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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편집국장을 체포해 즉결 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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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경찰은 편집국장을 체포해 즉결 처분했다

[팩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 <20>

해방 후 왜곡된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는 효용을 다했다. 그러나 예고된 갈등이었다. 일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35년, 8.15 광복과 분단체제, 그 이후 70년의 강고한 구 체제 시스템 속에서 우리 내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알게 모르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 안에 우리 내부의 모순과 고뇌가 응축되어 있다. 이 모순과 고뇌를 탐구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한 개인사를 통해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문학의 영역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외세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이 우선이었던 관계로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렸고 안일했다. 그러다보니 역사는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인 양 화석화되고, 현대의 역사는 더군다나 묻혔다.

기자 출신 이계홍 작가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 소설은 2016년 10월호부터 2019년 6월호까지 문예월간 '월간문학'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월간문학 연재를 마친 뒤 많은 부분을 수정 보완해 프레시안에 재수록한다.

이 연재물은 이른바 '팩션(Faction)'이다. 팩트와 픽션의 사이 어디에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논픽션' 형식의 소설이다. 필자는 취재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 말 일본 육사 출신 젊은 생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지러운 시대, 그 안에서 제국주의 광풍에 휘말린 젊은이들의 시각을 잡아내려 했다. 이계홍은 "일본의 극우 정권이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들까지도 왜곡하는 역사 모독에 대해 하나의 담론시장을 형성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총 33회로 나뉘어 연재될 예정이다.(편집자)


