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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왜 골든타임을 놓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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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왜 골든타임을 놓쳤을까?

[안종주의 안전사회]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또 하나의 청문회

지난달 27일과 28일 이틀간 가습기살균제 청문회가 열렸다. 지난 2016년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이은 두 번째 가습기살균제 청문회이자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한 뒤 열린 첫 청문회였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한 다양한 의제들이 다루어졌다. 그 가운데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는데도 대다수 언론이 잘 다루지 않은 부분을 중심으로 두 차례 나눠 연재한다. 첫 번째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국가 책임이고 두 번째는 골든타임을 놓친 부분이다(편집자)


골든타임은 재난이나 위기 시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세월호 침몰 참사에서 이를 너무나 가슴 아프게 인식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도 골든타임이 있었다. 가습기살균제 골든타임은 2006~2011년이다. 다시 말해 환자들이 집단으로 병원을 오기 시작한 2006년부터 2011년 4월 원인 미상 폐질환을 병원에서 신고한 시각 사이이다.

2011년 4월 최상호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 감염관리실장은 산모들이 집단적으로 원인 미상 폐질환으로 죽어가자 황급히 질병관리본부에 새로운 감염병 유행이 의심스럽다고 하며 역학조사 신고를 했다. 2011년이 아니라 만약 골든타임에 방역당국에게 원인을 밝혀내주도록 역학조사 신고를 했더라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 사망자의 90% 가까이가 2006년 이후 숨졌기 때문이다.

나중에 실체가 밝혀진 이 참사를 가장 먼저 인지하였던 집단은 대학병원 소아과 의사들이었다. 2006년 봄철에 서울시내 대형병원에는 3~7명의 호흡곤란 증후군 소아 환자들이 찾아왔다. 기존의 소아 간질성 폐렴과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 치료가 잘 되지 않았다. 사망률이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었다. 이들은 원인을 밝혀내려 했으나 실패했다.

판도라 상자 열어젖힌 소아과 의사, 재앙을 못보다

소아과 의사들은 자신들이 살펴보고 그 원인을 추적한 원인미상 소아간질성 폐렴(지금은 가습기살균제 폐손상 질환)에 대해 대한소아과학회지에 2008년 '2006년 초에 유행한 소아 급성 간질성폐렴', 2009년 '급성 간질성 폐렴의 전국적 조사'란 제목의 논문을 각각 실었다. 2008년 논문은 서울대병원 박준동 교수가 책임저자였고 2009년 논문은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가 책임저자였다. 이들은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2006년 봄에 발생한 급성 간질성 폐렴 군은 일부 바이러스감염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며, 폐종격동 및 폐기흉을 동반하는 특징을 보이며 급속히 진행하여 높은 사망률과 합병증을 보이므로 조기에 적극적인 조직검사와 고농도 스테로이드 치료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이에 저자들은 국내에서 계절적으로 봄철에 발생한 소아 급성 간질성폐렴의 원인과 그 치료에 대한 전국적인 규모의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며, 앞으로도 국내에서 이러한 환자들의 발생이 우려되는 바 이 질환에 대한 의료인의 인지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2008년 논문)."

2008년 논문에서는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으로 바이러스 감염을 의심했다. 하지만 특정 바이러스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전국적인 규모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계속해서 국내에서 이러한 환자들의 발생이 우려된다고도 했다, 돌이켜보더라도 정확한 예측이었다. 이 질환에 대한 의료인의 인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인미상 간질성 폐렴이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자 첫 논문에서 밝힌 대로 전국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봄철에 어린 소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급성 간질성 폐렴이 사망률이 매우 높으며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급성기를 지나면 이미 폐섬유화가 진행되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기발견을 위해 의사들이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전국적인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전향적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최근 국내에서 봄철에 어린 소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급성 간질성 폐렴은 사망률이 매우 높은 질환으로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다. 급성기를 지나면 이미 폐섬유화가 진행되어 비가역적인 폐손상이 진행되기 때문에 앞으로 이러한 환자들을조기에 발견하기 위해서 의료진의 특별한 관심이 촉구되고 있으며, 원인 규명과 치료법 연구를 위해서 전국적인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전향적 공동연구가 필요하며, 급성 간질성 폐렴 발병시 조기에 인지하고 경보하며, 적절한 후송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의료인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2009년 논문)."

