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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반복된 사죄…'바르샤바 봉기' 기념행사서 "용서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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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반복된 사죄…'바르샤바 봉기' 기념행사서 "용서구한다"

폴란드와 전쟁 배상 문제 풀리지 않아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에서 저지른 나치 독일의 만행에 대해 "부끄럽다"면서 재차 용서를 구했다.

독일의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은 1일(현지시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사망자를 기리고 폴란드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고 dpa 통신이 전했다.

그는 "독일인과 독일의 이름으로 폴란드에서 저지른 일이 부끄럽다"면서 "나치의 잔혹한 진압이 전쟁 이후에도 오랫동안 감춰졌다"고 강조했다.

바르샤바 봉기는 독일의 패전 기운이 짙던 1944년 8월 1일 시작됐다. 제대로 무장하지 못한 4만∼5만 명 정도의 폴란드 저항군들이 독일 정규군에 맞섰다가 진압됐다.

1만5천∼1만8천 명 정도의 폴란드 병사가 전사했고, 2만5천 명의 병사들이 다쳤다.

민간인 사망자는 15만∼20만 명에 달했다. 이들 가운데 5만 명은 볼라 지구에서 학살당했다. 살아남은 50만 명의 시민은 도시 밖으로 쫓겨났고 바르샤바는 철저히 파괴됐다.

이날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기념식에서 "바르샤바 봉기에 참여한 병사들은 폴란드의 미래, 자신들의 명예와 생존을 위해 싸웠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도 싸웠다"고 말했다.

그는 "병사들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생존자들을 노예로 만드는 야만적인 독일 군대에 맞서 폴란드를 방어했다"고 강조했다.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됐고,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국가다.

독일은 폴란드를 대상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해국으로서 사죄를 해왔다.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바르샤바의 전쟁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일이 대표적 사례다.

오는 9월 1일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 기념식에도 독일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참석할 예정이다.

그러나, 전쟁 피해에 대한 배상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독일 정부는 폴란드와 1953년 맺은 협정에 따라 전쟁 배상금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마스 장관은 전날에도 이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폴란드는 배상이 되지 않았다면서 의회 내 위원회까지 만들어 배상금을 산정하기도 했다.

이날도 야체크 차푸토비치 폴란드 외무장관은 기념식에서 2차 세계대전 배상금 지급이 더 이상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독일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폴란드와 폴란드인이 입은 고통과 손실이 가해자에 의해 보상된 적이 없다"면서 "폴란드인은 우리의 노력으로 수도를 재건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바르샤바에서는 오후 5시에 1분간 희생자를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에 맞춰 도심에 모인 수많은 시민은 사이렌이 울리는 동안 함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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