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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교수, 노대통령에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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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장하성 교수, 노대통령에 직격탄

"집권 반년만에 개혁 혼란" "개발시대로 후퇴하나"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계간지 <철학과 현실> 가을호에 기고한‘개혁만이 안정과 성장을 달성하는 길이다’라는 글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개혁 실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노정부 5년은 선진국 진입 기로"**

장 교수는 우선“노무현 정부의 5년은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발전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할 것인가 아니면 갈등과 혼란으로 지금의 정체적 상황을 상당기간 동안 이어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라면서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기득권 보수세력"이라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기득권적 보수세력의 결집력은 긍정적인 대안과 희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김대중 반대’라는 부정적인 저항에 근거한 것”이라면서 “ ‘김대중 반대’는 김대중이라는 개인에 대한 거부감으로 표출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권력을 잃은 상실감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와해시키는 개혁과 변화에 대한 저항”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의 등장이 기득권 세력에게 충격이었다면 노무현 정권의 ‘돌연한 창출’은 절망”이었다고 규정했다.

장 교수는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지 반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절망감에 휩싸인 기득권적 보수세력은 다시 희망과 재도전의 기회를 갖게 되었고 한국사회의 변혁을 꿈꾸던 개혁적 진보세력은 실망과 혼란에 휘말려 있다”면서 “상황반전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무현 정권 자신”이라고 비판했다.

경제정책에만 보아도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은 정권 출범 6개월 만에 ‘개혁’에서 ‘안정’으로 그리고 다시 ‘안정’에서 ‘성장’으로 급격한 변신을 하였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특히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첫 경제현안이었던 SK그룹의 부실과 카드회사 채권문제는 경제현안을 통해서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정부의 대응은 오히려 안정논리로 개혁을 실종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장 교수는 또 “자본시장 개혁의 핵심과제인 증권집단소송제도 집권여당이 주도하여 실종위기로 몰아가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개발시대로 퇴행하는가"**

장 교수의 비판은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에서 뿐 아니라 노동개혁에서도 이어졌다. 노동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여론에 편승하여 일관성없이 변화하는 대응책들을 쏟아내 노무현 정부의 노동개혁의 원칙과 대안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없는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각에 남아있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은 사례로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열자’는 성장론을 갑자기 제기한 것을 들었다.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하자는 것은 궁극적으로 경제개혁의 목적과도 일치하며 국민들에게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이지만 구조개혁이 선행되지 않은 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성에 대한 회의와 실망이 높아져가고 국민의 지지가 급속하게 하락하는 상황에서 제기된 성장론은 경제개혁에서 뿐 아니라 국정전반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는 중대한 변화”라면서 “ 경제구조개혁이 정체되거나 후퇴한 상황에서 제기된 성장론은 개발경제시대의 일방적 파이 키우기식의 성장으로 퇴보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장 교수는 “개혁의 기치를 걸고 탄생된 정부가 경제정책의 기조를 ‘개혁’에서 ‘안정’으로 그리고 다시 ‘안정’에서 ‘성장’으로 급격하게 변화시켜 정체성에 혼란을 빗고 있다”면서 “이러한 혼란은 기득권 보수세력의 극렬한 저항이나 개혁적 진보세력의 지나친 요구와 같은 외적 요인보다는 권력실세들의 개혁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 요인이 더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가 개혁을 안정과 성장의 대립적 개념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기득권 보수세력의 왜곡된 주장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장하성 교수의 기고문 전문이다.

***장하성 교수의 기고문 전문**

노무현 정부의 5년은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발전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할 것인가 아니면 갈등과 혼란으로 지금의 정체적 상황을 상당기간 동안 이어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다. 정치적으로는 3김 시대의 보스정당체제를 마감하고 새로운 민주적 정당체제를 구축하는 정치개혁을 이루어야 하고, 경제적으로는 개발경제체제를 마감하고 선진적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경제개혁을 완성해야 하는 시기이다.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기득권 보수세력이다. 경제위기의 상당한 책임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변혁을 거부한 자신들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적 보수세력들은 끊임없이 개혁에 저항하였고 급기야는 김대중 정권의 후반부에는 개혁을 후퇴시키고 정권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하는 결집력을 과시하였다. 1998년에 김대중 정부가 탄생한 것은 지난 30년 이상 한국을 지배해온 영남패권주의의 수혜자들, 재벌그룹과 보수언론, 그리고 관료주의의 수혜자들로 대표되는 기득권 보수세력에게는 일대 충격이었다. 그러나 기득권 보수세력들은 충격적 정권상실에도 불구하고 5년 후에 자신들이 재집권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김대중 정권 내내 결집력을 유지했다.

