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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제 우린 생업으로 돌아간다"

[부안선언 전문] 축제 분위기, 정부 '초라한 모습' 자초

2월14일 자정 발표된 부안 주민투표 결과에 정부와 부안 주민들이 양극단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부는 즉각 "주민투표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고 유감을 표명한 데 반해, 부안 주민들은 "핵폐기물처리장 백지화"를 선언하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이다. 부안 주민에게 외면당한 정부의 초라한 초상이다.

***정부, "주민투표 결과 수용할 수 없다"**

산업자원부는 15일 '주민투표 결과'에 대해서 "2·14 주민투표의 법적효력이나 구속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산자부는 "정부와 전라북도, 부안군의 거듭된 주민투표 중단 요청에도 불구하고 투표가 일방적으로 강행된 것에 유감을 표시한다"면서 "지난 12일 재판부가 '이번 투표를 법적 효력이 없다'고 발표한 만큼 정부의 정상적인 국정 수행을 저해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산자부의 입장에 동조해 부안군과 전북도, 찬성측 주민들도 '위도 주민투표가 무산된 것'을 거론하면서 주민투표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등 주민투표 흠집내기를 시도하고 있다. 찬성측은 15일 "이후에도 계속 찬성 운동을 전개하겠다"면서 "9월15일 이후 정식으로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것"**

하지만 정부와 찬성측의 모습은 "그럴수록 초라해 보인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전북도와 부안군 등은 이번 투표가 "비민주적이고 폭압적으로 이뤄졌다"고 폄하하고 있으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찬성측도 지난 10일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주민투표 불가'를 주장하면서 공무원들까지 앞세운 자유로운 홍보 활동을 했다. 이런 찬반 홍보 분위기 속에서도 큰 충돌이 없이 주민투표가 진행됐으며, 14일 당일 투표는 경찰의 경호활동속에 진행됐다.

이밖에도 주민투표 관리위원회는 읍·면 합동 찬반토론회와 군 전체 합동토론회를 각각 12회, 2회 실시하는 등 총 14회의 토론회를 실시했다. 40여명의 변호사의 자원을 받아 투표관리에 참여시키고, 7백여명의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인사들이 투·개표 자원 활동을 하는 등 투·개표 업무에서도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했다.

찬성측 중심 인물인 정영복 위도발접협 회장의 도발로 유일하게 투표가 무산된 위도의 경우, 주민투표 관리위원회는 경찰 투입까지 막으며 설득을 시도했으나, 정영복 회장은 반대측 인사를 폭행하는 것으로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이런 정황을 살펴 볼 때 설사 정부가 9월15일 이후 주민투표를 다시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부와 전북도, 부안군에 대한 부안 주민들의 '불신'과 '냉소'만을 키우는 꼴"이라는 것이 부안 주민들의 반응이다. 그 결과가 압도적인 반대로 나타나 "정부의 정책 실패를 다시 한번 재확인하는 악수(惡手)"라는 것이다.

이번에 부안을 방문한 한 시민단체 간사는 "부안 핵폐기물처리장은 이미 물 건너 갔고 정부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정부는 다른 지역의 눈치를 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다른 지역에서 핵폐기물처리장을 유치하는 것이 쉽지 않아, 정부가 원자력 발전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 압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대책위, "백지화 선언"**

15일 오후 3시 수협앞 4거리에 모인 주민들은 주민투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지난 7개월 동안 폭도로 매도되기도 했던 주민들은 15일 하루만큼은 승리를 마음껏 즐겼다.

오후 1시부터 자유롭게 수협앞 광장에서 기쁨을 나누던 주민들의 열기는 오후 3시 주민들이 준비한 기념물을 담아 묻는 타임캡슐 손수레가 도착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이날 타임캡슐에는 부안투쟁기록 영상CD와 노란색 반핵 조끼 등을 포함한 반핵 용품들이 넣어졌다.

타임캡슐을 묻은 후 4시부터 시작된 본 행사에서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위원들과 부안 주민들은 주민투표가 무사히 성사된 것과 그 결과 7개월간에 끌어온 싸움이 끝난 것을 자축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핵폐기물처리장 유치 선정 백지화를 선언"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은 김인경 교무는 "앞으로 군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부안군수를 소환하는 더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고 주민들을 독려했다.

