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탄핵정국에 쏠려 있는 3월28일 전북 부안군과 전남 영광군에서는 두 가지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2003년 전 국민의 이목을 끌었던 '새만금 삼보일배' 1주년을 기념하는 '새만금 갯벌 생명평화 기원제'와 미국의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 사고 25주년을 계기로 영광 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고통을 고발하는 '3·28 탈핵문화제'가 바로 그것이다.
***'새만금 삼보일배' 1주년, 뭇 생명들의 고통은 계속돼**
28일 부안 해창 갯벌에서는 새만금의 생명평화를 기원하는 2003년 '새만금 삼보일배'를 기억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새만금 갯벌 생명평화 기원제'가 문규현 신부,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 등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해창 갯벌은 1년 전 '새만금 삼보일배'가 시작된 곳이다.
전북지역 인터넷신문 <참소리>에 따르면, 인근 주민들과 삼보일배에 함께한 이들이 참여한 천주교 미사에서 문규현 신부는 "지난 1년 사이에도 갯벌과 뭇 생명들은 무수히 죽어갔고, 개발은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삼보일배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문 신부는 "최근 정치개혁과 민주주의를 위해 전 국민적인 촛불의 행렬이 밤마다 이어지고 있다"면서 "더 나아가 진정한 생명과 평화를 생각한다면, 온 국민이 새만금 갯벌을 위해 생명과 평화의 촛불을 들어주길 바란다"고 새만금 갯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기원제 1>
기원제에 모인 사람들은 더 안 좋아진 상황에 착잡한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보일배 후 서울행정법원의 공사 집행 중지라는 성과를 얻었지만, 고등법원은 2심에서 공사 재개 판결을 내려 1심을 뒤집었고, 농림부의 입장도 변함이 없는 상태다. 9월로 예정된 본안소송 판결도 그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작년보다 한 가지 상황이 나은 것은 '부안 사태'를 겪으면서 새만금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인근 주민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부안 주민들이 반핵을 상징하는 노란 손수건, 모자, 옷을 걸치고 이날 기원제에도 참가했다.
***"가마미 마을 주민들은 불안하다"**
한편 같은 시간 부안군과 맞닿아 있는 영광군 가마미 해수욕장에서는 '3·28 탈핵문화제'가 열렸다. 이번 문화제는 2003년 12월 영광 5호기의 방사능 누출사고와 잇따른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불안해하며 이주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원전 부근 가마미 마을 주민들의 고통을 고발하고,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촉구하기 위해 '가마미 마을 이주대책위', 민주노동당, 반핵국민행동이 공동으로 개최한 것이다.
특히 3월28일은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25년이 되는 해로, 이 사고는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함께 미국과 유럽의 원자력발전소 정책을 재고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스리마일 사고 이후 미국은 단 1기의 원자력발전소도 추가로 발주하지 않고 있다.
<탈핵문화제 1>
'3·28 탈핵문화제'에서 마을 주민들과 참가 단체들은 '탈핵공동선언문'을 내고 "현재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는 32개국 중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원자력발전소 정책을 포기하고 있다"면서 "특히 EU 15개국 중 프랑스를 제외한 14개 나라는 원자력발전소 개발 계획을 취소했다"고 지적했다. '탈핵'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이다.
이들은 또 "잦은 방사능 누출 사고로 생존과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면서 "한국은 시대착오적인 원자력 발전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잇따른 원전 사고로 정상적 생업을 영위할 수 없는 가마미 마을 주민은 한국의 원자력 발전 정책의 모순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면서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주)은 가마미 마을 주민에 대한 이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낡고 부패한 정치 몰아내는 촛불은 생명의 촛불로 거듭나야**
문규현 신부는 기원제에 앞서 27일 <참소리>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 "새만금 간척이 강행되고, 천성산의 도롱뇽이 죽어가며, 북한산에 관통도로가 뚫리고, 핵발전과 핵폐기장을 영구히 존속시키려는 시도가 용납되는 한, 헐벗고 파헤쳐지는 백두대간의 신음소리가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낡은 틀과 이기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라면서 "낡고 부패한 정치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촛불은 낡고 부패한 시대의 유산을 녹일 생명의 촛불로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전 국민적 염원이 표출되고 있는 지금, 새로운 정치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서 3월28일 부안과 영광에서 열린 두 행사가 던져주는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할 때이다.
다음은 문규현 신부의 기고문 전문.
