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6만여년 만에 지구에 가장 근접하는 화성을 관측하기 위해, 온 지구인들이 들떠 있는 시점에서 20세기 우주 개발의 상징이었던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분위기는 침통하기만 하다. 컬럼비아호 사고 원인에 대한 최종 보고서가 나온 데 이어, 안팎으로 나사의 존재 이유에 대한 회의가 대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키프 나사 국장, "우주 개발 동기 결여"**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각) 나사의 션 오키프 국장(47)은 "냉전시대에 나타났던 우주 개발에 대한 강력한 동기가 지금은 결여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앞서 26일 발표된 <컬럼비아호 사고 원인에 대한 최종 보고서>가 지적한 나사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오키프 국장의 동의를 나타낸 것으로, 앞으로 나사에 대한 정책의 대전환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최종 보고서는 "80년대말 냉전의 종결 이후 , 미소간의 우주 개발 경쟁이라고 하는 미국 우주 개발의 가장 중요한 정치 기반이 없어진 뒤, 이것을 대신하는 강력한 정치적 동기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과거 10년간 예산과 인원이 각각 40% 이상 삭감되어 기체를 개량하거나, 예측불허의 사태에 대응할 여유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차세대 우주왕복선 개발 계획이 변경되어 기체의 노후화 대책이 늦은 것도 사고의 또다른 원인"이라면서 우주 개발 예산을 지속적으로 줄여온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문제는 오키프 국장이 이같은 나사의 개혁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당사자란 점이다.
나사의 최고 책임자인 오키프 국장은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아닌 예산 전문가다. 2001년 11월 나사 국장으로 부임할 때까지 그는 백악관 예산 담당 부서의 2인자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를 나사의 방만한 예산 운영을 바로잡는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나사 국장에 임명했던 것이다. 국제우주정거장(ISS) 사업으로 나사가 막대한 비용을 쓰고 있었고, 정부와 의회에서 이를 견제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진 데 대한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사고 직후부터 오키프 국장은 "예산 긴축으로 안전 조치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1990년대 수십억원을 들여 진행된 차세대 우주왕복선 개발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고, 현 우주왕복선을 20년 이상 더 사용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도 바로 오키프 국장이기 때문이다.
***여야 "나사의 재건을 적극 돕겠다"**
관계자들은 이번 컬럼비아호 사건을 계기로 오키프 국장이 추진해온 '경제성'을 최우선에 둔 나사 군살빼기가 주춤해지고, 대신 나사 재도약을 강조하는 이들에게 힘이 실릴 것으로 보고 있다. 컬럼비아호 사고 이후 이미 이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상·하원은 사고 직후 바로 나사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또 미 국민들 과반수도 나사의 유인우주비행 계획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답해 나사는 예산을 2003년 1백50억 달러에서 2008년 1백78억 달러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계획을 2월에 발표한 바 있다. 또 5년간 30억 달러를 들여 그 위험이 우려되고 있는 핵추진 로켓 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키프 국장은 "4시간여에 걸쳐 조사위원회의 게만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과 토론을 했다"면서 "이번 보고서를 나사 개혁의 청사진으로 삼을 것이고, 보고서의 29개 권고 사항도 다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비전 제시 못 하는 나사**
하지만 나사를 보는 외부의 시각은 좀 다르다. 나사가 이번 컬럼비아호 사고를 국면전환용으로 이용한다면 앞으로 나사는 더욱더 곤란에 처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1958년에 만들어진 나사의 예산은 이미 1980년대말 이전부터 1960~1970년대의 최전성기에 비해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이를 보였다. 반복해서 사용 가능한 우주왕복선 계획이 추진된 배경에는 바로 이런 예산 절감 압력이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예산 절감 분위기 속에서도 나사는 그다지 쇄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ISS 사업이다. 이 사업은 1990년대 애초 예산보다 무려 50억달러나 들어가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나사의 사업 계획이나 조직 운영의 비효율적인 면에 대한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냉전 시대 유산인 나사에 대해 호의적인 부시 대통령이 2년간의 기한을 주고 오키프 장관을 전격 투입한 것도 이런 따가운 시선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나사가 냉전 시기 받아온 막대한 액수의 지원이 불합리한 측면이 많았다고 입을 모은다. 미소간 경쟁의 일환으로 무비판적으로 팽창된 나사의 예산은 결국, 사회적 유용성이 제대로 판단되지 않은 우주 개발을 자극했고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유인우주비행 계획이라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1990년대 들어 40% 이상 예산과 인원이 삭감된 것도 '나사 죽이기'라고 보기보다는 오히려 "나사가 과거에 얼마나 비정상적인 지원을 받아 왔는지를 방증하는 대목"이라고 지적한다.
또 컬럼비아호 사건 이후 많은 과학자들은 나사가 추진하고 있는 우주왕복선과 현재 추진중인 ISS 계획 등 유인우주비행 계획이 실제 유용성보다 과대평가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우주왕복선에서 시행중인 과학 실험은 대부분 지상에서 할 수 있거나, 무인 우주선으로도 가능한 것인데, 유인우주비행 계획을 밀어붙이기 위해서 "우주왕복선이 과학 활동에 크게 기여했다"고 포장해 왔다는 것이다.
나사는 냉전 이후 달라진 환경과 비판을 통해 조직의 새로운 역할을 찾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우주 개발의 다른 비전을 제시하는데 실패했고, 그런중에 일어난 사고가 바로 컬럼비아호 참사라는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오키프 나사 국장의 발언이 나사의 진정한 쇄신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나사의 국면전환용 발언인지 나사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나사가 새로운 세기에도 "전 세계인의 우주 개발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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