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법원의 강제 동원 판결에 대한 대항 조치로 일본이 '수출 규제'라는 경제적 카드를 꺼낸 것에 대해 미국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일본의 이같은 행위가 한미일 모두에 좋지 않은 결과가 될 것이라는 점을 미국 측에 강조했다.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해 국무부 관료와 미 싱크탱크 관계자 등을 만나고 돌아온 외교부 당국자는 15일 기자들과 만나 "일본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미국이 관여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미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미국 측에 "일본의 이러한 조치로 이익은 제3자가 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고 미국은 여기에 주목했다"며 "미국은 (현 상황에 대한) 관리 모드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3자의 이익에 대해 그는 "중국이 2025년까지 중국 내 반도체 소비량의 70%를 자신들이 제조하는 반도체로 조달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면서 "현재 반도체 생태계가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교란되면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에도 결코 이익이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우리가 이야기했고 미국도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미국은 현재 한일 간 상황이 악화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 적극 공감하며 어떤 합당한 역할이 있는지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면서도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 편을 들기는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이라는 전망이다.
이 당국자는 또 "현재 한일 간 긴장이 고조되면 경제규모가 우리보다 3배나 크고 핵심 소재 산업에서 압도적 강점을 가지고 있는 일본이 유리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역 전쟁에서는 아무도 이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미국 측에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 측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이번 사안으로 인해 한미일 3국의 안보 공조가 흔들릴 가능성이었다고 밝혔다.
이를 반영하듯 일부에서는 한일 양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관련 정보 공유 등을 명분으로 체결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파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측에서 언급이 있었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GSOMIA가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언급이 있었다"고 답했다.
한편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지금은 미국 정부가 한일관계를 중재하거나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는 보도와 관련, 이 당국자는 "미국은(한국과 일본 중) 한 쪽 편을 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중재나 조정을 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리스 대사가 중재를 거부했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라며 "중재는 아니고 현 상황에 관여해서 이를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관여가 실제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장담하기 어려운 가운데 미국은 데이비드 스틸웰 신임 동아태 차관보의 아시아 순방에 맞춰서 지난 12일 일본 도쿄에서 한미일 차관보급 협의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일본 측은 일정을 이유로 거부한 바 있다.
이 당국자는 미국의 관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 "최근 미국이 한미일 간 조율을 시도했는데 일본 측 준비가 되지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시도가) 있지 않겠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한국이 전략물자에 대한 수출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냐고 일본 측에 물어봤는데 답을 하지 못했다. 또 미국이 일본에게 물어봤을 때도 설명하지 못했다고 한다"며 "이는 일본의 자충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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