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우리나라 법조계를 이끌어갈 사법연수생 5백61명이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이들은 의견서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명백한 침략전쟁"이라면서 "헌법의 원칙을 훼손하는 파병 결정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법연수생 5백61명, 청와대에 '파병 반대' 의견서 제출**
사법연수생 5백61명은 12일 청와대에 이라크 추가파병에 반대한다는 '파병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 의견서에는 1년차인 연수원 34기 4백24명과 2년차인 33기 1백37명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연수생 전체 2천여명의 25%에 해당된다.
연수생들은 지난달 18일 정부 국가안정보장회의(NSC)에서 전투병 파병방침을 결정한 이후 '예비 법조인으로서 목소리를 내자'는 의견에 따라 지난 7일 공청회를 열고, 10일부터 연대서명을 받아 왔다.
이들은 의견서에서 "현재 정부와 청와대가 주도하는 파병 논의가 경제ㆍ외교적 이익 논리에 매몰되면서, 정작 헌법에 기반을 둔 법치주의의 원리를 훼손하고 있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의 원칙과 법치주의에 입각해 결정을 내려줄 것"을 촉구했다.
사법연수생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헌법 5조 1항에 규정된 '국제평화주의'를 침해한 침략전쟁"이라고 지적했다. UN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위권의 정당한 행사로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사법연수생들은 또 "파병 결정은 파병 군인 및 현지와 국내 국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해 헌법 10조가 규정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연수생들은 "파병 군인들이 테러에 대적하기 위해서 이라크 국민들에게 총을 겨누고 충돌하게 된다면, 국회가 2002년에 비준한 로마 규정에 의해 파병 군인은 국제 형사 재판소에 기소돼 형사책임을 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법연수생들은 "UN 결의 후에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우리 국민 1명이라도 이라크 국민을 대상으로 총을 드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파병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파병 논의에서 망각되고 있는 헌법적 원칙 강조한 것뿐"**
이번 의견서를 주도한 한 사법연수생은 12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현재 파병 논의에서 망각되고 있는 헌법적 원칙을 강조하기 위해서, 예비 법조인 입장에서 법적 견해를 제시한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수생들의 집단행동으로 보기보다는 예비 법조인들이 중요한 사회 현안에 대해서 법적인 의견을 자기 이름을 걸고 밝힌 것으로 이해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직접 동참하지 않은 연수생 상당수도 의견서의 법적 견해에는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는 "별정적 공무원 신분인 연수생의 집단행동으로 비춰질 것을 우려하는 연수생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일부 보수언론이 공무원들의 집단행동 등으로 매도할 것이 우려된다"고 자신들의 본의가 왜곡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한편 사법연수원 관계자는 "이번 의견서 제출과 관련해 징계 등 결정된 것이 없다"면서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다음은 사법연수생 5백61명의 의견서 전문.
***의 견 서**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희들은 법률전문가로서의 이론과 실무를 연구ㆍ습득하고 높은 윤리의식과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을 함양함으로써 법치주의의 확립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법원조직법 제72조의2) 수습을 받고 있는 사법연수생들입니다. 저희들은 이번 이라크 파병 논쟁이 국가 최고 지도 원리인 헌법과 법치주의의 관점에서의 면밀한 검토 없이 이익의 정도에 대한 논쟁으로만 치닫고 있는 것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미흡하지만 아래와 같은 저희들의 법적 의견을 제출합니다. 첨예한 국가 중대사를 헌법적 원칙과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결정해가는 계기를 만드시기를 기원합니다.
1. 미국과 영국, 점령군의 이라크 침공은 헌법 제5조 제1항에 규정된 '침략전쟁'입니다.
국제연합 헌장은, 제42조와 제51조에서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르거나 자위권의 행사에 따른 무력행사만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지난 3월 19일, 안전보장이사회에 이라크에 대한 무력제재를 내용으로 하는 결의안 채택을 요구하다가, 프랑스와 중국 등의 반대에 부딪혀 이를 실현할 수 없게 되자 결의가 없는 상태에서 돌연 일방적인 침공에 들어갔습니다. 또한 이라크 침공 직전까지 이라크의 무기폐기는 안전보장이사회 사찰단의 감시 아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무력행사를 할 것이라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도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자위권의 행사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1974년 국제연합 총회에서 의결된 '침략에 관한 정의' 제3조 제1항의 명문에 반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라크 침공은 헌법 제6조 제1항의 국제법 존중주의와의 조화적 해석에 따를 때 헌법 제5조 제1항의 '국제평화주의'를 침해하는 침략전쟁입니다.
