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왜곡된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는 효용을 다했다. 그러나 예고된 갈등이었다. 일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35년, 8.15 광복과 분단체제, 그 이후 70년의 강고한 구 체제 시스템 속에서 우리 내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알게 모르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 안에 우리 내부의 모순과 고뇌가 응축되어 있다. 이 모순과 고뇌를 탐구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한 개인사를 통해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문학의 영역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외세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이 우선이었던 관계로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렸고 안일했다. 그러다보니 역사는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인 양 화석화되고, 현대의 역사는 더군다나 묻혔다.
기자 출신 이계홍 작가의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 소설은 2016년 10월호부터 2019년 6월호까지 문예월간 '월간문학'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월간문학 연재를 마친 뒤 많은 부분을 수정 보완해 프레시안에 재수록한다.
이 연재물은 이른바 '팩션(Faction)'이다. 팩트와 픽션의 사이 어디에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논픽션' 형식의 소설이다. 필자는 취재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 말 일본 육사 출신 젊은 생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지러운 시대, 그 안에서 제국주의 광풍에 휘말린 젊은이들의 시각을 잡아내려 했다. 이계홍은 "일본의 극우 정권이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들까지도 왜곡하는 역사 모독에 대해 하나의 담론시장을 형성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은 총 33회로 나뉘어 연재될 예정이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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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너의 이름은
"이걸 보시오."
조병헌이 신문을 펼쳐보였다. 신문엔 하치코선(八高線)열차 충돌사고 속보가 1면 톱으로 나와 있었다. 하치코선은 도쿄도 하치오지 시에 있는 하치오지 역과 군마현 다카사키 시의 구라가노 역을 잇는 철로인데, 1945년 8월 24일 아침 코미야(小宮)-하이지마(拝島)역 사이의 타마가와강 교량에서 상행 열차와 하행 열차가 정면 충돌해 두 객차가 강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105명이 사망하고 6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승객은 주로 통근 사무원ᐧ통학생과 무장해제된 귀향 군인들이었다.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불어있었고, 강물에 떨어진 사람은 살아나오지 못했다. 대부분 유체가 바다까지 떠내려간 상황이었다.
사고는 계속된 폭우로 인한 통신 장비 고장으로 역간(驛間) 연락이 두절된 데다가 신호 장비 손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근본적 원인은 전쟁 패망 후의 혼란상과 절망적 심리가 부른 참사였다.
우키시마호 침몰사고와 같은 날 일어난 철도사고였지만 우키시마호 사고는 신문 지면에서 철저히 외면되었다. 하치코선 열차 사고는 호외까지 발행되고, 연일 1면부터 사회면까지 톱으로 도배되었는데 그보다 수백 배 인명 피해가 난 우시시마호 해난사고는 지면에 아예 없거나 한쪽 귀퉁이에 단신기사로 간단히 처리되어 있었다.
"하치코선 열차 충돌로 죽은 생명은 소중하고, 조선인 수천 명이 바다에 빠져죽은 생명은 하찮단 말이오? 거기다 해병단 수용소에 갇혀 사십 수 명이 불에 타죽었는데도 기사 한줄 나오는 게 없소. 도대체 이들을 죽인 이유가 뭐요? 귀국자를 잡아가둔 이유가 뭐요?"
나카무라 중좌가 대답했다.
"조난자를 내보내는 일은 상부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건 내가 생각해도 생존자를 방치한 것은 어떤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다."
그나마 그는 과오를 인정하는 일본군 장교였다.
"도츠제키(돌격)! 도츠제키!"
갑자기 일군의 병사 십여 명이 열을 지어 구령을 외치며 사무실로 몰려들어 오고 있었다. 본부가 소란스럽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온 헌병들이었다.
"모두 전투대형으로 헤쳐모여!"
지휘 헌병 중위가 병사들에게 명령하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총검을 앞에 들고 전투대형을 갖추었다. 그가 나카무라 중좌 앞에 다가서더니 따졌다.
"부단장 각하,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그 스스로 군기와 지휘 체계가 무너진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헌병 중위가 부단장을 꾸짖는 것이다. 그가 오민균 일행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소속이 뭐냐. 관등성명을 대라!"
"우린 자유의 몸이다. 조난자를 포로 취급하면 안된다. 갇힌 사람들은 모두 자유의 몸이다. 당장 석방하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수용하고 있는 걸 모르나? 고국으로 돌려보낼 때까지 보호해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안전하게 돌려보낸다는 것이 이 따위 짓인가! 물에 빠져죽고, 불에 타 죽어야 하는가?"
곁의 조병헌이 소리지르자 병사들을 인솔한 하사 계급장이 군도를 뽑아들었다. 오민균이 놀라지 않고 그의 앞을 막아섰다.
"지금 일본군은 항복을 공식 선언했다. 패전국이 무기를 소지하면 종전 협정 위반이다. 배가 침몰했으면 피해자 상황을 알아보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우리는 피해자 가족이다."
"조난자는 우리가 처리한다. 나가라!"
헌병 중위는 계속 빳빳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나카무라 중좌가 헌병 중위에게 명령했다.
"저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우리의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 헌병대장은 돌아가라."
"안됩니다. 상부로부터 소란자는 잡아가두라는 지시가 하달됐습니다. 병사들, 저들을 밀어내라. 부로자수용소로 밀어붙여 가두라."
헌병 중위가 명령하자 병사들이 총검으로 위협하며 오민균 일행을 문 밖으로 밀어붙였다. 부대 지휘권은 헌병 중위가 접수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오민균 일행을 연병장 쪽으로 밀어붙이더니 나서 부대로 돌아갔다.
구렁창 옆에 퀀셋이 늘어선 간이수용소가 나타났다. 그중 몇 채가 불에 타 시커멓게 그을어 있었다. 사고가 난 건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옆에 임시 천막이 세워져 있었는데 어두침침한 천막 안에서 조난자들이 부채를 할랑거리며 쪼그리고 앉아있거나 거적이 깔린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숫자는 많지 않았다. 화재사건 후 혼란한 틈을 타 도망을 쳤거나 다른 막사로 이동한 모양이다. 수용자들은 무표정하고 행색은 꾀죄죄했다.
한쪽켠에 고길자가 젊은 여자 둘과 마주앉아 있었다. 현용대가 다가가자 고길자가 돌아보더니 당장 울상을 지었다.
"왜 이제 와. 이 처녀들이 당했어요."
고길자 옆에 앉은 두 여자는 이마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열아홉 살 정도 되어보이는 처녀들이었다. 현용대는 할 말을 잃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오민균이 고길자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나가서 얘기해요."
고길자가 두 여자를 앞세우더니 밖으로 나갔다. 오민균과 현용대 일행이 그들 뒤를 따랐다. 고길자는 천막 모퉁이를 돌아 야트막한 언덕 옆에 잡목숲이 우거져 있는 곳으로 갔다. 고길자가 한 곳에 앉자 일행들이 둘러앉았다.
"이 애들이 하얼빈 용광현을 거쳐서 홋가이도 군부대 위안소에 갇혀 있다가 왔어요. 군부대를 빠져나와서 어찌어찌 귀국선을 탔어요. 승조원들이 신분을 알아채고 몹쓸 짓을 했어요. 해병단 수용소에서도 몇 놈이 끌고가 욕을 보였어요. 매일 밤 불러냈어요. 임순심씨, 어서 얘기해봐요."
