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노딜' 이후 7개월여 만에 대좌하는 북한과 미국의 협상 결과를 예측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일단 7개월간의 신경전 끝에 회담을 열기로 한 것 자체가 희망을 갖게 한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노딜의 주역' 존 볼턴을 경질하고 '노딜의 원인'이었던 '리비아 방식'을 성토하고 나선 것도 희망적인 징후이다.
김정은-트럼프의 교차 방문 실현?
더구나 탄핵 조사에 직면한, 그리고 사생결단식으로 재선에 매달리고 있는 트럼프는 거의 모든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온 한반도 비핵화에 중대한 진전을 이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재선용'으로 북한과의 협상을 이용하려고 할수록 미국 내부의 반발과 저항도 커질 수 있다.
김정은 정권도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2018년 4월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새로운 전략 노선"을 발표했지만, 미국 주도의 제재에 막혀 오히려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있다.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올해 내에 큰 틀에서의 문제 해결에 합의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결실을 맺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재선 여부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대타협을 주저할 수도 있다. 반대로 내년 11월 미국의 선거 이전에 최대한 결실을 맺으려고 할 수도 있다.
아마도 김정은은 내년 중에 트럼프가 평양을 방문해 70여 년간 이어져 온 "북미 적대관계의 청산"을 선언하는 것을 '큰 그림'으로 그리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트럼프는 미국 대선이 임박한 시기에 김정은이 미국을 방문해 "완전한 비핵화"를 선언하는 것을 원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에 북미 정상의 교차 방문이 실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큰 그림은 작은 조각들을 맞춰나가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이에 따라 이번 북미회담에서 조각 맞추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에 결렬되면 다음을 기약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북미협상 세 가지 경우의 수
북미 협상의 경우의 수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변 핵시설 폐기를 골자로 하는 북핵 동결과 상응조치의 교환이다. 여기서 동결이란 북한이 핵물질을 생산하는 시설을 폐기함으로써 더 이상 핵물질을 만들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이는 북한이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내놓은 제안의 골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11개의 제재 가운데 민생과 관련된 5개의 해제를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영변 이외의 핵시설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북한이 미국이 제시한 비핵화의 정의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북미협상에서 북핵 동결과 상응조치의 교환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북핵 폐기가 아니라 동결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지고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대북 제재를 완화하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주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이를 엄청난 업적으로 포장하면서 재선에서 활용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동결 수준에서 만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핵물질 생산 시설의 폐기는 분명 과거 전임 정부보다 우수한 것이지만 수십 기의 핵무기는 그대로 남는다는 점에서 냉혹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또한 트럼프는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하곤 북한을 상대로 더 강력한 합의를 성공시키겠다고 공언해왔다. 북핵 동결 수준에서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은 이러한 공언에 한참 못 미친다는 점에서 트럼프로서는 결코 고려 사항이 될 수 없다. 재선에도 이렇다 할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점도 자명하다.
또 하나의 경우의 수는 이른바 '빅딜'이다. 이건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이 요구한 것이었다. 주요 골자는 북한이 핵뿐만 아니라 모든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 그리고 이중 용도 프로그램도 폐기하고, 핵무기와 핵물질은 미국으로 넘겨야 하며, 이들 사업 종사자들의 직업 전환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북한 경제의 밝은 미래"를 보장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사실상의 "무장해제 요구"이자 항복문서로 간주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빅딜' 제안은 '노딜'로 끝났고 이는 미국도 충분히 예견한 터였다. 미국이 이번 협상에서도 이 입장을 고수하면 또다시 노딜로 끝나고 말 것이다. 다행히 볼턴이 경질되고 트럼프가 "새로운 방법"을 언급한 만큼, 미국이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경우의 수는 북미 양측이 유연성을 발휘해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종 상태(end state)에 먼저 합의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이행하자는 취지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선 합의된 비핵화의 정의 자체가 부재한 상황이다. 북미가 1년 넘게 합의하지 못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북한이 "첫 공정"으로 핵물질 생산 중단을 위한 시설 폐기에 동의하더라도 그 시설의 범주를 어디까지 잡느냐도 관건이다. 미국은 영변 이외에도 강선에 제2의 우라늄 농축 시설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의 핵동결 조치에 대한 상응조치, 특히 대북 제재 완화 수준에 합의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우선 미국이 비핵화 완료 이전에 대북 제재 완화에 동의할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또한 미국이 제재 완화에 동의하더라도 그 수준을 낮게 잡을수록 북한도 핵동결 조치를 낮게 잡으려고 할 것이다.
더구나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에 접근할수록 지금까지 거의 표출되지 않은 문제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 대북 안전보장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의 핵폐기는 돌이키기 힘든 물리적인 조치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이에 상응하는 군사적인 조치를 미국에 요구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실무회담의 최대 관건은 비핵화의 정의에 합의할 수 있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회담에 미국측 대표로 나서는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존재하지도 않고 합의하기도 쉽지 않은' 비핵화의 정의와 최종 상태를 두고 더 이상 헤매지 말고 '국제적으로 합의가 존재하는'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와 최종 상태로 삼아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관련 기사 : '비핵화' 대신 한반도 '비핵지대'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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