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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오 위원장 “사북항쟁의 숭고한 가치 재조명에 앞장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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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황인오 위원장 “사북항쟁의 숭고한 가치 재조명에 앞장설 것”

“사북사건의 완전한 해결은 평생의 숙제”

황인오(63) ‘사북항쟁에 대한 정부의 사과와 보상 및 직권재심 회부를 촉구하는 특별위원회(사북항쟁특위)’위원장은 “1980년 사북항쟁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찾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고 말했다.

1980년 4월 사북항쟁은 황인오 위원장에게 과거 사건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사북항쟁 당시 사북광업소 하청업체에서 검탄 일을 하던 그는 자연스럽게 사북항쟁에 동참했고 4년 후 그는 사북사건 진상보고서를 만들어 노동계와 정치권에 제출돼 수중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황인오 사북항쟁특위 위원장은 사북항쟁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찾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프레시안

그는 “사북사건은 광주항쟁과 함께 1980년대의 중요한 정치사회적 사건이었지만 당시 언론은 근본 원인은 외면하고 사건 위주로 취급하는 바람에 사건의 성격이 오히려 왜곡되었다”며 “사북사건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위해 당시 진상보고서를 작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39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사북항쟁특위를 만들어 정부의 사과, 보상 및 재심회부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7일 ‘사북항쟁’의 진원지로 알려진 ‘사북뿌리관’ 인근에서 만나 사북항쟁특위에 대한 향후 활동계획과 그의 생각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북항쟁 40주년을 앞두고 사북항쟁특위가 만들어졌다.

“내년 2020년 4월 21일은 사북항쟁 40주년이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사북항쟁 관련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피해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북민주항쟁동지회는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드높이는데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숭고한 자취를 남긴 80년 4월 사북항쟁의 역사적 복권을 이뤄내기 위해 특위를 발족했다. 특위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또는 정부가 공식사과와 함께 배상의지를 표명하고 형사소송법에 따른 검찰의 직권 재심 청구를 촉구할 계획이다.”

-현장을 목격했던 광부와 지역주민 및 노동운동가의 입장에서 사북항쟁은 무엇인가.

“80년 4월 사북항쟁은 이른바 지식인이 개입하지 않은 유일한 사건이다. 즉 탄광노동자와 부녀자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사건이었다는 점이 다른 사건과 확연히 차별성을 갖는다. 1차로 관련되신 분들의 명예회복과 보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하는 노동자들, 즉 민중이 주역이 된 사건이 사북항쟁이다. 85년 서울 구로동사건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형 파업은 모두 먹물들이 개입해 사건이 발생했지만 사북은 전혀 다르다.”

-사북항쟁에 대한 남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렇다. 사북항쟁은 독특한 성격과 특징을 갖고 있다. 열악한 근로조건에 인권탄압, 탄광의 살인적인 노동환경, 24시간 감시를 받고 살아온 광부들에 대한 착취,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던 사북광업소 광부와 부녀자들은 막장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사북항쟁이 당시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 등에 미친 영향과 파장을 남다른 시각에서 규명하고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지난 8월 21일 특위 발족이후 그동안의 활동을 소개해 달라.

“지난 8월 21일 사북뿌리관에서 특위 발족식을 한 뒤 그날 오후 사북항쟁 피해자 수백 명이 영장도 없이 강제로 끌려가 무자비한 고문과 폭행을 당한 지옥 같은 정선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어 8월 26일 사북항쟁을 진압하는데 앞장섰던 강원도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청장과 도지사 면담을 가졌다. 그리고 지난 8월 27일부터 9월 2일까지 7일간 사북뿌리관을 출발해 청와대 앞까지 250킬로미터 구간을 도보로 행진했다.

악천후 속에서도 사북을 출발해 서울까지 사북항쟁특위가 왜 발족했고 앞으로 어떤 고난과 장애가 있어도 초지일관 특위의 목표달성을 위해 도보행진을 단행했다. 한 번 시작하면 반드시 끝장을 보는 스타일을 이번 도보행군에서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사북항쟁도 그렇지만 탄광과 광부들에 대해 시각이 남다르다.

“이른바 ‘10.26사태’가 발발한 1979년은 탄광에서 대형 사고가 유난히 많이 발생했다. 정선군 신동읍 함백광업소 화약발파사고로 26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대형 참사를 시작으로 그해 10월 장성광업소 출수사고, 은성광업소 갱내화재사고로 44명이 귀중한 생명을 잃었다. 44명 순직사고는 국내 탄광 사고 중 최대였다. 당시 사고는 10.26사태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지만 엄청난 사건이었다. 1987년 탄광촌에서 터진 수십 곳 탄광의 파업은 짓밟히고 살아온 광부들의 응어리가 폭발한 것이다.

탄광업주들이 광부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나타내는 글귀가 생각난다. 1980년대 삼척탄좌 입구 도로변에 설치된 대형 입간판에는 ‘잘 살기를 원하거든 잘 살 짓을 하며 살라’는 글귀가 쓰여졌다. 기업주가 광부를 우롱하기 위해 일부터 그런 입간판을 부착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1980년대 말까지 기업주는 광부들을 인간이 아닌 두더지처럼 취급했던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앞으로 구상은 어떤가.

“중앙정치권과 중앙정부를 방문해 사북항쟁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과 전략으로 접근할 것이다. 여기에는 재판을 받은 피해자는 물론 불법 연행 뒤 고문과 폭행을 당하고기소단계에서 삭방된 140여 명 모두도 구제대상에 포함된다. 1980년 민주화투쟁과 민중운동의 강력한 촉매제가 되었던 사북항행을 올바로 평가하고 기리기 위해 2020년 사북항쟁 40주년 기념일 이전에 가칭 ‘사북항쟁기념사업회’거 조직 및 운영될 수 있도록 국가가 제반 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하겠다.

이원갑 전 사북동지회장을 중심으로 한 회원들의 노력으로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사북항쟁에 대해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권고했다. 그러나 11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무 것도 진전된 것이 없다. 특위는 이런 일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사북항쟁에 대한 배상을 위해 특별법 국회상정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가칭 ‘사북항쟁특별법안’이 올 정기국회 마무리 전 상정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법안 국회상정에도 불구하고 20대 국회에서 특별법이 자동폐기 된다면 21대 국회에서 다시 추진해 반드시 21대 국회 전반기에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 특위는 예산과 인력 부족 등의 어려움이 많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지역과 기관의 지원을 받으라는 의견도 있지만 사양하고 있다. 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임원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주변의 성원과 지역주민들의 격려에 부응하기 위해 반드시 계획한 일들이 완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지켜봐 달라.”


▲지난 8월 27일 사북 뿌리관 광장에서 청와대까지 250킬로미터 도보행진을 앞두고 도보행진 취지문을 발표하는 황인오 위원장. ⓒ프레시안

-강원랜드는 제2의 사북항쟁으로 탄생된 공기업이다.

“국내 모든 공기업은 국민경제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지역과 관련이 높은 대한석탄공사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강원랜드는 지역주민들의 요구에 의해 말들어졌다. 이처럼 강원랜드는 국민경제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유일한 공기업이다. 강원랜드 임직원들은 지역주민들의 피와 땀, 눈물로 만들어진 설립취지를 제대로 안다면 설립목적에 맞게 부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존립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는 (사)동북아평화경제협회 상임이사를 맡아 서울에서 활동하지만 주말에는 대부분 사북에서 특위활동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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