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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방사능 누출, 원인도 못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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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영광 방사능 누출, 원인도 못 밝혀

[현장 답사] 경보도 무시, "감시기 고장난 줄 알아"

2003년 말 영광 5호기에서 발생한 방사능 누출 사고가 해가 지나도록 그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 주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주민들은 원인이 제대로 규명될 때까지 해당 원전의 폐쇄를 주장하고 있으나, 원전 관계자들은 "안전하다"고만 강변하고 있어 주민과 원전 사이에 갈등이 심화될 전망이다.

***경보 4일만에 누출 확인, 원전측 "감시기 경보 울렸지만 고장인 줄 알아"**

언론 보도를 통해 지난 12월27일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영광 5호기 방사능 누출 사고는 이미 12월21~22일 사이에 방사능이 누출된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발전소측이 방사능 누출을 감시하는 방사선 감시기가 22일 경보를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사능 누출 사실을 확인하는 데 4일이나 시간을 허비한 사실도 드러났다. 발전소측이 늦장 대응을 하는 동안 방사능에 오염된 3천여톤이 넘는 오·폐수가 바다로 방류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환경운동연합 서주원 총장, 한국노총 강익구 조직국장, 공익환경법률센터 박태현 부소장, 핵폐기장반대 영광군민대책위 김성근 교무 등으로 구성된 현장조사팀이 동행취재한 프레시안과 함께 8일 원전측으로부터 직접 상황 보고를 받는 과정에 확인됐다.

원전측은 "12월22일 최초로 기술지원실의 방사선 감시기에서 경보가 발생했고,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27일 방사능이 검출돼서는 안 되는 배관(순수계통)에서 방사능 검출 사실을 확인해 서둘러 조치를 취했다"고 발표했다. 경보가 울린 지 4일 만에 방사능 검출 사실을 확인하고 조치를 취한 것이다.

원전 관계자는 "처음 경보가 발생한 방사선 감시기는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나 울릴 만한 것인데 평상시와 다름없는 상황에서 경보가 울려 실무자들은 감시기가 고장난 것으로 판단했다"면서 "감시기를 점검하고 다른 감시기로 교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방사능 오염 오·폐수 3천여톤 이상 바다로 방출돼**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 방사선 감시기를 교체하는 등 발전소측이 늦장을 부리는 동안, 방사능이 오염된 물이 바다로 다량 방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발전소측은 사고가 발생한 지 5, 6일째 되는 27~28일 서둘러 방사능에 오염된 5, 6호기 오수처리장의 물을 액체 핵폐기물 처리계통으로 우회 처리하고, 폐수처리장을 가동 중단하는 등 조치를 취했으나, 이미 상당한 량의 방사능에 오염된 오·폐수가 바다로 방류된 후였다.

원전 관계자는 "오·폐수 3천여톤 이상이 바다로 방출됐지만, 그 안에 포함된 방사능량은 총 63.9메가베크렐(MBq)로 파악돼 주민의 몸에 피폭되는 위험도로 환산해볼 경우 주민들에게 해가 없는 미량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전 배수로 근처의 해수 방사능 노동 감시기(1대)나 해수, 해저토 등을 분석해 봤을 때 방사능이 미검출되거나 평소 수준을 유지했다"면서 "이번에 외부로 배출된 방사능에 따른 환경 영향은 미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사고 원인도 오리무중, 원전 관계자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사고"**

한편 원전측은 사고가 일어난 지 20여일이 지나도록 그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어 주민들의 불안감만 고조되고 있다.

당시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된 배관의 경우,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다른 배관으로 흐르지 않도록 2개의 역류 방지 밸브를 포함해 총 4개의 밸브가 설치돼 있었으나, 제 기능을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전 관계자는 "일단 4개의 밸브 중 1곳에 이물질이 낀 흔적이 발견돼 발전소에서는 이물질이 밸브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도 "2개의 역류 방지 밸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등이 명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정밀 조사를 진행중이다.

원전 5, 6호기를 책임지고 있는 김현수 영광 원전3발전소장은 '이번 사고를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느냐'란 질문에 "상당히 심각한 사고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원전에 근무하면서 더욱더 경각심을 가져야 하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했다"고 말했다.

***원전,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해" 강변**

원전3발전소장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작 규제 부처인 과학기술부와 한수원을 비롯한 원전 운영측의 태도 변화는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잇따른 원인 미상의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 운영측은 "안전하다"는 주장만 강변하고 있어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은 더욱더 높아지고 있다.

영광 원자력 발전소는 이번 5호기 방사능 누출 사고 외에도 2002년 5월21일 상업 운전에 들어간 이후, 각종 사고로 5차례 발전을 정지했다. 특히 많은 전문가들과 환경단체, 지역 주민들은 원전 5호기의 설계에 문제가 있거나 기계 결함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형 원자로'로 대대적으로 홍보된 영광 5, 6호기의 경우 냉각수가 유통되는 배관 내부에 붙어있는 열전달 완충판이 떨어져 나가, 냉각수를 타고 흘러가 원자로 노심 하부에서 발견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해 "'한국형 원자로'에 치명적인 설계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현재 열전달 완충판이 떨어져 나간 것에 대해서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6호기 방사능 누출 사고도 열전달 완충판 4개가 다 떨어져 나간 6호기에 이어, 5호기의 열전달 완충판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염려는 영광 원자력 발전소에 국한하지 않는다. 새해 벽두인 지난 4일 자정경에는 경북 울진 5호기가 비정상적인 기기 작동으로 정지했다. 2003년 한 해 동안 18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발생한 고장 정지 건수는 18회나 된다.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등 정부와 한수원 등 업자의 주장이 불신받는 것도 이런 빈번한 사고 때문이다.

***영광 주민, "안전성 입증될 때까지 원전 폐쇄"**

영광 주민들은 "안전성이 입증될 때까지 원전을 폐쇄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영광 대책위 김성근 교무는 "방사능 누출 사고 등 치명적인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다음에 사후 대책을 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면서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차원에서 안전성이 입증될 때까지 원전을 폐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안, 고창 주민들과 연대해 영광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본격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주민들의 행동을 이끌어내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대책위 김용국 대외협력국차장도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어난 지 1주일이 지난 후에야 영광 주민들에게 사고 사실을 알린 발전소의 행태에서 알 수 있듯이, 주민들이 원전 운영을 감시하는 것을 법제도를 통해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의 김병수 간사는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거대하고 복잡한 인공물은 예측할 수 없는 오작동과 같은 불확실성이 항상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과도한 믿음은 자칫 치명적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초에 감시기의 경보를 보고도 방사능이 누출됐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원자력 산업계 종사자들의 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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