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등교 거부밖에 없어요."
"징계가 무섭지 않아요?"
"아니, 우리 미래가 달렸는데 지금 징계가 문제에요?"
부안중학교 2학년 2반 아이들은 할 말이 많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무시하고 부안의 분노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 언론의 편파적 보도, "이젠 귀신보다도 더 무섭다"는 전경의 폭력과 횡포, 핵폐기장의 문제점과 현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까지 모든 문제가 학생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그동안 이 싸움을 겪으며 부안 학생들은 너무 많이 커버린 듯싶었다.
"법이 너무 불공평한 것 같아요. 군민들이 잘하라고 뽑은 군수, 잘못하면 끌어내릴 수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 이렇게 억울하고 힘든데 법의 이름으로 우리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게 너무 이상해요."
***"전경이 임산부 때리는 거 보고 충격받았어요"**
'경찰 계엄' 상태에서 아이들은 너무나 많은 폭력을 목격했다.
"전경들이 읍내 가운데서 사방으로 통하는 길을 막고 서 있어 지나가지도 못하게 해요. 그래서 어제 새벽 2시에나 집에 갔어요."
"친구가 전경이 던진 맥주병에 맞았어요. 전경들이 이제 자기네도 화나니깐 잡히면 학생이고 할아버지고 안 가리고 막 때려요. 시내에 서 있기만 해도 노려보면서 '너 맞기 전에 빨리 가라'고 위협해요."
"어제(20일) 연단 뜯어낼 때 우리가 자진해서 해산하는데 전경들이 괜히 시비걸어서 먼저 때렸어요. 어른들이 막 따지니깐 방패로 밀어 붙였고요."
"어제 병원 앞을 전경들이 막고 서 있었거든요. 임산부가 산부인과로 들어가려고 비켜달라고 소리지르자 전경이 임산부 머리를 확 쳤어요. 남편이 항의하다가 전경들에게 맞아서 흘린 피가 임산부 옷에도 튈 정도였어요. 끝까지 안 비켜주더라구요. 임산부를 때리고 병원에까지 못 들어가게 하는 건 정말, 그건 정말...안 되는 것 아니에요?"
***"전경의 다친 손가락은 나오면서 전경 방패에 찍힌 군민들의 머리는 왜 안 나와요?"**
아이들은 뉴스를 보면 너무 화가 난다고 입을 모았다.
"정확하게 보도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제일 정직해야 되는 게 뉴스 아니에요? 많이 바라지도 않아요. 전경이 다친 게 나오면 군민들이 다친 것도 나와야죠. 전경 1명 다쳤을 때 군민은 10명 다쳤는데."
"언론은 우리를 폭도로 몰잖아요. <피디 수첩>같은 데서 가끔 정확하게 보도하면 뭐해요? 뉴스가 일상생활이잖아요. 여기서 제대로 나와야죠."
"처음엔 어른들이 싸웠거든요. 근데 그저껜 할머니들이 전경한테 막 맞으니깐 고등학교 형들이 파이프 들고 싸웠어요.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말려도 막 나서서 화염병도 던지고."
"1천번대 부대들이 제일 무서워요. 방패가 막 날라다녀요. 평화시위하고 싶어도 시위 자체를 할 수 없게 해요. 처음엔 군청 앞으로 가는 걸 막는 것만 하는데 요즘 전경 목적은 '해산'이에요."
***온라인 대책회의서 의견교환 활발,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 것"**
"지난 번에 등교거부했을 땐 솔직히 별 생각 없었거든요. 어른들이 핵폐기장이 왜 나쁜지 얘기할 때 그냥 그런가보다 했죠. 그런데 이젠 아니에요. 정부가 제일 위협적으로 느끼는 게 등교거부인 것 같아요. 시위만으로는 별 효과가 없어요. 이제 하지도 못하고. 등교거부하면 방학 없어질 수 있다고 해도 애들끼리 방학 별로 신경 안 써요. 이 바닥에 지금 방학 찾게 생겼어요?"
"까페(온라인 커뮤니티)에다가 시위나갔던 얘기, 전경한테 맞은 얘기 다 올려요. 특히 버디버디(메신저)에서 주로 만나죠. 며칠 전부터 등교거부 얘기가 나와서 막 하자는 분위기에요."
"시간 끌면 정부만 유리해요. 정부가 돈이 많으니깐 마을이장한테 돈 줘서 그 돈으로 찬성 만들어내요. 이장이 찬성 도장 찍으러 다니면서 도장 안 찍어주면 오히려 화내요. 부안이 발전한다는데 왜 협조 안하냐면서."