기득권적 보수세력의 결집력은 긍정적인 대안과 희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김대중 반대’라는 부정적인 저항에 근거한 것이었다. ‘김대중 반대’는 김대중이라는 개인에 대한 거부감으로 표출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권력을 잃은 상실감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와해시키는 개혁과 변화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들의 결집력은 대우사태 이후에 시작된 개혁후퇴와 지방선거와 총선거에서의 잇단 승리로 더욱 공고화되어 자신들의 재집권을 확신하게 된 지난 대통령선거의 막판인 2002년 11월에는 보수세력의 자신감은 독선과 오만으로까지 비쳐졌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의 기치를 내건 노무현 정권의 ‘돌연한 창출’은 기득권적 보수세력에게는 충격을 넘어선 절망이었다. 정권창출에 중심적 역할을 한 변화를 갈망한 젊은 세대와 개혁적 진보세력은 한국사회의 대변혁을 꿈꾸게 되었고, 정권탈환에 실패한 보수세력은 절망의 늪에 빠졌다. 지도력이 노후한 보수세력에게 재집권을 위해서 또 다시 5년을 기다린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힘든 일이었고, 김대중 정권 5년 내내 자신들을 결속해준 반대의 대상도 없어졌다. 더 이상 개혁과 변화에 저항할 명분과 대안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보수세력은 와해될 위기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은 기득권 보수세력이 더 이상 개혁의 걸림돌이 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개혁 외친 노무현 정권이 오히려 기득권 세력에게 희망 줘"**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지 반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상황의 반전이 이루어졌다. 절망감에 휩싸인 기득권적 보수세력은 다시 희망과 재도전의 기회를 갖게 되었고 한국사회의 변혁을 꿈꾸던 개혁적 진보세력은 실망과 혼란에 휘말려 있다. 상황반전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무현 정권 자신이었다. 경제정책에 국한할 때에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은 정권 출범 6개월 만에 ‘개혁’에서 ‘안정’으로 그리고 다시 ‘안정’에서 ‘성장’으로 급격한 변신을 하였다.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급격한 변신은 보수세력의 압력 때문보다는 노무현 정부 스스로 선택하고 추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에게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판단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개혁’에서 ‘안정’으로의 변신은 정권이 출범하기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당선 직후에 구성된 인수위원회는 개혁과 안정의 대립적 논란으로 내부갈등이 표출되었고, 정부출범 시점에서는 경제관련 인선과 정책시행에서 개혁에서 안정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였다. 정권이 출범한 이후에는 경제개혁의 핵심적 과제인 재벌개혁에 대해서 속도조절론이 제기되었다.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개혁은 안정론과 속도조절론으로 실천의지가 퇴색하여 개혁 자체가 실종될 것이라는 우려를 가져왔다.