2009년 논문에는 흥미로운 저자가 등장한다. 국립보건연구원 인플루엔자바이러스 과장 등 두 명의 연구직 공무원이 저자로 등재됐다. 앞서 2006~7년 원인 규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원인이 나오지 않자 바이러스 분석에 관한한 최고 권위와 경험을 지닌 질병관리본부의 국립보건연구원에 환자 검체 분석을 의뢰해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홍 교수가 이들을 공동저자로 넣은 것이다.

▲28일 서울시청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몇 년간 오직 바이러스에만 매달리다 골든타임 놓쳐

이러한 전방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명 한계와 의문점이 있다. 의사들의 인지와 관심만 필요하다고 했지 왜 보건소나 질병관리본부에 역학조사 신고를 하지 않았는가 하는 대목이다. 이들은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을 의심했다. 2005년부터 과거에는 보지 못한 몇몇 바이러스 감염병이 문제가 된 시기여서, 그리고 간질성 폐질환의 주 원인이 바이러스 등 미생물 요인이어서 이런 의심은 충분히 할만하다.

하지만 국립보건연구원의 베테랑 바이러스 분석전문가까지 동원해 원인 바이러스를 특정할 수 없었더라면 가습기살균제를 비롯한 환경 요인을 의심해볼만 한데 그러질 않았다. 또 소아과 의사들만의 노력으로 원인을 밝혀내기 어려웠다고 하면 역학조사를 최종 책임지고 있는 질병관리본부에 신고를 할 만한데 그러지 않은 것이 의문이다.

소아과 의사들, 치료에 주로 관심, 환경요인에는 무관심한 탓도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하나는 소아과 의사들이 치료에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 질병의 원인으로 바이러스 등은 쉽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환경 요인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평소 관심을 가지질 않아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세계적으로 발생하거나 유행한 적이 없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 그것도 사망률이 매우 높은 질환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의학 분야에서 대단한 업적이 되기 때문에 이를 공개적인 역학조사 신고를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들만의 힘으로 밝혀내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직 아무도 가타부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홍수종·박준동 교수는 청문회 출석과 특조위 조사를 통해 이 가운데 첫 번째 이유를 대고 있다. 의대 시절 환경요인에 의한 질환이나 환경성 질환에 대해 사실상 배운 적이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또 그 뒤 의사로 활동하면서도 환경요인에 대한 관심을 자신들은 물론이고 동료 소아과 의사들도 최근까지 거의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역학 신고에 대해서도 익숙지 않은 일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대학병원 등에서 법정 감염병이 아닌 원인 미상 질환 내지는 의심되는 감염병 환자를 진료하고 보건소나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2011년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질본에 처음 신고를 한 것도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역학 신고의 중요성이 널리 퍼진 것은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과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부터다.

50년 전 미나마타병 괴질환자 진료 열흘 만에 병원장이 보건소 신고

여기서 우리는 일본의 미나마타병과 같은 세계적 환경병과 20세기 최악의 의약품 독성(약화) 참사인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염된 물고기를 바닷가 특정 지역 주민들이 장기간 먹고 발생한 유기수은 중독 사건인 미나마타병 참사는 1956년 발생했다. 탈리도마이드 참사는 1961년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보다 50년 이상 전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미나마타병은 1956년 4월21일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 신일본질소공장 주변 어린이 한 명이 이 공장 부속병원에 말을 잘 못하고 부자연스런 걸음걸이로 찾아오면서 물위로 떠올랐다. 당시 담당 의사는 문진을 한 결과 집에 다른 형제도 같은 증상을 겪는다고 해 마을을 찾아가 지역사회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몇몇 집에서 유사 어린이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를 보고받은 병원장은 5월1일 즉각 미나마타보건소에 괴질의 원인을 밝혀달라며 역학조사 요청을 했다. 잘 알지 모르는 식중독이나 감염병이 유행한 결과라면 큰일이다 싶어 바로 신고한 것이다. 그 정확한 원인은 3년이 지난 뒤 구마모토 의대가 밝혀냈지만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에 방역당국에 신고가 된 것이다. 미나마타병 참사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같은 골든타임 문제가 없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 독일 소아과 의사가 논문 대신 신문에 기고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1961년 독일 함부르크의 소아과의사가 1년간 추적한 끝에 탈리도마이드 때문에 중증 기형아가 대거 발생한다고 판단해 이를 곧 바로 한 주간지에 자세한 내용을 담은 칼럼을 기고했다. 관련 내용이 주간지에 실린 지 며칠 뒤 독일은 곧바로 탈리도마이드 판매금지를 시켰다. 영국 등 이 약을 시판하고 있던 다른 46개국도 차례를 이약의 판매를 중단시켰다.