***"부안만 안되는 게 아니라 다른 데도 안되요. 핵폐기장은 어디에도 지으면 안되요"**
"지금 부안은 왕따에요. 다른 지역에서는 부안문제에 관심없어요. 웬만하면 지으라고 하고요. 찬성이에요. 저번에 전주 사는 삼촌이 뉴스 보고나서 '부안 군민들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길래 제가 물어봤죠. '아니 삼촌네 동네에 핵폐기장 짓는다면 어쩌겠냐고.' '그럼 안된다'고 펄쩍 뛰더라구요"
"풍력이나 태양력이나 좀 다른 에너지 개발을 위해 투자도 하고 장기적으로 연구도 장려했으면 좋겠어요. 왜 쓰레기가 나오는 에너지를 써야 돼요? 우선 당장은 원래 쓰던 전기 쓰더라도 그동안 연구는 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원래 에너지 문제같은 건 관심도 없었어요. 다른 지역에 가서 제가 핵폐기장 얘기 하면 애들이 '와. 너 전문가다' 그래요. 이런 일 안 겪었으면 여전히 관심없었을 거에요. 놀기 바쁘지 이런 고민 왜 해요?"
"벌써 부안하면 핵폐기장으로 딱 인식되는 것 같아요. 농협이 부안 쌀계약도 취소하고 위도 멸치도 수협에서 안 받아서 한수원이 대신 사줬어요."
기자가 그런 일도 있었느냐고 묻자 학생들은 대뜸 "그것도 몰랐어요?"하며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 있느냐'는 원망과 불신이 내비쳤다.
"관광객도 안오고 가게는 맨날 닫으니 시장도 정말 썰렁해요. 저희 부모님도 요즘 수입이 없어 너무 걱정하세요."
학생들은 눈에 띄게 줄어든 관광객과 농산물 판매를 걱정했고, 대안에너지를 고민했지만 신기하리만치 '승리'를 확신했다.
"결국 주민들이 이길 거에요. 이기게 돼있어요. 그런 희망이 있어야 싸우죠. 누르려고 하면 더 일어나요. 핵폐기장은 절대 안된다는 뜻은 변함없으니깐요."
이번 중학생과 만남은 부안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명희 선생님의 도움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다음은 김명희 선생님과의 인터뷰 전문.
***김명희 선생님 인터뷰**
프레시안 : 아이들이 이번 위도 핵폐기물처리장 문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식견에 놀랐다. 학교에서 따로 반핵 교육을 실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세하게 듣고 싶다.
김명희 선생님 : 처음 핵폐기물처리장이 부지 선정됐을 때만 해도, 학교에서 전면적인 반핵 교육이 실시되지는 않았다. 일부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핵폐기물처리장의 위험성과 부지 선정 과정의 문제점을 개인적으로 판단해 알리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부안 주민의 반대가 시작되면서 교사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단순히 반핵 교육을 넘어서, 대안에너지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강조를 같이 했다. 오늘 아이들을 보면 그 교육의 성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등교거부를 통해 교사들의 인식 크게 변해**
프레시안 :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반핵 교육에 부정적인 동료들은 없었나?
선생님 :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방학 후, 아이들의 등교거부였다. 그 일로 모든 것이 변했다. 부안 지역 교사들 중 전주, 김제에서 출퇴근을 하는 교사들의 변화가 단적인 예일 것이다. 그들은 등교거부 전에는 부안 주민들이나 부안에 거주하는 교사들의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움직임에 거리를 두었다. 아이들이 등교거부를 시작하면서, 많은 교사들은 핵폐기물처리장 문제를 부안 주민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프레시안 : 학교에서 현실적으로 그런 변화가 두드러지는가?
선생님 : 그렇다. 등교거부 전만 해도 학교에서 핵폐기물처리장 문제점을 성토하는 교사들은 대부분 부안 지역 거주자들이었다. 하지만 등교거부 후에는 매일 촛불집회에 나가느라 힘들어하는 부안 지역 교사들 대신, 타지역에서 출퇴근하는 교사들이 오히려 더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곤 한다.
현재 부안 지역에 교사들이 총 7백여명 정도되는데, 지난번 '핵폐기물처리장의 문제점' 서명에 이틀만에 5백여명이 참가했다.
프레시안 : 교사들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부안 지역의 그런 모습은 독특하다. 교사들의 전교조 조직률이 높은 것과 같은 다른 이유가 있을 법하다.
선생님 : 그렇지 않다. 현재 부안 지역 교사들 중 전교조에 가입된 사람은 2백여명 정도로 알고 있다. 대략 30% 정도에 불과하다. 반핵 운동을 주도하는 교사들의 상당수는 부안 지역 거주자로서, 위도 핵폐기물처리장 문제를 자기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안에서 전교조, 비전교조 같은 구분은 무의미하다. 다만 전교조 교사들이 상대적으로 더 열심히 활동하는 경우가 일부 관찰되기도 한다.