문규현 신부도 "이제 인고의 시간을 잊고 평화의 시간으로 돌아가 생명과 평화의 부안 공동체를 만들 때"라면서 "핵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핵 산업 관련자들과 행정 관료들에게 보여주자"라고 주민들을 격려했다.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사무처장인 하승수 변호사도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백지화를 선언한다"면서 "정부가 앞으로 주민투표 결과를 계속 거부한다면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역시 핵폐기물처리장 철회가 관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부안 주민들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행사는 부안 주민들이 채택한 '부안 선언'으로 마무리됐다. 대책위는 '부안 선언'을 통해 "반핵, 생명, 평화의 부안"을 만들기 위해 프레시안을 통해 14일 공개된 "핵폐기물처리장 백지화 선언", "군수 퇴진 투쟁", "새로운 부안 공동체 건설"의 큰 방향으로 활동 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다. '부안 선언'에 따라 주민들은 다음 주부터 생업으로 돌아간다.

***대책위, 내주 개편 논의-촛불집회는 금요일만 열어**

대책위는 '부안선언'을 통해 "핵폐기물처리장 백지화"를 선언한 만큼, 촛불집회를 금요일만 여는 등 주민들이 생업으로 복귀하도록 하고 대책위 개편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대책위는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되는 만큼 주민들의 생업 복귀를 독려해, 7개월 동안 상처 입은 부안 주민들의 경제적 고통을 치유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일상적인 반대 운동도 대폭 축소돼, 촛불집회도 매주 금요일 한 차례만 열기로 했다.

조만간 대책위 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도 시작될 예정이다. 현재 얘기되고 있는 안은 당분간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과 발전적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내부에서는 "핵폐기물처리장 백지화를 선언한 만큼 발전적 전환을 꾀하자는 주장"도 꽤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위는 또 '부안선언'에서 밝힌 대로 "김종규 군수 퇴진 운동"과 "새로운 부안 공동체 건설"을 큰 축으로 삼고 향후 다양한 활동 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다. 주민투표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데 대한 주민들의 자신감이 매우 고양된 상태여서, 이 에너지를 좀더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것이다.

다음은 15일 발표된 '부안 선언' 전문.

***부안선언**

부안 자치공동체
반핵 생명 평화를 위한
핵폐기장 백지화, 부안 자치 공동체를 선언한다.

우리 부안 군민의 영원한 단결의 고향
바로 이 자리 반핵 민주광장에서
거친 손 움켜쥐고, 7만군민 어깨 걸고 달려온 7개월의 대장정!
독재의 폭력과 분열과 위선을 물리치고
태풍과 눈보라와 칼바람을 넘어 달려온 길
마침내 2월14일 역사적 주민투표
부안 군민의 장엄한 선택을 하늘높이 받들어
고통을 넘어 희망의 부안
통치를 넘어 자치의 부안
반핵, 생명, 평화의 세상
핵폐기장 백지화
부안 자치 공동체를 선언합니다.

2003년 7월 14일
양심과 정의와 평화가 사라진 날이었습니다.
생거부안이 분열과 회유와 독재의 군화발로 뒤덮였습니다.
공동체를 깨트려 분열과 탐욕과 이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민주주의를 깨트려 독재의 망령이 떠돌아다니게 했습니다.
뭇 생명의 보금자리 자연을 파괴하여 영원한 저주의 땅으로 몰아가려 했습니다.
강제로 핵분열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핵발전
그 결과로 쏟아져 나오는 핵쓰레기 그 자체의 본질 때문입니다.