제20장 희망을 잃어버린 자

장지성이 육군항공대 비행장교로 배속된 것은 1948년 늦가을이었다. 그는 일본 육사 본과에 올라가 항공과에 배치되어 전투기 조종사 훈련을 받던 중 해방을 맞았다. 그리고 귀국해 고향의 중학교에서 수학과 물리과 교사로 근무하던 중 동기생들보다 뒤늦게 국방경비대 사관학교 5기로 들어가 졸업하자 육군항공대로 배속되었다.
육군항공대 장교들은 지급되는 피복과 배식, 처우가 타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았지만, 그렇다고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타 군인 집단보다 교육수준이 높고, 의식이 깨어있는 자들이 많아서인지 이념 갈등이 심했다.
국내 상황에 대한 불만을 품은 자들이 회의하고, 그중 과격파들은 비행기를 몰고 삼팔선을 넘어가버린 일도 있었다. 나라의 불확실성 때문에 젊은 조종사들이 이상주의를 꿈꾼 나머지 월북한 것인데, 혼란스럽기는 북쪽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직접 겪어보지 않으니 이곳보다 나을 것이라 여기고 충동적 결행을 해버린 것이다.
비행기를 몰고 월북하는 것은 어떤 경로보다 안전하고 빠르고 정확했다. 그러나 전투기 조종사 한 명 양성하려면 많은 돈과 시간이 소요되어 이들이 넘어가버리면 아군은 값비싼 비행기 손실과 함께 인적 손실이 막대했다. 그래서 미군은 한국인 조종사를 태우지 않았고, 태우더라도 부조종사로, 주조종사는 미군이 맡았다.
미 국방성은 공식 문건을 통해 “한국 공군을 신뢰할 수 없다. 비행기를 주어도 가지고 도망가버린다”고 불신했다. 비행기가 절대 부족인 북한에서는 비행기를 몰고 간 조종사를 영웅 대접했다.
육군항공대는 김포비행장에 본부가 있었다. 항공대 요원들은 김포비행장 인근 미군 공병대가 철수한 뒤 비워둔 퀀셋과 장교용 주택에 거주하며 김포비행장과 여의도 비행장으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김포비행장 외곽에 세운 항공사관학교 교장은 김정렬이었다.
어느날 장지성은 선임 장교로부터 김 교장이 부른다는 전갈을 받고 교장 관사로 달려갔다. 김 교장은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 표정이 너무도 침울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을 알고 장지성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나, 항공부대 배속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되돌아보았다.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었다. 북으로 비행기를 몰고 간 장교를 막지 못한 것이 일말의 책임이라면 책임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것은 그의 비행대대 사고가 아니었다.
김정렬의 동생 김영환과 콤비가 되어 항공훈련을 받다 보니 김 교장도 장지성을 친동생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낯설게 앉아있다. 불러놓고 왜 이러시지? 답답하고 불안해서 장지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교장 선생님 각하, 제가 무슨 나쁜 짓이라도 했습니까?”
단 둘이 만나거나 사석에서는 형님이라고 호칭했지만 전혀 딴판의 얼굴이어서 그는 이렇게 무겁게 물었다. 그래도 대답이 없던 그가 장지성을 빤히 쳐다보면서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너는 괜찮으냐?”
“네?”
“어젯밤에 박원직과 홍태화가 잡혀갔다.”
“네? 왜 잡혀갑니까?”
“너는 모르고 있었더냐?”
김 교장이 꺼지듯 한숨을 쉬었다. 박원직 대위는 항공사관학교 교수부장이었고, 홍태화 소위는 항공비행단 정비장교로 복무 중이었다. 홍태화는 장지성과 함께 일본 육사에서 항공 병과에 배속돼 함께 조종사의 꿈을 키웠으나 해방 후 홍태화는 군문 대신 전주의 어느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는 일본에 두고 온 애인 때문에 밀선을 타고 도항을 하다가 체포되어 압송돼오자 비탄에 잠겨 괴로움 속에 묻혀 살고 있었다. 폐인이 될 것같아서 장지성이 그를 불러들여 김정렬 교장에게 소개해 정비장교로 입대시킨 것이 몇 달 전이었다. 당시만 해도 항공 정비 전문가가 절대 부족했기 때문에 글라이더 한번 날린 경험만 있어도 데려다 쓰는 판이었다.
“너 정말 아무 일 없단 말이냐?”
김 교장이 다시 물었다.
“네. 저는 아무 일이 없습니다. 한데 무슨 일로 잡혀 갔습니까?”
김 교장은 왼쪽 손을 들어 보이더니 아래로 꺾었다. 당시 왼손은 ‘좌익’이라는 뜻이었다. 군부의 좌익 소탕은 김창동이 주도하고 있었다. 그는 태릉 1연대 정보장교로 있다가 육군정보국 특별조사과(SIS) 특별수사관으로 전속돼 복무하고 있었다. SIS는 뒤이어 특무대라는 방첩부대(CIC)로 개편되었다. 이 기구가 숙군 작업을 담당했는데 일단 김창동에게 걸렸다 하면 나오지 못하거나, 나와도 병신되어 나온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장지성은 긴장하면서도 한숨 놓았다. 그 점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다. 박원직은 잘 몰라도 홍태화는 번지 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던 것이다. 홍태화가 좌익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항공부대 구성원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좌익 혐의자와 토론하다 끝내 주먹질까지 한 사람이었다. 물론 우익도 혹독하게 비판했다.
장지성이 고향으로 돌아와 대학 진학을 위해 절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그를 불러내 나주 민립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도록 알선해준 사람이 홍태화였다. 그가 형님이 사는 전주여학교로 옮겨가서도 장지성을 데려가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어린 애인을 데려오려고 밀항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밀선을 타고 가다 적발돼 경찰서에서 한달 구류를 살다가 나왔다. 그는 조국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홍태화는 장지성 네가 불러들였지? 이걸 어쩌지? 내가 그를 임관시켰으니 말이다.”
“각하, 홍태화는 절대 그럴 친구가 아닙니다. 정의감이 강해서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고, 세상을 불만스럽게 본다는 게 티라면 티입니다. 하지만 사상적으로 깨끗한 청년입니다. 일본 소녀를 만나려고 밀항했다가 적발돼 돌아온 것을 제가 데려왔습니다. 매일 그리움 속에 살고 있을 뿐, 그에게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머리 속에 박혀있지 않습니다. 그저 감성 풍부한 청년일 뿐입니다.”
“그런 것이 통할까. 세상이 이러니 발을 뻗고 잘 수가 없구나.”
김 교장이 길게 한숨을 내뿜었다. 그에 따르면 전날 밤, 김창동 특무대의 행동대장 이한필 대위가 일단의 병사들을 이끌고 와서 장교 숙소에서 박원직 교수부장과 홍태화 소위를 체포해 갔다. 두 사람은 끌려가면서 김정렬 교장을 꼭 한번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해 교장 관사로 끌려왔는데, 그 광경이 참혹했다. 특무대원들은 두 사람을 땅바닥에 엎어놓고 군홧발로 머리를 밟은 채 김 교장 앞에 섰다. 두 장교는 얼굴이 피투성이었고, 홍태화는 머리가 까져서 피를 쏟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들인가?”
김정렬이 놀라는 한편으로 화가 나서 묻자 이한필의 거친 대답이 나왔다.
“빨갱이 새끼들입니다.”
김정렬은 머리가 아찔해졌다. 조종사 월북사건으로 뒤숭숭해있는데, 그 연장선인가?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 풀어놔!”
“뭘 믿고 그러십니까? 이자들이 비행기를 북으로 날려보낼 놈들이 아니란 걸 뭘로 증명하겠습니까. 이 자들이 남로당 세포들입니다.”
어안이 벙벙해 잠시 말을 잊고 있는데 이한필 중위가 자신있게 말했다.
“남로당 군사조직표에 나와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남로당 군 계보를 캐냈는데 이 자들은 바로 박정희 계보 세포들입니다.”(김정렬회고록 116페이지 ‘박정희 소령의 고난’편 참조).
이때 군홧발에 머리가 밟힌 홍태화가 소리쳤다.
“개새끼들아, 사람을 뭘로 보고 이러는 거야. 나는 계보가 뭔지도 모른다. 생사람 잡지 마라. 니들이 그러니까 나같은 사람도 공산당이 되는 거야. 니놈들이 없는 좌익을 만들고 있잖아!”
“공산당은 본래 말이 많지.”
이한필이 그를 팼다. 홍태화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발악했다.
“이 새끼야, 아닌 것은 아닌 거야. 나는 니들보다 더 공산당을 싫어해. 너 같은 새끼들이 공산당을 만드는 거야! 완장차고 생사람 때려잡는 니놈들 꼭 기억할 것이다.”
“기억하기 전에 니가 먼저 죽어, 씨발놈아.”
이한필이 거듭 군홧발로 차는데, 홍태화가 입에서 피를 한움큼 쏟아내고, 옥수수 알 같은 이빨 두 대를 뱉어냈다. 그는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개진 뒤 정신을 잃었다. 그는 광주학생사건 이후 광주고보 교내 기강이 엄중하던 때, 부당하게 대하는 일본인 교사에게 대들었다가 무기 정학처분을 당했으나 끝까지 물러서지 않은 머리가 좋고 배포가 큰 사람이었다.
“홍태화가 더 문제다. 그 녀석 성깔 때문에...”
김정렬이 예의 길게 한숨을 내뿜었다.
“각하, 박원직 교수부장은 박정희 선배 직속 후배라서 계보를 의심해볼 수 있지만, 홍태화는 절대 아닙니다. 일본 소녀 하나에 울고 있는 감상파일 뿐입니다.”
“나를 설득해봐야 소용없어. 첩보에 따르면 김종석, 최남근, 박정희, 조병헌, 이성구, 오민균, 이정길, 조철형, 김태성, 이상진, 김학림, 황택림, 이병주 등이 몰리고 있다. 너와 가까운 선후배들 아닌가?”
장지성은 입이 딱 벌어졌다. 그들은 그와 형제처럼 가깝게 지낸 그의 일본 육사 선후배, 또는 동기간들이었다. 박정희, 최남근(만주군관학교 출신)은 말할 것 없고, 대전 2연대장 김종석, 1년 후배 오민균, 조병건, 해방되자마자 김일성 장군을 만나러 간다고 집을 나섰다가 행방이 묘연한 동기생 이성구, 서울대에 입학해 다니다가 행방불명된 단짝 친구 이정길, 누명을 쓰고 부대에서 자결해버린 김태성, 중학교 2년 선배였지만 4년 만에 일본 육사에 합격해 장지성의 후배가 된 조철형 등이 모두 의심을 받고 쫓기고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이들은 숙군 과정에서 박정희를 제외하고 모두 좌익으로 몰려 처형되거나 행방불명되었다).
그중 김종석은 그와 인연이 깊었다. 김종석이 대전 2연대장으로 복무하고 있을 때 장지성이 고향 나주에서 상경 길에 그를 찾아갔다. 그는 다짜고짜 소리질렀다.
“국방경비대는 미국놈들 앞잡이야! 그놈들 따까리 밖에 할 것이 없어. 우린 친일파 새끼들 똥개가 되고 말았어. 미국놈들 하수인이 되려면 들어오지 마라!”
그는 일본군 대위 출신이었다. 오키나와 전선 남부는 김종석, 북부는 신응균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일본 육사 생도들에게 신화적 인물이었다. 청년장교 시절 영웅 칭호를 받았던 두뇌가 명석하고 전술에 능했던 선배였다. 그런데 친일 세력을 욕하고, 미국을 욕한다. 일본 육사 출신이 친일분자를 욕하다니, 장지성은 한때 혼란스러웠다.
장지성을 심하게 대했다고 생각했던지 김종석은 그를 유성온천 고기집으로 데리고 갔다. 고기를 잔뜩 먹인 뒤 그가 말했다.
“나는 일본 제국주의를 위해 미국과 싸웠다. 귀국해서는 그것이 수치스러워서 몸둘 바를 몰랐다. 남의 전쟁에 끼어들어서 결사적으로 싸우다니, 이런 미친 놈이 다 있나, 해서 산 속에 숨으려고도 했다. 민족을 위해 싸워본 적이 없다는 것이 나를 이렇게 치욕스럽게 하다니, 그래서 앞으로는 두 번 다시 남을 위해 싸우지 않겠다, 내 조국, 내 나라를 위해 젊은 피를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뭐냐. 일본에 이어 미국의 졸개가 되다니, 이게 조국의 꼴이냐. 우리의 운명과 상관없이 미국놈들 꼴리는대로 나라가 돌아가고 있는 걸 지켜보면서 무력감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 너에게 과도한 말을 했던 것도 내 자신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왜 이토록 살기가 힘드냐. 너, 정신 똑바로 차려라. 똑바로 정신 박혔으면 그때 입대해도 늦지 않다. 나는 북도, 남도 아니다. 민족의 아들일 뿐이다. 뒤늦게나마 눈을 뜬 민족의 아들이다. 내 말 알아듣겠나?”
그는 분노하고 있었으나 어떤 결의에 가득찬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를 필두로 그들이 비밀 결사체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연결고리는 없어 보이는데 홍태화가 그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물정 모르고 상경한 초급 장교였을 뿐이다. 국방경비대 사관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어서 누구와 접촉하거나 물들 시간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김 교장은 넋을 잃은 듯했다. 장지성도 한동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연했다.
해방의 혼란기에 무분별하고 설익은 이념 전쟁은 이렇게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것은 뭐니뭐니해도 신생국가의 동량으로 아낌없이 써먹어야 할 젊은 인재들이 너무도 많이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가 특무대를 다녀오겠습니다. 이한필 조사관은 경비대사관학교 5기 동기생입니다.”
“조심해야 한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안심할 수도 없다.”
김 교장은 장지성보다 열 살이 위였으니 삼촌이나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너나 홍태화 집안을 내가 잘 안다. 진작에 너희들 가족사를 신원조회를 통해 알아보았다. 춘부장들의 인품도 알고 있다. 자존감으로 사시는 분들이다. 그런 자제들인데 어찌 공산당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지금 시국에 그것으로 무슨 보장을 해주겠나.”
장지성의 가대는 대대로 유교 가풍을 지닌 집안이었다. 나라를 잃었을 때는 항일로 민족적 자존심을 지켰으며, 가부장적 예의 범절에 바탕을 둔 벌족한 유교 집안이었다. 예를 갖추면서 산다는 것. 남을 해치지 마라, 나누어라, 너그러워라, 라는 나주 양반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그것이 진정한 우익의 길이고 가치였다. 우익에 대한 이론을 알지 못했지만, 묵묵히 그 길을 걸어왔다.
이런 가풍이 그가 살아온 삶의 지표가 되었을 뿐, 프롤레타리아가 어떠니 부르주아가 어떠니 하는 사상과 이념은 무관했다. 홍태화는 더 그랬다. 민족의식이 내면화했을 뿐, 좌든 우든 이념의 노예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해방 정국의 혼란상을 지켜보며 함부로 나서지 말 것을 홍태화를 불러 당부했다. 나주 문벌답게 사람 다치게 하는 곳에 가지 말아라, 어진 사람의 행적을 따르라, 사람을 선하게 대하는 것이 사는 근본이다, 라는 말씀을 강조했다. 이 가르침은 홍태화의 생활 신념의 체계가 되었다.
특무대는 명동 한복판에 있는 명동극장을 본부로 사용하고 있었다. 숙군 선풍이 불면서 이곳에 전 군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1,2층에 헌병사령부, 3층에는 정보국이 자리잡고 있는데, 좌익 혐의자 체포는 헌병사령부가 맡고, 조사는 정보국 특별조사과가 맡고 있었다.
정보국 요원들은 ‘대구 폭동’에 이어 제주4.3, 10월 여수·순천 사건으로 정보 및 방첩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미군 교관들로부터 정보 교육을 받고 대거 현장에 투입되었다. 책임자는 백선진-김점곤-김안일 라인이었지만, 실무책임자는 김창동-이한필이었다. 실무자들은 일제 고등계 형사와 사찰계, 헌병대 출신이 주축이고, 수사는 일제 때의 고문 수사기법을 그대로 따랐다.
혐의자를 잡으면 무조건 몽둥이로 패고 송곳으로 찔렀다. 필요하면 전기선도 연결했다. 고문을 못이긴 나머지 억지 자백한 자가 속출했으나 그것으로 공적의 근거가 되었을 뿐, 번복되는 일은 없었다. 번복할 경우 더 이상 허튼 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반 죽여 놓았고, 실제로 죽은 자도 적지 않았다.
당시 김창동은 대구-제주에 이어 여수·순천지구에 내려가 반란군, 밀대, 토착 공산분자 혐의로 3천여 명을 체포해 이중 대다수를 처벌했다. 죄질을 분류해야 했지만 급한 상황에선 그런 구분이 귀찮았다. 숫자가 많을수록 공이 컸으니 웬만한 것은 묵살되었다. 그 공로로 그는 빠르게 진급했는데, 두세 달만에 두세 계급 진급한 적도 있었다.
특무대 본부는 어두컴컴하고 음산했다. 방 여기저기서 숨넘어가는 소리, 비수처럼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복도를 타고 흘러나왔다. 쇠꼬챙이로 몸을 찌르는 듯 날카로운 비명이 유리창을 흔들었다.
장지성은 저도 모르게 몸을 으스스 떨었으나 그럴수록 아랫배에 힘을 주고 조사국 특별조사과 문을 열었다. 생도시절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바짓가랑아라도 잡고 늘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한필은 찾아온 장지성의 위아래를 훑더니 “너는 여기 올 자격 없어! 나가!”하고 돌아앉았다.
“아니, 올 자격이 없다고? 친구 두 사람이 잡혀왔는데 올 자격이 없다고?”
“빨갱이가 아니면 나가 임마! 바쁜 사람 붙들고 시비 걸지 말라우. 도와주는 놈은 없고, 사람 빼달라는 요구나 하고..”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냐.”
“너 돈 먹었냐?”
장지성은 심히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지만 애써 참으며 말했다.
“이봐, 박원직은 우리 동기생 아닌가. 그리고 홍태화는 내 고향 친구야. 그들 사상을 내가 다 알아.”
“니가 알면 다 통하니? 니가 심사관이니? 박원직은 박정희 계보야. 무시무시한 세포지. 대구 폭동 때부터 이 새끼들 놀고 있더라니까. 야산대, 빨치산, 유격대 뭐 어쩌고저쩌고 한 세상 흔들겠다고 했지. 그래, 우리가 핫바지냐? 검불이냐고? 니가 말한대로 홍태화는 빨갱이는 아니다. 하지만 그 새끼가 더 악질이야. 도대체가 협력을 안해. 불평불만만 늘어놓는다. 사리분별도 못하는 놈이야. 그러다가 이빨까지 나갔잖아. 순진한 놈인지, 모자란 놈인지, 천지분간을 못해. 죽자하고 대들어. 그러면 뒈지지 지가 별 수 있나? 대신 박원직은 협력을 잘해준다. 협력자는 풀어줄 수 있어. 그럼 됐나? 나가 봐.”
그가 잇 사이로 침을 찍 바닥에 쏘았다. 그의 침이 각지게 다려입은 장지성의 바짓가랑이에 떨어졌으나 어찌할 수 없었다. 빨갱이가 아닌데도 혼이 나야 한다는 이 모순. 그리고 협력을 잘해주면 풀려날 수 있다는 음모적 편견... 그는 전신의 힘이 쏙 빠지는 무력감에 젖었다.
그러나 이한필이 반기거나 말거나 장지성은 매일 특무대에 출근했다. 그를 박대해도 그들이 석방될 때까지 찾아다닐 작정이었다. 그런데 박원직은 어느 날부터 특무대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더니 풀려났다.
“홍태화 안풀어주나?”
장지성은 다시 이한필과 마주 앉았다.
“그 새끼 협력 안한다고 했지? 미친 새끼가 아직도 껍적대. 도대체 세상 물정을 모른다니까. 약속대로 우리는 협력자는 석방한다.”
협력자란 주변 인물들을 밀고하는 자를 뜻했다. 그 과정에서 본의아니게 친구들이 줄줄이 붙들려 들어갔다. 그중 맞아죽은 자도 있는데, 좌익 혐의를 씌우면 그는 변명의 여지없이 죄인이 되었고, 수사관의 실적은 올라갔다. 야만과 폭력은 일상화 되었다.
“협력할 것이 없으니까 안하는 거니 놓아줘. 그는 자유주의자일 뿐이야.”
“너도 한번 털어볼까? 주제넘게 까불고 있어, 새끼. 당장 나가, 임마!”
이한필이 더 이상 볼 것 없다는 듯이 예의 잇 사이로 침을 찍 바닥에 깔기고는 먼저 사무실 밖으로 휑하니 사라졌다. 이런 황망함 가운데 홍태화는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그리고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목포형무소로 이감되었다.
감방생활 몇 달 만에 그는 머리를 박박 깎은 모습으로 장지성 앞에 나타났다.
“탈옥했나?”
그러자 그는 이 빠진 잇몸을 드러내고 씩 웃으면서 형무소 탈옥사건을 이야기했다. 일부 반동분자가 모의해 탈옥사건이 났지만 홍태화의 감방 수인들은 그대로 남았다. 홍태화가 수인들에게 “죽으려면 따라 나가고, 살려면 나와 함께 여기 남으라”고 소리쳤다. 이로써 그는 더욱 좌익이나 반동분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죄수들이 도망가자고 했지만 나를 갖다 놓은 놈이 나쁜 놈이지, 나는 도망갈 이유가 없다고 했지. 그리고 너희가 여기 남으면 살고 나가면 죽는다고 했어. 그러니까 모두 내 뜻을 따르더라고.”
탈옥한 죄수들은 체포되거나 사살되었고, 그의 감방 죄수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홍태화는 부대 복귀를 그만두고 이리(익산)의 한 중학교로 가서 교편을 잡았다.
“군대는 내 취향이 아닌가봐. 일본으로 갈 거야. 여긴 견딜 수가 없어. 너무 모욕적이고 치욕적이야. 일본 군대가 그리울 지경이니, 세상 막장까지 온 것 같다.”
그로부터 얼마 후 공군전투대 조종사가 L4기로 38 이북 경계 임무를 수행한 뒤 수원 비행장으로 귀환하던 중 항법 착오로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휘발유 고갈로 익산 인근 논바닥에 동체를 꼬라박았다. 조종사가 부상당하긴 했으나 기적같이 생존했다.
비행기가 비상 착륙 광경을 보고 수업을 진행하다 말고 달려간 사람이 홍태화였다. 그는 학생들을 동원해 비행기를 학교 운동장으로 옮겨놓고 익힌 정비 스킬로 동체를 정비하고 조종사를 응급 조치한 후 비행기를 띄워 보내주었다. L4기는 활주로가 150m만 되어도 이륙이 가능한 가벼운 비행기여서 운동장에서도 사뿐히 날아올랐다.
6.25가 터졌다. 대대적인 보도연맹원 체포령이 내려졌다. 홍태화는 자신이 보도연맹원이 되어있는 사실도 모르는 가운데 체포되었다. 그리고 왜 당하는지도 모르고 대구형무소로 끌려가 총살되었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아사코가 한국에 나와 그의 유해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었다. 그후 그녀를 일본 땅에서건 한국 땅에서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녀와 나비

