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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루스코니의 '국민 장님만들기'

90% 언론 소유, '나치 발언' 이탈리아만 몰라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유럽연합 순번의장직 취임연설 도중 행한 '나치 앞잡이'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정작 이탈리아 국내에서는 제대로 보도가 되고 있지 않아 또 한번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90% 가까이를 장악하고 있는 이탈리아 언론사들이 그의 망언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정작 이탈리아 국민은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미디어 언론재벌이 정권을 잡았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언론조작'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탈리아 국민, 눈 뜬 장님 신세**

이탈리아의 좌익 성향 신문인 '라 레푸블리카'는 지난 3일(현지시간) 1면 머리기사로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장악하고 있는 공영TV와 3개의 민영채널이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유럽의회 의장취임연설에서 행한 '무례한 발언'을 삭제하거나 완화하여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의 편집장인 쿠르지오 말티세(Curzio Maltese)는 "공영방송과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소유한 3개의 민영방송은 총리의 '나치 앞잡이' 발언을 보도하기보다는 이를 숨기거나 검열을 통해 삭제했다"면서 "국제면 기사에서는 이번 논란을 독일출신 유럽 사회민주당 소속 마르틴 슐츠 의원의 베를루스코니 비난 발언으로 인해 촉발된 사건으로만 왜곡보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공중파 방송들이 이렇게 보도하자 일반 이탈리아 국민은 독일을 비롯한 여러국가 장관들이 '그러한 사소한 일'에 흥분하는지 이해하질 못하고 있다"고 언론조작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지난 2일 유럽의회 취임연설도중 슐츠 의원의 비난을 반박하면서 슐츠의원을 "나치 시대를 그린 영화 속의 나치 강제수용소 카포(다른 수감자를 감독하는 나치부역자) 역할에 완벽히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매도해 유럽 여러 나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공영방송 및 공중파 방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문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결국 방송사 담당자들은 다음주 의회내 방송표준위원회에 소환될 것으로 알려졌다.

***베를루스코니 총리, 이탈리아언론 90% 통제**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탈리아내 최대 언론재벌로, 그의 가족이 소유한 미디어만 해도 '일 조르날레'를 비롯한 여러 개의 일간지 및 잡지사외에 3개의 민영 방송사('미디어세트')에 이르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우파 연합을 통해 공영방송인 RAI도 간접적으로 통제하고 있어 이탈리아 언론의 90%가량이 그의 통제아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5일(현지시간) 이번 사건과 관련, 언론 통제가 가능한 이유는 언론인들이 총리를 심하게 비판하면 직장을 잃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젖어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라 레푸블리카의'쿠르지오 말티세 편집장은 이와 관련, "미국 부시 대통령은 전쟁에 관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을 받고 있고 블레어 영국총리의 문제도 공영방송인 BBC에 의해서 폭로되었다"며 "하지만 베를루스코니의 이탈리아에선 국민들은 사실을 모르고 있고 알아서도 안 된다. 이에 따라서 그들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지난달 10일 이탈리아 언론인들은 최대 일간신문인 '일 코리에레 델라세라'의 편집국장인 페루치오 데 보르톨리의 전격적 해임과 관련해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하루동안 총파업을 벌인 적이 있다. 그 당시 이탈리아 언론계에서는 보르톨리 국장이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연루된 부패사건에 대한 비판적 논조로 인해 사임압력을 받아왔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은 언론이 한 개인에게 집중됐을 때 한 나라가 얼마나 '퇴행'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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