우리는 저항하고 투쟁했습니다.
농민의 마음, 어부의 마음, 상인의 마음, 학생의 마음, 남녀노소의 마음
그 마음 그대로 저항하고 투쟁했습니다.
우리의 삶,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지키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기에 후손들로부터 잠시 빌려쓰고 있는 이 땅
우리 모두의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선구자들의 고귀한 피로 얻은 민주주의
우리 모두가 언제까지나 지켜야할 민주주의를 빼앗길 수 없기에 투쟁했습니다.
참으로 험난했던 여정
그러나 의연하고 당당하게 저항하며 투쟁해 왔습니다
독재의 방패와 군화발에 촛불 한 자루로 기도하며 맞섰습니다.
삼보일배를 통한 대지와의 입맞춤으로
탐욕과 이기심을 버리고 화해와 상생의 세계를 찾았습니다.
이글거리는 한여름의 태양, 온 세상을 휘날려 버렸던 태풍
눈보라, 칼바람도 우리의 길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흐르는 피 닦아주고, 차가운 손 감싸주며
가슴속 깊은 상처 눈물로 씻어주며 이렇게 왔습니다.

우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의 양심들과 연대하여 투쟁해 왔습니다.
핵폐기장은 단지 부안만의 문제가 아니요
이 나라 파괴의 상징, 핵발전 정책의 전환을 위한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독재의 굴레가 단지 부안만의 문제가 아니요
이 나라 구석구석에서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안의 아픔이 단지 부안만의 문제가 아니요
이 나라 모든 민중의 아픔을 상징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자연의 주인 뭇 생명체들과도 대화하며 연대했습니다.
너른 들녘의 곡식, 숲속의 새, 갯벌의 칠게, 칠산바다 물고기
이 모든 생명체 하나 하나와 함께하며 투쟁했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이 땅은 단지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야 할 모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곧 이 땅의 뭇 생명들이며
우리 인간은 곧 그 생명체들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핵폐기장은 곧 이땅을 파괴하고 생명체를 죽이고 인간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여기까지 온 우리 부안 군민들!
마침내 2월 14일 자치 주민투표
주권재민, 국민이 주인 될 수밖에 없음을 온 천하에 알리고자 합니다.
국민위에 군림하는 낡은 정치, 독재의 그림자를 말끔히 쓸어 내었습니다.
껍데기뿐인 민주주의 그 위선의 장막을 걷어 내고
민중이 주인되는 정치!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정치!
진정한 주권재민의 정치!
부안 자치민주주의를 선언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독재의 망령, 공동체 파괴의 망령, 생명을 죽이는 망령
바로 이 핵폐기장은 부안 군민의 손으로 단죄되어
백지화되었음을 다시 한번 선포합니다.

오늘 이 순간 우리는 핵폐기장 백지화를 선언하지만
우리가 가야할 또 하나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고난의 숲을 헤치고 아픈 상처 어루만지며 함께 달려온
전국의 양심과 뭇 생명들과 연대하며 달려온
아름다웠던 투쟁, 반핵 투쟁이 우리에게 던져준 또 하나의 꿈!

반핵, 생명, 평화를 위한
부안 자치공동체의 길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막지 못할 우리 부안군민의 꿈!
이제 생활 속에서 만들어 가겠습니다.
생활속의 반핵!
생활속의 생명!
생활속의 평화!
생활속의 자치공동체를 열어가겠습니다.

여전히 전국의 양심들과 연대하며 우리의 꿈을 넓혀 나가겠습니다.
여전히 자연의 생명들과 연대하며 자연의 일부로 동화될 것입니다.
뜨거운 형제애로 화해와 상생을 실천하여 아픈 상처 말끔히 치유하겠습니다.
독재의 그림자, 무너진 공동체, 자치민주주의로 바로 잡겠습니다.
그리하여 서럽고 서러웠던 눈물!
이마에 흐르던 고귀한 피 한 방울!
가슴속 응어리진 아픈 비명 소리들!
결코 헛되지 않으며 더욱 아름답게 꽃 피우겠습니다.

부안 군민의 양심의 터, 단결의 고향 반핵 민주광장에 모이신 부안 군민여러분
서울에서 부산에서 전국에서 달려오신 이 나라 양심 여러분
뜨거운 손 움켜쥐고 함께 외쳐 봅시다
반핵!
생명!
평화!
부안 공동체!
함께 만들어 갑시다.

핵폐기장 백지화 만세!
반핵 생명 평화 만세!
부안 자치공동체 만세!
부안군민 만세!
이 나라 양심 만세!

2004년 2월 15일

대한민국 부안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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