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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여성에 대해 말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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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여성에 대해 말하지 않기?

[기자의 눈] '안티페미' 자처 인사에 최우수상 준 여당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청년대변인 논평을 철회하는 소동을 빚었다. 해당 논평의 내용은 '남자도 힘들다'로 요약된다. 논평을 낸 청년대변인에 대한 당 차원의 조치는 없었다. 그를 제외한 민주당 대변인단 누구도 관련 논평을 낸 적은 없다. 영화뿐 아니라 소설 발간 시점부터 따져도 마찬가지다. '김지영에 대해 말하지 않기'다.

제도 정치권에서, 이 영화·소설에 대한 발화(發話) 행위는 오직 정의당에서만 나왔다. 다만 과거를 돌아보면, 정의당은 지난 2016년 '메갈리아 성우' 사태 당시 당 문화예술위 논평을 철회한 적이 있다. 이번의 민주당과는 정반대 이유의 철회였지만, 결과적으로 이슈에 '말하지 않기'로 대응했다는 점은 같았다. '온건 페미니즘'인 '김지영'에는 발언을 주저하지 않은 정의당도 '급진 페미니즘' 메갈리아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함으로써 힘들고 귀찮은 논쟁을)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그런데 민주당 청년대변인의 '남자도 힘들다' 논평은 이른바 '개인의 일탈'일 뿐일까. 최근 정치권에서 감지되는 흐름은 우려를 낳는다. 청년 세대의 문제를 단지 '공정'으로 박제하고, 여성·이주민·빈곤층의 평등권을 확대하기 위한 기존 담론과 정책을 적대시하는 태도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있다. 페미니즘뿐 아니라 난민정책, 사법고시 폐지, 수능-정시 대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 등도 공격 대상이 된다.

가장 선봉에는 보수진영의 한 분파가 있다. 스스로 "반(反)페미니즘의 선두 주자"(남성잡지 <맥심> 8월호)를 자처하는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등이다. 그와 같은 정파에 속한 하태경 최고위원은 지난 겨울, 래퍼 산이의 노래 '페미니스트' 옹호 등 자신의 페미니즘 비판 활동으로 젊은 남성층의 당 지지율이 유의미하게 올랐다면서 이를 '지지율 개척'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 최고위원은 "여전히 차별받는 것은 여성이라는 강고한 도그마"가 문제라면서, 여성 차별은 "이데올로기"일 뿐이고 "20대 남성들 현실은 자랄 때도 우대받지 않았고 지금도 우대는커녕 차별받고 있는데 사회는 20대들에게 '너희들이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하니 사회에 대한 반발심이 커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주당도 이런 흐름에서 마냥 자유롭지 않다. 물론 민주당 지도부나 현역 의원들은 상당히 진보적인 색채를 유지하고 있다. 정의당마저 발언을 포기하다시피 한 작년의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 당시에도 민주당 원내지도부 회의에서는 "성체 훼손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지는 알고 있지만, 이것이 페미니즘 전반에 대한 과도한 공격으로 또 다른 증오나 차별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신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2030세대의 문재인 정부, 민주당 지지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청년대변인이 낸 '82년생 김지영 논평'은 괴롭고 긴 겨울을 앞두고 찾아온 가을날의 미세먼지 같은 불안감을 안긴다.

실례로, 민주당 '2030컨퍼런스'에서 최우수상 수상까지 한 대학생위·청년위 소속 인사는 SNS에 쓴 글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와꾸(얼굴)부터 빻았다(못생겼다)", "페미들은 한 번도 날 이긴 적이 없다"며 "안티페미"를 자처했다. 여동생 귀갓길이 걱정돼 부모님이 여동생을 버스정류장으로 마중 나가게 했다는 경험이나 "동생보다 좋은 방을 가져본 적 없다"는 푸념을 "집에서 남녀차별을 받고 자랐다는 여자들"에 대한 반박이라고 내놓기도 했다.

작년에 <82년생 김지영> 소설책을 대규모로 구입해 주변에 선물했다는 한 민주당 의원은 "30대 이하 남성들은 90%가 '안티페미'"라고 우려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20·30대 남성들의 지지율이 동세대 여성이나 40대 이상 남성들보다 낮은 이유를 문 대통령의 "페미니스트 대통령" 선언에서 찾는 분석도 꾸준히 나왔다.