임순심이란 처녀가 자세를 고쳐앉았다. 이목구비가 선명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수치심도 잊은 듯 표정없이 말했다.
"위안소에서 매일 서른명씩 상대했어요. 관동군 중에서도 거칠기로 소문난 수색대였어요. 그렇게 3년동안 당했어요."
임순심은 열여섯살 되던 해 봄, 전남 무안의 마을 친구들과 함께 나물을 캐러 뒷산에 올랐다. 꽃이파리가 날려도 까르르 웃으며 살던 한창 물이 오른 사춘기 소녀들이었다. 어느날 면 지서 순사와 남자가 그들 앞에 섰다.
"김경자가 누구냐?"
김경자가 쭈볏거리자 임순심이 대신 나섰다.
"이 애가 김경자예요."
"아버지가 김병삼씨인가?"
그렇다고 김경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경자 아버지는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책을 옆에 끼고 사는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성향의 인물이었다. 그는 놋그릇 공출과 잔디씨와 송화가루 공출을 거부해 면사무소로부터 고발당해 주재소에 끌려가 있었다.
"아버지를 구하려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몇 달 일하고 나오면 집안 일이 잘 정리될 것이다. 월급도 넉넉하게 주니 좋은 일이다."
김경자에게 하는 말을 듣고 임순심도 덩달아 자신도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김경자와는 같은 마을로 시집가서 함께 살자고 할 정도로 친한 친구였고, 그래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 애국 소녀들이군. 원한다면 당연히 함께 가야지. 가면 서로 의지가 될 것이고…."
이렇게 해서 임순심은 가족과 변변히 이별도 하지 못하고 트럭을 타고 오십리밖 학다리역에 당도해 기차를 타고 북으로 달렸다. 소녀들은 생전 처음 기차를 타는 것이 마냥 마음 부풀었다. 나흘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하얼빈역이었다. 광막한 광야에 군부대가 주둔해 있었다. 용광현이란 곳이었다. 부대 옆엔 군복을 만드는 방직공장과 콩나물 공장, 군수공장, 야전병원이 있었는데 임순심은 인솔 군인을 따라 군부대의 막사로 이동했다. 인물이 빠진 김경자는 방직공장으로 들어갔다. 인력수급 문제로 나뉘다고 했지만, 사실은 친구끼리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하도록 분리시키는 군사정책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은 까맣게 몰랐다. 휴일이면 만날 수 있다고 했으니 그러려니 여겼다.
시간과 행동들이 자유의사에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부대 인근 병사동에 들어와서 알았다. 기다란 브로크 벽돌 건물에 그녀의 방이 하나 배정되었다. 다음날 얼굴이 하얀 미소년같은 청년장교가 들어왔다. 그는 한번도 맛보지 못한 아메사탕과 초콜렛과 스폰지빵을 야전잠바에서 꺼내주었다. 그녀는 그런 그에게 빠졌다. 세상에 이런 인심 좋은 미남청년을 만나다니….
"난 하나가와 소위야. 그래, 여기가 어떤 곳인 줄 알겠니?"
그녀는 눈치를 챘다. 남자를 만나 살림을 차리고,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하며 생활을 꾸려가는 영내생활. 그녀의 엄마도, 할머니도, 또 그전의 할머니도 남자 얼굴 한번 안보고 시집와서 잘 살았노라고 했는데, 그녀 역시 그런 과정을 밟는 것이 아닌가 여기고, 행운이 따르게 해준 시골 지서 순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다.
"남자를 만나서 빨래하고 식사도 준비하고 아이도 낳고 그러는 거예요?"
청년장교는 아무 말없이 돌아갔다. 그가 슬픈 얼굴로 돌아간 이유를 그녀는 몰랐다. 다만 그가 다음날 밤에도 찾아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서는 다른 병사들이 줄지어 서서 방문을 노크했다. 그녀는 병사들이 거칠게 덮치는 바람에 혼절하기도 했다.
어느날은 하체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병사들을 맞았다. 밑이 뻥 뚫려버린 듯한 황망감이 들었다. 옆방에서 여자의 처절한 울음소리와 악다구니소리도 들렸다. 노상 그랬겠지만 처음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가 당한 것이 더 처절했기 때문에 당장의 자신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며칠 지나자 주변을 느끼게 된 것이다.
옆방도 찾는 여유가 생겼다. 옆방의 처녀는 얼굴에 피멍이 들어있었고, 다리를 절룩거렸다. 어느날 밤엔 여자가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되었다.
임순심은 첫날 만났던 청년장교 하나가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를 만나면 모든 고통과 수모가 사라질 것 같았다. 그래서 돌아오지 않는 그 남자 때문에 울고, 그 때문에 몸부림을 쳤다. 고통이 심할 때는 그의 품에 안겨 죽고 싶었다.
어느날 그가 먼 남쪽나라로 배속돼 갔다는 말을 다른 장교를 통해 들었다. 그녀는 사령부의 인사계 장교를 맞았을 때 부탁했다.
"장교님, 나 남양군도로 보내줄 수 있나요?"
"거긴 왜?"
"가고 싶어요."
하나가와 중위를 만난다는 말은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 기피하는 곳이야. 모기가 잠자리만 해. 말라리아, 장질부사에 걸려서 죽게돼."
"죽더라도 괜찮아요. 여기나 거기나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살고 싶지 않아요. 다만 하나가와 소위님을 만나고 싶어요."
"하나가와 소위? 그가 누군데?"
"그를 만나야 해요. 남양군도로 전속갔댔어요."
"순정은 있다 이건가? 하지만 하나가와는 일본에서 제일 흔한 이름이야. 와타나베, 야마구치, 스즈키, 야마모토 다음으로 흔한 이름이라구. 그런 사람 찾기는 백사장에서 바늘 줍기지."
남양군도라는 곳도 그녀 고향만한 곳이 아니었다. 한반도의 몇십배 되는 나라가 있고, 수천 개의 섬이 있는 나라도 있었다. 동해바다 서해바다를 합쳐놓은 것보다 수십 배 넓은 바다가 있었다.
꿈꾸는 듯한 그녀를 두고 병사들은 인형 ‘아네사마’라고 불렀다. 누이라는 애칭인 아네사마는 눈을 내리깔면 슬퍼보이고 치켜뜨면 명랑해보인다는 애교스런 인형이었다. 그녀 모습이 딱 그러했다.
사단 병력이 그녀 배를 타고 지나가도 그녀는 하나가와를 잊지 못했다. 그녀를 탐하는 군인들로 인해 견딜 수 없어도 하나가와를 생각하면 버틸 수 있었다. 매일 이삼십 명의 군인을 상대하는데, 어느때는 오십 명도 넘게 상대한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은 몸이 풀죽처럼 퍼져버렸다. 움직이기조차 싫었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임신도 했다. 이동병동에서 불임수술을 받았다. 부대 위안소의 이용 일시, 이용 요금, 이용에 있어서의 주의사항을 지키라는 규정이 있었지만 제대로 이행하는 위안소는 없었다. 위안부의 위생관리, 신분증명서, 피임기구 사용 규정과 정기적인 성병 검사 따위도 형식적이었다. 군표 모으는 재미도 있었지만 언젠가부터는 시들해져서 관리자에게 맡겨버렸다. 여자가 병들어 더 이상 군인을 받지 못하거나 죽어나가면 업자가 다른 소녀를 조달해왔다. 군이 충원해오는 경우도 있었다. 수송은 군이 맡았고, 위안소 설치는 육군 공병대, 정기적인 성병검사는 군의관이 맡았다. 얼굴이 하얗고 말쑥한 젊은 군의관 앞에서 하체를 맡기고 누워있으면 수치스러웠지만 체념했다.
