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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할마님아 설문대할마님아

[제주2공항을 반대한다]

날은 갈라 기축년 상강 지나 동짓달 되옵네다
땅은 갈라 해동조선국
하늘못 천지물이 흐르고 흘러 백두대간으로 흘러
불복산(不伏山) 지리산으로 내리흘러
물로야 뱅뱅 돌아진 물 막은 섬 되옵네다
비단결 올올 흐드러진 삼을라 솟아난 탐라땅 되옵네다
흰 사슴이 은하를 끌어당기는 한라산 제주땅 되옵네다
일 년은 열두 달 삼백예순 오름자락 되옵네다

무슨 연유로 올리는 이 공사(公事)냐 하옵거든
옷이 없는 이 공사 아닙네다
밥이 없는 이 공사 아닙네다
사람이 살암시면 옷과 밥은
빌어서도 옷이요 얻어서도 밥입네다마는
한 해가 솟고 하루가 열리는 일출봉 성산 그 어간에
무쇠로 만든 시조새들이 뜨고 내리는
무지막지한 공항이 새로이 들어선다는 험악한 전갈 되옵네다
청정한 하늘 아래 귤밭 위에 당근밭 위에
잿빛 시멘트 깔리고 시커먼 콜타르 덮이면
일 년 열두 달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못 키우는
불임(不姙)의 땅 되는 게 뻔한 이치 아니옵네까
살아있는 것들은 삶터를 빼앗기고 시나브로 삶도 뒤틀리고
굵은 뿌리 잔 뿌리 몽땅 거덜 나게 되어
하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눈물로 올리는 이 공사 되옵네다

할마님아 설문대할마님아
치마폭에 흙 나르며 할마님 치성으로 가꾼 땅
이 섬 되옵네다 영주 한라산 되옵네다
옹긋봉긋 올망졸망 삼백 예순 오름 되옵네다
사람이 열고 바람이 끝맺은 큰 올레 작은 올레 되옵네다
오름과 오름 사이 아름드리 팽나무 그늘
아바님 뼈를 빌고 어마님 살을 빌고 할마님 숨결 받아
더불어 한 세상 나누며 살다가 토란잎에 이슬처럼
이우는 햇살처럼 후여후여 오름 올라 오름 되는 게
우리네 삶 아닙네까 섬의 살림 아닙네까
먼 후손에게 잠시잠깐 빌린 곱디고운 한라산자락
뿌리고 거두며 살다가 본디 모습 그대로 돌려드리는 게
자연의 섭리 아닙네까 사람의 법도 아닙네까

할마님아
죽어 섬으로 환생한 설문대할마님아
시조새가 뜨고 내리려면 오름을 잘라야 한다 하옵네다
할마님 살점을 없애야 한다 하옵네다
할마님 숨결을 끊어야 한다 하옵네다
시조새가 회항할 때 국제적인 규정에는
왼쪽 오른쪽 두 갈래 회항로가 있어야 한다 하옵네다
그나마 우리 법에는 한쪽 회항로만 있어도 된다 하여
만약 산쪽을 버리고 바다로 하늘길 낸다면
아, 큰물뫼 대수산봉을 잘라야 한다 하옵네다
바다쪽을 버리고 산으로 하늘길 낸다면
아, 더 많은 오름의 무르팍을 분질러야 한다 하옵네다
탐라국 시절 왕이 나올 이 땅에
호종단(胡宗旦)이 들어와 수맥을 끊어버린 큰물뫼 되옵네다
이참엔 수맥이 아니라 큰물뫼를 아예 뭉갠다 하옵네다
할마님 젖무덤을 앗아버린다 하옵네다
할마님 가슴골을 메워버린다 하옵네다

오름 나고 사람 났지 사람 나고 오름 난 법 아닙네다
오름은 바람으로 말을 걸고 말을 듣는 법입네다
쑥부쟁이 울고 소로기가 우는 건 오름이 우는 것입네다
물매화 울고 구절초가 따라 우는 것도 오름이 우는 것입네다
국록을 받아먹는 관에서는 훼손하지 않을 거라 둘러댑네다만
천만의 말씀입네다 이는 권고를 거스르는 일입네다
되갈라치는 일입네다 수천수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일입네다