임순심과 고상준은 띠처럼 풀어진 긴 해안선을 따라 걷고 있었다. 파도가 어루만지듯 모래톱을 핥고 물러가고, 잔잔한 파도 위에서 달빛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임순심은 자고 일어나면 이마에 시리게 다가오는 한라산의 장엄한 풍광과 맵지 않은 바닷 바람과 싱싱하게 살아있는 수평선의 푸른 파도를 바라보며 가슴이 열리는 기분을 느꼈다. 모처럼 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나온 날들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아스라하게 지워져갔다. 제주의 자연이 그렇게 그녀를 위안해주니,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주변은 시끄럽고 무서웠지만, 그녀는 그것으로부터 일정 부분 격리돼 있었다. 객지 여자 출신이라는 신분적 자유가 있었고,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상준은 말없이 발밑에 밟히는 모래를 가볍게 차며 걸었다. 그는 머리가 복잡했으나 임순심 앞에 서면 마음이 설레었다. 병사들이 관병식하듯 해안의 해송림이 길게 줄지어 서있는 곳에 이르자 그가 멈춰 섰다.
“우리 여기 앉아요.”
그가 해송의 그늘 아래 모래밭에 자리를 잡자 그녀도 따라 앉았다. 해송의 그림자가 바람에 따라 모래밭에 어른거렸다. 그는 임순심을 본 첫날부터 그녀를 마음에 두었다. 임순심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가슴 속 문을 닫았다.
“난 순심씨를 처음 만났을 때, 이게 인연이다 했지요.”
그녀는 묵묵히 먼 바다에 시선을 주었다. 그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녀는 공연히 부끄러웠다. 부끄러워서 누구 앞에도 나설 수가 없었다. 그녀 의지와 상관없이 강요되었을망정 위안부라는 마음 속 상처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모든 책임은 그녀가 져야 하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세상은 그렇게 몰아가고 있었다. 비밀이 탄로나자 목을 맸다는 시집 간 위안부 출신 이야기도 있었다.
“대답이 없군요. 내가 자격이 없나요?”
그러자 그녀가 엉뚱하게 말을 바꾸었다.
“요즘 저는 나비가 되는 기분이에요. 언제나 마음은 나비처럼 나는 거예요. 아름답지 않나요? 난 죽으면 나비가 될 거예요.”
그녀는 꿈꾸듯이 말했다. 요즘처럼 편안하고 몸이 가벼운 적이 없었다.
“내 말은 그게 아닌데...”
“꼭 대답해야 하나요? 나한텐 남자가 있어요.”
순간 고상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누구냐고 물어도 되나요?”
“군에 있어요.”
그는 너무나 멀리 있었지만 늘 그녀 마음 안에 있었다.
“이런 시대에 군에 있으면 순심씨를 보호해줄 수 있을까요?”
“당연히 지켜주죠. 멀리 있어도 마음이 연결되니까요.”
그녀는 오민균을 생각하고 있었다. 귀국하던 관부연락선에서 바라본 눈이 시원한 청년. 지적 풍모와 따뜻한 품성... 그를 생각하면 숨이 칵 막힐 때가 있었다. 그러나 범접할 수 없다는 자격지심으로 체념했다. 난 어떤 누구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할텐데, 그래서 민들레, 할미꽃이 핀 고향의 철길을 걸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고, 지금 고향 대신 제주도로 왔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의 감정까지 지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그분 곁에 가야 하지 않나요?”
“그는 처자가 있어요.”
아마도 지금쯤 그는 결혼했을 것이다. 세상의 뭍 여자들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사랑을 하죠? 유부남인 줄 알면서....”
“가난할 땐 선택의 폭이 좁죠. 몸과 마음이 가난할 땐 잘 대해주면 누구나 빠지게 되니까요. 그가 유부남인 줄 알면서도 사랑했어요.”
고상준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있어요.”
그녀는 그게 고마웠다. 그는 이해력이 풍부한 남자였다. 그래서 때로 그에게 기대고 싶었다. 이렇게 누군가 자신을 위로해주면 빠져들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떤 자격지심 때문에 그녀 스스로 자신을 통제했다. 세상이 허용하지도 않을뿐더러 비웃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누군가를 애타게 원하기는 처음입니다.”
“내가 상준씨를 먼저 만났더라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되돌리고 싶지만 시간이 되돌려지는 것도 아니구요.”
“길자 누나한데 순심씨에 대해 물었어요. 한데 말해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더 비밀스럽게 여겼지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호기심 때문에 날 만나겠다고요?”
“어딘가 슬픈 모습이 내가 꼭 붙잡아주고 싶었어요. 괴로운 일이 제주도에도 많지만, 비밀이 많은 것 같은 순심씨의 마음에 가닿고 싶었어요.”
“난 제주도를 보면 눈물이 나요. 사람들이 슬프고, 산과 구름과 바다가 슬퍼요. 그런 제주도가 나를 위로해주니 내가 숨을 쉬는 것같아요. 그래서 지금 아주 편안해요.”
“슬픈 일이 그렇게 많나요?”
임순심은 대답하지 않고 먼 수평선에 눈을 주었다. 제주도는 어느새 그녀의 존재가 되었다. 인정이 넘치나 상처가 많고, 아픔이 있고, 비극이 있고, 그래서 슬픈 땅. 무수히 밟히고 유린된 몸.... 고상준이 또박또박 말했다.
“평화롭게 모두가 가족처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에 이 무슨 난리입니까.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4.3이 왜 일어난 줄 아세요?”
“몰라요. 복잡한 것은 싫어요. 내가 겪은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하니까요.”
불쑥 이렇게 말했는데 다행히도 그는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의 얘기가 더 절실했는지도 몰랐다.
“4·3을 섬놈들의 반란 책동으로 몰아가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죠. 바로 우리나라의 이야기이고, 분단과 압제를 거부하며 봉기한 혁명입니다.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반대하고 민족통일을 지향한 운동입니다. 만약 분단되면 함경도까지 진출한 수백 명의 우리 해녀들이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들은 홋카이도까지 진출한 생활력 강한 우리 누나들입니다. 그들이 돌아와야 하는데 길이 막혀버렸어요. 단독정부를 반대하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어요. 그런데 단독정부 반대운동을 때려잡기 위해 육지에서 온 군경 토벌대가 양민을 진압하고 학살합니다. 그 참상을 말하면 치가 떨립니다. 육지에선 이 사실을 몰라요. 언론을 통제하고, 그런 언론도 정부의 선전지로 전락했으니 실상을 제대로 보도할 리 없죠. 그렇게 해서 고립되고, 비극만 쌓이고 있습니다.”
그가 길게 한숨을 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가만 있을 수 없죠. 다니던 금융조합을 때려치우고 무장대 선전부에 들어갔습니다. 열심히 가르방을 긁었습니다. 3.1절 경찰의 시위대 발포 사건으로 참사가 시작된 이후 4.3봉기를 거쳐 지금 전투가 치열해지고 있는데, 아마도 제주도민 전체가 죽어야 끝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최후까지 싸울 거예요.”
고상준에게 이런 투사적 기질이 있는 줄 몰랐다. 그녀는 웬지 그가 가여웠다. 그를 안아주고 싶었으나 애써 참았다.