언젠가 늙은 병사가 그녀를 찾았다.
"딸 같은 애로구나. 어디서 왔니?"
"조선반도 남녘에서요."
"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니?"
"몰라요. 어른들이 취직시켜준다고 했어요."
"이런 순진한 애가 있나. 너희들이 이곳에 온 이유를 아직도 모르다니."
이젠 알았지만 모든 것이 늦어버렸다.
"황군의 사기 진작과 군기 확립, 성범죄와 성병 예방을 위해서 너 같은 처녀들이 필요했던 거지. 황군 점령지역 내에서는 황군에 의한 강간 때문에 가는 곳마다 말썽이 생겼지. 반일감정이 생기고 일본군을 습격하는 등 치안 상태가 불안하니까 아예 종군위안소를 설치한 거야. 군인 개인행동을 엄중 단속하기 위해서 주로 조선 소녀들을 데려와 군위안소를 설치한 거야. 넌 말하자면 창녀가 된 거야. 매춘부로 끌려온 거야. 알겠니? 하지만 매춘부도 아니지.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종군위안부야. 알고 있었니?"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해봐야 의미없는 일이었다.
"아저씨, 돌아가고 싶어요. 사년째 돼가요. 헤어진 친구를 만나지 못했어요."
"가고 싶다고 해도 못가. 여기선 부모라도 한번 헤어지면 못만나. 일본군대는 그런 곳이야."
자유롭게 태어난 이상 내 뜻대로 가려는데 안된다는 것이 납득이 안되었다. 왜 안된다는 것인가. 왜 갑자기 내 자유 의사가 차압당해버린 것인가. 그 이유가 뭔가.
"전쟁이란 것이 그렇다. 어떤 아이는 부대장 목을 칼로 겨루지만, 그게 남자의 완력을 이길 수 있니?"
"경자를 만나야 해요. 군복 만드는 피복공장으로 들어갔어요."
"그 피복공장은 벌써 폐쇄됐다. 그쪽 근로정신대 아이들은 보르네오 부대로 이동했다. 보르네오와 말레이반도에서 너와 똑같이 복무할 거다."
"거기가 남양군도인가요?"
"그렇지. 남양군도의 하나지."
혹시나 경자가 하나가와를 만나면? 내 소식을 전해줄 수 있을까? 하지만 첫날 헤어진 후 한번도 만나지 못했으니 그녀 역시 알지 못한다.
일본 정부는 사회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위안부 모집의 관계자를 민간인으로 위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수송과 배치, 위안 시설의 설치와 증축을 위한 병력 차출, 위안소 이용에 있어서의 규정은 모두 군대에서 만들어 관리했다. 여성 치는 엄연한 국제법 위반이었기 때문에 일본군은 방직공장이나 군 식당에 취업시킨다고 했고, 군 위안소도 업자가 운영하는 형식으로 꾸몄지만 눈가림일 뿐, 일본군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했다.
"난 너희들의 괴로움을 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희들을 내 개인적으로 위로하는 것 뿐이다. 이해해다오. 어떻든지 건강해야 한다."
그런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는 병사가 있어서 그녀는 고마웠다. 임순심은 늙은 병사의 품에 안겨서 한없이 울었다. 한번 울음이 쏟아지자 끝없이 이어졌다. 작은 선심에도 그녀는 그렇게 마음이 녹아버렸다.
무턱대고 욕망을 채우고 군표 몇장 던지고 떠나간 군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렇게 아픔을 달래주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날그날을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런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위안부 생활이 자리를 잡아갈 때 몸은 폐품처럼 망가졌다.
어느날 성병 뒤끝에 자궁을 드러내는 큰 수술을 받았다. 위안소를 찾는 군인들도 거의 규정을 외면했다. 흥이 안난다며 콘돔을 뺀 채 사정을 했다. 그녀는 완전히 그들의 수채구멍이 되어 있었다.
어느때는 병사들이 쏟은 정액들이 방바닥에 철벅거릴 정도로 넘치고, 질속에 그것들이 물죽처럼 가득차 질척거렸다. 그러나 밑을 수습할 생각도 없이 귀찮아서 내버려두었다. 성병에 전신이 떨리고, 그런 중에 임신했어도 그러려니 여겼다. 젊은 병사가 똥치, 갈보년이라고 조롱해도 섭섭하지 않았다. 고향 생각, 아버지 엄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져서 어느때부턴가는 어머니, 아버지 생각도 접었다. 일부러 생각들을 지웠다. 하지만 신새벽 눈을 뜨면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그리움 때문에 엉엉 울었다. 그녀 순결을 빼앗지 않고 슬픈 얼굴로 돌아간 하나가와 소위를 만나는 것이 무망하다는 것을 알고 더욱 섧게 울었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그에게 몸을 주어 한없이 몸을 불태우는 건데. 하지만 그녀는 첫날, 남자들이 그렇게 와서 편하게 자고 가는 줄만 알았다.
어느날 한 무리의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내 거 받아먹으면 너도 황홀해질 거다. 내 건 말좆이야."
정말 그의 것은 거대했다. 말의 그것과 흡사했다. 쓰모 선수처럼 거대한 체구의 남자에게선 이상한 냄새까지 풍겼다. 첫 인상부터 그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질이 찢어질 것같은 고통이 왔다. 강요된 매춘이라도 받고 싶지 않은 것은 역시 받고 싶지 않다. 그녀는 짜증난 끝에 그의 것을 잡아 밖으로 밀어냈다. 그의 것은 조형물을 집어넣어 음경을 확대한 성기였다. 이런 자들은 크기를 가지고 위세를 부리며 폭군처럼 난폭하게 군다. 그가 다시 삽입하려고 하자 그녀가 몸을 돌려 옆으로 누웠다.
"싫어요."
순간 그의 솥뚜껑 같은 손이 그녀 뺨에 떨어졌다. 얼굴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빠가야로, 거부해?"
그는 그녀를 꼼짝 못하게 쪄누르고 거대한 것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녀는 아아, 하고 절망적으로 절규했다. 여자가 못견뎌하면 남자의 지배 욕구는 더욱 강렬해진다. 남성성을 뽐내며 으스댄다. 그녀는 곁에 있는 목침으로 그의 머리를 갈겼다. 그가 나가 떨어지고 그녀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곧바로 붙들려 무수히 구타당한 끝에 영창에 갇혔다. 그녀는 어떻게든 위안소를 벗어나기로 했다. 그러나 지렁이 뜀뛰기만큼이나 그것은 무망한 일이었다. 일거수일투족을 일본군이 감시하고 경계했다.