경제정책에서의 개혁의지의 퇴색은 다른 사회분야에서의 개혁추진과는 크게 대비되는 것이어서 더욱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법무부와 문광부 그리고 행정자치부 등의 사회문화 분야에서의 각료의 선택은 파격에 가까운 개혁을 표상하는 인선이 이루어졌으며 정책시행에 있어서도 파격적 검찰인사와 보수언론에 대한 공개적 대립등의 소위 ‘개혁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그러나 경제분야에서는 각료 뿐 아니라 청와대 경제팀의 구성까지도 개혁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 주를 이루었고 재벌개혁이나 금융개혁과 관련된 현안을 처리하는 데에서는 속도조절을 넘어서서 과거로 회귀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SK그룹, 카드채 부실 대응은 대표적 개혁 실종 사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첫 경제현안이었던 SK그룹의 부실과 카드회사 채권문제는 경제현안을 통해서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오히려 안정논리로 개혁을 실종시킨 대표적인 사례를 만들었다. 정부는 부실채권의 급격한 증가로 신용카드회사들의 부실위험이 높아져서 카드회사가 발행한 채권이 시장에서 인수되기 어려워지자 금융회사의 대표들을 소집하여 반강제로 자금을 각출하도록 하였고, 그렇게 조성된 자금으로 카드회사가 발행한 채권을 무차별적으로 인수해주도록 하였다. 정부는 시장실패를 우려하여 개입하였다고 주장했지만 정부의 이러한 직접적인 시장개입은 과거 정부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전형적인 관치금융의 부활이었다. 관치금융의 부활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정부는 공개적으로 ‘관은 치를 위해서 있다’고까지 주장하며 비판을 제기한 측을 오히려 현실을 모르는 무책임한 사람들로 몰아세우고 정부의 정책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카드회사의 부실문제가 심각하다는 것과 카드채권의 만기가 6월에 몰려있다는 것은 자본시장에는 이미 공개적으로 알려진 위급한 경제현안이었고 사전에 대처하지 않으면 심각한 채권시장의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사전에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방치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시장실패를 이유삼아 자신들의 정책실패의 책임을 호도한 것이었다. 정부 개입이 없었다면 시장이 실패했을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도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 카드회사와 투자자들이 자본시장의 원리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했다면 채권시장이 일시적인 혼란을 겪더라도 금융시장의 개혁적 변화가 일어나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시장이 견실해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시장실패의 논란을 떠나서 노무현 정부의 카드채권부실 문제에 대한 대응이 개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는 반강제로 금융기관을 동원하여 조성한 자금의 상당부분을 재벌그룹 카드회사를 구제해주는데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조성된 자금의 사용처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아서 이런 사실이 일반국민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우려한 시장실패는 재벌카드사의 실패였고, 정부의 개입은 재벌회사의 부실을 관치금융으로 구제해준 것이었다. 둘째로 투자신탁회사들이 카드채권을 자산운용에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정부가 이를 용인하고 방치했었다. 카드채권의 문제가 전체 채권시장의 위험으로 확산된 연결고리가 투신사 불법자산운용이었는데도 그러한 불법을 용인한 정부부처가 바로 관치금융을 주도한 것이다.

셋째로 정부의 개입이 개별 카드회사들의 경영상태와 무관하게 무차별적으로 모든 카드회사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정부는 부실한 카드회사에 대하여 사전 적기시정조치 등의 경영개선조치를 취하고 않았고, 그 이유는 그런 조치를 취하면 곧바로 그 회사가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시장이 부실한 회사를 차별화하려는 것을 정부가 나서서 시장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첫 금융개혁 사안이었던 카드채권문제는 일견 매우 사소한 금융시장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부가 오히려 반시장적이고 반개혁적인 관치금융을 시행한 심각한 사안이었다.

재벌개혁에서도 개혁의 후퇴는 현안들을 통해 현실화하였다. 정권출범 직후에 재벌그룹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예정된 조사가 연기되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는 인수위원회 시절에 이미 파악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의 이유를 들어서 기업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논리가 경제부처에서 제기되고 예정되었던 조사를 실시하려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오히려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재벌총수들이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부응하기 위해서 투자예정금액을 적어내는 개발경제시대의 희극도 연출되었다. 기업은 미래에 대한 스스로의 경영판단으로 투자를 계획하고 투자에 필요한 자본은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제공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임을 망각하고, 재벌기업 총수들이 전경련에 모여서 자신들의 정치적 힘을 국민들에게 과시한 헤프닝에 불과한 것이었다. 총수들의 투자선언 이후에 최소 300조가 넘는 시중의 유동자금이 부동산 투기에서 실물경제 투자로 이전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바가 없다.