할마님아 설문대할마님아
2016년 12월에 끝난 공항 부지 예비타당성 조사는
안전을 위해서는 어떤 오름은 잘라야 하고
어떤 오름은 굼부리를 메워야 한다는 권고를 합네다
기획재정부에 의하면 오름의 운명은 둘로 나뉩네다
목 잘리는 오름과 몸통 날아가는 오름 되옵네다
목 잘리는 오름 호명하고 잘릴 높이 고시합네다
홀로 있어 독자봉, 60m 되옵네다
왕(王) 자 모양 형국이라 왕뫼, 55m 되옵네다
족은물뫼와 곱 갈라 큰물뫼, 40m 되옵네다
너른 들판에 달이 숨어 은다리오름, 40m 되옵네다

몸통 날아갈 위기에 으악새 우는 오름들 호명하옵네다
수산평 한녘에 외떨어진 낭끼오름 되옵네다
산세가 뒤로 굽어 뒤굽은이 되옵네다
난산리 북서쪽 유건 같은 유건에오름 되옵네다
펑퍼짐한 등성마루 나시리오름 되옵네다
누운 형상이 어미개 닮아 모구리오름 되옵네다
태곳적 섬의 산야가 물에 잠겼을 때
담배통만큼 남았다 하여 통오름 되옵네다

할마님아 설문대할마님아
공항 부지가 들어설 예정인 성산 일대는
텃새는 물론이고 천혜의 철새도래지 되옵네다
해마다 달마다 30여종 많게는 1만 철새들이 예서 겨울을 나고
잠시 떠났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곳 되옵네다
그들의 보금자리가 바로 이 곳 일대 되옵네다
한데, 그들을 몰아내고 무쇠로 만든 시조새를 들이려 하고 있습네다
더욱 가관인 것은 환경부 연구원에서 이미 성산 일대는
조류 충돌 위험이 있어 공항 입지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냈는데도 국토부는 제주도는 요지부동입네다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그저 복지부동입네다
청와대도 난 모르쇠입네다 바다 건너 불구경입네다

지난 8월이옵네다
러시아 주콥스키 공항에서 승무원과 승객 233명을 태운 비행기가
이륙 직후 인근 옥수수밭에 비상착륙한 일이 있습네다
최소 27명이 다치고 기체는 재비행이 불가할 정도였는데
원인은 다름 아닌 조류 충돌이었다 합네다
새의 길을 무단침범한 비행기가 저지른 참사입네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끔찍한 일 되옵네다
불문하더라도 비행기의 원조는 새입네다
해서, 비행기는 새의 형상을 본뜬 것입네다
비행기는 결단코 새를 넘볼 수 없는 법입네다
새들이 낸 저들의 길을 아무리 사람이라 한들
4대강 내듯 8차선 내듯 제멋대로 낼 수는 없는 법 아닙네까

정작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비행기 소음이 아니웨다
눈 덮인 중산간 청량한 어느 날
푸른 잎 붉은 동백에 앉아 삐삐뾰익 삐익 하루를 여는
동박새 노랫소리가 바로 제주요 제주다움입네다
사람들이 그래서 섬을 찾고 또 찾는 것 아니옵네까
철새도 아니 오고 새소리도 아니 들리는
오직 차바퀴 소리와 하늘 가르는 비행기 소음만 있다면
누가 섬을 찾고 다시 찾으려 하겠습네까

할마님아
만물만상에 숨을 불어넣으시는 설문대할마님아
성산 일대 제2공항 부지에서 12㎞ 안쪽에는
물색 고운 천연기념물 휘힉 휘히익 팔색조가 사옵네다
삐뾰삐뾰삐 긴꼬리딱새도 사옵네다
휙휙 뾱뾱 천연기념물 두견이도 사옵네다
두견이 알을 품는 휘~ 짹짹짹 섬휘파람새도 사옵네다
멸종위기종 백조, 큰고니도 살고 흰이마기러기도 사옵네다
노랑부리저어새도 살고 흑로도 살고 댕기물떼새 도요물떼새도 사옵네다
이 어진 목숨들 굽어 살펴주시옵서
이 여린 생명들 품 안에 품어주시옵서