"너희는 황군의 무운을 빌고 총후의 임전태세를 독려하기 위하여 선발된 승전의 꽃이며, 신성한 제2의 전사다. 소년병사 가미가제가 목숨을 꽃잎처럼 던지면서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고, 젊은 여성들 또한 그런 병사의 사기를 진작시키며 몸을 바치니 대동아공영권은 눈앞에 와있다. 조국을 위하여 헌신하는 너희의 애국정신은 청사에 길이 빛나리라."
위안부의 생명권과 인격권, 순결권을 밟았는데도 부대장은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그녀는 쉽게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잘못된 것 같은데 무엇이 잘못이라고 끄집어낼 논리가 없었다. 다만 억울하고 분할 뿐이었다.
귀국선을 탔는데도 마찬가지였다. 귀국선 안에서도 또다시 몹쓸 짓을 당했다.
긴 사연을 풀어놓은 임순심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말했다.
"그 새끼들, 한 놈이라도 찾으면 죽여버리겠어요. 정말 어디서부터 잘못됐지요?"
오민균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역시 미안할 뿐이었다. 지켜줄 어떤 무엇도 되지 못한다는 것이 암담했다.
전쟁이 끝나자 일본군은 맨 먼저 위안소의 흔적부터 지웠다. 군대 위안소 운영은 그들 스스로 생각해도 치욕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국제전범재판소에서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면 그들의 죄상과 야만성이 세계 만방에 알려질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보아도 야만이고 수치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부대마다 위안소 흔적을 지우고 은폐하고 증거자료들을 불태웠다.
사이판, 티니아, 팔라우, 오키나와, 괌도 등에선 특공대들이 위안부를 앞세워 절벽에서 투신했다. 위안부들 역시 이제 ‘텐노히카이 반자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고, 또 그런 세상의 밖으로 노출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누가 알아주건 말건 일본 군대와 함께 신분을 동일시했고, 운명을 함께 했다. 일본 군인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자 그들도 함께 투신했다. 연합군에게 생포되면 비참한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선동에 목숨을 버렸다.
죄상이 드러날 것이 두려운 일본군의 강요와 겁박도 있었다. 순결이 무너진 몸으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수치심을 유발했고, 스스로도 그런 절망 속에 갇혀 지냈다. 그래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자포자기로 몸을 던진 여자들도 부지기수였다.
일본군 위안부는 적게는 6만 여명, 많게는 이십여 만명이라고 했다. 먼 훗날(1992년) 한국정부가 위안부문제를 다루기 시작할 때 신고자는 155명이었다. 은폐하고 말소하는 정책을 수행해온 일본 정부로서는 이렇게 신고자가 적은 것에 안도했다. 가장 힘이 없는 부류인 데다가 죽거나 현지에 숨어살고, 살아있더라도 과거를 지우고 싶었기 때문에 일본은 결과적으로 쉽고도 편리하게 증거 인멸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대하게 위안소를 운영한 실태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숙이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걔랑 함께 부대 위안소를 탈출하려고 했는데 걘 죽었어요."
숙이는 통영 바닷가에서 생선을 말리던 중 끌려왔다. 기차역에서 내린 곳이 봉천인데 사흘간 다시 차를 타고 용광현까지 들어왔다. 매일 수십 명씩 받던 어느날 마침내 돌아버렸다. 아무데나 오줌 누고, 할딱 벗은 몸으로 뛰쳐나갔다.
숙이는 몸이 참 예뻤다. 아래는 더 좋았다. 그래서 인기가 있었다. 병사들이 떼거리로 찾았다. 긴짜코라고 소문이 퍼지자 너도나도 찾았다.
"미친년 것이 더 맛있다고 했어요. 할딱 벗고 산속을 헤매는 숙이를 발견한 병사들이 숲속에서 마구 욕심을 채웠어요. 발정난 수캐들처럼 돌밭에 눕혀놓고 그 짓을 하는데 숙이가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면 병사들은 더 흥분해서 계속했어요. 숙이가 병사의 대검을 뽑아 그 놈을 찔렀죠. 그리고는 영창에 갇혔어요."
영창에서 돌아온 뒤 더 성숙한 여자가 되어있었다. 피부가 뽀얗고 살이 붙고 예쁜 모습이었다. 남자들을 계속 감당하다 보면 피부가 누렇게 뜨는데 몇 달 몸을 쉬니 피부가 본래대로 되살아나고 몸도 회복이 된 것이다.
석방되었지만 그녀는 또다시 벗은 채로 산을 헤맸다. 병사들이 그녀를 뒤따르는데 어느날부터 병사들이 숲에서 하나 둘씩 사라졌다. 그녀를 뒤쫓던 병사들 네 명이 동굴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중에는 감방의 간수장도 있었다. 시체는 하나같이 성기가 잘려나간 상태였다. 수색대원들이 미쳐서 날뛰는 숙이를 총을 쏘아 현장에서 사살했다.
언덕 옆 구렁창 쪽에서 누군가 풀숲을 헤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각목을 든 남루한 농민복 차림의 남자였다. 머리를 산발해서 나이를 쉽게 알아볼 수 없었다. 그가 다가오더니 그들 앞에 서며 각목을 손으로 돌렸다. 얼핏 보면 산속에서 사는 도인같았다. 그가 손동작을 멈추더니 물었다.
"해병단 놈들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냐?"
"우린 조선인 귀국자들입니다."
"나는 이 산을 지키는 산지기야. 요시다 상이다. 왜 여기에 와있나."
오민균이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자 그가 말했다.
"응, 그래. 나는 병사 몇 놈을 쫓고 있었지. 여자를 끌고 가서 몹쓸 짓을 하는데, 가만 둘 수가 없었지. 일본군 명예를 더럽히고 모욕하는 놈들이니까. 잡히기만 하면 머리통을 날려버릴 작정이야. 일본군이 이렇게 개판이진 않는데…."
그는 공군 전투기 정비사 출신이었다. 소년병 출진을 보고 탈출한 사람이었다. 군기 엄격한 정비반에서 탈출은 상상할 수 없었지만, 어느 순간 생각을 바꾸어 부대를 이탈했다. 그 과정에서 머리를 심하게 다친 뒤 고향인 마이쓰루 산록에서 동굴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배가 침몰하고, 화재가 나고, 사람이 떼죽음 당하고, 그 사이 여자를 끌고 가 몹쓸 짓을 하고... 무법천지가 되어가고 있지. 이러니 내가 돌아버리지."
요시다는 전쟁 막바지 가미가제 특공대 정비지원병으로 강제 입대했다. 형식은 자원입대였지만 군의 병사계 직원의 강요가 있었다. 소학교 소사로 근무중 전쟁 막바지에 이르자 군대로 차출된 것이었다.
