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관리에 대한 전 국민의 불안감이 높은 가운데, 2001년 이후 현역 군인 20명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감염자로 최종 판명돼 전역 조치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특히 훈련소에서 대규모로 이뤄지는 단체헌혈 과정에 감염자들의 피가 헌혈됐을 우려도 제기되고 있어 파문이 확산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은 대한적십자사 편을 들며 감사원 등을 신랄히 비판하고 나서, 전문가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현역 군인 20명, 'AIDS 전역'**
31일 국방부가 박세환 국회의원실에 보낸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군 복무자 가운데 AIDS 감염자로 최종 판명돼 전역한 이들은 모두 20명으로 확인됐다.
감염자 수는 육군의 경우 1군 4명, 2군 1명, 카투사 1명이었으며, 공군 상병 1명이 AIDS에 감염돼 전역조치됐다. 나머지 13명은 훈련소에서 AIDS 감염이 확인돼 전역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에 따르면, 혈액원과 질병관리본부 등에서 AIDS 확진 판정을 내릴 때까지 4~5주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일부는 자대에 배치된 후 전역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AIDS 환자 관리체계에서는 1차 혈액검사에서 AIDS 양성반응이 나타날 경우 최종 확진 판정이 나올 때까지 피검사자 및 국방부로는 아무런 통보가 이루어지지 않아 군 당국에서는 AIDS 감염 의심자에 대한 파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가능성은 낮으나 군인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이 확진 판정을 받기 전 2차 감염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단체 헌혈 과정에서 헌혈 우려도 제기돼**
군인들이 단체 헌혈을 많이 해 자칫 에이즈 감염자들의 피가 헌혈됐을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훈련소에 입소한 군인들은 대개 입소 이틀 만에 단체 헌혈을 실시하고, 퇴소할 때 1차례 더 헌혈을 실시해 왔다. 훈련소에 입소하기 전 상당수의 군인들이 AIDS나 각종 성병에 감염될 가능성이 큰 현실을 감안해본다면, 입소 후 바로 헌혈을 했을 때 항체 미형기의 군인의 피가 헌혈을 통해 유통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지난해 8월 항체 미형성기의 현역 군인이 헌혈한 혈액을 수혈 받은 2명이 에이즈에 걸리는 사고가 일어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훈련소 입소 이틀 만에 실시하는 현행 단체 헌혈을 ADIS나 각종 성병의 항체형성기가 지나는 2∼12주가 지난 뒤 헌혈하는 것이 수혈 감염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
***중앙일보, "감사원 오버했다" 비판**
이렇게 현행 혈액 관리의 허술한 점이 속속들이 들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일보>가 감사원의 혈액 감사가 '오버'했다고 비판하고 나서 빈축을 사고 있다.
<중앙일보>는 31자에 실린 신성식 기자(정책기획부)의 "'오버'한 혈액 감사" 제하의 칼럼을 통해 감사원이 지난 28일 발표한 '혈액 안전관리 실태' 감사 결과를 비판했다.
칼럼은 "감사원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부풀린 곳이 많다"면서 "AIDS 감염자나 환자는 설사 헌혈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수혈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감사 결과 지적된 신상정보에서 누락된 감염자나 환자가 헌혈을 하더라도, 다시 안전성 검사를 받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지적이다.
칼럼은 또 "감염의심자 30만4천여 명의 명단을 전산망에 올려 헌혈을 일시적으로 못하도록 조치한 것도 지나치다"면서 "유통된 혈액 7만2천여건 중 5만여 건이 1999년 4월 이후 한 사람이 5번 이상 헌혈하면서 '음성(안전)'판정을 받은 사정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역시 헌혈후 혈액 안전성 검사 과정에서 확인이 가능한 상황에서 굳이 명단을 관리하는 것조차 불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건시민단체 "사실상 혈액관리 하지 말자는 거냐"**
이같은 지적에 대해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보건의료 관련 시민사회단체는 "사실상 혈액관리를 하지 말자"라는 주장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비록 기사의 작성취지가 적십자사에 대한 과도한 불신으로 가뜩이나 부족한 헌혈을 기피하는 현상을 막자는 취지에서 쓰여졌다고 선의로 해석하더라도, 현실을 도외시한 채 적십자사 옹호에 과도하게 치중했다는 비판이다.
한 보건의료 전문가는 "국내 최고의 혈액 검사 능력을 보유한 질병관리본부도 AIDS 바이러스 검사 정확도는 80%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보건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00% 확실한 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체적으로 검사를 실시하는 적십자사의 경우에 정확도가 더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각종 감염 의심자에 대한 관리는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사정 때문에 한국수혈학회(이사장 한규섭 서울대 교수)는 지난 3일 낸 '의견서'에서 "정부가 수혈전 혈액 검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강주성 대표도 이 기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강 대표는 "현재 대한적십자사가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가진 '안전 불감증' 때문"이라며 "'헌혈의 집'에서 기본적인 '문진' 검사도 실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감염 의심자의 전산 등록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수차례 헌혈을 받았다 폐기한 사례도 많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수십년간 적십자사가 혈액 사업을 독점해오면서 생긴 이런 구태의연한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이번 일을 폄하하는 기자의 관점이 한심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적십자사 "구원군 만났다"**
한편 여론의 질타를 맞고 있는 적십자사는 원군이라도 되는 양 중앙일보 기사를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1일 현재 적십자사는 자사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에 굵은 글씨로 문제 칼럼을 게재해 놓았다.
이번 감사를 가능하게 한 공익제보를 한 적십자사 내부고발자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신성식 기자의 글을 읽고 분통이 터졌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신 기자는 글의 말미에 "혈액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대로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통해 지금 필요한 것이 바로 혈액 안전에 대한 강조를 통해 적십자사와 정부 혈액 관리의 쇄신을 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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