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 전환, 어떻게 할 것인가? ②
1. 겸업주의 → 전업주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수많은 은행과 증권사가 퇴출되면서 금융 산업에 새롭게 들어온 시스템이 금융지주회사를 중심으로 하는 겸업주의 모델이다. 2000년 금융지주회사법이 제정된 이후 은행과 증권, 보험 등 금융회사들은 금융지주회사 산하로 편제되었다.
2014년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융규제 개혁방안'을 보면, 겸업주의 확대를 통해 금융지주회사 계열사가 한 점포에서 은행·증권·보험업무를 할 수 있도록 복합점포를 허용하고, 여러 개의 금융상품을 한 계좌에 담는 개인자산종합관리계좌를 도입했다. 사실, 금융규제 개혁방안은 금융지주회사를 위한 방안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업권 간 겸업을 대거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칸막이를 없애 영업을 쉽게 하고 파이를 키운다는 명목이다.
유조선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이유는 선체 내부에 격벽이 있기 때문이다. 칸막이를 제거하고 항해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기름이 한쪽으로 쏠려 침몰할 수 있어서다.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이다. 위험의 전이현상을 방지하고, 각 업권별로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 고유의 시스템을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금융 산업도 마찬가지이다. 유조선의 격벽처럼 전업주의는 은행을 찾는 소비자와 증권사를 찾는 소비자를 구분하는 것이다. 각 금융기관을 찾는 소비자의 투자성향이 판이하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에 더 강점이 있고, 불완전판매의 위험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 산업 전업주의는 금융소비자들도 보호하고, 금융노동자들의 고용안정에 훨씬 더 유리한 시스템이었다. 이렇게 금융 산업 전업주의는 업권별 전문성을 더욱 살릴 수 있기 때문에 IMF 이전 한국의 금융모델로 작동해왔다. 이러한 전업주의를 되살리려면 겸업주의의 상징인 금융지주회사를 해체해야 한다.
2. 대형화 → 중소형화(전문화)
앞서 말한 대로 이 방안은 업권 간의 경쟁에서도 은행 중심의 금융지주회사에 날개를 달아 준 반면, 수많은 제2금융권 중소형 금융회사들을 경쟁력 상실로 이끌어, 결국 약화시켜 왔다. 5년이 지난 현재, 이 정책의 영향으로 제2금융권 금융회사들의 구조조정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더구나 업권 간의 경쟁을 살펴보면, 은행연합회는 줄곧 금융위원회나 국회에 은행권의 투자일임업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은행권에 투자일임이 허용될 경우 은행 프라이빗 뱅커(PB)가 판매수수료와 운용보수까지 챙길 수 있어 신규 수익창출이 가능하지만, 역으로 증권업계는 고유의 업무영역을 빼앗겨 더 혹독한 구조조정의 시련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결국,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는 규제완화의 효과는 업권 간 규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은행권에 유리하고, 증권업계에 불리한 것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업권 내의 경쟁 역시 정부의 정책 개입으로 인해 구조조정의 몸살을 알고 있다. 증권업계를 살펴보면, 증권사 인수합병(M&A) 활성화정책, 영업용순자본비율(NCR) 변경, 자본시장통합법을 통한 프라임브로커 육성 등 온통 대형화정책 일색이다. 더구나, 단기콜자금 규제에 이르기까지 중소형사들은 어려운 업황과 정부의 퇴출압박, 두 가지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증권업계는 최근 4년 동안 300개가 넘는 점포 폐쇄, 16%에 달하는 증권노동자가 현업을 떠나는 등 구조조정의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정책 시행 이후 제2금융권에서는 수많은 희망퇴직이 진행되었고, 올해 역시 마찬가지일 걸로 전망된다.
금융회사 내의 경쟁 역시, 성과급 위주의 급여정책으로 인해 노동자 간의 임금격차를 벌리는 방식이 일상화되고 있다. 몇 년 전, 악사손해보험은 신인사제도 도입으로 노동자를 퇴출하는 프로그램 도입을 시도한 바 있고, 대신증권은 전략적 성과관리라는 명목 아래 실적 부진자 구조조정을 진행한 바 있다.
이처럼, 구조조정은 정부의 금융정책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정부는 업권 간의 경쟁을 부추겨 은행권 중심의 금융지주회사가 독식하는 구조를 만들어 나머지 중소형 금융회사들의 구조조정을 획책하고 있으며, 업권 내의 경쟁을 이용해 증권업계의 경우,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며 대형사 육성정책을 추진하는 바람에 중소형사들의 퇴출을 유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금융회사 내부를 들여다보면, 회사는 악랄한 인사노무관리를 통해 저성과자로 낙인찍힌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요약하면, 국가의 불공정한 룰(개입)에 의해 불공정한 경쟁체제가 만들어졌고, 이는 일선 회사들의 구조조정을 일상화하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3. 독점화 → 분점화
문제는 구조조정에만 있지 않다. 자본의 집적이 커질수록 금융의 물길은 부자에게 향하고, 서민에게 금융이란 가느다란 물줄기에 불과할 뿐이다. 현재의 금융환경은 부자들이 거대한 물(자본)을 이용해서 수력발전을 일으켜 돈을 번다면, 서민은 물(자본)이 없어 가뭄에 속만 타들어가는 상황이다. 일례로,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부동산 프로젝트는 가난한 이들의 삶터를 무너뜨린다.
대형사 중심의 금융체제가 아니라 중소형사가 공존하는 금융시스템으로 전환한다면 어떻게 될까? 금융사가 관계형 금융으로 지역에 재투자한다면, 모든 것을 서울로 빨아올리는 금융이 아니라 지역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금융시스템으로 성장할 것이다. 대형프로젝트가 필요하니 금융회사의 대형화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말이 안 된다. 중소형 금융회사간의 협동(컨소시엄)으로 자본의 크기를 키우면 된다.
금융은 모을수록 힘이 커지지만, 지금까지의 금융은 누군가 그 힘을 독점함으로써 왜곡되고 있다. 독점적 힘을 해체하는 것, 독점화된 금융을 필요한 사람들부터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대안금융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