"조선 병사의 얘기를 들었지. 식량을 수탈당하자 보릿겨, 술찌겅이, 밀겨를 먹고 살았다고 하더군. 놋그릇 놋대야 쇠스랑 따위 쇠붙이를 거둬가고 매일 송진따러 가고, 심지어 소나무 뿌리까지 캐서 수거해갔다고 하더군. 조선반도의 물자라는 것은 다 거둬가니 산이 민둥산이 되고, 냇가의 풀도 자라지 못했다고 해. 사람들이 그것을 뜯어다 밀기울에 섞어 먹고, 밀기울도 없자 소처럼 연하여 삶아먹었다고 해. 그러면서 야마도다마치(大和魂)를 외치고, ‘도츠제키 귀축미영’, 격멸 귀축미영을 외치며 돌격 앞으로 갔다고 하더군. 배를 쫄쫄 굶기고도 그 지랄했다는 거야. 우리가 험하게 당하는 줄 알았더니 조선 사람들이 더 비참하게 당했다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조선사람의 친구가 되기로 했네. 조선의 소년 비행사가 들어왔을 때, 전의에 불탄 그를 위로했지. 어머니 생각이 안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용감하게 텐노헤이카 반자이!만을 외치더군. 세뇌라는 것이 이렇게 한 사람의 영혼을 말살하는구나. 생각했지. 하긴 나 역시도 적의 항공기를 격추시큰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린 그는 더했겠지. 하지만 전쟁이 끝난 것을 보게. 광신적 군국주의자들이 정신주의를 강조하며 어린 영혼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이런 비정한 세계에 대해 얼마나 우리가 그들로부터 기만당하고 사기당하고, 모욕을 당해왔는지. 그러니 천황 그자를 반드시 베어 죽여야 하는데, 이런 때 무질서한 틈을 타서 조선 처녀들을 잡아다가 산으로 끌고 가 떼씹을 하고 내려보낸단 말이야."
그는 그러면서 항공부대 기체 정비반을 탈출한 경위를 설명했다.
"출격 앞에서 몸을 떠는 소년비행사를 보면 양심상 그를 비행기에 태울 수가 없었지. 그래서 도망가라고 도주로를 알려주었어. 그런데 그 소년병이 헌병대에 달려가 고발해서 나는 끌려가서 죽도록 맞고, 영창에 갇혔지. 그 소년은 소년 영웅으로 칭송받고 폭탄 실은 전투기를 타고 가서 죽었고 말이야. 두세 달 영창에서 썩고 있으니 끄집어내 주더군. 전쟁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다시 차출해 정비반에 투입하려고 끄집어낸 거였어."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전투기를 정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미가제라는 이름의 소년병들은 한번 출격하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그들을 태워보낸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비애였다. 그가 아니면 다른 병사가 그 자리를 메우겠지만 그는 두 번 다시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아서 군 철조망을 넘어 탈출했다.
"우리 부대에 위안소가 있었지. 출정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이었어. 죽으러 가는 소년들과 같은 또래의 소녀들을 보니 슬프더군. 이름도 사랑도 남김없이 사라져가는 꽃들..."
그가 풀밭에 주저앉았다.
"소년병들이 산화하면 야스쿠니 신사에 혼을 안치한다고 했어. 그게 가문 최대의 영광이라는 거야. 장군도 잘 들어가지 않은 곳이래. 그래, 들어가면 뭘해? 그런 혼이 있으면 뭘해? 정말 혼이 있나? 사기야. 출정 나가기 전날 위안부 소녀를 만나 남자로서 마지막 로맨스를 만들라는 의식 또한 위선이야.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는데 어떤 로맨스가 있겠나? 나이 어린 전투비행사나 소녀들이 비애만 씹는 것이지. 그 종군위안부가 대개 조선 처녀들이었어."
"요시다 상은 어디서 복무했습니까."
"마리아나 제도야. 그곳에서 계속 소년 파일럿들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니까. 소년들이 잡지에 나온 소년 비행사 사진을 보고 비행사를 동경했다고 하더군. 학교에서 비행기 사진이 나오는 소년잡지를 나눠주며 꿈을 키우라며 항공대(航空隊)에 보내주었다는 것이지. 교육자들이 그렇게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거야. 세상에 이런 못된 교육자들이 어디 있나?"
출정 20분을 앞두고 걷지도 못하고 오줌까지 싸면서 우는 열다섯 소년병이 있었다. 엄마를 찾고 우는데도 명령받은 병사들이 그를 콕피트(cockpit)에 한사코 밀어넣었다.
가미가제 특공대는 긴급 양성된 청소년 조종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기본적인 이착륙도 숙지하지 못한 청소년들이었다. 방향을 잡고 항로를 유지하는 고난이도의 기술을 숙지하지도 못한 그들을 비행복을 입혀서 적기와의 공중전과 적의 함대 폭격 조종사로 내보냈다.
"어차피 가서 죽을 건데 항로 유지나 돌아오는 방법을 몰라도 되지 않느냐는 거지. 성능 떨어진 비행기에 폭탄을 가득 싣고 가서 귀신이자 동물이라는 귀축(鬼畜) 미국 군함에 부딪쳐 죽으라는 거지. 거기가 거기로 보이는 망망대해에서 나침반의 방향과 측량법에 의지해서 목표물을 찾아 폭탄을 투하하고 귀환한다는 것은 어린 소년병들에겐 지난한 일이야. 선도 비행을 따르지만 미군의 초계망을 돌파하지 못하고 낙오하지. 숙달된 조종사도 힘든데 소년조종사들이 폭격에 성공하는 것은 5%도 안됐어. 다 바다에 동체를 꼬라박고 사라지는 거야. 그런데 이들의 공적을 신화로 만들어가지. 신문과 방송은 날마다 ‘신풍(神風) 영웅’이라고 칭송해. ‘야마토 단-지토 우마레나바, 삼-페이센- 노 하나토 치레(대일본의 남아로 태어났으면, 산-병-전(散兵戰)의 꽃으로 지라)’ 따위 군가로 소년병들의 사기를 끌어올리지. 하지만 이런 사기가 어디 있소. 열다섯, 열여섯 살 소년을 사지에 몰아넣고 찬미하는 나라가 이 세상, 어느 하늘 아래 있는가. 나이어린 소녀위안부들까지 잡아와서 성을 바치게 구석진 방에 밀어넣는다? 이런 개새끼들이 전쟁이란 이름으로 인류 최악의 막장 드라마를 쓰는 거야. 이런 추악한 전쟁은 필연코 패배하게 되어있지. 그래서 나의 탈영은 정당성이 있었던 거야. 그런데 국민들은 나를 반역이라고 몰아세운단 말이야. 가장 부도덕하고 더럽고 불의한 전쟁에 대해 항거하는 사람을 배신자라고 한단 말이야. 그 모든 허위의식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비애국자, 불한당으로 나를 몰아붙이고 있어. 그래서 고향 마을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렇게 산속에서 살지. 일본이란 나라는 영원히 구제받지 못할 거야. 살아도 그게 인생이라고 할 수 있나? 그야말로 짐승이지."
"지금 요시다 상 같은 분도 계시잖아요?"
"내 목소리는 미친놈의 소리로 치부해. 난 세상의 마이너리티야. 마이너리티는 불평불만분자라고 매도하고 음해하지. 그러니 어디 가서 밥 한끼 해결할 수 없어. 이렇게 세상이 미쳐버렸어."
그는 흡사 광야의 선지자 같았다.