표선 쪽 바닷가 마을 작전에 나갔던 오민균이 병력을 먼저 부대로 보내고 혼자 길을 걷고 있었다. 완만한 곡선의 바닷가를 거니는 것은 그만이 갖는 호사였다. 어느 조그만 어촌을 지나는데 이상하게 눈에 딱 마주치는 시선이 있었다. 바다에서 나온 해녀들이 건져올린 해산물을 수습하며 특유의 사투리로 재잘거리는데, 그중 한 해녀와 시선이 마주친 것이다. 큰 키에 몸의 상반신이 풍만한 여자. 그가 한 순간에 알아보고 빠른 걸음으로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아니, 임순심씨 아녜요?”
그녀도 태왁을 옆에 내던지듯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 또한 놀라고 있었다. 주위 해녀들이 함께 놀라며 소리질렀다.
“그라면 그렇지. 남자 만나려구 역부러 제주에 들어왔다마시? 을매나 좋쑤과?”
오민균이 그녀를 안을 자세로 다가가자 임순심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와락 안기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물이 흐르는 해녀복이 장애물이었다. 그것을 먼저 벗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순간 부끄러워서 자리에 주춤 섰다.
“여기 있었군요.”
오민균이 말하자 임순심은 눈물이 핑 돌았다.
“체니야, 이거 얼마만이우꽈(얼마만인가). 저녁에랑 잡아온 전복으루 전복죽 쒀줍서양(저녁식사 때는 잡아온 전복으로 전복죽을 쑤어줘). 그리구 긴긴 밤 만리장성 쌓아야제?”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해녀들이 와크르 넉살좋게 웃었다. 두 사람은 저만치 물러나서 마주보고 섰다.
“순심씨 생각은 했지요. 그러나 이렇게 만나리라고는 미처 예상을 못했군요.”
“나두요.”
임순심 역시 그를 보고 싶었으나 이렇게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옷을 바꿔입고 나올게요.”
“그래요. 나도 잔무를 처리하고 나올 게요. 저녁 시간에 만나기로 해요. 여기 해녀회관 쪽으로 오면 되나요?”
임순심이 설레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시에 해녀회관 앞으로 나올 게요. 저녁식사 같이 합시다.”
그제서야 임순심이 자신의 위아래를 살피며 해녀회관으로 달려갔다. 허름한 해녀복 차림으로 그를 맞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저녁을 마치고, 두 사람은 성산포구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봄바람이 간지럽히듯 살랑대며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닷가에 이르니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와 자갈밭을 적시고 물러났다. 두 사람은 언덕의 풀밭에 나란히 앉았다.
“고길자씨는 잘 계시나요?”
오민균이 물었다.
“길자 언니는 바빠요. 요즘 물질도 접었어요. 전사가 되었어요. 서청 사람들과 맞선다네요.”
“그럴만한 분이죠. 일본에서도 여장부로 보았으니까요.”
“헌데 장교님은 어떻게 여기까지...”
그녀는 그가 자신을 찾기 위해 제주도로 배속되었기를 바랐다. 그것은 상상만 해도 영화 같은 이야기다.
“4.3 이후 파병이 되었는데, 군인은 특별히 할 일이 없군요. 하지만 순심씨를 만나니 제주에 파견된 보람이 있습니다.”
“결혼했나요?”
라고 물으려다 그녀는 참았다. 만약 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함께 할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것 때문에 앓을 것이다. 그래서 다르게 물었다.
“군 생활 고생스럽지 않나요?”
“그건 내가 순심씨한테 묻고 싶군요.”
“행복해요. 자유가 있으니까요.”
“그렇지요. 자유의 진가를 모르면 자유를 향유할 수 없죠.”
“그게 무슨 뜻이에요?”
“자유에는 가치라는 게 있어요. 그것은 구애받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몸부림의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는 가치입니다. 예속과 억압 상태로부터의 자유...”
“맞아요.”
임순심은 쉽게 동의했다. 그녀가 성 착취를 당하던 때를 생각했다. 굴속 같은 울안에 갇혀있을 때의 처절함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자의 자유 의지. 갇혀서 체념하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었다. 자유를 찾기 위해 위안소를 탈출했다가 체포되어 되돌아오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들의 모습들이 선연하게 뇌리에 박혔다. 임순심은 그러지 못한 자신을 한탄했다. 역시 자유는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갖는 특권이야. 부단히 추구하는 자의 몫이야. 난 체념하고 좌절하고 무너지고 주저앉았어. 그런데 제주 사람들이 그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맨주먹으로 나선다. 길자 언니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임순심은 그것으로부터 일정 거리를 두었다. 스스로를 방관하고 있다. 방관의 자유도 결코 시시한 것이 아니다. 지친 사람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된다. 그래서 딴 세상에 와있는 것처럼 행복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두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뚱딴지같이 임순심이 말하고 가숨이 칵 막히는 충동을 느꼈다. 오민균의 아이를 낳고 싶다. 그로부터 버림받아도 좋다. 아이만 하나 있으면 그를 데리고 장난감삼아, 동무삼아, 남편삼아, 지팡이삼아 살고 싶다. 그녀는 꿈을 꾸고 있었다. 나비처럼 훨훨 나는 몽환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물론이지요.”
“당신 아이를 갖고 싶어요.”
라고 그녀는 또 하마터면 말할 뻔했다. 그러다가 그녀가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상하게 감정의 기복이 심했다. 가슴 속으로 요동치는 무언가를 억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곧 체념하듯 말했다.
“난 어려워요. 버린 몸을 누가 어루만져 주겠어요?”
오민균이 그녀를 안았다. 그녀 머리칼에서 바다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해초 냄새 같기도 하고, 바다 비린내 같기도 했다.
“난 당신이 결혼했다고 해도 만나고 싶어요. 당신의 아내를 절대로 괴롭히지 않겠어요. 난 끝까지 혼자 살 거예요.”
“우린 만나야죠. 희망이 있는 한 만날 수 있다고 했죠?”
오민균이 관부연락선에서 말했던 것을 다시 떠올리자 그녀가 얼굴을 감싸며 환희에 젖었다. 맞다. 이런 순결한 여자를 어떻게 매몰차게 거부한단 말인가. 그녀를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죄인인데. 세상에 그녀를 보호해줄 남자 하나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도대체 그녀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녀가 무슨 죄를 졌길래... 외면하는 남자가 있다면 만용이다. 반문명이다...
그는 그녀를 굳세게 안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책임지기 위해서도 그녀를 탐해서는 안된다. 그녀의 순결성을 지켜주기 위해서도 그녀 몸을 지켜주어야 한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멀리서 관상하기에도 아까운 별이 아닌가...
“난 당신이 날 버리는 것 같으면 죽을 거예요. 내 몸이 더러워서 손도 안댄다고 생각하면 난 억울해서 죽을 거예요.”
그녀 허리를 감고 걷는데 임순심이 낮으나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말없이 걸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한편으로 착잡해지고 있었다.
“나는 다른 남자들과는 구분되고 싶군요.”
“아녜요. 이런 때는 다른 남자들과 똑같아져도 좋아요. 저희 집으로 가요.”
“순심씨를 끝까지 지켜주고 싶어요. 이런 눈부신 순심씨를 어떻게 탐할 수 있나요?”
오민균은 약혼녀를 생각하고, 현호영을 생각했다. 모두들 버릴 수 없는 여자들이다. 성자는 아니지만 그들을 지켜주기 위해선 그 자신 몸가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가르침이기도 하고, 집안의 장자로서 지녀야 할 의무이자 품격이기도 했다.
“그럼 이렇게 헤어져야 하나요?”
그녀 집 앞에 이르자 임순심이 눈물을 글썽였다.
“자주 찾을 것입니다. 늘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아요.”
“꼭 마지막 유언 같아요.”
“평화가 그리우니 그렇게 위안드리는 것입니다. 나중 다시 찾을 게요.”
“보고 싶을 거예요.”
그와 헤어진 뒤 임순심은 꼭 마지막인 것만 같아서 방에 들어와 펑펑 울었다.

