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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추악해지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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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추악해지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목표"

[새 책] 로버트 라이트의 과학 명저 <도덕적 동물>

최근 잇따른 노동자들의 죽음과 이라크 침략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새삼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인간에게 과연 희망은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또 집단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유토피아의 이상'은 인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곳'을 향한 몽상일 뿐인가?

미국의 진보 성향의 정치 잡지인 <뉴리퍼블릭>의 편집인이자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객원교수를 맡고 있는 과학 저술가 로버트 라이트가 1996년에 펴낸 <도덕적 동물>(박영준 옮김, 사이언스북스 간)은 이런 질문에 두 가지 상반되는 답을 내놓고 있다.

인간은 분명히 '유토피아의 이상'을 추구할 만한 자격을 갖춘 '도덕적 동물'임에는 틀림없으나, 동시에 언제든지 추악해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전자가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절망을 얘기하고 있다.

***인간 본성에 관한 해묵은 논쟁을 다시 촉발해**

1996년에 나온 <도덕적 동물>은 가장 널리 읽히는 진화심리학 입문서이자, 세계 12개 국가에서 번역ㆍ출간될 때마다 첨예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진화심리학은 이타심ㆍ동정심ㆍ사랑ㆍ양심ㆍ정의감과 이기심ㆍ경쟁의식ㆍ차별ㆍ폭력과 같은 상반되는 인간의 감정들과 그것에 기초한 성ㆍ결혼ㆍ가족ㆍ정치ㆍ종교 등의 인간의 행동ㆍ제도들을 다윈의 진화론적 입장에서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현재 우리가 보는 인간 감정과 행동의 근원에는 진화 과정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진화심리학의 핵심 주장은 이미 1970년대 에드워드 윌슨이 제창한 '사회생물학'을 통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당시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사회생물학이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불평등의 양상을 자연스런 진화의 산물로 인식하게 할 위험을 안고 있다"고 맹비판을 퍼부었다.

그 후 사회생물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진화심리학은 훨씬 더 세련된 모습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 진화심리학을 대중들에게 최초로 소개하고, 종합한 책이 바로 <도덕적 동물>이다.

이 책은 20년 전과 달리 진화심리학이 좀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는 진보주의자들과 훨씬 어울린다고 주장하고 있어 특히 두드러진다. 이런 주장은 흔히 인간 본성을 거부하고, 사회ㆍ문화의 영향을 강조해온 진보주의자들의 관행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도덕적 동물>은 진화심리학이 어떻게 유토피아를 향한 진보주의자들의 노력과 더 어울리는지 그 이유를 방대한 인류학적ㆍ사회학적ㆍ생물학적 근거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다윈의 삶 통해 인간 본질을 규명해**

이 책이 묵직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소설처럼 속도감 있고 재미있게 읽히는 가장 큰 이유는 진화심리학의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다윈의 삶과 교차하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변변찮은 다윈의 전기가 없는 시점에서, 당분간 이 책은 독자들에게 다윈에 관한 가장 정확하고, 균형 있는 정보를 담은 전기 역할도 할 것이다.

로버트 라이트는 다윈의 어린 시절과 연애, 결혼부터 노년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윈의 일생 전반을 진화심리학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결혼을 앞두고 고민하는 다윈을 묘사한 부분이나 진화론이 '다윈주의'가 아니라 그의 젊은 경쟁자였던 월리스의 이름을 딴 '월리스주의'가 될 수도 있었음을 소개한 부분은, 한편의 사이코드라마를 보는 듯 생생하다.

이렇게 저자가 다윈의 일생을 진화심리학을 통해 해석함으로써 보이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다윈은 서구 역사상 유례없이 엄격한 도덕적 규범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요구했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신사였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 수양을 위해 노력했으며,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와 신대륙의 원주민 심지어는 동물에게도 선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이런 다윈의 삶에도 진화심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아이디어들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저자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도덕적 인간'이었던 다윈 역시 결국 진화의 산물에 불과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다윈보다 더 추악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언제든지 '도덕적 동물'에서 가장 '추악한 동물'로 전락할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 진화의 산물인 인간 본성이란 것이다.

***새로운 세기의 목표는 "덜 추악해지는 것이 되어야"**

저자는 인류가 유토피아를 지향해온 긴 여정은 실상 "덜 추악해지기 위한 여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그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가능하면 "그 '도덕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계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가 바로 진화심리학의 노력으로 밝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로버트 라이트의 주장은 낯설지 않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1979년에 출간한 <책임의 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끊임없이 선과 악 사이에서 분열된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호하고 다의적인 존재이다. 인간은 귀함과 천함, 위대함과 비참함, 행복과 고통, 정당함과 부당함, 이 모든 양가성과 분리할 수 없다."

<도덕적 동물>은 결국 인간의 한계를 규명함으로써, 인간이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를 말해준다. 우리가 왜 여성, 노동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유대감을 표시해야 하는지, 부당한 침략 전쟁에 반대해야 하는지를.

***'사이언스 클래식' 시리즈의 처음을 여는 책**

<도덕적 동물>은 국내 과학도서 출판을 선도해 온 사이언스북스가 대중 과학서의 고전들을 엄선해 발간하는 '사이언스 클래식' 시리즈의 처음을 여는 책이기도 하다.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6백50쪽이 넘는 <도덕적 동물>만큼 앞으로 나올 책들이 척박한 국내 과학도서 출판에 어떤 기여를 할지 지켜볼 일이다. 출판사 측은 1996년 타계한 과학 저술가 칼 세이건의 명저 <코스모스> 등을 다음 책으로 준비 중이라고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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