"불쌍한 조선인을 만나니 내가 겪은 것을 더 얘기하고 싶군. 일본 해군은 북마리아나제도 해역에서 패배하고 사이판, 티니안, 괌 등의 섬들을 차례로 미군에게 내주었지. 미군은 B29에 의한 일본 본토 폭격의 전진기지를 구축한 셈이지. 패배한 일본군이 최후의 수단으로 바닷가 절벽에서 몸을 던질 때, 도로를 닦던 조선인징용자, 성의 도구였던 조선인위안부들도 함께 떨어졌지. 혼자 죽긴 아까우니까 조선인들을 데리고 가서 떨어진 거요.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도 그 길이 좋은 것이지. 자, 보시오. 저 자들은 훗날 조선인 종군위안부가 없었다고 존재를 부인할 것이오. 만방에 알려지면 얼굴을 들 수가 없으니까. 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만행으로서 나이어린 소녀들을 잡아다 순결을 짓밟는 야만성이 죄악이란 것을 아니까 지우려 한 것이야. 그래서 흔적을 지우고, 증거를 인멸하는 것이지. 은폐하고 말소하고 조작할 거야. 여러분은 절대로 잊지 마시오. 반드시 죄과를 물어야 해요. 기록하고 기억하시오. 여러분, 731부대 아는가?"
"잘 모릅니다."
장지성이 짧게 대답했다. 평소 이성적이던 그도 어느결에 울분이 솟고 있었다.
"모르겠지. 이놈들은 못된 일은 철저히 비밀로 붙였으니까. 하얼빈 731부대라는 곳이 있지. 생화학무기를 만들기 위해 인간을 생체실험한 곳이오. 조선과 중국, 소련 포로들을 잡아와서 마루타(통나무)란 이름으로 생체실험을 했지. 페스트 콜레라 따위 병균을 몸에 침투시켜 생체해부를 하는데 마취도 없이 생살을 찢는 거야. 남녀, 어린이, 심지어 임산부까지 대상이었지. 출혈 연구를 위해 수용자의 팔과 다리를 톱으로 잘라 피가 멎을 때까지 관찰하고, 얼려서 절단하기, 피부 표본을 얻기 위해 산 채로 살갗 벗겨내기, 수용자를 말뚝에 묶어놓고 칼로 베며 통증 관찰하기, 세균 방출, 화학무기 실험으로 사망 시간 재기... 일부 수용자는 원심분리기에 넣어 숨이 멎을 때까지 뺑뺑이를 돌렸지. 인체 수분 함량 비율을 알기 위해서였지. 전쟁이 이 모양이었소."
"그만 해요."
고길자가 머리를 싸매고 귀를 막았다. 요시다는 그 말을 묵살하고 얘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당신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 하고 잊을 거요. 윗놈들이 잊게 만들 거요. 그 때도 그자들은 이익을 취했으니까. 그래서 개돼지들이 당했던 일로 치부하거나, 모르는 일이라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 필요성도 느끼지 않을 거요. 그러니 협상할 일도 합의할 일도 없게 되는 것이지. 굳이 말하면, 그들 스스로도 전쟁 참가자고, 가해자였으니까."
오민균은 홀린 듯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말에는 어떤 허위의식도 가식도 없어보였다.
"가미가제의 허구와 기만을 보시오. 어린 소년 비행사들을 죽여놓고 그 뼈다귀를 야스쿠니 신사 따위에 모셔놓고 허리 굽신거리는 허깨비 장난을 보시오. 신풍이니 신화니 하며 머리 조아리는데 완전 사기지. 쓸데없이 사람 많이 죽인 놈을 신으로 모시고 추념하는 행위를 저놈들은 숭고한 정신이라고 깃발처럼 내세운단 말이야. 한심하지 않나? 조선인의 강제징용이나 종군위안부를 가차없이 유린한 놈을 칭송하디니. 개 사기 아닌가. 여러분은 잊지 마시오. 기억하시오. 일본이란 나라는 절대로 반성하지 않소. 자기 죄악을 칭송할망정 시인하지 않아요. 그러나 전범은 분명히 있지. 그의 광기가 있었으니까 아시아를 분탕질했지. 하지만 아랫놈을 몇놈 대신 처벌하고 그는 의연히 서있을 것이오. 여러분은 그 전범을 찾아 처단하시오. 그것이 역사를 청산하는 일이지.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 놈은 죽여도 좋소. 그것들은 야수의 본성이 남아있는 거요. 이것들은 힘의 논리로 사는 교활한 놈들이니까. 조선이 일본과 맞붙어 우위에 설 수 있는 길은 사실 없지. 영토, 인구, 산업생산, 과학문명, 어느것 하나 이길 수 없지.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길 것인가. 세상 사는 세상을 만드는 거야. 일본보다 더높은 도덕적 이상을 실현하는 거야. 일본 우익 파쇼의 집권 명분, 일본 내에 아직도 존재하는 극단적 군국주의자들의 향수를 부끄럽게 해야 하오. 진실을 고백하고 사죄하고 두 번 다시 그런 악행이 나오지 않는다는 통절한 반성의 기반 위에 서도록 조선이 먼저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거야. 그러니 뒤집어엎어야 해요. 윗대가리들은 한결같이 썩었으니까. 그런 기조 위에서 희생된 이를 기리는 상징물을 세워야지. 유린된 위안부상, 고통받는 징용자상을 세계 만방에 세워야지. 우리 인류사에 이런 나쁜 전쟁이 있었고, 피해자는 끝없이 고통받고 있다. 그런 것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거요. 일본이 해야할 일은 전쟁광의 뼈를 야스쿠니에 보관할 것이 아니라 야만의 전쟁에 희생된 억울한 사람들을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야 하는 것이야. 그것이 진정한 화해고 반성이고 평화지. 그런데 그것을 지우고 숨긴단 말이야. 숨기고 지우는 자가 도둑이요. 그렇게 신성시했던 것을 지우고 유기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반성하고 회개하지 않을 때는 피해자가 처단하는 것이오. 그것이 정의지. 그리고 배상을 청구해야지. 그러나 조건이 하나 있소. 전쟁으로 희생된 일본군위안부나 강제 징용자를 야스쿠니 신사에 모시면 단 1달러의 배상금이라도 용서해주어야 하오. 하지만 그것들 창자가 밴뎅이 창자만해서 그럴 위인이 못되지. 그러니 여러분이 그것들을 고발하고 세계 양심에 호소하시오."
고길자가 용기가 나는 듯 나섰다.
"나도 얘기할 게 있어요. 비행장 활주로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가 총맞아 죽는 것을 내 눈으로 똑바로 보았어요. 노역장에서 삽질하던 징용자가 누군가로부터 해방 소식을 들었는지 만세를 불렀어요. 지긋지긋한 강제노역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쁨에 젖었겠지요. 헌데 감시병이 징용자를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쏴죽였어요."
곁에 앉아있던 정영애도 나섰다.
"사할린에서 조선인 집단 마을에서 수십 명이 학살당한 사건도 있었어요."
사할린 서쪽 항구도시인 홈스크로부터 내륙으로 40km 떨어진 포자르스코예 마을이었다. 사할린 재향군인회와 마을청년단 소속 일본인들이 패망 소식을 듣고 의용전투대를 결성한 뒤, 상부의 지시라면서 조선인 27명을 체포해 살해했다. 희생자 일부는 냉동창고에 가둔 뒤 바다에 버렸다. 희생자 중에는 처녀들이 포함돼 있었는데, 일본군 부대에서 도망나온 종군위안부들이었다. 해방이 되자 사할린 조선인마을로 들어온 그들을 군인들이 뒤따라와 현장에서 사살하고 떠났다."