재벌개혁 실종에 대한 우려는 SK그룹의 처리에서 보다 현실화되었다. SK글로벌은 이미 오래전에 파산상태에 이른 것을 분식회계로 은폐해온 회사이며, 이 회사를 퇴출시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권은행들은 다른 건강한 계열사를 동원하여 회생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채권은행들은 계열사들에게 향후 수년간 SK글로벌에게 일정한 현금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고, 이에 필요한 부당거래를 공개적으로 강요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수조원의 분식회계를 한 불법행위는 논외로 하고라도 자력으로 회생이 불가능한 부실회사를 퇴출시키는 것이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의 핵심이며, 계열사의 부당거래를 전제로 한 회생은 개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SK 글로벌 사태는 개혁을 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할 사안이었다. 그러나 금융감독권을 가졌을 뿐 아니라 채권은행들의 대주주인 정부는 채권은행단의 이런 반개혁적인 부당행위요구를 방치하였다. 시장원리에 따른 SK글로벌의 처리는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의 두 가지 개혁을 동시에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절호의 경제현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팔장을 끼고 개혁실종의 불구경을 한 셈이다.

자본시장 개혁의 핵심과제인 증권집단소송제도 집권여당이 주도하여 실종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이 법안은 재계의 소송남용의 우려를 수용하여 주가조작과 분식회계, 그리고 허위공시에 국한하여 제한적으로 소송을 허용하고 법원의 사전허가제 등의 지나치게 소송제기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약적인 요소가 많기는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서 추가적으로 내용을 수정한 현재의 법안은 정부와 여당이 협의를 마친 것이고 야당과도 합의되어 법사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까지 통과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여당이 돌연히 자산 2조원 이하의 회사에 대해서는 실시하지 말자고 주장하였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시장에 상장 또는 등록된 기업 중에서 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인 회사는 불과 5%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주장한데로 자산 2조원 이상만 적용될 경우에 집단소송제는 도입과 동시에 실종될 것이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더구나 주가조작이나 분식회계, 그리고 허위공시 등의 불법행위는 절대 다수가 자산 2조 미만인 기업들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의 주장은 자본시장의 개혁을 무산시키려는 시도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기업들 모두가 주가조작과 분식회계를 하고 허위공시로 투자자를 기만하는 것도 아니고, 소송남용에 대해서도 이미 충분한 장치가 되어 있어서 정부와 여야가 합의한 사안을 막판에 집권여당이 이를 실종시키려고 하고 정부는 이에 대해서 방관하고 조장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증권집단소송제의 도입은 자본시장에서의 투자자 신뢰를 구축하여 우리나라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기여을 할 대선공약 중에서도 핵심적인 개혁과제이었는데 집권당과 정부가 또 한번 스스로 개혁을 격파하는 시도를 하는 셈이다.

***"노동현안에도 일관성 없는 대처"**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에서 뿐 아니라 노동개혁에서도 노무현 정부는 노동현안을 대응하는 데에 큰 혼란을 빗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불법적인 파업에 대해서는 사측으로 하여금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개입을 했고, 현대자동차의 합법적인 파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권중재를 하겠다고 나섰다. 조흥은행 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는 원칙을 지키다가 막판에는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이상의 문제에까지 노조에 양보하였고.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는 노조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고 대규모 징계를 하는 강경책을 들고 나섰다. 화물연대의 2차 파업에 대해서는 중재역할이나 해결력을 발휘하지는 않고 1차 파업에서의 정부의 실수를 만회라도 하겠다는 듯이 연일 강경대응의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노동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여론에 편승하여 일관성없이 변화하는 대응책들은 노무현 정부의 노동개혁의 원칙과 대안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없는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개혁이 후퇴하고 정체성에 혼란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소수당 정부로서의 어려움을 인정해야 한다는 정치적 변명과 정권이 출범한지 채 반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더 참고 기다리면 달라질 것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우호적인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은 또 한번의 변신이 태동하였다. 노무현 정부가 갑자기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열자’는 성장론을 제기한 것이다.

