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우파 연합이 위헌 논란이 일고 있는 ‘독점 언론법’을 통과시켜 파문이 일고 있다. 이미 이탈리아 언론의 95% 가량을 지배하고 있는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번 법안 통과로 언론 독점을 더욱 공고히 유지하게 됐다.
미디어전문가들은 유럽연합내에서 언론자유도에서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언론종속현상이 이번 법안 통과를 계기로 한층 심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탈리아 우파 연합, 의회서 언론독점 강화 법안 통과시켜**
2일(현지시간)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중도 우파가 지배하고 있는 이탈리아 의회는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지배하고 있는 언론그룹에 유리한 내용의 언론법안을 상당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1백55표 찬성, 1백28표 반대로 통과시켰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일명 ‘가스파리’ 법안으로 불리는 이 언론법안은 여러 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부 조항은 이탈리아 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내용까지 있어 더욱 논란이 거세다.
이탈리아 법원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미디어세트’가 지배하고 있는 세 개의 TV 방송사 가운데 한 곳을 올해 말까지 매각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으나 이 법안은 총리가 소유하고 있는 3개 민영 TV 채널 가운데 레테 4를 내달 말까지 위성방송 채널로 전환하는 것을 허용해 위헌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총리 소유 미디어그룹에 다양한 특혜 제공 논란**
특혜 논란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법안에는 2009년까지 방송과 신문 시장의 교차 소유를 허용함으로써 언론소유 제한을 완화, 이미 독과점 사업자인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이끌고 있는 미디어그룹이 또다시 라디오와 신문사를 사들일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가스파리 법안’은 또 TV 광고 한도를 확대시키는 내용도 담고 있다. 현행 법안에 따르면 매시간 마다 20분의 상업광고시간이 허용되고 있는데 이번 법안에는 이를 더욱 늘리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이미 광고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베를루스코니 총리 가족의 지주회사인 피닌베스트사가 더욱 막강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이 법안은 공영방송사인 RAI의 사유화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는 지경이다. 그러한 비판에는 루치아 아난지아타 RAI 공영방송 대표도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난지아타 대표는 만일 이 법안이 통과되면 사임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언해 왔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탈리아내 최대 언론 재벌로, 그의 가족이 소유한 미디어만 해도 ‘일 조르날레’를 비롯한 여러 개의 일간지 및 잡지사 외에 이탈리아 1, 레테 4, 카날레 5 등 3개의 민영방송사(미디어세트)에 이르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우파 연합을 통해 공영방송인 RAI도 간접적으로 통제하고 있어 이탈리아 언론의 95% 가량이 그의 통제아래 놓여 있는데 “이번 법안 통과로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언론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게 됐다”고 영국 BBC 방송은 분석했다.
***중도 좌파, “이번 법안은 총리 가족 이익만을 위한 법”**
이탈리아에 2001년 우파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언론법 수정을 공언해 온 이후 2002년 9월 그 모습을 드러냈다가 상당한 비판에 직면, 올해 들어서야 가까스로 통과된 이 법안에 대해서 언론인들과 중도 좌파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이들은 “이번 법안은 베를루스코니 총리 가족의 이익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며 방송의 다원화를 저해한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카를로 아젬피 참피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강하게 요구했다.
마게리타 중도좌파 정당 지도자인 파올로 겐틸로니도 “오늘부로 우리는 이제 자유를 잃게 됐으며 방송사간 경쟁도 줄어들고 프로그램 질도 떨어지며 다원적이고 진보적인 목소리는 제한되는 만큼 우리 방송 체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고 강하게 우려했다.
영국의 가디언지도 “이번 법안 통과에 대해 방송을 미디어 재벌인 총리에게 넘겨주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보도하기도 했다.
***총리측, “매우 만족” - 전국적인 규모의 반대 시위 우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 총리 측의 반응은 상반된다.
우선 중도 우파 정당들은 “이번 법안으로 경색돼 있던 언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됐다”며 “그동안 보호만 받던 이탈리아 언론 산업은 이제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됐으며 디지털 방송을 위한 시간표를 마련하게 됐다”고 환영을 표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 딸이자 피닌베스트 회장인 마리나 베를루스코니도 법안이 통과된 이후 “매우 기쁘다”며 “이번 법안은 이탈리아 전체 언론체제를 위해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총리 소유 방송사인 미디어세트 회장인 페델로 콘팔로니에리는 “매우 만족하지만 이번 법안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일 장일뿐”이라며 “바로 내일에는 이탈리아 총리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작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실제로 이법 법안 통과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가 3일 저녁에 있을 예정이다.
그동안 이탈리아 언론들은 한 개인의 지배 하에서 사실보도를 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번 법안 통과로 인해서 그러한 비판과 우려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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