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민 수백만 명이 '범죄인 인도 협정'(송환법) 철폐와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시위를 벌인 지 3개월에 육박하면서 사태가 중대한 분수령을 맞고 있다.
마침내 중국 정부가 홍콩 정부를 움직여 군대를 동원한 시위 진압 등 초강경 대응을 시사하는 전단계 조치에 돌입했다.
30일 홍콩 경찰은 31일 홍콩 도심 센트럴 차터가든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집회와 행진을 모두 불허하고, 주요 시위 주도자 3명을 전격 체포했다. 이 조치로 홍콩 시위를 주도해온 홍콩 범민주파 연합단체 '민간인권전선'은 '안전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집회를 전격 취소했다. 지난 6월 9일 시위가 시작된 이래 홍콩 당국이 집회를 허가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며 시위 주도자들까지 체포되자, 집회 주최측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체포, 백색테러... 결국 31일 집회 취소
집회가 예정됐던 31일은 중국 정부가 1997년 영국과 맺은 홍콩 주권반환 협정에 규정된 행정정관 직선제 약속을 어기고 간선제를 강행한 지 5년째 되는 날이다. 또한 다음 달 개학을 앞두고 학생들까지 시위에 참가할 수 있는 마지막 날로 대규모 집회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홍콩 당국은 사실상 계엄령인 '긴급상황규례조례(긴급법)' 발동도 검토 중이다. 이 조례는 국가가 비상상황에 처했을 때 행정장관이 직권으로 체포나 추방, 압수수색, 재산 몰수, 출판·통신·운수 제한 등의 조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30일 사설을 통해 홍콩 시위를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 근본을 흔드는 도전이자 폭도로 규정해 중국 정부가 결코 시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경고했다.
홍콩 경찰이 체포한 3명의 시위 주도자는 조슈아 웡, 앤디 챈, 아그네스 차우 등 3명이다. 웡이 창당한 데모시스토 정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웡이 이날 오전 7시 30분께 지하철역으로 이동 중 갑자기 나타난 차에 끌려갔다고 발표했다. 웡은 현재 완차이 경찰 본부로 호송됐으며, 세 가지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웡은 2014년 79일 지속된 대규모 시위인 '우산혁명'을 이끈 핵심 인사로, 당시 17세의 나이로 홍콩의 직선제를 요구하는데 앞장서왔다. 이후 시위대 해산 방해, 폭동 조장, 법정 모독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며 지난 6월 출소한 직후 시위 참가를 선언했다. 현재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시위 현황을 해외에 알리는 시위대의 '얼굴' 역할을 맡고 있다.
같은 데모시스토 소속으로 시위대를 이끈 차우도 이날 아침 자택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데모시스토를 공동 창당한 네이선 라우는 성명을 내고 차우가 완차이 경찰 본부로 호송됐다고 말했다.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며 홍콩민족당을 창당한 챈 역시 29일 홍콩 공항에서 체포됐다.
시위 지도부 인사들에 대한 '백색테러'로 의심되는 사건들도 잇따랐다. 이날 홍콩 민간인권전선 지미 샴 대표는 마스크를 쓴 괴한 두 명에게 공격당하고, 위안랑 구에서 시위를 주도한 맥스 청 역시 이날 4명의 괴한에게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의 시민운동가 조셉 챙은 "지난 4~5일 당국이 주요 시민 운동가를 잇달아 체포했다"면서 "오는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70주년 국경절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려는 중국 당국이 (홍콩)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CNN은 중국 당국이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에게 "10월1일까지 시위를 진압하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홍콩 당국이 주말 시위를 불허하고 주요 시위 주도자를 체포하면서 유혈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이미 홍콩 시위대는 소셜미디어와 메신저 등을 이용해 다음 달 1~2일 란타우 섬의 홍콩국제공항으로 모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9월 신학기를 맞아 홍콩의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들은 동맹 휴학 및 수업 거부 등의 반대 시위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9월 2~3일에는 의료·항공·건축·금융 등 21개 업종 종사자들이 참여하는 총파업이 예정되어 있다.
반면 중국 정부가 무장 병력을 투입할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홍콩 주둔 부대를 교체하고 '주권 수호'를 선언하면서 중국 군 병력 수송용 장갑차와 트럭이 홍콩과 광둥성 선전 접경 지역을 통과하는 사진을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공개했다. 또한 홍콩에서 10분 거리인 광둥성 선전에 인민해방군 소속 무장경찰 수천 명을 대기시켜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물대포를 이용한 폭동 진압 훈련에 나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1일 시위의 상징적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이날 집회를 금지한 경찰의 조치는 더 큰 혼란과 소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민간인권전선도 "홍콩 정부의 시위 불허 결정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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