***지역의 문제 보듬는 학교와 교육 이뤄져야**
프레시안 : 등교거부가 교사들의 인식 전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등교거부에 대해서 사회 일각에서는 꽤 부정적인 여론이 존재한다. 당시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겨레> 등에서도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와 사설 등을 내보냈다. 이런 부정적인 여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생님 : 한번 생각해보자. 나는 교육 현장인 학교가 사회와 명확하게 분리된 특별한 장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부모들이 생업을 전폐하고 매일 촛불을 들고 '핵폐기물처리장 반대'를 외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아무일 없다는 듯이 교육을 하는 것이 더 비정상적이다.
확신하건대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과서와 교사를 통해서 배우는 것만큼이나 삶의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이번 일로 우리 아이들은 민주주의, 자치, 생명에 대한 인식의 폭을 확장할 기회를 가졌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등교거부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의 행태는 매우 우습다. 그들이 언제 그렇게 공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는가?
(그때 인터뷰를 듣고 있던 박인춘 선생님이 의견을 덧붙였다. 박인춘 선생님도 부안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박인춘 선생님 : 김명희 선생님 의견에 동의한다. 한 가지 먼저 지적하자. 아이들이 등교 거부를 할 때, 전주에서도 일부 학교의 수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주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행사 준비에 아이들이 동원된 것이다. 이런 일상적인 수업권 침해야말로 문제 아닌가?
옛날 TV에서 방영됐던 <천사들의 합창>이란 외화가 생각난다. 그 외화 속 교사는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그들의 부모들인 지역 주민들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 학교와 교사들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부족하나마 부안 지역에서는 이런 대안적 흐름이 등장했다.
더구나 아이들을 봐라. 놀랄 만큼 똑똑해졌다. 당신도 봤지 않는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이번 일로 배운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갈 몇십년에서 한두 달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일상에서 벗어난 한두 달 동안 더 값진 경험을 했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아이들, 경찰의 폭력에 크게 분노하고 있어**
프레시안 : 주장에 공감한다. 지금 부안을 둘러싼 상황이 심각하다. 또다시 부안 주민들이 등교거부에 나설 가능성은 있는가?
선생님 : 당장은 최대한 자제할 것이다. 하지만 등교거부가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주민들은 잘 알고 있다. 정부가 부안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당장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최선이다.
프레시안 : 건물 방화같은 일부 주민들의 극렬 시위가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아이들이 이런 폭력적인 방법에 대해서 혼란을 느끼지 않는가?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가?
선생님 : 아이들 누구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혼란스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부모들이 매일 경찰에게 폭행당하고, 방패에 찍혀 병원에 실려가고 있다. 또 늘 정부와 대통령으로부터 기만당하고 있다. 오히려 아이들은 왜 좀더 저항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다. 오늘 얘기를 들어서 잘 알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은 분노하고 있다.
***선거 행위 자체에 불신 생겨나**
프레시안 : 교사들은 지역 사회의 중요한 여론 주도층이다.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는가?
선생님 : 내 일생에서 가장 실패한 선택 중 하나다. 부안 주민들은 물론이고, 부안 지역 교사들 대부분도 그를 선택한 것에 후회한다.
프레시안 : 각 정당들이나 정치인들의 소극적인 대응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생님 : 솔직히 부안 지역의 정치적 정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당에 가깝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오랫동안 쌓여왔고, 그 대안으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부안 주민들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우리당에서도 마음이 돌아서고 있다.
덕분에 그나마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입장에 동조하고 있는 민주당으로 주민들의 마음이 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당도 아니다. 그 많은 의원으로 한 게 뭐가 있는가?
프레시안 : 이번 일로 최대의 수혜자는 부안이 지역구인 민주당의 정균환 의원이 될 것 같다.
선생님 : 그럴 가능성이 크다. 더 확실한 것은 나를 포함한 많은 주민들이 선거 행위 자체에 심각한 회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쁜 마음으로 노대통령을 지지하고 당선됐을 때 그렇게 들떠했었는데, 배신감이 너무 크다.
***반드시 부안 주민들이 이겨**
프레시안 : 현 부안 사태가 어떻게 될 것 같나? 노무현 대통령은 계속 사실상 강행 입장이다.
선생님 : 솔직히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부안 지역 교사들과 부안 주민들의 심정이다.
이번 싸움은 반드시 부안 주민들이 이긴다. 도덕적 정당성은 물론이고, 주민들은 현실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보여줄 것이다. 이번 싸움에 꼭 이겨서, 아이들에게 교과서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소중한 가치를 가르쳐주겠다. 민주주의와 자치, 생명 사랑의 힘을 가르쳐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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