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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 이대로는 미래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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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영화 100년, 이대로는 미래 어둡다"

[인터뷰] 최용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100년 전 10월 27일 <의리적 구토>(김도산 감독)가 개봉했다. 영화계가 올해를 한국 영화 100주년으로 기념하는 이유다. 1963년 한국 정부는 <의리적 구토>가 처음 상영된 이 날을 ‘영화의 날’로 지정했다. 한국영화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올해 다양한 기념행사를 열어 다음 100년을 모색했다.

올해 한국 영화계는 100주년을 기념해 큰 선물을 받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지난 100년간 한국 영화의 발전상은 미디어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졌다. 한국 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2001년 처음 50%를 넘은 이후, 대체로 영화 시장의 과반을 차지한다.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를 주름잡는 현실에서 한국 영화 시장은 드물게 자국 영화가 힘을 발휘하는 곳이다. 여러 스타 감독이 이제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낙관만이 있으리라는 외부의 생각과 달리, 영화계 한편에서는 한국 영화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용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은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 '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진단과 대안'에서 한국영화의 성공시대가 끝나고, 기초 토양이 갈수록 허약해지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최 부회장의 말을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지난 30일 서울 중구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 부회장은 크게 대자본이 독점하는 산업적 구조, 정부 성향에 크게 영향을 받는 정치적 구조의 두 가지 압력이 한국영화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 부회장은 독립 제작사 청어람을 설립해 영화 <괴물>, <26년> 등의 성공을 이끌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콘텐츠진흥원 공모사업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심사위원에서 배제된 이력도 있다. 지난해는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북한 영화를 국내에 소개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최용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청어람 대표, 한예종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영화 100년, 도약 시기는 지난 20년

프레시안 : 올해로 한국영화가 100년을 맞았다. 상대적으로 할리우드 영화가 지배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한국영화 사정이 낫다고들 한다.

최용배 : 항상 그랬던 건 아니다. 한국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시기는 지난 20년이다.

대체로 할리우드 영화가 어느 나라에서나 점유율 70~80% 정도를 가져간다. 한국도 원래는 그랬다. 스크린쿼터 제도가 존재했지만, 오랜 기간 한국 영화의 점유율은 20~25% 수준이었다. 20년 전부터 이런 흐름에 변화가 일어났다. 2001년 이후 한국 영화가 근 20년간 점유율 5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영화 100년이라고 하지만, 기실 지난 20년이 정말 큰 변화의 시기다.

프레시안 : 20년 전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변화가 가능했다고 보나?

최용배 : 영화로 예를 들어 설명하면 쉬울 것 같다. <쉬리>(강제규 감독)가 1998년 개봉했고,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감독)가 2000년 개봉했다. 이 영화들 이후 '오랜만에 한국영화를 봤는데 재미있더라'는 관객평이 나오곤 했다. 속된 말로 '때깔'이 좋은 영화가 한국에서도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의 밑바탕에는 제도 변화와 세대 변화가 있다고 본다.

1998년 영화법이 개정되면서 사전검열제도가 사라지고 등급분류만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어떤 주제든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 영화에서 북한군은 마냥 악마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프레시안 : 박찬욱, 봉준호 등 한국영화 새물결을 이끈 이들도 이 시기 등장했다.

최용배 : 베이비부머(1954~1963년생)가 영화계 전면에 등장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들이 신씨네, 기획시대, 영화세상, 시네마서비스, 싸이더스, 명필름 등의 전문 제작사를 만들면서 한국 영화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아이러니하지만, 군부독재 시절 독재를 비판한 베이비부머들은 당시 한국에서 문화혜택을 많이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이런 경향이 특히 영화계에서 강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졸 영화인에게는 '대학 나온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곤 했다. 그런데 새로운 세대가 유입된 후, 영화인이 존경받는 직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대졸 엘리트가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1985년만 해도 한해 수입되는 외국영화는 20편에 불과했다. 이런저런 상을 받은 영화사, 예컨대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반공상을 받는 영화사 정도가 한 편 정도를 더 수입할 권리를 보장받았다. 이런 예외를 다 종합하면 한해 한국인이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외화는 최대 25편이었다. 기본적으로 최고 흥행 영화만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공부한 이들은 다른 통로를 갖고 있었다. 프랑스 문화원이나 독일 문화원 등에서 영화를 좋아하던 학생들이 그들 나라의 과거 유명 감독 작품을 모여서 봤다. 이전 세대와 달리, 모여서 영화를 공부한 집단 경험을 공유한 이들이 대학졸업 후 영화판에 뛰어든 것이다. 한국판 뉴웨이브 세대라 할 만하다. 영화인들은 대체로 장선우와 박광수를 뉴웨이브의 선봉으로 인식한다.