***온 세상과 새만금 갯벌의 생명 평화를 염원한 삼보일배 1주년에**
결국 새만금 갯벌은 이렇게 속절없이 죽어가야 하는 걸까요. 따뜻한 봄 햇살은 방조제 저 건너 편 바다에도 여기 방조제 안에도 가득 퍼지긴 마찬가진데, 바다물살은 거대한 방조제에 막혀 오가질 못합니다. 여기 해창 갯벌은 이미 갯벌이 아니라 퍽퍽한 아스팔트 길처럼 말라가고 있습니다.
"온 세상과 새만금 갯벌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를 시작하겠습니다!" 하고 하루, 이틀... 닷새... 십일...... 육십사 일, 그리고 마침내 육십오 일을 갔던 삼보일배. 그 지난한 참회와 기도의 길을 간 지 한 해가 되었건만, 아직 새만금 갯벌에 희망 섞인 소식, 부활의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갯벌에 가해지는 파괴를 어쩌지 못하고 그저 가슴 졸이며 날만 보내고 있습니다. 새만금 갯벌의 비극이 결국 위도 어민들의 고통을 낳고, 위도의 고통은 부안의 피눈물을 불러왔건만, 아직도 우리는 새만금 갯벌이 다 죽는 날 더 큰 재앙의 고리들이 몰아닥칠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견고하게 버텨온 기득권 세력이 허물어지며 정치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럴지언정 소위 정치 발전이 곧장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가져다주진 않는 것 같습니다. 정치 발전을 바라는 마음이 곧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고귀한 정신과 일치하진 않는 듯 합니다. 법이 바뀌고 제도가 좋아진다 해서 인간의 품위, 생각과 삶의 수준도 저절로 새것이 되는 것 같진 않습니다.
새만금 간척이 강행되고 천성산의 도롱뇽이 죽어가며, 북한산에 관통도로가 뚫리고, 핵발전과 핵폐기장을 영구히 존속시키려는 시도가 용납되는 한, 헐벗고 파헤쳐지는 백두대간의 신음소리가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낡은 틀과 이기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 자신이 바로 기득권 세력입니다. 자연 위에 군림하고 다른 생명을 담보로 내 풍족함을 추구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으려는 우리야말로 수구 기득권 세력입니다.
새만금 갯벌을 메우거든 농지로 쓰겠다던 원래의 간척 계획조차 사라졌습니다. 일단 저 갯벌을 확실히 죽여놓고 그 용도를 생각하자는 탐욕과 살기만이 기세등등합니다. 이 편 아니면 저 편, 생명 아니면 죽음으로 극단을 강요하며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완강하게 뻗어나간 새만금 방조제, 저 흉악한 건축물은 우리의 정신과 삶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군사독재와 개발지상주의의 망령에 시달리고, 정치모리배들의 책략에 흔들리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낡고 부패한 정치세력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하자는 국민적 염원이 들불처럼 지펴지고 있습니다. 수만 수십만, 전국 곳곳에서 타오르는 장엄한 촛불이 강을 이루고 바다로 출렁이고 있습니다. 정녕 그러하거든, 여기 새만금 갯벌의 부활 속에서 그 촛불의 의미와 아름다움이 완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촛불을 밝혀주십시오.
낡고 부패한 시대의 유산 새만금 간척사업을 녹일 생명의 촛불을 밝혀주십시오. 촛불을 들어주십시오. 무리 지어 죽어 가는 저 죄 없는 갯벌생명들의 고통에 함께 하는 사랑의 촛불을 들어주십시오.
촛불을 비추어 주십시오.
편리함과 이기심으로 파괴와 물신숭배를 용납하는 저마다의 양심에 참회의 촛불을 비추어주십시오.
삼보일배, 눈물과 땀과 인내와 고뇌로 범벅이 되어 함께 갔던 그 사랑의 여정, 수많은 분들이 그 깊은 사랑을 가슴에 간직하고 지금도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삼보일배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앞서 간 삼보일배의 길이 또 다른 삼보일배의 길을 낳고, 다시 그 길 따라 수많은 삼보일배의 갈래길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허니 새만금갯벌은 결코 죽지 않을 겁니다.
내 안의 어리석음과 내 안의 화와 내 안의 탐욕을 정화하여, 내 몸 밖 기득권 세력뿐만 아니라 내가 움켜쥐고 있는 기득권까지 깨끗하게 닦아내려는 우리의 노력과 기도가 이어지고 우리의 사랑 또한 변하지 않는 한, 새만금 갯벌은 쉬이 죽지 않을 겁니다.
함께 이 길을 계속 가실 거지요.
삼보일배, 삼보일배, 온 세상과 새만금갯벌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며 말입니다.
2004년 3월 28일,
'새만금갯벌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 1주년에
천주교 부안성당 문규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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