"함께 도망 나오던 아저씨들이 전해주었어요. 무서운 놈들이니 조심하라고 당부했죠."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야."
요시다의 분노 섞인 대꾸였다. 이시하라 상과 같은 인물이 마이쓰루 산야에도 있다는 것이 묘한 기분을 자아냈다. 숨어있을망정 정신 박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일본군 희생자와 가미가제 특공대, 일본군위안부를 추모하는 동상을 세우고 싶소. 긴자 거리에 세우고, 교토 고성에도 세우고, 워싱턴에도 세우고, 런던에도 세우고 싶소. 그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위안부상, 진용자상이야말로 인류를 야만으로부터 건져내는 새로운 성전이 되는 것이라 믿지. 이것을 언젠가 함께 힘을 모아 해보자고. 그럼 나는 갑니다. 지금 해병대원들 순찰 돌고 있을 거요. 비상식품 좀 내놓으시오."
오민균이 호주머니를 털어 비스킷, 건빵, 초콜릿 따위를 꺼내 그에게 내밀자 받아들고는 숲속으로 황망히 사라졌다. 순찰병들이 대형을 갖춰 토끼몰이하듯 산을 오르고 있었다.
무언가를 저지르고 떠나야 할 것 같았다. 밤이 깊자 그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오민균과 장지성이 일행을 진두지휘했다.
"진출로와 퇴로를 확보하도록."
지시대로 현용대가 1번 게이트 방향으로 달려갔다. 장지성조는 해병단 뒤쪽 산으로 잠입했다. 경계가 느슨해진 낮과는 달리 밤이 되자 서치라이트가 해병단과 수용소를 샅샅이 훑고 지나갔다. 총을 멘 초병이 광장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1번 게이트 초병이 이동하는 현용대를 발견했다.
"뭐냐."
"외출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입니다."
현용대가 그의 앞에 나서 허리를 굽신했다. 초병이 고개를 갸윳하며 다시 물었다.
"뒤따르는 자들은 누구냐?"
"조난자들입니다. 항구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길래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래도 이상하다는 듯 그가 목에 건 호루라기를 꺼내 입에 갖다 댔다. 순간 곁의 이성유가 달려들어 그의 아구창을 돌렸다. 초병은 턱을 싸안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조병헌이 순식간에 단도로 초병의 배를 찌르고 냇물에 던졌다. 요며칠 사이의 비로 수량은 픙부했다. 물에 떠밀려 것을 보고 그들은 부로수용소로 달려갔다. 오민균이 수용된 조난자들을 향해 외쳤다.
"준비하세요. 지금 떠나야 합니다. 저놈들한테 언제 당할지 모릅니다."
순식간에 당하는 일인지라 조난자들은 어리둥절한 모습니었다. 잠시 후 사정을 알아차렸으나 나이 든 사람들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래저래 두렵고 위험하다면 현재의 질서를 따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순응이 체질이 되어버린 식민지 백성의 품성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린 괜찮소. 젊은이들이나 떠나시오. 짐이 되긴 싫소."
희망자 스무명 정도 되었다.
그에 앞서 고길자와 임순심이 몸빼 차림으로 뒷산으로 연결된 철조망 밑 개구멍으로 숨어들었다. 개굴창 앞에서 경계를 펴던 감시병이 소리쳤다.
"누구냐? 후지야마!"
초병이 암호를 대며 물었다.
"앞서 간 군조가 뒤따라 오라고 했다."
밤이면 여자를 데리고 나가 못된 짓을 하는 루트였다. 초병도 그 일원이었으니 모르지 않았다.
"지금은 안돼. 비상이다!"
그러나 어제의 연약한 여자가 아니다. 임순심이 품에서 칼을 뽑아들어 그의 가슴을 찌르자 정영애가 그의 멱을 따 숨통을 끊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초병을 간단히 처치해 개굴창에 버린 뒤 두 사람은 숲속으로 사라졌다.
장지성 조는 막사 뒤쪽 절벽으로 이동했다. 깎아지른 듯한 험한 지형 때문에 그곳은 초병이 지키지 않았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인지라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위쪽으로부터 로프가 내려와 있었다. 오민균ᐧ이성유장 조가 먼저 올라가 나무에 묶어서 내려놓은 로프였다. 조난자 한사람씩 로프를 타고 오르도록 생도들이 지원했다. 올라간 조난자들을 오민균 조가 숲속으로 안내했다.
"돗토리항으로 나가시오. 이곳 지형을 아는 장 생도를 따라 가시오."
장지성이 이들을 인솔해 산길을 따라 능선을 넘어갔다. 키만큼 자란 갈대숲 쪽에서 히히덕거리는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중에 여자의 목소리가 또렷했다.
"서둘지 말아요. 난폭하게 굴지 말아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후래시 불빛을 들이대자 일본군 병사 셋이 여자를 눕혀놓고 덤벼들고 있었다. 그들은 맨 몸이었다.
"꼼짝마라. 군기반이다!
오민균이 뛰어들었다. 세 놈이 동시에 일어나 옷을 집어들고 튀었다. 그러나 뒤쪽에 잠복해있던 조병헌 이성유 이정길이 각목 일격이 더 빨랐다. 한놈씩 때려눕히고 직신작신 매타작이 시작되었다. 두상을 갈기자 한놈의 골이 터져나왔다. 두 놈이 샅을 가리고 무릎을 꿇었다.
"황군의 명예를 먹칠하는 놈들! 여자를 강간하는 놈은 황군의 수치다. 두 손을 들라."
오민균이 단호하게 소리치자 두 놈이 한 손으로는 샅을 가리고 한 손을 높이 쳐들었다. 수치심은 아는 모양이었다.
"이 여자는 어디서 데려온 여잔가?"
"매춘부다."
여자는 임순심이었다. 그들은 전과 다름없이 여자들을 산으로 끌고와 일을 저질렀다. 다만 이번에는 임순심이 그들을 유혹한 것이 달랐다.
"종전인데도 위안부 타령인가? 강간이 중대범죄라는 것 모르나?"
그들에게선 술 냄새가 풍겨나왔다.
"이 여잔 종군위안부다. 군표로 여자를 샀다."
임순심이 말없이 저만치 가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개새끼야, 지금 위안부가 어디 있어? 인격을 가진 여성이야. 그런데도 여전히 억지부리는 야비한 놈들!"
조병헌이 그들로부터 수습한 구구식총 개머리판으로 차례로 둘의 대갈통을 깠다. 그들 곁에는 골이 빠지고 창자가 빠져나온 한 놈이 뻗어있었다.
"엎드려!"
두 놈이 엎드렸다.
"니놈들은 이런 경우가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 오만방자가 하늘끝까지 닿았지? 못된 짓을 한 니놈들을 즉결처분하라는 것이 황군의 군칙이다. 알겠나?"
그러자 한 놈이 어떻게 알았는지 짧게 뱉어냈다.