달포 쯤 지났을까, 고상준이 그녀를 찾았다.
“나 쫓기고 있습니다. 나를 순심씨 집에 숨겨줄 수 없나요?”그가 말했을 때 그녀는 순간 당황했다. 그녀는 남의 이목보다 자기 마음이 두려웠다. 그녀에게는 오민균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래서 대답을 얼버무리는데 급했던지 그가 다시 말했다.
“그럼 좋습니다. 마지막이다 라고 생각하고 말할 게요. 내가 잡히거나 사라지면 누나랑 함께 사세요. 이젠 우리 두 남매 뿐인데, 나마저 사라지면 누나는 희망이 없어요. 내 대신 누나 지켜줘요. 난 지금 떠납니다.”
“어떻게 그렇게 무서운 말을....”
“노형리와 조천 쪽에서 서청 놈들을 해치웠습니다. 외가집 형의 두 아이를 납치한 서청 놈들이죠. 외사촌 형은 현호진 씨라고, 일본서 대학을 다니다 돌아온 분이에요. 조천에서는 할머니의 손주, 열일곱 먹은 소년을 폭도로 몰아 잡아갔어요. 그가 가장인데 그 소년을 잡아가는 거예요. 그자들을 곡괭이로 공격하고 소년을 데리고 왔어요.”
그제서야 그녀는 그의 옷 소매와 노동복 앞섶에 핏물이 엉겨있는 것을 보았다.
“어머나, 이 피...”
고상준이 자기 옷 위아래를 살펴보더니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다친 데는 없어요. 그놈들 피가 튀긴 것이죠.”
순심은 웬지 그가 소중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붙잡히면 안된다.
“집은 위험해요. 바닷가로 나가요.”
그들은 비밀 아지트 같은 바다의 구렁창으로 숨어 들어갔다. 언제나 바다는 싱싱한 파도가 밀려와서 발 아래를 적시고 물러갔다. 좀처럼 사람들이 발견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가 한 숨 놓으며 읊조렸다.
“단 몇 분이라도 평화롭고 자유롭네요. 하지만 나는 늘 하늘을 생각해요. 순심씨, 사마천이란 사람 이름 들어본 적 있나요?”
“사마천이요?”
“네. 중국의 역사가죠. 흉노족에게 투항한 억울한 장군을 변호하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을 선고받고 평생 남자로서 불구자로 산 사람입니다.”
“궁형이요?”
“네. 궁형은 남자 생식기를 제거한 형벌이죠. 그 사마천이 쓴 ‘사기’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하늘이시여,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군림하고 호령하며 천명을 다 누리고, 그러나 제 한 몸 던져서 만인을 이롭게 하려는 자, 정의와 양심을 좇는 자는 비참하게 몸을 도륙당하고 목숨을 앗기고 있나이다. 하늘이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다면 어찌 묵인하시나요. 만행들이 일상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지상의 슬픔을 왜 외면하시나요’.... 이렇게 절규했는데도 응답이 없고, 백성들은 여전히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주 땅이 그래요.”
임순심이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자신이 느꼈던 자유가 하잘 것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지난 날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내던져졌지만 부모도, 조국도, 하늘도 그녀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소녀가 야수들 앞에 무참히 내던져졌어도 손길 하나 뻗쳐주는 단 하나의 구호의 손길이 없었다. 그리고 야수들은 그녀를 가지고 노는 데만 단련되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죽음을 보았고, 총살되고 생매장된 장면을 보았고, 절망적인 눈빛의 포로들을 보았다. 왜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 채 그들은 또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래서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과연 하느님이 있을까.
일본군 부대 내에서 일상화된 살육들, 언제나 멸시의 대상이 되었던 위안부, 그런데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성을 제공하며 체념하고 살았다. 살아도 날마다 죽는 나날이었다. 그런 어느 순간 미아가 되었다. 미아가 되었을 때의 황망감. 일본 패망은 그녀에게 무엇 하나 담보해주는 것이 없었다. 함부로 부려먹고 가차없이 버렸다. 결국 그녀 스스로 목숨을 부지해야 했다. 그녀의 목숨을 부지해준 것이 우습게도 몸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나가자. 지옥을 벗어나자, 죽더라도 부모님을 보고 죽자.
패전했으나 여전히 당당한 일본군 헌병위병소에 갇히고, 그들에게 몸을 주고 풀려났다. 자유가 더 간절해지고 있었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소련 군대에 잡혔는데, 이번에는 일본군 첩자로 몰려서 죽음 앞에 놓였다. 일본군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이번에는 일본인으로 몰려서 처형 직전에 이르렀다. 역시 그들 혈기방장한 젊은 군인들에게 몸을 주고 나서 풀려나 수용소를 벗어났다. 몸을 그렇게 사용했다. 오직 고국으로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몸을 초콜릿 과자처럼 그들에게 던져주었다.
사할린-홋카이도를 거쳐 일본 중부로 내려와 조선인 일본 육사 생도들을 만났다. 그들을 만나자 이동막사의 ‘하미코’라는 이름 대신 ‘임순심’이라는 본명을 찾았다. 그리고 고국의 산하에 안기다 보니 비로소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더 이상 고향으로는 갈 수가 없어 눈부신 한라산 기슭으로 숨어들었으나 지나간 날들을 지우니 자유로웠다.
고상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풍찬노숙하다 쓰러져 죽고, 폭탄 하나에 목숨을 걸고, 총알 하나에 인생을 다퉈야 했던 이름없는 조선 청년들이 있죠. 거기에 제주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쫓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싸워야 일말의 희망이 보입니다.”
그는 투사가 되어있었다. 그때 구렁창 입구 귀퉁이에서 일군의 괴한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각목과 일본도를 쥐고 있었다. 그들이 구렁창 입구를 막은지라 퇴로는 없었다.
“바로 이 새끼야.”
어느새 고상준과 임순심을 둘러싼 괴한들이 고상준을 패기 시작했다. 그가 피를 흘리며 늘어지자 끈으로 그를 포박했다.
“이 새끼 정말 신출귀몰하는 놈이야. 조천에 떴다가 노형리 갔다가, 지금 해안가로 나와서 연애질하는 거 봐.”
“무슨 짓들이에요? 이게 뭐예요?”
임순심이 소리쳤으나 조장 격인 자가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이 여잔 명색이 갈보다. 내 신상조사 다 했지. 일본놈 좆물 빨아먹고 연명한 년이야.”
임순심이 갑자기 이상한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년이 미치고 환장했고만. 썅간나 년, 갈보가 청년단을 개좆으로 보누만. 일본군에게 아양 떨며 밑구녕 바쳤으면, 조국의 건아에겐 백배 더 바쳐야지. 어디메서 매국노 짓이노?”
한 단원이 그녀 옷소매를 잡아채 넘어뜨렸다. 아, 끝났구나. 모든 것이 끝났구나. 고상준 앞에서 마지막 치부까지 드러났구나. 그녀가 청년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면서 괴이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 청년이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채 자갈밭고랑으로 끌고 갔다. 끌려가면서도 그녀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한 청년이 그녀를 눕혀 몸을 쪄눌렀다. 다른 청년이 그녀 치마를 찢더니 하얀 허벅지 살이 드러나자 이상한 웃음을 날리며 그녀를 올라탔다. 순식간에 욕망을 채우고 옆으로 비키자 곁의 놈이 달려들었다. 세 번째 놈이 다가들어 자세를 갖추자 늘어져있던 그녀가 그의 허리춤을 더듬거리더니 칼을 뽑아들어 사내의 배를 갈랐다. 그리고 마구마구 찔렀다. 그의 몸에서 창자가 쏟아져 나오고, 그는 엎어진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눈이 뒤집힌 채로 엎어진 사내를 제치고 일어나 칼을 휘두르자 청년들이 각목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중 하나가 총 개머리판으로 그녀 뒤통수를 내려치자 그녀 머리가 박살났다. 이윽고 몽둥이가 난타하자 너덜너덜해진 살덩어리가 주위에 흩어졌다. 그녀는 만주에서도, 일본에서도 목숨을 부지했지만 고국에 돌아와 고국의 청년들에 의해 무참히 죽음을 당했다.
청년들이 고상준에게로 와서 그의 몸을 난자했다. 눈에 핏발이 선 그들이 두 시체를 고랑으로 끌고 가 자갈을 헤집어 구덩이를 파더니 묻었다.
청년단원들이 소나무를 꺾어 만든 단가에 죽은 단원의 시체를 메고 일본군가 ‘유키노 신군(설원의 진군)’을 부르며 바닷가를 떠났다. 군가는 애조를 띠면서도 선동적이었다. 해방이 된 지 꽤 되었지만 왜색은 여전히 남한사회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은 폭도대라는 제주 사람들을 격퇴할 때마다 이렇게 일본 군가를 소리높여 부르며 사기를 올렀다. 이 무렵 미 군정 경무부장 조병옥의 이름으로 기록한 ‘무장 폭도들의 활동 실태‘를 보면 다음과 같다.