경제개혁은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을 달성하기 위해서 왜곡된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하자는 것은 궁극적으로 경제개혁의 목적과도 일치하며 국민들에게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론에 우려와 비판이 제기된 것은 구조개혁이 선행되지 않은 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곡된 구조로 이루어낸 성장이 무너지면서 경제위기를 겪었고,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 금융개혁, 노동개혁, 공공개혁의 4대 경제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에 국민적 합의를 이룬바 있다. 더구나 경제위기 이후로 확대된 빈부격차와 구조적 실업 등으로 계층간 불균형과 세대간 갈등구조가 심화된 현실에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는 성장은 설령 파이가 커진다하여도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불균형과 갈등구조를 심화시킬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성에 대한 회의와 실망이 높아져가고 국민의 지지가 급속하게 하락하는 상황에서 제기된 성장론은 경제개혁에서 뿐 아니라 국정전반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는 중대한 변화이다. 더구나 경제구조개혁이 정체되거나 후퇴한 상황에서 제기된 성장론은 개발경제시대의 일방적 파이 키우기식의 성장으로 퇴보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과제나 실천전략에 대해서 구체적인 대안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총량적 지표로써 국민소득 2만불이 먼저 제시되고, 이후에 대통령이 직접 아직 시행도 되지 않은 기존의 국정과제와 개혁과제들을 다시 점검하겠다고 선언하고 시장에서 권력을 가진 기업의 정책에 의해서 정부의 정책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발언까지도 하게 된 것도 2만불 성장론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국민소득 2만불 성장론은 경제개혁에 가장 격렬하게 저항해온 재벌들이 주장한 것을 노무현 정부가 수용한 것이며, 성장론이 제기되자 재벌과 보수언론이 대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형국이 전개되었다. 자신을 당선시킨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 세대와 진보적 개혁세력을 설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득권의 지지를 업은 성장론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회의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개혁의 기치를 걸고 탄생된 정부가 경제정책의 기조를 ‘개혁’에서 ‘안정’으로 그리고 다시 ‘안정’에서 ‘성장’으로 급격하게 변화시켜 정체성에 혼란을 빗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기득권 보수세력의 극렬한 저항이나 개혁적 진보세력의 지나친 요구와 같은 외적 요인보다는 권력실세들의 개혁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 요인이 더 큰 것으로 판단된다. 노무현 정부는 개혁을 안정과 성장의 대립적 개념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기득권 보수세력의 왜곡된 주장과 일치한다.

개혁은 기존의 불안정한 틀을 안정적인 구조로 변화시켜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개혁을 하면 혼란이 발생하여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단기성과주의와 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 개혁을 하면 경제가 더 어려워져 성장을 저해한다는 주장은 기득권들이 자기보호적 방어의 목적으로 개혁의 본질을 왜곡한 것이다.

재벌체제와 관치금융체제는 패쇄적이고 제한적인 경쟁시장에서 정부주도적인 계획경제로 성장을 이루었던 개발경제시대에는 성공적인 틀이었다. 그러나 상품시장 뿐 아니라 자본시장까지 전면적으로 개방된 새로운 세계경제환경과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로 대체된 경쟁주도적 경제체제에서는 오히려 국가경제를 불안정하게 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구축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한 구체제의 폐단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경제위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경제가 가장 어려웠던 경제위기 상황에서 경제안정과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으로 재벌개혁, 금융개혁, 노동개혁 그리고 공공개혁의 4대 경제개혁과제를 선택한 것이었다.

개혁으로 인하여 불안정해지는 것은 국가경제가 아니라 기존의 틀에서 특혜와 권력을 누리는 기득권 세력이며, 그들이 자신의 기득권 보호를 위하여 개혁을 안정과 성장의 대립적 개념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의 모순은 재계의 노동개혁에 대한 인식에서 확연하게 들어난다. 재계는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서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대규모 사업장 노조의 강경투쟁식 노동운동을 변화시키는 노동개혁이 없으면 우리나라에서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며 공장들을 외국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기득권을 변화시키는 재벌개혁이나 금융개혁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개혁이 안정을 해치고 성장을 저해한다는 상반된 반대논리를 주장한다.

성장에 필요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장기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위한 노동개혁뿐 아니라 경영투명성과 책임경영체제를 정립하기 위한 재벌개혁, 자본의 효율적 배분과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금융개혁이 필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위기 이후에 국민적 합의로 재벌개혁, 금융개혁, 노동개혁, 그리고 공공개혁을 4대 경제개혁과제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기득권 보수세력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해줄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안정과 성장을 위해서 개혁을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개혁의 대상으로 하는 재벌개혁이나 금융개혁에 대해서는 안정과 성장을 저해한다는 모순된 이유를 들어서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개혁에 대한 욕구가 가장 강력했고, 국민적 지지가 절대적이었던 정권출범 초기에 안정과 경기불황을 내세워 개혁을 정체시키고, 다시 개혁의 실천을 담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2만불 성장론을 제기한 것은 기득권 보수세력의 왜곡되고 모순된 개혁에 대한 인식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난데 없는 2만불 성장론으로 정권 정체성마저 의문"**