2. 파병 결정은 헌법 제5조, 제74조 제1항 위반입니다.
침략전쟁에 동참하는 것은 '침략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 제5조 제1항의 명문에 반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미 지난 4월 17일 공병대와 의무대를 파병한 것도 전쟁 수행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를 금지하고 있는 '침략에 관한 정의' 제3조 제7항의 명문에 반하기도 합니다. 특히 파병 부대로 하여금 헌법 제5조 제2항의 '국가 안전보장 및 국토방위 의무'에 포함되지 않는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헌법 제74조 제1항 및 국군조직법 제6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의 범위를 벗어납니다.
3. 파병되는 군인 및 현지와 국내의 국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합니다.
현재 이라크에서는 연일 점령군에 대한 테러 공격과 이라크 국민들의 시위로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점령군의 일방적인 종전선언 이후의 점령군의 사상자 수가 오히려 그 이전의 사상자 수를 넘고 있습니다. 국군을 파병할 경우에도 수일이내에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 예상되고, 이러한 위험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것입니다. 일방 당사자의 요구로 군사적 지원을 하는 경우, 타방 당사자에 의한 현지와 국내의 국민들에 대한 무력 공격의 위험성이 증대시킬 것도 예상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상 국군통수권의 범위를 벗어나서 국군을 파병하고 그들에게 점령군의 지휘와 명령에 복종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 제10조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의 핵심적 내용인 평화적 생존권, 즉 무력충돌과 살상에 휘말리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국민들을 위 전쟁의 일방 당사자국 국민으로 만드는 것이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한,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위험성의 증대는 그 개연성이 어느 정도 이건 상관없이 국민의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합니다.
더군다나 대 테러전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이라크 국민들과 총을 겨누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국군에 의한 대 민간인 반인도 범죄가 발생하는 경우, 우리나라 국회가 2002년 11월 8일 비준한 로마규정에 의하여 파병군인은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되어 형사책임을 지게 될 수 있습니다.
4. 국제연합결의안 이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2003년 10월 16일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된 결의안은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에게 12월 15일까지 헌법 제정과 새 정부 구성 일정의 제시를 의무화하고 다국적군을 구성하여 그 과정에서 사회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이라크를 일방적으로 침공한 점령군의 통치권과 지휘권을 빼앗지 않는, 모순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명백한 헌장 위반인 침공행위 자체와 그 이후 지금까지의 점령군 일원으로서의 파병행위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그 결과 점령군은 5월 1일 일방적인 종전선언 이후 행사하고 있는 모든 권한을 위 결의안 이후에도 그대로 행사하고 있고, 특히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의 모든 결정에 대한 최종결정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 결의안 채택이후로 실제로 파병을 한 국가도 전혀 없어, 이미 다국적으로 이루어진 점령군의 실질과 형식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파병은 현재의 위헌적 상태를 해소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그 자체 역시 위헌의 소지가 있습니다.
5. 우리 국민 한명이라도 이라크 국민을 상대로 총을 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헌법 제66조 제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ㆍ영토의 보전ㆍ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국군에게 이라크 국민들을 상대로 총을 들도록 명하는 것은 위와 같은 헌법적, 국제법적 문제가 있으며, 이미 발생한 위헌적 상태를 심화시키고, 대통령의 헌법수호책무에도 반합니다.
이어지는 크고 작은 국정업무로 바쁘신 와중이지만, 헌법적 의견과 국민의 여론을 두루 경청하시어 현명한 판단을 하시길 기원합니다.
2003. 11. 12.
사법연수생 제33, 34기 561명 드림.
첨부자료
1. 헌법 전문, 제5조, 제6조, 제10조, 제66조 제2항, 제74조
2. 국군조직법 제6조
3. 침략의 정의에 관한 결의(국제연합 총회 결의)
4. 국제연합 헌장 제42조, 제51조
5.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 제8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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