"(1948년 4월3일)폭동이 일어나자 1읍 12면의 경찰지서가 빠짐없이 습격을 받았고 저지리, 청수리 등의 전 부락이 폭도의 방화로 전부 타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 살상 방법에 있어 잔인무비하여 4월 18일 신촌에서는 6순이 넘은 경찰관의 늙은 부모를 목을 잘라 죽인 후 수족을 다 절단하였으며, 임신 6개월된 대동청년단지부장의 형수를 참혹히 타살하였고, 4월 21일에는 임신중인 경찰관의 부인을 배를 갈라 죽였고, 4월 22일 모슬포에서는 경찰관의 노부친을 산 채로 매장하였고, 5월 19일 제주읍 도두리에서는 대동청년단 간부로서 피살된 김용조의 처 김성희와 3세된 장남을. 30여 명의 폭도가 같은 동네 김승옥의 노모 김씨(60)와 누이 옥분(19), 김종삼의 처 이씨(50), 16세된 부녀 김수년, 36세 된 김순애의 딸, 정방옥의 처와 장남, 20세 된 허연선의 딸, 그의 5세 어린이 등 11명을, 역시 고희숙씨 집에 납치, 감금하고 무수히 난타한 후 눈오름이라는 산림지대에 끌고 가서 늙은이, 젊은이 불문하고 50여 명이 강제로 윤간을 하고, 그리고도 부족하여 총과 죽창, 일본도 등으로 부녀의 젖, 배, 음부, 볼기 등을 함부로 찔러 미처 절명하기도 전에 땅에 생매장하였는데, 그중 김성희만 구사일생으로 살아왔다. 폭도들은 식량을 얻기 위하여 부락민의 식량, 가축을 강탈함은 물론, 심지어 부녀에게 매음을 강요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등 천인이 공노할 그 비인도적인 만행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이다. <경향신문 1948년 6월9일자>

제주도에 우익청년단체가 등장한 시점은 신탁통치 찬성과 반대 논란에 휩싸여 전국적으로 우익 조직이 확산되던 때였다. 1947년 제주도 관덕정에서 일어난 3.1절 도민 항쟁 수습을 위해 육지 청년단이 투입되고, 4.3에 이어 5.10선거 보이콧에 이르기까지 항쟁이 지속되자 서북청년단, 대동청년단, 족청 등 청년단 수 천명이 입도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이중 대동청년단 제주도지부는 4·3사건의 평화적 해결을 도모했던 김익렬 9연대장과 김달삼 무장대사령관의 4·28 회담을 뒤엎는 계기가 되었던 1948년 5월 1일 연미마을 방화사건(일명 오라리 방화사건)을 촉발시킨 당사자들이었다.
1948년 10월 제주도 경비사령부(사령관 김상겸 5여단장, 송요찬 9연대장)가 창설되면서 대동청년단 제주도지부는 민간 기구의 면모를 벗어나 군경 합동 진압작전의 행동대로 참여했다. 단원들은 경찰 지서에서 철야근무를 하고 경찰과 함께 출동하는 등 경찰 보조 기구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중 상당수 단원들은 공식적으로 경찰이 되었다. 서북청년단과는 경쟁적이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관계였다(<大同靑年團濟州道支部>편, 한국향토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 인용).

친일의 이름, 민족의 이름

김종석과 오민균은 제주 공항 인근의 바닷가 파도가 들이치는 허름한 주막의 구석방에 마주앉았다. 그들은 고구마술을 받아놓고 바가지로 떠서 마셨다. 김종석 대령은 대전 2연대장 시절 경리부정 사건에 연루돼 한동안 2선으로 밀려나 있다가 광주 5여단 참모장으로 전속을 갔는데, 행정관할인 제주도에 잠깐 출장을 와 오민균을 만난 것이다. 그동안 시달렸는지 그는 지쳐보였다.
“김창동이란 자, 아나?”
김종석이 갑자기 물었다.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습니다.”
뭔가 오싹한 인상을 주는 사람. 개인적 사감과 좌익에 대한 반감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편견을 신념으로 아는 자야. 대구 10.1사건부터 일망타진할 인적사항을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10.1사건을 대구 6연대와 연관시키고 있어. 나와 박정희, 최남근을 연결시키지. 10.1항쟁이란 것이 빨갱이들만이 주도했나? 다양한 계층, 계급. 시민과 농민, 노조원, 공무원들이 함께 참여한 사건이고, 요구 사항도 식량문제, 토지개혁문제, 친일경찰 물러가라는 현실적인 것이지. 사회경제적 배경이라든가, 정치상황에 대한 해석없이 단순히 공산당이 주도한 것처럼 몰아가는 건 사건 자체를 오도하는 거야.”
“요즘 미군정이 하는 것 보면 화가 납니다.”
“그들에게 빌붙은 놈들이 문제야. 좌파는 이념적 성향보다는 민족적 성격이 강한데, 빨갱이라고 뒤집어 씌워서 잡아가잖나. 일제하 민족진영 내에 좌파 계열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들의 투쟁은 반제, 반일이고, 지금은 통일정부야. 그자들에겐 이런 게 없으니 숨죽이고 있다가 미군이 들어오니 반공산주의의 선봉인 양 행세하면서 양심 세력을 공격하는 거지. 일제하 양심 세력의 좌파 경향은 하나의 사조였고, 시대적 울분을 표출하는 창구였잖나. 혼이 없는 자들은 미군 세상이 되니 옳다구나 하고 활개치는 거야. 왜 그러는 줄 아나?”
“그야 자기들 이익 때문이겠죠.”
“그래. 그렇게 공격하면 자기들 치부도 가려지고 애국자로 변신하면서 이익을 만드는데, 바로 그게 비용이 가장 싸게 먹히는 거지. 너 이새끼, 빨갱이지? 이 한마디면 승부가 끝나니까.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해 빨갱이 프레임을 거는 거고, 일제 치하 배운 디테일에 강하니 소소한 몇가지를 과도하게 부풀려서 위협하면 만사 오케이야. 분단구조를 지렛대 삼아서지. 일제 경찰이나 헌병대가 늘상 사용해온 수법이야. 과도하게 부풀려서 또 언론을 이용하고, 그러면 언론은 신이 나서 받아적는다. 조작된 내용이라도 자기들과 동맹을 맺으니 마구 퍼나른다.”
“언론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더 악질이지. 최소한의 중립지도 없어. 여론 조작, 대중 선동을 하는데 선민의식, 엘리트의식에 젖어서 일방적으로 끌고 가. 무지한 사람들은 거기에 순치되고, 세뇌되지. 사실은 우익 테러가 더 잔악하잖나. 다른 것은 타락해도 보아주지만 언론이 타락하면 미래가 없어. 국민의 재산인 정보를 가공해서 장사를 하는 언론은 과자 만들어 팔아먹는 일반기업과는 구분돼야 하는데, 더 혼란스럽게 부추기지.”
“찬탁과 반탁의 회오리에서 강자의 논리로 이간질과 분열을 획책하죠.”
“그러니 나쁜 놈들이지. 사실 찬탁 반탁, 다 일리가 있지. 어느 특정한 것이 완전할 순 없어. 그렇다면 치열한 토론을 통해 합의의 과정에 도달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폭력으로 세상을 공포분위기로 몰아넣어. 3년 전 드골 장군이 개선했지? 그가 파리로 개선하면서 맨먼저 착수한 작업이 뭔가. 바로 독일 협력자를 체포해 처형한 것이었는데, 그중 언론에 대해선 더 엄중했지. 파급력과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도 크다는 거지. 많은 언론인이 민족의 이름으로 처형됐잖아. 이렇게 역사를 청산한 뒤 드골은 ‘앞으로 프랑스는 다른 어떤 나라가 점령해도 침략군에 협력하는 자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단언했어. 그런데 우린 뭐야. 반대로 반일, 항일을 했다는 이유로 탄압받고 있잖나. 미군정이 이들을 불러내더니 개판을 만들어버렸어. 이런 세상이 어디 있나. 그러니 엎어버려야 하지 않겠나?”
김종석이 바가지째 막걸리를 떠서 마셨다. 화가 난 것을 술로 끄는 것 같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일제와 친일 세력이 미국에 엄청난 금괴와 돈을 갖다 바쳤다는 것 아나? 맥아더 사령부에 바쳤다고 해. 그 돈도 조선 백성들 고혈을 짜서 획득한 거 아닌가.”
“사실입니까?”
“소문이지만 그럴 듯하잖나. 그것이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운영할 수 없지. 그것을 극복하는 힘이 우리 내부에 있어야 하는데, 답답하다. 철학이 부족해.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니라 버리고 있어. 독일의 비스마르크 말이 생각나는군. ‘신이 역사 속을 지나갈 때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지도자의 책무다...’ 헌데 우리 지도자들은 뭐냐. 꾀죄죄하고 초라하기만 해. 작은 차이 하나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부정하고 배제하면서 기회를 걷어차고 있어.”
그러면서 그는 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느 책에서 본 건데, 일본의 한 학자는 우리나라를 '극단의 도덕지향성 국가'로 규정했어. 실제 삶이 도덕적이지 못하면서도 모든 사람의 행동을 도덕으로 몰아서 평가한다는 거지. ”조선시대에는 도덕을 쟁취하는 순간 권력과 부가 굴러 들어왔고, 지금도 한국사회는 도덕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극장같다”고 했어. 그런 도식적 도덕논리가 조선조를 파멸시켰는데도 지금도 변함없이 매달려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거야. 맹탕을 붙잡고, 니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로 피터지게 싸우면서 주도권을 망할 놈의 친일세력에게 떠안기고 있단 말이다. 그런 그들 하나를 제압하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봐도 내 스스로 한심스럽다.”
김종석의 울분의 목소리는 그의 양어깨에 걸친 계급장만큼이나 무게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쫓기고 있고, 쫓기는 자는 힘이 없다는 것이 절박한 실존이 되어 있다.
“제주 4.3은 모순을 극복한다는 순수가 있다. 그러나 덫에 걸려들었어. 박헌영-김일성 집단의 사주를 받았다고 몰아가고 있어. 사회주의자 척결은 일본 제국주의가 가르친 통치법이야. 불행히도 그것밖에 아는 것이 없으니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데, 이것으로 조국 산하는 갈갈이 찢기고 있다.”
해방 이후 국가의 주체가 정통성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고, 반공이란 이름 아래 민간인 학살의 주역이 주로 친일파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종석의 설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

“너 단단히 미친 거 아니꽝?”