2030 세대의 요구가 단지 '공정'으로 '박제화'됐다는 것은,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그저 '공정한 경쟁'으로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님에도 정치권은 모른 척 슬쩍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완전한 공정이란, 자본주의 체제가 전제하는 '완전경쟁시장'이나 몰락한 국가사회주의가 꿈꾼 '공산주의 낙원'처럼 사고실험장 내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다. 선출직·고위직에 남성이 많은 것, 명문대 입학생들 가운데 강남 출신이 많은 것, 성공한 벤처기업인들 가운데 다수가 부유층 자제라는 것은 '공정한 경쟁'의 허구성을 보여준다.

가사·육아노동과 출산의 부담이 한 성(이성애자 여성)에게만 집중되고, 여성의 외모와 복장이 공공연한 평가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과연 '공정'한가? 성별 임금격차가 OECD 국가 중 최악 수준이라는 현실이 과연 '공정한 경쟁'의 결과일까? 초중등학교 교원 중 여성 비율이 높은 것이 출산·육아휴직과 방학 등 가사노동 투입 시간이 보장되는 소수의 안정적 직업에 대한 여성들의 절실한 요구 때문일까, 아니면 '역차별'의 결과일까?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누구나 '공정에 대한 요구는 시대정신'이라고 말하지만, 시민사회·진보진영에서 "맥락 없는 공정"(천관율·정한울의 <20대 남자>에서)에 대한 우려가 치솟고 있는 것은 그래서다. 최근 정치권 입문을 선언한 한 청년 영화감독이 "가진 자들이 규칙을 정하는 사회에서 공정은 힘없는 외침이다. 공정한 차별이 하루가 다르게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 지금, 우리는 공정이 아니라 불평등을 외쳐야 한다"고 말한 것 역시 그래서 주목을 끈다.

물론 '젊은 남성'을 대상화·악마화할 일은 아니다. 다만 유권자 집단 중 일부가 공정을 평등·정의와 혼동하고, '여성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는 것(정확히는 현실의 핸디캡·페널티를 제거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이 무작정 받들어야 할 '민심'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눈감고 '안티페미' 정서에 편승하는 것은, '진보는 빨갱이'라는 선동에 맞서지 않고 '우리는 빨갱이 아니니 표 주세요'라고 구걸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정치가 정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미 2000년도 더 전에 한 종교 지도자는 '나는 화평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가르쳤다. 낡고 거짓된 믿음, 우상숭배는 '존중'이 아니라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돼야 한다. 정당이 다수 유권자의 감정을 거스르지 않으려고만 해서는 성차별도 인종차별도 막을 수 없다. 과거의 민주당이 그랬다면 햇볕정책도 무상급식도 없었을 것이고, 미국 정당들이 그랬다면 게티스버그 선언 역시 없었을 것이다. 그게 정치와 정당의 존재 이유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그래도 한국당보다는 낫지 않느냐'고는 제발 하지 말기 바란다. 물론 현직 당 대표가 무려 여성 문제 관련 토론회 석상에서 "그런데 젠더가 뭐냐? 트랜스젠더는 들어봤는데"(홍준표, 2017.9월)라는 말을 하거나, 2020년 총선을 겨냥해 영입을 추진하던 '인재'가 자신의 갑질 의혹에 대해 "그건 일방적인 성추행 사건과 똑같이, 증거도 증인도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인 진술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태를 접하고 나면, 아직 사회 경험이 없거나 일천해 '여성이 무슨 차별을 받느냐. 남성도 그만큼 힘들다'고 말하는 2030 남성들의 주장은 차라리 귀여운 수준으로 보이는 착시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슬라보예 지젝의 말처럼 "'정상적인 사회'란 누군가가 '강간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이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정신 나갔어?'라며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사회"(2012.3.9. <한겨레> 인터뷰)여야 한다. '우리가 미친 사람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의미없는 말이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근거가 돼선 안 될 것이다. 민주당의 '82년생 김지영 논평' 사태와, 촉망받는 대학생 당원의 SNS 망언이 단지 "아무리 젠더 교육을 해도 체화가 안 되는"(한 민주당 최고위원의 한탄) 가운데 나온 단발성 사건이기를, 계절을 착각한 한 마리 제비의 돌출행동일 뿐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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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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