개혁이 추진되고 국민들의 지지가 결집된 상황이었다면 2만불 성장론은 경제개혁과 일관된 매우 희망적인 국가목표로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정책이 실종되고 성장론까지 대두된 지금에서는 대통령과 권력실세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비젼이 무엇인지에 대한 회의가 발생하고 이는 정권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개혁과 관련한 노무현 정부의 “코드”가 무엇인지에 대한 회의와 의문이 발생한 것이다. 정체성의 혼란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스스로 약화시키고 보수세력으로부터 새로운 지지도 얻어내지도 못하는 원인이 되어 정권 출범 6개월 만에 정권유지의 위기감이 제기될 정도로 국민의 지지도가 하락하는 정치적 추락을 자초하고 있다.

정권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야기된 것은 정권실세들의 개혁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경제개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으로 인식되는 인물이나 세력이 없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권력실세로 알려진 인물들은 경제전문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하고, 경제경책을 다루는 인물들은 대부분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개혁적으로 인식되는 소수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견제받고 수세에 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세력의 대부분이 소위 개혁과는 ‘코드’가 맞지 않고 개혁역량도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 악화된 경기침체는 노무현 정부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최근의 경기침체는 미국경제를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의 위축과 이라크전쟁과 북핵문제로 인한 외적요인과 김대중 정부에서 이전된 신용불량자의 대량생산으로 인한 소비의 위축 등이 주요 원인이 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경기침체만으로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 부정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올바른 평가가 아니다. 문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재벌과 금융산업, 그리고 노동시장을 개혁하지 않으면 외적요인이 제거된 이후에도 국내수요와 투자가 활성화되지 않아서 지속적인 성장구조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995년에 1만불을 이었는데도 지난 7년 동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고, 1989년에 1,000을 돌파한 주가지수도 그동안 경제가 2배 이상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700선에 머물고 있는 것은 외적요인이 아니라 국내경제의 구조적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개발경제시대에 만들어진 지금의 재벌구조와 금융구조를 유지하면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지난 10여년의 실수를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5년을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창조적 전환기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정권내부의 경제개혁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며 이와 함께 경제개혁을 주도할 세력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안정과 지속가능한 성장은 개혁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바로 이해하고 실천할 역량있는 인물들로 경제개혁의 주도세력을 구성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개혁을 안정과 성장의 대립적 개념으로 인식하고 구조개혁이 전제되지 않은 성장을 추구하는 정책과 이를 추진하는 인적구성을 유지하는 것은 경제구조의 왜곡을 더욱 심화시켜 정체적 과도기를 지속시킬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개혁은 갑자기 세상을 몽땅 바꾸는 혁명이 아니다. 경제현안을 개혁의 원칙에 따라 대응하고 이미 정해진 개혁과제를 결단력있게 실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는 오래전에 국민적 합의로 정한 바 있다. 재벌개혁, 금융개혁, 노동개혁 그리고 공공개혁의 4대 경제개혁과제는 경제위기 극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정책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새롭게 논의할 필요도 없다. 실천만이 남은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사회의 전환기를 갈망하는 젊은 세대와 중산층, 그리고 진보적 개혁세력들이 새로운 한국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모아 창출하였다. 정권창출의 모태인 그들의 개혁과 변화에 대한 기대에 충족하는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이를 개혁정책으로 실천하는 것만이 기득권 보수세력의 회귀를 물리치고 국민들의 지지 속에서 국민소득 2만불의 선진국으로 약진하는 창조적 전환기를 만드는 길이다. 정권초기이니 기다려 달라는 인내의 요구도, 보수언론의 왜곡된 비판도, 기득권의 저항도 더 이상 국민을 설득할 명분이 될 수 없다. 개혁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과 새로운 개혁주도세력의 형성하여 개혁의 실천을 통한 안정과 성장을 달성하는 것이 노무현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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