“부대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먼저 오셨군요.”
문용철이 오민균을 반갑게 맞았다. 그들은 다방의 구석자리에 마주보고 앉았다.
“여기 보헤미안 분위기가 괜찮습니다. 박양, 오마담 어디 갔니? 여기 쌍화차 두 그릇 다고.”
문용철이 프론트 데스크를 향해 일방적으로 주문했다. 데스크에 앉아있던 박양이 다가오더니 탁자에 물컵을 내려놓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손님은 없고 분위기는 한가로웠다.
“처음 오신 분이시네요?”
문용철이 대신 답했다.
“9연대 대대장님이시다. 인사드려.”
그녀가 고개를 까딱해보이며, 문용철 옆 자리에 앉았다.
“넌 넉살도 좋다. 제주도 여자들은 이렇게 적극적이랍니다, 하하하.”
“아, 좋습니다. 아주 귀엽군요.”
오민균이 관심을 보였다.
“나 귀엽다고 하면 섭섭해요. 숙녀니까 아름답다고 해야 하는 것 아녜요?”
“그 말이나 이 말이나 다 좋은 말 아니간? 이 아이와 마담이 집안 동생들이죠.”
“제주도 사람들은 모두가 한 다리 건너면 일가친척이군요.”
“그렇지요. 좁은 지역이기 때문에 만나면 사돈에, 이모부에, 고모부에, 당질에, 숙질간입니다. 그래서 다들 다정다감하지요.”
박양이 주방 쪽으로 돌아가 차를 준비하는 사이 문용철이 입을 열었다.
“내가 대대장님을 만나자고 한 것은 집안 아이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손을 써봤는데 어렵습니다.”
“체포되었습니까?”
요즘 제주도엔 그것 아니면 일이 없었다. 그래서 오민균이 그렇게 묻는 것도 당연했다.
“신문기자입니다. 서청 아이들이 외숙부 가게에 들어가서 행패를 부렸던 모양이에요. 그것을 조카가 용납하지 않은 거지요. 이것을 기사화한 거예요. 그러자 서청과 경찰이 양민과 경찰 사이를 악의적으로 이간질시켰다고 조카를 잡아가두었습니다. 한달이 넘었습니다.”
그런 원성들이 자자하다고 그는 연대장으로부터 들은 바 있었다.
“사건이 터져서 달려가 보면 서청 애들이 휩쓸고 지나갔네. 서청 아이들은 현지 사정을 잘 모르니까 삐딱하면 좌익으로 몰아서 족치는 거야. 물론 남로당 계열도 있겠지. 그렇다고 다 좌익인가? 이곳은 일제의 식민지도 되었지만, 육지의 식민지도 되어있는 땅이야. 육지 사람들 멋모르고 설치다간 다치지. 독특한 곳이란 말일세. 육지 사람들이 차별한 후과가 이렇게 저항정신으로 나오는 거야. 눌려있었던 것인데, 해방 이후 귀국한 유학생들이 이걸 용납하지 않지. 소외당하고 차별당하니 대신 나선 거지. 도덕 지수는 이 고장이 더 높네. 자주 자조 자립을 부르짖네. 잘 살피고 접근하게.”
오민균은 부임하자마자 경찰이 만든 주민 동태 보고서를 살폈다. 주민들은 중앙정부에 대한 충성심이 약한 반면에 배타적이고 독립적이며 저항적이다. 해방 이후 혼란을 틈타 테러, 방화, 습격이 일상화된 곳이다. 흉흉한 민심으로 보아 증원 경찰 지원이 빠를수록 좋다...
좁은 땅어리에 혈기방장한 경찰 비호세력인 청년단이 한꺼번에 들이닥치자 제주섬이 꽉 찼다. 그런 와중에 기자가 끌려갔다는 것이다. 제주신문 사주는 제주 항일운동의 중심에 섰던 사람이었다. 독립운동자금도 직접 대거나 모금했다. 논조는 민족주의적 색체였다. 이는 3.1사건 보도를 통해 입증되었다. 중앙의 언론 보도와 확연히 달랐다.
박찬욱은 일본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제주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보장책 등에 관한 기사를 썼다. 중앙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현장 르뽀 기사를 시리즈로 보도했다. 현장주의에 충실하니 글은 생생했다.
“3.1절 발포 사건과 양민 여섯 명이 총맞아 죽은 현장에도 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민들을 향해 ‘좋은 주장이라도 폭력으로 나가면 안된다. 저들은 중무장하고 있으니 빌미를 제공한다’고 성난 시위대를 해산시킨 사람이오. 경찰을 진정으로 도와준 신문기자란 말이오.”
그러나 어느 사이 그는 악질분자가 되고, 그것은 곧 적색분자였다.

“고 개새끼 잡아들이라우.”
최동칠 경위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소리질렀다. 그는 대전에서 파견돼왔지만 북에서 내려온 서북청년단 출신이었다. 사상범을 대거 잡아들인 공로로 몇 개월만에 순경에서 경위로 승진한 사람이었다. 얼마전 신문을 펼쳐보더니 이 새끼가 날조 보도할 수 있어? 하고 스스로 화를 돋군 뒤 그를 잡아들였다. 그는 신문을 펼쳐들고 체포된 자에게 읽어주었다.

-3․1 참사의 자취도 사라지지 않은 거(去) 17일 중문면에서 또다시 중경상자 7명을 낸 발포사건이 돌발하여 일반에 충동을 주고 있는데, 본사 특파원의 조사에 의하면 사건의 전모는 대략 이러하다.
제주읍 3․1사건 파업 등으로 인하여 중문중학원 원장을 비롯한 민청 간부 수 명이 경찰지서에 수감되고 있었는데, 17일 하오 1시경 중문리 향사에 다수의 면민이 집회하여 3․1 사건으로 인한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자는 등의 결의를 한 다음 슬로건을 들은 중학생을 선두로 일반 군중 700여명이 해방의 노래를 부르면서 경찰지서를 향하여 행진하여 지서 앞에 대열(待列)하였던 것이다.
이때 이 군중과는 별개로 면장 외 지방유지 11명이 지서에 들어가 석방을 교섭하고 있는 중 동 지서에 배치되었던 응원경관대는 운집한 군중에 대하여 지휘자의 명을 받고 해산을 재삼 권고하였으나 불응하였음으로 군중에게 최후의 권고를 하고 발포할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완고히 해산치 않으므로 경관이 위협적 발포를 함에 군중은 일제히 지면에 엎드렸는데 이때 경관대 측에서 일제히 발포하자 군중은 사산도주(四散逃走)하였던 것이다. 이 아수라장화한 가운데서 중경상자 수명이 났는데 그 중에는 경관의 발포로 인하여 중상을 당한 자도 있었고, 해산권고 시에 경관이 총으로 해산시키려 흔들 때 상한 자도 있었다.<제주신보 1947년 3월24일자>