이런 새로운 이들이 계속 대중문화계에 안착하면서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등 모든 문화가 변화의 시기를 맞는다. 이에 맞춰 투입되는 재원의 수준도 커졌다. 현장에서 경험한 바로는, 대체로 1998년 이후 한국영화를 수출하러 외국 영화제에 가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전만 해도 외국영화제에 가는 이유는 수입을 위해서였다.

이 시기를 전후해, 첫 뉴웨이브 세대가 뿌린 씨앗이 꽃을 맺는다. 흔히 외국 영화계에서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얼굴로 꼽는 임권택, 이창동, 홍상수,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임상수 등이 모두 2000~2007년 사이에 흔히 말하는 3대 영화제에 초청받는다.

1960년대 내내 외국 영화제에 초대된 한국영화는 <마부>(강대진 감독,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한 편이었다. 1980년대에는 4편이다. 2000년대 들어서며 급격히 늘어난다. 2000년 두 편(섬, 춘향뎐), 2001년 6편(눈물, 공동경비구역 JSA, 반칙왕, 수취인불명, 꽃섬, 박하사탕), 2002년 4편(고양이를 부탁해, 나쁜 남자, 오아시스, 취화선), 2003년 5편(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복수는 나의 것, 바람난 가족, 밀애, 질투는 나의 힘), 2004년 7편(몬스터, 하류인생, 사마리아, 빈집, 장화 홍련, 올드보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2005년 4편(친절한 금자씨, 활, 극장전, 축제), 2006년 5편(용서받지 못한 자, 짝패, 괴물, 사생결단, 천년학), 2007년 6편(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숨, 밀양, 해변의 여인, 후회하지 않아, 경계)이다.

질적 성장뿐만 아니라, 양적 성장도 1998~2007년 사이에 가팔랐다. 1998년 1000만 명을 약간 넘던 한국영화 극장관객수는 이후 급격히 늘어나 2006년에는 1억 명 가까이로 성장한다. 1998년 430만 달러이던 한국영화 연도별 수출금액은 2005년 8000만 달러 가까이로 급성장했다.

한국 영화 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2001년 50% 가까이 치솟은 후 2006년에는 60%를 넘기기도 했다. 이후에도 대체로 과반을 유지하고 있다. 자국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는 나라는 미국을 제외하면 인도, 이집트, 터키, 중국, 한국(점유율 순)뿐이다. 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러시아(23%), 프랑스(36%), 일본(46%), 독일(24%)의 자국 영화 점유율도 절반에 못 미친다.

▲ 한국영화는 2000년대 들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최 부회장은 그러나 2006~2007년 즈음까지 이어진 성장 시대 후 한국영화는 정체기를 맞았다며 위기감을 토로했다. ⓒ프레시안

2008년 이후 한국 영화 미래는 비관적

프레시안 : 이처럼 한국영화의 지난 20년을 보면 눈부신 발전을 해왔다고 평할 수 있을 텐데, 최 부회장은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비관적 의견을 제시했다. 앞뒤가 안 맞는 듯한데?

최용배 : 2007년 이후 영화계 분위기가 달라졌다. 연도별 수출금액이 뚝 떨어져 2010년에는 1000만 달러를 겨우 넘는 수준까지 내려갔다. 최전성기에 비하면 8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이후 회복해 지난해 기준 4000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예전에 비해 외국 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인기는 많이 떨어졌다.

한국영화의 연도별 극장관객수 역시 하락 후 재반등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최근 3년간 다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절대 수로는 극장관객수가 계속 늘어나 2013년에는 1억3000만 명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그 이유로는 장년층과 노년층의 소비가 늘어났기 때문일 뿐이다. 젊은 소비 세대의 유입이 저조하다. 오직 관객과 OTT(넷플릭스 등 인터넷 매체 서비스) 매출 지표만 좋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이후 새로운 대형 감독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신호다. 이들 세대 후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은 감독은 나홍진 정도가 유일하다. 오랜 기간 외국영화인이 한국영화에 표하던 존경심은 지난 10여년 사이 사라지고 있다.

