들은 홍세화 위원의 열정적인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강연은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고 시간은 예정된 2시간을 훌쩍 넘겼다.
홍세화 위원은 "'똘레랑스'는 우리말 '관용'과는 구별해서 써야 한다"는 지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강자가 약자에게 잘못을 용서한다'는 뉘앙스가 묻어 있는 관용은 '차이'와 '다름'에 주목하는 똘레랑스의 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 위원은 "똘레랑스는 "나와 다른 타인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이성의 소리'"라며 "'차이'와 '이성'이야말로 똘레랑스의 핵심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하지만 그 생각을 당신이 간직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한 프랑스의 18세기 계몽 철학자 볼테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진실과 공익을 위해서는 가능하면 합리적인 많은 생각들이 표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위원은 특히 똘레랑스가 중요한 이유를 한국 사회의 척박함에서 찾았다. 최근 송두율 교수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사상·양심·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이 존속하는 현실, 타인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 호남 출신에 대한 지역 차별,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 동성애자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 등, 이런 모든 것들이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자기와 '다른 것'을 적대시하는 태도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홍 위원은 "이제 한국 사회도 '다른 대상'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기보다는 서로 인정하고 '경쟁'해야 할 것으로 여겨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끊임없이 '다른 대상'에 대한 적대감을 재생산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수구 세력의 '앵똘레랑스'에 대해서 단호하게 반대하는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위원은 또 "'자연에 대한 똘레랑스'를 요즘 고민하고 있다"면서 "이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의 탐욕을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자연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땅은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자손에게서 잠시 빌렸을 뿐이다"라는 조지 보베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연에 대한 똘레랑스'는 곧 '타인에 대한 똘레랑스'의 전제조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부딪치면서 내는 빛이 아름다워**
'더불어 숲' 학교의 방점은 '숲'보다는 '더불어'에 찍혀 있었다. 개인산방이 위치한 내린천 미산계곡의 아름다운 경치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부딪치면서 내는 '빛'이었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학생들을 데리고 온 안창용 선생과 학교에 참가한 다른 교사들은 서로의 현실을 공유하면서, 바람직한 교육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오랫동안 토론했다. 각각 치과의사, 한의사, 수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 대구에서 올라온 대학생 방병관(26), 노태진(26), 노나미(24) 씨와 대기업 회사원인 안재호(28)씨도 밤늦게까지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20대의 고민'을 나눴다.
지난해 10월 더불어숲학교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많은 비가 내렸지만, 9일 각자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홍 위원은 강연의 마지막에서 "한국 사회는 자기 성숙의 모색이 죽은 사회"라고 한탄했다. 이제 자기 성숙을 모색하는 서른 그루의 나무들이 봄비를 머금은 초록빛의 숲보다도 더 아름다운 '더불어 숲'을 각자가 선 자리에서 만들어 낼 것이다.
(프레시안이 후원하는 더불어숲학교는 22~23일 봄을 맞아 개인산방이 위치한 미산계속을 탐사한 후, 명상의 대가인 상명대 박석 교수의 '명상의 사회화, 사회의 명상화'를 강의한다. ☞ 바로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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