할마님아
혼은 혼반에 넋은 넋반에 주신 설문대할마님아
이젠 혼도 없고 넋도 없는 섬이 되어가려 하옵네다
어스름 새벽에 일어나 상웨떡 돌레떡 구덕에 담고
흰 술 한 병에 계알 안주 등짐에 지고 걷고 또 걸어
정성으로 치성으로 빌고 빌었던 마을 본향이
공항 부지에 들어가면서 없어진다 하옵네다 사라진다 하옵네다
손금이 닳도록 빌고 빌었던 본향이
넋 들일 새도 없이 혼 들일 틈도 없이
신목(神木)도 없어지고 흔적도 사라진다 하옵네다

돌아보저 하옵네다 돌아보저 하옵네다
공항 부지 온평리 돌아보저 하옵네다
진동산본향한집당 되옵네다
곤밥 한 그릇 얻지 못해 없어질 당 되옵네다
서근궤당, 냇빌레돗당 되옵네다
미음 한 모금 먹지 못해 사라질 당 되옵네다
돌갯동산되옵네다
현씨일월당, 요드렛당, 할망당 되옵네다
곤밥 한 그릇 얻지 못해 없어질 당 되옵네다
용머리일뤳당, 돌혹돗당, 묵은열운이당 되옵네다
미음 한 모금 먹지 못해 사라질 당 되옵네다
공항 부지 수산1리 돌아보저 하옵네다
울뤠모루하로산당 되옵네다 진안할망당 되옵네다
곤밥 한 그릇 얻지 못해 없어질 당 되옵네다
공항 부지 신산리 난산리 돌아보저 하옵네다
멩오할망당, 고장남밧일뤳당 되옵네다
미음 한 모금 먹지 못해 사라질 당 되옵네다
걱대모루일뤳당, 골미당 되옵네다
곤밥 한 그릇 얻지 못해 없어질 당 되옵네다
총기 흐려 이름 올리지 못한 당도 수두룩 되옵네다
미음 한 모금 곤밥 한 그릇 먹지도 얻지도 못해
말라죽을 당 되옵네다 굶어죽을 당 되옵네다

할마님아
오늘을 점지하고 내일을 관장하시는 설문대할마님아
계획에 의하면 공항 부지 면적이 성산읍 일대
545만㎡라 하옵네다 165만 평이라 하옵네다
축구장 780개가 들어서고도 남는 몸집이라 하옵네다
민생은 팽개치고 저들끼리 쌈박질에 날 새는 줄 모르는
여의도가 두 개 들어앉을 덩치라 하옵네다
2025년까지 5조1천억을 들이붓는다 하옵네다
억 소리만 들어도 억 하고 숨통이 끊어지는데
마른 가슴 애산 가슴 산산조각 억장이 무너지는데
조를 쓴다 하옵네다 자그마치 5조를 쓴다 하옵네다
조 하면 모인좁쌀 흐린좁쌀밖에 모르던 사람들이옵네다
조조 하면 닭 모이 주는 소리로만 알던 사람들이옵네다
가없이 많고 하염없이 커서 도대체 가늠이 안 되는
땅덩어리옵네다 돈다발이옵네다

할마님아 설문대할마님아
등잔 밑 어머니가 배냇저고리 짓듯
한 땀 한 땀 꼼꼼하게 살피고 촘촘하게 또 살펴야 하옵네다
돌아보고 다시 돌아보고 한 번 더 돌아보아야 하옵네다
바느질 자리가 어긋났다 싶으면 내일의 아이를 위해
좌고우면 없이 실밥 뜯고 첫 자리로 돌아가야 하옵네다
한번 엎질러진 물은 도로 담을 수 없는 게 세상 이치 아니옵네까
엎질러지기 전에 한 마음 두 손에 받쳐 내일의 아이들에게
고이 되돌리는 게 우리네 몫 우리네 일 아니옵네까
한순간 엎질러지면 이미 백약이 무효한 법 아니옵네까

할마님아
영험하고 자애하신 설문대할마님아
동지섣달 엄동설한에 도청 앞에서 광화문에서
풍찬노숙 살얼음판에 곡기 끊어 사랑을 이루려는 사람 있사옵네다
때 되면 태 사른 땅에 몸을 눕힐 여리고 어진 사람들 되옵네다
그 마음 그 성정 말로 글로 다할 수 없어
흰 종이에 흰 글씨로 몇 자 적어 이 원정(原情) 올립네다

▲ 제주도의 여신 설문대 할망 석상. ⓒ금능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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