▲ 한국영화 연도별 수출금액 추이. 1998년 이후 급격히 성장하던 수출금액은 2005년을 정점으로 하락한 후 다시금 조금씩 회복세를 보인다. 최 부회장은 영화수출금액은 외국 평단의 한국영화 인식을 바라보는 지표로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용배 제공

프레시안 : 원인을 짚어볼 차례다. 영화계는 오랜 기간 대자본의 독점 폐해를 거론해 왔다.

최용배 : 지난 20년의 전반기(2000~2007년 시기)에 멀티플렉스도 급증했다. 그 후유증이 이 시기 이후 커졌다.

작년 기준으로 3개 극장체인(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점유율이 거의 100%에 가깝다. 2004년에는 이들 3대 극장을 제외한 나머지 극장의 비중이 60%를 넘었다. 5대 투자배급사(CJ ENM, 롯데ENT, 쇼박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NEW)가 한국영화 90%가량을 배급한다. 2000년만 해도 중소배급사 비중이 30%를 넘었으나, 이제는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프레시안 : 영화인들은 독점 자본의 폐해를 계속 거론하지만, 영화 산업에 큰 관심이 없는 이로서는 구체적으로 대자본이 왜 문제인가를 이해하기 어렵다.

최용배 : 영화 유통을 거칠게 나누자면 투자배급사의 제작비 투자 및 판권 확보-극장 및 OTT사 판매-해외 판매로 구분할 수 있다. 이때 관객이 지불하는 영화비를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제작사가 얻는 수익 규모가 결정된다.

대체로 극장 자본과 배급 자본은 나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의 환경은 다르다. 3대 극장이 대형 배급사도 함께 갖고 있다. CJ가 CGV(극장)와 ENM(배급)을 함께 가진 식이다. 배급비가 꾸준히 내려가는 원인이다. CJ나 롯데처럼 극장과 배급 사업을 함께 가진 곳이라면 싼 가격에 영화를 극장에 배급해도 괜찮다. 극장에서 수익을 올리면 되니까. 하지만, 독립 배급사에는 얘기가 다르다. 대형 배급사가 배급비를 낮춰버리면 다른 곳도 울며겨자먹기로 더 싼 가격에 영화를 극장에 내걸어야 한다. 갈수록 소형 배급사가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결국, 대자본 입맛에 맞는 영화만 극장에 내걸리게 된다.

배급사 힘이 약해지니 극장의 '갑질'도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이제 통상 배급사가 영화 홍보비의 4분의 1가량을 부담해야 한다. 과거에는 극장이 하던 일이다. 예를 들어 극장 로비에 거는 영화 예고편, 극장 예매 어플리케이션의 영화 홍보비용을 배급사가 부담한다. 소셜미디어 광고비 역시 배급사가 부담한다.

협상에 따라 이런 광고비는 배급사가 부담할 수도, 극장이 부담할 수도 있다. 문제는 배급사가 부담한다는 게 아니다. 극장이 절대 갑이 된 왜곡된 관계가 정착된 상황에서 극장이 정하는 룰을 배급사가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게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니 같은 값의 영화라면 이제 더 싸게 공급하는 영화만 관에 걸리게 됐다.

대기업의 관료 시스템 특성상 스타 감독, 스타 배우 등이 보장되는 더 안전한 선택에만 영화 투자가 집중된다는 점도 문제다. 다양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현재 한국 인디영화계에는 재능이 넘친다. 이들 중 어느 정도 투자를 받으면 '제2의 <플란다스의 개>'와 같은 중소형 규모 상업영화도 얼마든 만들 이들이 있다. 현재 한국영화계는 블록버스터급 상업 영화와 인디 영화로 양극화하고 있다.