탈리도마이드는 독일의 한 제약회사가 진정제(수면제) 용도로 시판했다가 입덧완화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임신부들이 이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1958~60년 한두 건의 특이한 중중기형아 발생을 의사들이 학술지에 몇 차례 보고했지만 탈리도마이드와의 연관성을 확실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이때 비둔킨트 렌츠라는 한 영웅이 나타난다.

여동생과 자신이 중증기형아를 낳은 한 젊은 변호사와 함께 그는 기형 발생의 원인을 탈리도마이드로 의심하고 1960년부터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사례를 수집했다. 그리고 충분히 증거가 모아졌다고 판단해 이를 논문으로 내지 않고 1961년 곧바로 언론을 통해 알렸다. 이런 유형의 재난을 모두에게 가장 빠르게 잘 알릴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50년 전에도 이처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참사를 세상에 알린 사건들이 있었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2000년대의 대한민국에서는 미나마타병과 탈리도마이드 사건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소아과 의사들은 보건소나 질본에 알리지도 않았고 언론에도 알리지 않았다. 그들이 택한 선택은 논문을 쓰는 것이었다. 이 논문은 같은 임상과목의 의사들에게만 영향을 미쳤다. 정부, 다른 전문가, 언론 등 어느 누구도 이 논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골든타임은 그렇게 안타깝게 흘러갔다.

'가짜 의인' 홍수종 교수, 역사의 진실 밝히는데 용기 내시길

그런데도 골든타임을 놓친 의사에게 일부 신문과 방송은 '의인' 내지는 '영웅' 칭호를 붙였다. 왜곡 내지는 가짜 뉴스이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질본이 2006년부터 줄곧 역학조사 신고를 받고도 직무유기를 한 것 아니냐며 관련 공무원, 즉 강춘 과장을 상대로 따져 물었다고 한다. 물론 강 과장은 부인했다. 2016년 국회 국정조사에서도 의원들은 검찰과 비슷하게 따졌다. 사실과 다른 것을 따졌으니 소득이 있을 리 없다.

이와 관련해 박준동 교수는 이번 청문회와 최근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사업단이 내는 회보지에서 당시 역학조사 신고를 하지 않은 일과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것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의 글을 진솔하게 남겼다. 하지만 언론으로부터 '의인' 칭호를 받은 홍수종 교수는 강 과장을 비롯한 질본이 골든타임을 놓친 원흉으로 몰리고 있을 때 아무런 해명을 내놓지 않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장재연 아주대 의대 교수는 몇 년 전 칼럼을 통해 우리 언론의 일그러진 행태, 즉 가장 기초적인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엉뚱한 사람을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영웅으로 만들기에 혈안이 되고 참사의 원인을 밝혀낸 일등공신인 질본을 폄훼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당시 '의인'으로 추어올려야 할 사람은 최상호 교수를 비롯한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들인데 홍 교수가 나몰라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지금이라도 자신이 질본이나 강 과장에게 역학조사 신고를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론에 당당하게 밝히고 언론이 바로잡도록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홍 교수는 자신에게 붙여진 '가습기 살균제 의인' 칭호와 자신이 질본에 역학신고를 했다는 것이 허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를 바로잡을 기회가 그동안 없었다고 해명했다. 8년 동안 해명할 기회가 단 한 번도 없었는지는 의문이다.

홍 교수는 지난 2015년 환경부로부터 화학물질 부문(가습기살균제 질환) 환경보건센터로 지정받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이 센터장으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피해구제위원회 등 가습기살균제 관련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또 가습기살균제 관련 각종 연구결과를 국내외 학술지에 적극 발표해오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과 관련한 언론의 왜곡·오보, 즉 골든타임을 놓친 사실과 '가습기살균제 의인' 등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지금이라도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용기를 내는 것이 진정한 의사와 전문가의 자세가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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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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