"너희놈들, 조센징이다. 니들이 군기반이라는 건 거짓말이다. 당장 거두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래. 나는 니가 말하는 조센징이다. 조센징은 그렇게 밟혀도 되냐? 전쟁이 끝난 지가 언젠데, 수십 명 징용자를 가둬서 태워죽이고, 약한 여자를 겁탈하고, 그러고도 살 줄 알았느냐?"
조병헌이 두 놈의 정강이를 총 개머리판으로 내려쳤다. 도망갈 것을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그들이 정강이를 싸안으며 신음소리를 삼켰다.
"황군의 명예를 위해 자결할 권한을 주겠다."
오민균이 단검을 꺼내 한 놈에게 던져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한 놈이 벌떡 일어나더니 동료의 가슴에 칼을 깊숙이 쑤셔박았다. 그는 발작을 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너도 감행하라."
그가 쭈볏거리더니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조병헌이 뒤쫓아가 총 개머리판으로 등을 찍었다. 그가 풀석 고꾸라졌다가 무릎을 꿇더니 두 손을 싹싹 비벼댔다.
"살려주시오. 잘못했습니다."
"비겁한 놈들. 살려주면 보복한다고 하겠지?"
"아닙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럼, 내 군화 밑바닥을 핥아라."
조병헌이 군화발을 그의 얼굴에 갖다 댔다. 그가 두 손을 비빈 상태로 군화를 핥기 시작했다.
"그렇게 목숨이 아깝나."
"미안합니다. 평생 반성하며 살겠습니다."
"니 말을 믿는 사람은 없어. 돌아서면 맹견으로 돌아서는 놈들이야. 너 조선 여자 몇을 건드렸나?"
"건드린 적 없습니다."
조병헌이 후래시 불빛을 그의 얼굴에 비추고 임순심을 불렀다.
"이 말이 맞습니까?"
"아녜요. 정영애, 나 번갈아 가면서 욕을 보였어요. 반항하는 영애를 때리고, 넷이서 윤간했어요. 이런 새끼는 내가 처치할 거예요."
임순심이 그의 복부에 군도를 쑤셔박았다. 그 역시 피를 쏟고 쓰러져 몸을 떨더니 금방 잠잠해졌다.
"떠납시다."
임순심은 벌써 전사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풀벌레 소리가 요란한 어두운 밤길을 헤쳐나갔다. 묵묵히 걷던 오민균이 뒤따르는 임순심을 향해 말했다.
"임무를 잘 완수했습니다. 우리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길 바랍니다. 이제 어떤 놈도 우릴 넘볼 수 없습니다. 우린 자유를 찾았습니다."
돗토리항에 도착하자 아침이었다. 시치산 기슭부터 하쿠토 해안까지 해안 사구가 길게 펼쳐져 있었다. 사구 안쪽에 해룡호가 정박해 있었다. 강태선 사장의 작은 무역선이었다. 배에 옮겨 타려는데 한 사내가 달려왔다. 바로 가마가제 특공대 정비반 출신 요시다였다.
"세 구의 일본군 시신을 발견하고 여러분이 저지른 일이라는 걸 알았지."
"그래서요?"
그들이 그를 경계했다. 그런데 그가 한 말은 의외였다.
"여러분이 떠난 다음 내가 범인으로 지목되었소. 나 역시도 몇 놈 죽였으니까 더 이상 일본 땅에서 살 수가 없소. 날 데리고 가시오."
"서로 짐이 될텐데요?"
"그래도 여러분과 함께 행동하고 싶소."
"대신 섬에 내려드리겠소. 쓰시마 섬에."
"좋소. 난 제주섬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거기까진 무리겠지요?"
그러나 아무도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그들 앞길도 장담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해룡호는 그를 태우자 더 이상 지체할 것 없다는 듯 만을 빠져나갔다. 배가 힘차게 물살을 가르는데 비로소 자유인이 된 기분이었다. 돌아보니 요며칠 사이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 것 같았다. 일본 패망일로부터 한달 동안의 기간이 마치 수십 년의 곡절을 겪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들은 갑판의 바닥에 둘러앉아 조국의 미래를 그렸다. 그런 그들을 바라본 요시다는 외톨이가 된 기분으로 선미 쪽에서 우두커니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생각하던 그가 다가와 말했다.
"나는 저 앞에 보이는 섬에 내려주시오."
숲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는 작은 무인도였다.
"무인도입니다."
"무인도니까 내 세상이오. 저곳에 내려주시오. 저곳에 묻혀 살겠소."
"이키나 쓰시마에 내리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아니오. 저곳이 내 이상향이오. 세상 잡사 모두 잊고 사는 데는 저런 땅이 나에겐 낙원이오.내려주시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인이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고 싶소. 조선 민족이 고통받은 것에 대해 내 개인적으로라도 사죄를 하고 싶소.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날 거요. 돌아가서 좋은 나라 만드시오."
작은 섬 기슭에 배를 접안시키자 그가 훌쩍 뛰어내렸다. 생도들이 이것저것 물건을 챙겨서 그에게 던져주었다. 배는 곧 출발했다. 배가 가물가물 점이 될 때까지 요시다는 그 자리에 서있었다.
"나라의 정체는 입헌군주제, 내각제, 군왕제도 있지만, 총통제가 나을 거야."
갑판에 둘러앉은 생도들은 진지했다.
"아니야. 미국처럼 대통령제가 좋아. 국민이 직접 선거하는 대통령제 말이야. 이젠 국민이 지도자를 뽑아야지."
"영친왕이 계시니 왕조로 복귀할 수도 있지."
"왕조는 틀렸어. 백성을 한갓 소모품으로, 소유물로 취급하잖아. 그가 무능해도 죽을 때까지 바꿀 수도 없고."
장지성은 요요기연병장에서 생도 관병식이 열릴 때 바라본 영친왕을 생각했다. 어려서 인질로 끌려와 살았던 때문인지 그는 무력해보였다. 조선말도 서툴렀다. 그런 무능이 다시 왕으로 추대된다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또다시 외세에 먹혀버릴지 모른다.
"왕조의 시대를 버리고 공화제로 가는 것이 시대적 요구지. 로마제국이 세계를 지배했던 건 민주정치의 꽃이라는 공화제를 실시했기 때문이야. 백성의 의사가 반영되는 민주정치체제, 혈통적으로 세습되는 왕조나 군주제는 평등의 원리에도 사실은 크게 위배되지. 지금 세상의 변화를 보아야 해. 조선이나 일본의 세습 군주가 얼마나 몰역사적이고 비인간적이었느냔 말이야. 우린 그 안에서 벌레처럼 하등동물로 굴복하며 살았어. 이제는 출생에 따른 봉건적인 차별을 부정하고, 국민이 주인이 되고, 자유·정의·평등·박애를 기본 원리로 하는 공화제를 지향하는 거야. 영국의 청교도혁명,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 시민혁명, 러시아 볼세비키혁명 모두 공화제를 기본 틀로 하고 있잖아."
"국가 정체야 어떻게 되든 결론은 두번 다시 나라를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거야. 그동안 우린 너무 억울하게 살았어. 벌레처럼 살았어. 지난 35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너무나 비참했어. 절대로 망국의 역사를 만들지 말아야지."
젊은 생도들은 짓푸른 수평선 위에서 조국의 미래를 그렸다. 배는 파도를 가르며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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