프레시안 :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취임할 때, 영화인들이 크게 반대한 이유가 그가 CJ 사외이사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최용배 : 그렇다. 그가 취임하고 변한 게 없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문체부 차관'이라는 식으로 포장됐지만, CJ 사외이사였다. 영화계 반대가 워낙 거세서인지 그가 취임 후 열흘 째에 우리와 간담회를 요구했다. 극장에서 영화 상영 시 광고비를 극장과 제작사가 나누도록 하겠다, 극장의 초대권 남발 등도 바로잡겠다고 했다. 더 중요하게 관련 법 제정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제대로 된 답하지 않았다. 이후 문체부와 상시 논의하는 기구 두 개를 만들었는데, 이번에 문체부가 내놓은 '한국영화산업 발전 계획'안을 보니 영화인의 요구는 전혀 담기지 않았다.

▲ 한국의 대자본 멀티플렉스 극장 점유율은 거의 100%에 가깝다. ⓒ최용배 제공

겸영 금지-보호

프레시안 : 한국영화 미래를 비관하는 이유로 산업 구조를 여태 거론했다. 정치적 변수는 없나? 한국영화의 중요 변화 시기로 꼽은 1998년은 김대중 정부 출범 시기다. 2007년 이후 한국 영화가 어렵다고 강조했는데, 그 이후 시기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보수 정부 집권기다.

최용배 : 한국영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정치라고 생각한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가예산의 1%를 문화예산으로 확보하기 시작했다. 영화법을 개정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했다.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기구를 만들기도 했다. 이 같은 관련 제도의 변화가 앞서 언급한 한국영화 성장의 가장 중요한 자양분이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이 정반대가 됐다. 이른바 문화권력균형화 전략이 추진됐다. 블랙리스트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부산영화제가 혼란에 휩싸이는 상징적 사건도 일어났다. 당장 나부터 2008년 이후 오랫동안 영화를 제작하지 못하다가, 이명박 정부가 레임덕에 들어간 2012년에야 <26년>을 겨우 제작했다. 보수 정부는 기본적으로 한국영화계를 좌파 집단 정도로 인식하는 듯하다.

프레시안 : 한국영화가 다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최용배 : 영화인들의 요구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대자본의 극장-배급사 겸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영화 보호제도와 지원제도를 손질하고 강화해야 한다. 예술영화 전용관 의무화도 필요하다.

프레시안 : 극장-배급 겸영 금지는 곧 재벌그룹의 계열 분리다. 가능한가?

최용배 : 생각만큼 이상한 게 아니다. 영화 배급에 극장 배급만 있는 게 아니다. OTT 배급, 해외 배급도 중요한 사업 영역이다. 이 중 극장 배급만 하지 말라는 거다. CJ ENM을 예로 들자면, 전체 배급 사업에서 극장 배급 영역만 독립시키라는 얘기다.

한국영화 보호를 위해 스크린독과점 금지도 법제화해야 한다. 프랑스가 대표적 사례다. 프랑스 상영관 규칙을 보면, 전체 상영관이 8개인 멀티플렉스의 경우 상위 영화 한 편은 오직 2개의 상영관까지만 걸 수 있다. 나머지 6개 관에는 다른 영화를 걸어야 한다. 이런 규제안이 상영관 수에 따라 세세하게 나와 있다. 한국에서 <어벤저스> 등 대형 할리우드 영화의 스크린 독점 논란이 이어졌는데, 이를 프랑스처럼 규제할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해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입법안이 있다. 50% 제한이다. 즉, 영화 한 편이 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게끔 하자는 얘기다. 이 안 대로라면 20개 스크린에서 오직 두 편의 영화만 보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이 정도 수준의 입법안을 보호안이라고 내놓은 걸 보면 솔직히 힘이 빠진다. 최소 30% 규제 제한이라도 둬야 한 극장에서 4편의 영화는 개봉이 보장될 수 있다.

영화 지원금을 더 늘릴 필요도 있다.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의 연간 프랑스 영화 지원금이 연간 8억400만 유로가량 된다. 한국 돈으로 약 1조439억 원이다. 이 중 순수 영화 지원금만 4654억 원이다. 한국 영진위 한해 예산은 직원 월급을 포함해 약 400억 원이다. 프랑스의 10분의 1 수준이다.

혹자는 스크린쿼터제 등의 보호 조치를 모두 없애고 미국과 당당히 경쟁하라고도 한다. 보호하지 않으면 한국 상영관에는 오직 할리우드 영화만 걸릴 것이다. 그들의 제작 규모는 다른 어떤 나라도 따라갈 수 없다. 영화를 의미 있는 규모로 수출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오직 미국 한 나라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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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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