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빵, 과자, 사탕, 젤리, 의약품 캡슐 등에 널리 쓰이는 젤라틴이 운동화 등을 만들고 남은 수입 피혁폐기물을 원료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재활용 공정이 비위생적이고, 피혁폐기물 안에 크롬 등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이 다량 함유되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관계당국의 적극 대응을 주장하고 있으나, 식품의약품안전청 등 관련기관은 식품 안전에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수입 소가죽 폐기물로 만들어지는 젤라틴**
젤라틴은 동물의 가죽, 뼈, 힘줄을 구성하는 콜라겐을 뜨거운 물로 가열한 것으로, 케이크나 푸딩 등 빵 종류나 과자, 사탕, 젤리 등 어린이들의 군것질거리의 재료로 널리 쓰이는 식품첨가물이다. 최근에는 의약품 캡슐이나 어린이를 겨냥한 한약 젤리의 원료로도 사용되는 등 그 쓰임새가 매우 넓다.
부산환경운동연합의 추적에 따르면, 국내에 유통되는 젤라틴의 상당량이 미국 등지에서 도축후 얻어낸 소가죽을 수입해 운동화 재료로 사용하고 남은 부분인 가죽 내피 폐기물을 그 원료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용하고 남은 가죽 내피에서 필요한 부분을 잘라낸 후, 세척·멸균 과정을 거쳐 삶아 시중에 유통되는 젤라틴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환경단체, "비위생적으로 관리, 크롬 등 중금속도 다량 함유"**
부산환경운동연합은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피혁폐기물의 보관 상태가 일부 비위생적인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부산환경운동연합은 "현재 피혁폐기물은 수거될 때까지 피혁가공 공장 한쪽 구석에 방치되어 보관되고, 그 과정에서 먼지나 오염물질이 피혁폐기물에 묻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운반 과정에서도 위생처리는커녕 젤라틴 원료인 내피 운반 차량으로 다른 중금속 등이 다량 함유된 다른 가죽 폐기물도 함께 운반하는 일이 다반사로 이루어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부산환경운동연합은 "젤라틴의 원료가 되는 피혁폐기물뿐만 아니라 완제품에서도 인체와 환경에 유해한 크롬 등 중금속이 높게 함유됐다"고 주장해 논란이 예상된다. 크롬은 각종 피부 질환과 알레르기를 비롯해 간, 위장 장애를 일으키고 폐암의 발암물질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환경운동연합이 젤라틴 원료로 사용되는 내피 폐기물 원료를 4개 회사에서 6개를 채취해 실험·분석한 결과, 피혁폐기물은 크롬을 최고 1kg당 6,244mg이나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통상적으로 자연 상태 식료품에 포함되어 있는 크롬의 양(3가 크롬, 1kg당 20~590mcg)보다 1만배나 높은 수치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젤라틴 완제품에서도 크롬 수치가 1kg당 1.85mg으로 발견되어 피혁폐기물보다는 많이 줄었으나 여전히 90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환경운동연합측은 "크롬 화합물 처리를 하기 전에 수거되는 젤라틴용 내피 폐기물이 크롬 화합물 처리가 끝난 최종 가죽 폐기물들과 일부 섞이거나 오염되는 등 관리가 허술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료 채취 과정에 문제가 있거나 보관, 운반 중에 크롬 화합물 등에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농림부에서는 공업용화학약품 처리를 많이 한 최종 피혁폐기물은 비료용으로도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수입된 소가죽은 피혁가공 공장에서 6가 크롬, 아닐린, 아조염료, 식물성 타닌, 유기용제(벤젠 등), 포름알데히드와 펜타클로로페놀과 같은 발암물질을 비롯해 알레르기를 유발하고 환경호르몬으로 분류된 다수의 화학 물질을 통해 가공된다. 내피 폐기물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오염물질들이 묻고, 그것이 젤라틴을 통해서 고스란히 인체로 흡수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부산환경운동연합의 정명숙 부장은 "가장 분노를 느끼는 것은 폐기물을 재활용해 아이들이 즐겨먹는 식품의 첨가물을 만드는 행위 자체"라면서 "피혁폐기물 사용을 즉각 중단하고 식용으로 수입된 동물 가죽이나 뼈로 젤라틴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식약청, "환경단체 편견일뿐, 문제없다"**
환경운동연합 최열 공동대표를 비롯한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지난 7월9일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과 면담을 가지면서 젤라틴의 문제점을 통고하며 시정을 요구했었다. 이날 면담에서 김화중 장관은 "국민 건강과 복지를 책임지고 있는 보건복지부에서 이 문제를 반드시 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식약청 등 관련기관은 "환경단체 편견일뿐이며,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식약청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관련 사항에 대해 대응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부산환경운동연합이 제공한 2003년 3월10일자 공문을 보면 식약청은 ▲젤라틴은 식품첨가물로 관리하기 때문에 사용되는 원료에 대해서 별도의 기준을 설정해 관리하지 않고 있고 ▲젤라틴으로 만드는 가죽 원료는 가죽 공정 과정 중에서 준비공정 단계에서 얻어지는 가죽 조각을 수집하는 것으로 문제될 게 없고 ▲크롬 화합물 등이 사용되는 단계 이전에 얻는 것이라면서 식품첨가물 원료로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잠정 해석을 내렸다.
프레시안의 추가 확인에 따르면, 식약청은 젤라틴 원료로 이용되는 가죽 내피 폐기물을 폐기물이 아닌 일종의 '부산물'로 간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크롬 등 중금속에 오염될 수 있는 공정 전에 수집되기 때문에, 환경단체가 주장하는 중금속 다량 오염의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식품첨가물의 경우는 최종 완제품을 대상으로 관리하는 것이 국제적 관행이며, 젤라틴은 미국, 일본, EU 등에서도 식품첨가물로 간주하고 있다"면서 "식품첨가물의 중금속 기준이 통상 1kg당 50mg(미국 10ppm)인 것을 감안한다면, 환경단체가 젤라틴에서 분석해낸 크롬 1.85ppm도 경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식품첨가물의 경우 아주 미량만 식품에 첨가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인체에 흡수되는 양은 훨씬 더 적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식약청 관계자는 "환경단체측이 문제제기한 내피 폐기물을 수거하고, 운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위생적 관리는 시정하도록 이미 조치했다"면서 "실제 젤라틴 공정 과정을 편견없이 본다면 문제 삼을 게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업체들은 "젤라틴 원료로 이용되는 내피 전용 차량이 운영되는 등 환경단체들의 일부 고발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일단 "식약청에 실태 파악을 요청했고, 결과에 따라 업체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거나, 규격과 기준 강화 등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똑똑해진 소비자 어디 손을 들어줄까?**
현재 환경단체와 식약청 등은 지루하게 끌어온 공방으로 서로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또 전국에 3곳이 있는 젤라틴 업체 중 1곳은 최초로 부산환경운동연합에 이 문제를 제기한 이모씨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다.
부산환경운동연합측은 "필요하다면 독립적인 인사들로 위원회를 꾸려서 이 사안에 대한 공동 검증을 식약청 등에 제안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식약청도 "제안이 공식적으로 들어오면 적극 검토할 것"이며 "환경단체측을 설득하기 위해 직접 만날 의향도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이 "아이들에게 가죽 쓰레기를 원료로 한 식품 첨가물을 먹일 수 없다"는 환경단체의 주장과 "국민 건강에 해가 될 게 없다"는 식약청의 주장중 어디 손을 들어줄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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