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6대 그룹(삼성, LG, SK, 현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54개 계열사, 1백64명의 사외이사 실태를 조사한 결과, 6대 그룹의 사외이사 가운데 절반이 전직 공무원 등 정부 관련 인사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각종 감독관련 기구 인사가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경우도 2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가 본래 취지와는 달리 퇴임하는 공무원이나 감독관계자들의 '낙하산 일자리'로 왜곡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사외이사 절반이 정부 관계인사**
경실련이 2일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정무직 공무원, 정부 각 부처의 위원회 위원(자문, 고문 포함), 전직공무원 등이 76명으로 전체의 46.6%에 달했다. 단일 직업으로는 교수가 57명(35%)으로 가장 비율이 높았다.
또한 전현직 경제(금융)감독 관련 기구 인사가 사외이사를 맡은 경우가 33명에 달했고, 특히 국세청 출신 인사가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경우는 9명이나 됐다.
또 LG건설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김건호 관광정책심의위원회 위원과 이부식 교통개발연구원 원장처럼 계열사와 이해관계가 밀접한 정부부처 및 연구원의 전현직 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된 경우도 11명으로 집계됐다.
경실련은 "2회 이상 중임한 사외이사의 수가 82명(50.3%)명에 달했으며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된 98년부터 현재까지 사외이사직을 계속 수행해오는 경우도 있어 경영활동에 대한 감독기능 약화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사외이사 구성이 기업 투명성 제고라는 원래의 취지와는 동떨어지게 된 것은 법 자체가 미비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2001년 개정된 증권거래법은 대형상장법인, 대형 협회등록법인의 경우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자 중에서 사외이사를 선임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제도는 사외이사 선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최대주주 및 지배주주의 영향력 하에 이사회가 구성되고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또한 이사회에서 구성하므로 공정성을 위협받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사외이사, 사실상 대주주 몫**
경실련에 따르면 2002년 증권거래소가 상장회사를 중심으로 설문한 결과에서도 사외이사의 추천방법이 '최대주주 및 주요주주 추천'에 의한다는 답변이 76%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현행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주권상장법인과 협회등록법인(자산총액이 1천억원 미만인 벤처기업 제외)은 총 이사수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또한 최근 사업연도말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주권상장법인이나 협회등록법인은 총 이사수의 절반이상, 최소 3인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6대 그룹(삼성, LG, SK, 현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54개 계열사, 1백64명의 사외이사현황을 보면 사외이사는 평균 3명으로 '사외이사 최소 3명 '이라는 법적 요건을 간신히 맞춘 것으로 나타났다. 법때문에 할 수 없이 사외이사를 도입한 것이지, 자발성은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국민은행 등 우수지배구조기업으로 여러 차례 국내외에서 선정된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의 경우 사외이사가 전체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대목과도 대조된다.
***소액주주들은 여전히 뒷전**
소액주주들이 사외이사 구성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차단돼 있는 것도 문제라는 게 경실련의 지적이다.
현행 상법상 주주총회에 이사후보자로 추천할 자를 결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이사회이나, 예외적으로 일반주주가 주주총회에서 특정 이사후보자를 추천하는 동의를 제출하는 것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2001년 3월에 개정된 증권거래법은 상장법인이나 협회등록법인이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회의가 열리기 2주전에 통지 또는 공고하는 주주총회의 소집통지서에 이사후보자의 성명, 약력과 추천인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주주총회 회의장에서 이사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주주제안권을 행사해 이사 후보를 추천하려면 상법상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3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나, 증권거래법상에 상장법인 또는 협회등록법인의 발행주식 총수의 1000분의 10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가 6개월 이상 그 주식을 보유해야 하며, 주주총회일 전 6주전에 서면으로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이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집중투표제 유명무실**
소액주주의 권익 보호를 위해 도입된 집중투표제 역시 조사대상 54개 기업 중 2개사만 채택하고 나머지는 모두 정관에서 배제해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도 이를 반영하듯 주주의 권리를 대변하는 사외이사가 군소주주나 주주 제안 형식으로 추천된 경우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54개 조사기업 중 29개사가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추천이 이뤄졌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SK(주) 이사회의 경우 2001년에는 무려 38번, 2002년에는 26번의 이사회를 개최하였으나 이사회에 올린 안건은 모두 가결되었으며 사외이사가 반대의견을 표명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특히 SK 이사회 결정에 참여한 사외이사들 중 과반수는 지난 93년 3월부터 선임돼 활동해왔던 것으로 나타났고, 이사회에서 처리한 안건 중,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적발돼 막대한 과징금을 물은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SK이사회의 사례는 기업의 사외이사 제도 운영이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대표이사 등 '경영진의 업무집행에 대한 이사회의 감독기능을 강화'하여 회사 경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에서 사외이사 제도의 실효성을 의심케 하고 있다.
SK이사회를 보더라도 사외이사가 대주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사람들로 채워지거나 실제로는 소액주주에 불과한 그룹 총수가 상호출자에 의해 과도한 의결권을 행사해 사외이사가 총수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때문에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사외이사가 독립적인 인물로 추천될 수 있는 법적 통제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경실련은 사외이사 제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상법 개정을 통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주주제안에 의한 이사후보 추천 조건 완화 ▲사외이사 후보에 대한 일상.객관적인 검증이 가능하도록 하는 공시제도 활성화 등의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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