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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일 넘게 농성하고 있는 사람들, 형제복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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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일 넘게 농성하고 있는 사람들, 형제복지원

[창비 주간 논평] 평화와 포용 사회를 위한 과거사 문제 해결

국회 앞에서 10월 15일 현재 707일째 과거사 법안의 통과를 촉구하며 무기한 농성을 해온 이들이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다. 이들은 촛불의 힘으로 출범한 현 정부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리라 기대했지만, 대통령 임기 절반이 지난 현재까지 어떤 응답도 받지 못하고 있다. 또다시 이들을 체념하도록 그대로 방치해야 하는가?

한국의 현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달성했다는 성공 신화 뒤로 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국가폭력이나 사회적 차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는 2005년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킨 원동력이었다. 5년간 활동했던 이 위원회는 피해자들의 해묵은 소망을 들으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미처 다루지 못한 사건들을 무수히 남겨둔 채 쫓기다시피 문을 닫았다. 해방 이후 반세기 이상 쌓였던 문제들을 5년의 한정된 시간으로 치유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한 번의 기회를 놓친 많은 사람들은 보수 정권 9년을 버티면서 촛불을 들었고,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기를 기원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가고 있다.

2005년 당시만 하더라도 형제복지원이나 선감원 등 이른바 '복지시설'이라 불렸던 수용시설의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가난하고 못 배운 자들의 숙명으로 받아들였지, 정부나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책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촛불을 거치며 국민 모두가 주권자라는 의식이 고양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각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에 억울함을 탄원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도 '이행기 정의'라는 낯선 용어가 다가온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는 지난 70년간 상상할 수 없는 폭력과 인권 침해를 경험했다. 세계적 냉전의 심화와 함께 등장한 군부 주도의 독재 정권, 특히 1970년대의 유신 정권은 강력한 국가 주도형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반면 '4월 혁명'을 경험한 이후 시민사회는 국가권력의 반민주화에 끊임없이 저항했고, 유례를 찾기 힘든 장기 민주화운동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주열사와 역사의 희생자들이 생겨났다. 1970~80년대에는 불법적 구금이나 고문이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학습되었다. 이 때문에 한국 현대사는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성공에 비례하여 청산되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을 안게 되었다.

다행히도 '광주특별법'을 필두로 민주 정부 시절 과거사 문제 해결에 기준을 제시했고, 동아시아의 다양한 민주화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 통해 한국이라는 국가의 품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랜 노력을 통해 성과는 보수 정권 9년간 허물어져 내렸다. 과거사위원회 조사나 법원의 재심 등을 통해 확인된 진실을 뒤흔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퇴보를 되돌리려는 것이 바로 촛불항쟁이었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주권의 촛불민주주의 실현'을 약속하면서 남북 간 대화를 통한 평화를 추구했고, 심화된 사회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중점적으로 추진할 국정과제 리스트에 중단되었던 과거사 문제 해결도 포함되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문제해결'의 구체적인 정책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주4·3 등 완전한 해결 추진, 국가 잘못으로 인한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국가 배·보상, 과거사 청산 및 사회통합 지원 추진'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 과제는 답보상태에 있으며, 적극적인 추진 의지마저 의심받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7개의 과거사 관련 법안이 제출되어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유해 발굴, 위령 시설 건립, 명예 회복, 재발 방지 등을 위한 실효적 조치가 필요하며, 새롭게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이 시급하다. 특히 진실화해위원회가 활동하던 시기에 제기되지 않았던 수용시설의 폭력과 인권 침해 문제는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0월 2일 다양한 국가폭력과 과거사 문제의 희생자들이 국회에 모여 토론회를 개최하고 결의를 다졌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와 20대 국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국회에 문제 해결의 책임을 미루고, 정부 내에서는 부처 간 눈치를 보면서 실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하기 시작했다.

국내의 과거사 문제는 요즈음 역사문제를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일본정부에 전쟁책임 및 인권 감수성을 높일 것을 주문해왔다, 인권과 평화에 기초한 동북아 공동체는 양국 간 대화와 함께 기반 조성이 필요하다. 그 기반은 바로 아직 해결되지 않은 국내의 과거사 문제를 적극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치유, 적극적 민주시민 교육이야말로 국제적인 역사갈등을 해결하는 원천적 에너지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과거의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 침해를 구제하면서 이행기 정의를 실현해갈 때, 살아 움직이는 정치공동체의 본질적 의미가 실현된다. 국가권력의 오남용에 대한 성찰과 반성,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당한 회복의 노력을 통해 포용적인 국가가 만들어지고 국제적인 발언권이 강화될 수 있다. 그 출발은 명실상부한 과거사위원회의 출범일 것이다.

* 이 글은 10월 2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4·3특별위원회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공동 개최한 '한국 과거사 진상규명의 현 단계와 공동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한 집담회에서 발표된 원고를 간추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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