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회담 이후 북미협상이 교착되면서 남북관계도 거의 단절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고, 북한이 미국에게 자신의 선제적 조치에 대한 상응조치를 제시하는 새로운 셈법을 요구한 연말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탄핵과 대선 국면에 들어선 트럼프 정부는 북미 협상의 새로운 셈법을 제시하지는 않은 채 한국에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약 6조 원을 요구하는 등 동맹의 새로운 셈법을 압박하고 있다. 올해 한국 정부의 외교통일 분야 전체 예산이 5조 1000억이었고 여성가족부 예산이 1조 700억 원 수준이었다.
상징적으로 보자면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위한 예산의 3배 이상을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으로 써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트럼프의 미군 소요 플러스 50% 공식에 따르면 한국은 70조를 부담해야 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새로운 동맹 셈법은 단순히 비용의 문제를 넘어서 기존의 한미동맹 혹은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해온 한국의 기대를 철저하게 붕괴시키는 것이다. 한국의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부가 미국 오바마 정부와 추진한 전략동맹의 기초는 안보와 경제 및 가치의 선순환적 관계였다. 그런데 트럼프의 미국은 민주주의의 전범도 아니고 자유무역 등 기존 국제규범의 수호자도 아니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확대할 때는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무역전쟁을 진행하는 것처럼 안보와 경제를 연계시키지만, 동맹의 안보적 기여를 이유로 동맹에게 경제적 특혜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시각에서 동맹은 미국 민중을 착취하며 공짜 안보를 누려왔으며 이제는 그에 대한 보상 혹은 부채를 갚아야 할 의무를 질뿐이다. 동맹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있다면, 그것은 자동차 수출에 대한 관세 부과 면제나 유예처럼 강압을 자제하는 부정적 혹은 소극적인 것이다.
동맹 딜레마로 보자면, 트럼프 정부의 새로운 셈법은 주한미군의 철수라는 방기를 위협하면서 미군을 '용병'으로 쓰라는 요구와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동참하여 미중 경쟁에 연루될 위험을 감수하며 (냉전시기의 베트남 파병과 비교하면) 자비를 쓰는 미국의 '용병'으로 참여하라는 요구를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화웨이 사용 금지의 압박은 한국의 미래 경제발전에 대한 통제이고, 유엔사 강화는 한국의 미래 주권에 대한 잠재적 개입이자 훼손이다.
일본의 식민지 역사 사죄 거부나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은 일체 언급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협력의 공동이익을 강조하고 지소미아 연장을 압박하는 것 역시 일본의 식민통치와 관련된 한국의 역사적 정체성(과거)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민주주의의 현재)을 부정하는 동시에 한국의 경제적 발전권(미래)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다.
이러한 압박의 근거는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이라는 것이고 공유하는 가치의 근본은 민주주의인데,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는 미국의 민주주의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가치의 공유가 갈등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음을 웅변한다. 적어도 선출된 권력이 (비록 미국 선거인단 제도의 특수성 때문에 표의 왜곡이 심하더라도) 민의를 대변하다고 보면, 기존의 글로벌리즘과 대립되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민주주의의 요구가 기존 동맹의 문법을 거부함을 의미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과의 동맹이 예산에 대한 민주적 통제나 국익을 결정하는 주권적 권리에 우선할 수는 없다. 미국의 국익을 미국 자신의 (아무리 왜곡되었더라도!)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하듯이 한국의 국익도 한국이 결정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두 나라의 민주주의 혹은 민중이 군부나 워싱턴-서울의 엘리트 네트워크를 우회해서 진정으로 민주주의 가치의 공유가 경제적, 안보적 이익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본적도 사실 없다. 예를 들어, 사드배치와 지소미아 등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한국의 정치적 위기 속에서 공개적, 민주적 논의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진행된 것이었다.
오바마 임기 말기 대법관 임명 시도를 공화당 의회가 거부한 사례를 기준으로 보자면, 한미 양국의 동맹 관리자들이 한국 민주주의를 우회 혹은 훼손한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사드 경제보복이나 일본의 수출규제로부터 한국을 보호해주지는 못하면서, 더 나아가 한미 FTA 재개정이나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무차별적인 관세부과의 무역전쟁을 실시하면서, 동맹의 새로운 셈법을 압박해서는 기존의 한미 전략동맹은 물론 한미관계도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압박에 굴복한다면 나라도 아니다. 동맹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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