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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한인권, 진보의 의제다

[휴먼 라이츠 브리핑] ⑨ 북한인권에 대한 성찰적 접근

1990년대 중반 이후 소수의 활동가와 탈북민들에 의해 제기되어온 북한의 인권문제는 지난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와 총회의 결의안을 기점으로 국제문제로 그 성격이 전환되었다.

대표적으로 2013년 설립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에서 벌어진 "조직적이며 광범위하고 중대한 인권침해들"을 확인하고, 그 중 "인도에 반하는 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해당하는 사안들을 상세히 열거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근거로 유엔 인권이사회는 관련 책임자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를 안보리에 권고하는 한편, 유엔 차원의 상설적인 북한인권 조사기구의 설치도 이뤄졌다(유엔 북한인권 서울사무소).

요컨대, 2010년대 중반 이후 국제사회의 대응은 소위 '지목해서 창피주기(naming and shaming)'와 같은 간접적인 방식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가해자를 가려내 책임(accountability)을 묻는 준사법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의 의미는 절대 가볍지 않다. 이는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 보호를 자신의 책임하에 두겠다는 것이며, 이러한 개입의 도덕적·제도적 근거도 마련되었음을 뜻한다. 남한에 주는 의미 또한 간단하지 않다. 유엔 내 극소수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북한에 대한 '특별한' 인권 개입에 대한 컨센서스가 형성되었다는 것인데, 그간 진보 정부와 시민사회가 주창해왔던 접근법, 즉 '남북한 분단의 특수 상황'이라는 논리를 근거로 북인권문제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하위 의제로 다뤄왔던 접근법은 더는 공감을 얻기 어려워졌다고 봐야 한다.

그동안 진보진영은 평화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냉전적 대립과 군사주의를 북한 인권문제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해왔다. 그 처방으로는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유권보다는 사회경제적 권리를 충족시킴으로써,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 그리고 주민 삶의 질 개선이 선순환될 수 있는 점진적인 접근을 대안으로 제시해왔다.

하지만 이런 장기적이고 큰 그림 대신 결과적으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게 된 것은 보다 선명한 프레임, 즉 피해자-가해자 프레임이다. 잘 알려졌듯이, 이렇게 북한인권담론이 변화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도 탈북민들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피해 증언이었다. 또 이들을 지원해온 국내 북한인권단체들과 미국, 유럽, 일본, 심지어 남미의 NGO들까지 포괄하는 국제 네트워크의 활동이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국제정치적 현상의 해석에 있어서 두 가지 경쟁하는 이론이 있다. 먼저 인권이 지닌 보편적 호소력과 이를 극대화하는 초국경 인권 네트워크의 역할에 주목하는 인권확산이론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북한인권의 국제공론화 과정은 인권이라는 언뜻 관념체계에 불과해 보이는 규범(norm)이 얼마든지 정치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폐쇄적인 국가인 북한도 예외일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역사·문화적 특수성을 강조해왔던 한국 진보진영의 주장과 활동은 애초부터 "지구적 인권 정치체(global human rights polity)"의 형성이라는 주류 국제인권 흐름으로부터 동떨어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반대로, 인권의 국제적 확산을 필연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되는 우연의 산물로 보는 비판 인권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현재와 같이 국제법적 책임 여부를 규명하는 식의 '협소한' 과업들(mandates)로 귀결된 북한인권논의는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비판이론가들은 어떠한 이슈가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르는 과정은 현실에 존재하는 권력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은 북한인권이라는 명목상 보편적인 의제가 왜 실제에서는 종종 안보담론과 결합하여 대북강경책의 근거를 제공해왔는지 잘 설명해준다. 그렇기에 비판이론가들은 국제인권 확산의 결과를 긍정적으로만 봐선 안 되며,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지배와 배제를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북인권문제가 서구 국가들의 관심을 받으며 국제적 흐름을 타게 되면서, 국내외 진보적 활동가들이 제기했던 유의미한 주장들, 예컨대 인권의 통합적 접근, 인권(의 원칙)에 기반한 접근, 맥락화·지역화된 접근 등과 같은 대안적 아이디어들은 주변화되었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해준다.


위의 두 이론은 각각 보수와 진보의 입장을 옹호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실천적인 차원에서는 각 진영이 지닌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성찰의 지점도 제공해준다. 먼저 보수는 이미 정해진 처방전에 맞춰 인권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려는 관점을 내려놓고, 어떻게 하면 인권증진을 위한 노력이 권력 정치적 담론들(대표적 예로, 북한 붕괴론)에 포섭되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진보는 인권을 평화의 종속변수로만 취급하는 관점을 내려놓고, 인류역사를 통해 오랜기간 검증된, 인권의 언어가 지닌 변혁적인 힘을 신뢰해야 한다.

북한인권의 국제의제화가 완성된 이후 사실상 개점 휴업에 들어간 진보는 다시 북한인권문제에 뛰어들어야 한다. 진보가 외쳐왔던 문제의식들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며, 책임성 규명이라는 유엔의 목표도 뚜렷한 성과를 내놓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진보진영을 향해 크게 두 가지 실천적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간 진보진영은 정치범수용소나 공개처형 등 북한에서의 심각한 인권침해들(gross human rights violations)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취해왔다. 증언의 오염 가능성을 문제 삼기도 했고, 피해자의 내러티브가 북한을 악마화하는 소재로 활용되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안타깝지만 이는 스탠리 코언이 분류한 세 가지 유형의 부인(denial) 중 "해석적 부인" 또는 "함축적 부인"에 해당한다. 코언은 사람들이 불편한 사실을 외면할 때 팩트 자체를 부인("문자적 부인")하기보다는 그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거나 함의를 축소시키는 경우가 더 흔하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피해자의 관점을 놓친 결과, 진보의 대안은 분명 옳은 이야기였음에도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신동혁 증언 번복 사건'처럼 탈북민 증언의 신빙성 확보 문제는 여전한 숙제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십여 년 이상 지속되어 온 북한인권 정보의 축적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많은 발전을 이뤘다. 진보는 이렇게 축적된 정보들에 대항하는 논리를 개발하기보다는, 그 데이터들이 북한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이 되도록 맥락과 뉘앙스를 덧붙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둘째, 최소한 인권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북한 정권에 대해 원칙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권 보호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북한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위해서는 악마와도 대화해야 하지만, 평화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악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평화 프로세스의 파트너로서 대하는 것과 '동시에' 북한 정부가 국제사회 규범들을 학습하고 내재화하도록 일관된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조합은 정부 차원에서는 대화와 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 힘쓰고, 시민사회는 북한 주민들을 대변하는 인권 감시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매년 실시하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의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0%가 북한의 인권상황을 심각하게 인식(매우 심각 36%, 다소 심각 47%)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 해법에서는 남북 간 대화와 교류가 46%로 가장 많았고, 북한의 민주화(29%) 나 대북제재(11%)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북한인권담론이 반북 감정을 부추겨 평화와 통일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와 달리, 성숙한 우리 시민사회는 평화와 인권 모두 소중한 가치임을 인식하고 있다. 단언하건대, 북한인권개선은 한반도 평화 정착 노력과 함께 추구될 수 있다. 북한인권은 진보의 주요 의제가 되어야 한다.

한국인권학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한 <휴먼 라이츠 브리핑>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인권과 관련 있는 여러 학문의 최신 동향과 연구자들의 성찰을 독자들과 나누려 합니다. 그것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인권담론이 풍부해지고, 인권현안을 깊은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는 시각이 늘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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