“박찬욱, 이게 선동이 아니고 뭐네? 내 이런 거 보고 가만 있갔니?” 최동칠이 소리쳤다. “너 때문에 존경하는 편집국장님이 욕봤다.”
박찬욱은 그때까지 잠자코 있었다. 그는 일을 당할수록 담담한 성격이었다.
“시중에 나돈 불온 삐라는 모두 니네 신문사에서 인쇄돼 나온 것들이란 말이다. 그래서 편집국장님이 대신해서 욕봤단 말이다.”
경찰은 편집국장을 체포해 가더니 경찰서 뒷마당에 세워놓고 즉결 처분했다. 그 점을 강조하고 그는 박찬욱을 위협했다.
“너 지금 어느 세상이라고 날뛰네? 도대체 이게 신문쪼가리야? 중앙 언론들은 아주 협조적인데 존재감도 없는 지방 신문이 요따우로 관과 민 사이를 이간질하는 고야?”
그는 계속 윽박질렀다.
“너 사주하구 외척지간이라지? 고래, 우리 경찰과 서청이 여자들 윤간질하구, 돈이나 뜯어내구, 물건 가로챘다는 거이 어디서 봤네? 어디에 증거가 있니?”
“.....”
“니가 봐서? 이 새끼 반동이군. 죽어나가야 알간?”
그때서야 박찬욱아 해명했다.
“사건 현장에 기자가 없어도 보도할 수 있습니다. 증거가 있으니까요.”
“그런 법이 어디 이서? 안보고도 신문기사를 쓴다? 그래니까니 폭도놈들이 불러제낀대로 받아 적어서 신문에 냈고만? 간나새끼, 그래니 니 좆맛대로 써갈기는 거야. 그런 거이 향토 신문이가? 중앙 언론사 한번 보라우. 모두가 경찰 편이야. 그런데 니놈들은 새빨간 거짓말로 이간질하구, 선동질하구, 고래 놓구 살아나갔다구 요사를 떠니? 이 공산당 시러베놈들아!”
“사실대로 보도하는 것이 신문기자요. 제대로 보도하지 않으면 입과 입을 통해서 사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민심이 더 동요합니다. 진실보도가 동요를 막습니다. 보도 통제하니 걷잡을 수 없이 악성 소문이 퍼지잖아요.”
“뭐레? 안봐도 본 것처럼 쓰는 게 동요를 막는 거래? 고게 유언비어구, 날조야. 고게 민심을 교란하고 동요시키는 요망스런 짓거리란 말이다. 아니야?”
박찬욱은 얘기해봐야 통할 것 같지 않아서 입을 다물었다. 이미 그들은 어떤 결론을 내려놓고 사태를 몰아가고 있었다.
“편집국장을 따라 가갔나, 이님 우리에게 협조하갔나? 우린 한다면 하는 사람들이다. 빨갱이새끼들 쓸어버려야 아름다운 강토가 되니까니 우린 그렇게 할 의무가 있다. 정보 훔쳐 가구, 주민 선동하구, 고저 나라 말아먹갔다구 기사로 발광을 떠는데, 고렇다구 니 맘대로 될 거 같네? 너네들이 주무른대로 세상 굴러갈 거 같네? 나라가 니네들이 가지고 노는 공깃돌이가?“
“당신들 의무 얘기했지만 나도 내 의무에 충실한 거요.”
“이 새끼 꼬닥꼬닥 말대꾸하는 것 봐라. 거짓말을 쓰는 게 의무에 충실해? 글구 너 어뜨렇게 생겨먹어서 계속 말대답이니?”
최동칠이 구석을 향해 눈치를 보이자 어두운 곳 철제 의자에 무표정하게 앉아있던 보조 순경 둘이 다가와 박찬욱을 잡아 바닥에 메다꼰았다. 군홧발로 디립다 밟고 내질렀다. 익숙한 솜씨였다. 박찬욱은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
“니 놈들 밀선 가지구 장난치는 거 내 모르는 줄 아네? 여수로, 목포로, 부산으로 밀수 물건 빼돌리는 거 내 현미경 보듯 살펴보고 있디. 도적놈의 새끼들. 그러면 고분고분이라도 해야디, 빡빡 대들어. 그렇다면 넌 니 할애비라도 소용없어. 신문기자 똑바로 하라우. 반도들에게 자금 건네 주구, 우리에겐 입 딱 씻구, 이런 시러베놈들이 다 있나? 내 모르는 중 아네? 귀신은 속여두 최동칠 경위는 못속이디. 니가 대학 물 먹었다구 건방 떠는데, 지식 좀 지니면 세상이 다 니 꺼네? 그런 기 아니라는 걸 내 똑바로 내보여주가서.”
그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대대장님이 어떻게 손 좀 써주셔야겠습니다.”
문용철이 정중히 부탁했다. 그때 일단의 청년들이 요란스럽게 떠들며 보헤미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화사한 한복 차림의 오신애도 그들과 함께 섞여있었다.
“청년단 중에 결혼식이 있었어요. 제주 처녀를 맞이했어요.”
오신애가 오민균과 문용철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오더니 묻지도 않은 자기 부재의 이유를 설명하며 문용철 옆자리에 앉았다.
“오지랖도 넓다. 어여 인사해라. 연대 대대장님이시다. 응원군으로 파견되셨다.”
문용철이 오민균을 소개했다.
“어휴, 이런 미남이 제주바닥에 계셨네요. 오신애라고 합니다.”
오민균이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자 문용철이 말했다.
“일본 육사 출신이시다. 나이는 스물하나, 아니면 둘. 그렇지요?”
오민균이 긍정도 부정도 아닌 표정으로 웃으며 앉아 있었다.
“그러구 보니 두 사람이 동성이군. 해주오씨인가요?”
문용철이 오민균에게 물었는데, 오신애가 먼저 반색했다.
“어머나, 동성동본. 늠름한 모습이 동생 아닌 오빠같애. 반가워요. 타향에서 동생을 만나다니. 나두 소개해줄 사람이 있군요.”
오신애가 대여섯 명의 청년들이 둘러앉아 노닥거리고 있는 테이블 쪽을 향해 소리쳤다.
“단장님, 일루 잠깐 좀 와주실래요?”
청년들의 시선이 일제히 오민균 쪽으로 향했다. 그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누굴 오라 가라 하넴? 니기들이 여기로 오그라!”
그러자 그중 몸집이 좋은 청년이 단원의 말을 묵살하고 뚜벅뚜벅 오민균 쪽으로 걸어왔다.
“앉으세요.”
오신애가 말하자 그가 군말없이 오민균 앞 자리에 앉았다.
“사진봉입니다. 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서청이란 말은 뺐다. 오민균은 그가 오신애와 특별한 관계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오늘 단원 결혼식이 있었어요. 구좌리 처녀예요.”
“구좌리도 사람들 다친 곳 아닌가?”
문용철이 물었다.
“하지만 서청 사람들이 다 악질은 아녀요. 안그래요?
오신애가 사진봉을 향해 대신 해명했다.
“악질...” 사진봉이 음미하듯 뇌었다. “그 말 맞습니다.”
“단장님 왜 이러세요?”
오신애가 꾸짖듯 대들었다.
“아닙니다. 한 사람의 잘못이 구성원의 전체 성격을 규정지을 수 있으니까요. 세상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지요. 우리 활동은 과장되고 포장돼서 퍼뜨려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사실입니다.”
그는 서울 말씨로 또렷하게 답했다. 의외로 솔직했다.
“좋은 사람도 있다니까요.”
오신애가 계속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해명했다.
“그렇게 말하면 악마의 소굴도 악마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과 같지.”
문용철이 받았다. 그때 사진봉의 눈이 날카로웠으나 청년단 쪽에서 “여기 맛소금 좀 줘요!” 하고 소리치자 눈을 슬며시 내리깔았다.
젊은 청년들은 탁자에 홍어회, 숭어회, 삶은 낙지를 펴놓고 있었다. 결혼피로연 식장에서 가지고 왔지만 미처 소금을 준비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박양이 소금과 컵을 날라다 주자 그들은 대두병에 담긴 소주를 컵에 콸콸콸 따르더니 단숨에 마시며 노닥거렸다. 일차 한잔씩 하고 왔던지 멋대로 시끄러웠다. 누군가 군가를 부르자 모두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건방진 호기가 실내를 흩뜨리고 있었다.

와가 오오키미니, 메사레타루(천황폐하께 부름 받았네)
이노치 하에아루 아사보라케(생에 영광이다 새벽녘에)
타타에테 오쿠루 이치오쿠노(칭송하는 1억의)
캉코와 타카쿠 텡오츠쿠(환호는 하늘을 찌른다)
이자유케, 츠와모노, 니폰 단지-(나아가자 용사여 일본남아여-)
<출정병사 환송가> 중에서

군가를 마치자 누구나 없이 환호하며 히히덕거렸다. 오민균은 그들의 그런 태도가 거슬렸다.
“민심이 흉흉해지는데 청년들이 좋은 세상 만들어야지요.”
오민균이 정중히 말하는 것이 거슬리는 듯 사진봉이 퉁명스레 받았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좋은 세상 만들자구 여기 왔잖습네까.”
“그러나 실태를 파악해보니 문제가 있더군요.”
그러자 즉각 험한 평안도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당신 뭬라 했네? 당신 누구 편이네? 국경(국방경비대)들 과연 의심할만 하누만. 지금 군인이 사사로운 거 개지구 잡담하고 놀 시간이가? 내레 공무 중이우다. 고런데 당신 공무 중에 다방에 쪼그리고 앉아서 불한당 놈들이 이간질하는 유언비어에 녹아나서 나한테 따지는 겁네까? 고레 당신 군인 맞습네까. 그렇닪아두 군인 새끼들 보믄 분이 납네다. 일은 돕디 않구 거드름피는 놈들이니까니. 팔짱 끼고 먼 산 바라보구 폼이나 잡고 있단 말이우다.”
그가 표변하자 건너 테이블에서 떠들던 청년들이 한 순간에 우루루 몰려와서 오민균 주위를 에워쌌다. 단장의 비위를 건드리면 당장 요절내겠다는 태도들이다. 그중 하나가 소리쳤다.
“우리 단장 각하한테 대드나?”
그리고 따지고 말 것도 없이 단번에 주먹을 날아왔다. 오민균이 벌떡 일어나 주먹을 날리는 청년 팔을 잡아비틀고 단숨에 가라데 일격으로 때려눕혔다. 다른 놈이 대들자 업어치기로 바닥에 메다 꼰았다. 그는 검도와 유도 유단자였다.
“물러가라우! 병신 새끼들.”
사진봉이 엎어진 똘마니들을 향해 소리쳤다. 떼거리로 달려들어도 한 사람 해치우지 못하니 자존심이 몹시 상한 모양이다. 쓰러진 놈들이 일어나고, 일행들이 말없이 줄줄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단장님, 대대장님이 내 오라버니라니까요.”
오신애가 물컵과 찻잔이 널부러진 탁자를 훔치며 사진봉을 향해 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애들이 철없이 굴어서.”
사진봉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쉽게 사과했다. 오민균은 자세를 고쳐 앉았는데 그 모습이 의연했다.
“애들이 낮술을 좀 했습니다.”
“오늘은 사 단장 말씀대로 사사로운 것이니 접어두겠습니다. 그러나 나도 여기 개인 일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오민균은 조천읍에서 경찰로부터 받은 묘한 시선이 떠올랐다. 청년단원들이 집총 자세로 목총을 앞세우고 경찰지서를 드나드는데 그들은 군인을 내놓고 업신여기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내내 불쾌했었다. 그런데 오늘 본의아니게 본떼를 보여주었다.
문용철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두 분 혈기 있어서 좋습니다. 내가 저녁 초대하겠습니다. 한잔 하면서 화해하십시오. 내가 모시지요.”
문용철은 공개된 자리에선 서로 체통을 세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남자의 세계다. 술 한잔 하면 형제보다 더 가까워지는 것이 사나이 세계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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