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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무슨 책을 읽는지 학교가 알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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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무슨 책을 읽는지 학교가 알아야 할까?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독서 이력을 기록하고 입시에 활용하는 것은 인권 문제다

2017년 울산에서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일 때였다.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주의, 청소년인권 등 인권 관련 책들을 읽은 독서 내역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했다. 하지만 교사를 찾아가 이러한 독서 내역을 기록해달라고 하자, 당시에도 그 교사는 '이런 책은 안 적는 게 좋지 않을까, 대학에서 싫어할 텐데' 등의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나의 사상과 가치를 존중해주는 대학을 갈 것이라며 그냥 적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주체성보다 대학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교사의 태도를 보게 된 후,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 교사에게 의견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몇 개의 대학에 생활기록부 전체 내용과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그중 한 대학에서 1차 서류 심사는 통과하고 2차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나는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한다는 것이 이미 서류를 통해 드러난 나의 사상을 대학에서 존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안심하고 면접을 보러 갔다. 그러나 면접 내내 한 교수가 다른 질문은 하나도 묻지 않은 채, 내가 읽은 책에 대한 질문만 했다. 그 질문조차도 책 내용과 관련된 것을 묻는 것이 아닌, "울산이 근로자들의 임금이 가장 높은 지역인데,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 책은 왜 읽었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울산에서도 임금이 높은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니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똑같이 열악한 노동 조건이다"라고 답했지만,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는 답변을 돌려받았다.


나는 당시 학교생활규정 개정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시킬 것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며 학교와 마찰을 빚고 있었다. 몇몇 교사들에게 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교사들은 나의 동의도 없이 나의 대학 입시 준비 과정을 서로 공유하고 놀림거리로 삼았다. 나는 교사들로부터 '무슨 대학을 갈 거냐, 정치인 할 거냐, 너 같은 애를 좋아할 대학은 없다, 사회에 참 관심이 많은데 그건 공부 열심히 한 뒤 나중에 하는 것이다' 등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학생들의 사상이 드러나는 사항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고 대학 입시에서 그런 것이 드러나지만, 학교에서도 입시 과정에서도 딱히 학생들의 사상을 존중하려 하거나 개인 정보를 보호하려 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대학에 맞춰 자신을 포장해야 하는 부담감

작게는 독서 경험, 크게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이나 사상을 생활기록부에 드러낼 것이냐 여부를 놓고 스스로 그리고 학교 측과 갈등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주변 친구들,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다른 지역 학생들 또한 혹시나 대학 입시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진 않을까 걱정하며 비슷한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SNS에는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이 대학 입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요?' 등의 질문들이 여럿 올라왔고, 실제로 특정 독서 기록이나 동아리 활동 기록을 생활기록부에서 지워달라고 교사를 찾아가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대학 입시 제도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됨에 따라 어떤 책을 읽어야, 어떤 활동을 해야 대학 입시에 유리할지 더 눈치를 봐야 될 상황이 되었다. 대학들은 공식적인 입장으로는 지원자들을 특정 성향이나 사상에 따라 걸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독서 이력 및 사상을 드러나는 기록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업 능력만이 아니라 대학에서 요구하는 게 어떤 건지 생각하고 자신을 그에 맞게 잘 포장해야만 한다.


생활기록부가 대학 입시의 중요 요소로 자리 잡은 현재,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정보들은 철저히 관리되고 통제된다. 대학이 좋아할 법한 인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공되고 만들어진 정보들만이 생활기록부에 기재되고, 그 외의 정보들은 모두 불필요한 것, 입시에 불리한 정보로 취급되어 배제된다. 학생들은 생활기록부를 통해 '올바른 학생', '대학이 원하는 인재'의 상에 맞는 인재임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입증해야만 한다. 생활기록부는 학생들의 삶을 멋대로 재단하여 획일화하고, 학생들은 생활기록부 기록용 활동을 위해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


예컨대, 학생들은 생활기록부에 기록할 장래희망을 정하고 나면 모든 활동들을 그에 맞춰야 한다. 뚜렷한 장래희망과 일관성 있는 목적 의식이 표현된 생활기록부가 대학 입시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혹여나 중간에 장래희망을 바꾸기라도 하면 그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기록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생활기록부 기록 사항들을 바뀐 장래희망에 맞추어 변경해야 한다. 대학 입시라는 절대적인 기준 앞에서 학생들의 고유한 생각이나 주체적 활동들은 철저히 재단당하며, 이 과정마저도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말로 합리화된다.

학교는 너무 많은 것을 기록한다

학교 내 교육 활동이 아닌 독서 등이 기록의 대상이 되고, 그 자료가 대학 입시에 활용된다. 애초에 학교 교육 과정으로 편성된 과목도 아니고 교내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활동에 대해 학교의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것이 문제이다. 한국의 학생생활기록부는 너무 많은 정보를 기록한다.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수상 기록을 하지 않는다. 독일의 경우에도 대학 입시에서 여러 가지 요인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학업 능력만 평가받는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학교 생활 전반을 기록하기보다는 성적 정도만 기록한다.


한국에서도 2018년 생활기록부 기재 항목을 축소할지 여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적이 있다. 하지만 이때도 논의의 주안점은 학생들에 대한 과도한 정보를 기록하는 등 인권 침해 문제가 있다는 것보다도, 교사들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때도 소논문 등의 항목이 조정되었을 뿐, 독서 이력을 비롯하여 학생에 대한 광범위한 내용을 기록하는 생활기록부의 현실을 바뀌지 않았다. 또한 입시에 생활기록부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입시에 유리하기 위해 생활기록부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기재할 수 있게 하고 잘 꾸밀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경쟁의 논리가 생활기록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의 측면에서 보아도 학생의 사상이나 사생활과 관련된 정보를 학교에서 기록하는 것은 최소화하여야 한다. 생활기록부에 독서 이력 등의 내용까지 기록하는 것 자체가 정보인권 차원에서 문제이다. 또한 대학 입시에서 이러한 생활기록부를 평가 대상으로 삼기에, 학생들은 읽는 책과 각종 활동 등까지 대학의 눈치를 보며 포장해야 한다. 독서까지 경쟁과 선발을 위한 것이 된다. 학생들의 모든 삶을 입시 경쟁을 위한 것으로 만드는 대학서열화와 입시 교육이, 우리가 이런 문제에 둔감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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