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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이윤과 노동자의 안전, 양립 가능한가

[서리풀 연구通] 착취적 자본주의 생산구조가 산재의 근본 원인

지난해 말,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다. 그런데 불과 여섯 달 만에 산업재해 유가족들이 하위법령 개정안을 비판하며 제대로 된 개정을 호소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보호 대상과 책임 대상 범위가 협소하며 작업 중지 명령도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 관련 기사 : 노동자 불만 쌓이는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입법예고안) 정부는 무려 28년 만에 법을 전면 개정했으니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기는 것 같다. 많은 시민들도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며, 법령 세부조항까지 관심을 두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자본과 노동 사이 힘의 균형이 지나치게 기울어진 우리 사회에서 산업안전보건을 강력히 규제하기까지 넘어야 할 장벽은 여전히 많다.

무엇보다도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사회적 이해의 간극이 좁혀졌는지 의문이다. 산업재해는 통제받지 않는 자본주의 팽창의 부산물이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안전이 희생되는 것. 즉, 착취적 자본주의 생산구조가 산업재해의 근본 원인이다. 노동자의 안전은 이윤을 늘리려는 기업의 질주에 제동을 걸 때 비로소 확보할 수 있다. 기업의 이윤 추구와 노동자의 안전이 공존할 수 있다는 주장은 듣기 좋은 소리이기는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자본과 노동의 착취적 의존관계야말로 자본주의에 내재한 근본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이윤과 노동자의 안전은 양립 가능하다"는 주장은 힘이 강하다. 이로부터 1990년대 초부터 산업안전보건 탈규제가 가속화되었고 기업의 자율규제가 규범이 되었다.

▲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야간에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 사망한 하청 노동자 김용균 씨. ⓒ공공운수노조


오늘 소개할 연구는 캐나다 오타와 대학 연구팀이 학술지 <자본과 계급(Capital & Class)>에 발표한 '기업살인법 제정은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시공간적 조정인가?(Corporate killing law reform: A spatio-temporal fix to a crisis of capitalism?)'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바로 가기) 연구팀은 2004년과 2007년에 각각 기업살인법을 도입한 캐나다와 영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러한 법률이 기업 살인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경계 짓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현재 상태를 유지시키는지 설명한다.

우선 연구팀은 이 논문을 쓰던 당시(2018년 추정) 캐나다와 영국에서 기업살인법에 따른 유죄 판결이 각각 3건, 22건에 불과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유죄선고가 기업살인법 제정 당시 염두에 두었던 대기업들이 아니라 작은 규모의, 상대적으로 취약한 회사들을 겨누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연구팀은 법이 자본 증식의 필수 요소라고 주장하면서 기업살인법이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시공간적 조정'이라고 설명한다. 시공간적 조정이란, 자본의 과잉 축적에서 비롯한 위기를 시간적 유예와 공간적 확장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일컫는 개념이다.(Harvey, 2004)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과잉 축적은 필연적으로 위기를 낳지만 그렇다고 저절로 붕괴되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근본적 모순을 절대 건드리지 않으면서 다양한 시공간적 조정을 통해 위기를 이동시키기 때문이다. 새로운 법률, 정책, 혹은 정책 개입의 우선순위 변화를 포함하는 이러한 조정은 자본 축적을 안정화시키거나 새로운 축적 방법을 만들어낸다. 이는 자본주의의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연구팀은 '시공간적 조정'이라는 개념이 형벌을 통해 기업을 규율하려는 정부의 행위를 탐구하는 데에도 유용한 렌즈라고 설명한다.

연구팀은 법을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법이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와 함께 발전하면서 지배 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함으로써 자본 증식의 토대를 강화시켰다고 이해한다. 법과 법적 추론에 자본의 논리가 깊숙이 내재되어 있으며, 국가는 사회질서가 무너지면 법을 이용해서 새로운 법적 주체를 만들어 내거나 기존의 법적 주체의 권한과 책임을 재배치하고 국가와 법 제도의 합법성을 복구하는 조정 작업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기업살인법의 도입은 기업범죄자라는 새로운 법적 주체를 만들어내고 기업에게 새로운 권한과 책임을 부과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정은 진공상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법적 주체들은 새로운 규율을 도입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저항한다. 일터의 안전보건규제는 국가-기업-노동 3자의 끊임없는 대결의 결과물이다.

연구팀은 캐나다와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시공간적 특성에 주목하면서, 이것들이 기업살인의 의미를 법학 용어의 좁은 의미로 한정시키고 자본의 근본적인 모순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연구팀은 캐나다와 영국에서 기업살인법이 도입되는 데 각각 10년, 13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됐음을 지적한다. 기업은 '진짜' 범죄자가 아니고 기업살인법 제정을 요구하도록 만든 재난은 어쩌다 발생한 불행한 사건에 불과하다는 지배적 믿음이 입법 기간을 지연시켰다. "기업살인법을 제정하면 가장 유능한 인재가 더 이상 기업의 경영자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와 더불어, 입법가들은 "고용의 중요한 원천인 기업을 처벌하는 것"을 주저했다. 기업의 강력한 힘은 법 개정을 위한 노력을 시간적으로 지연시키고 기업범죄를 '진짜' 범죄로부터 공간적으로 분리함으로써 기업범죄의 심각성을 약화시켰다.

또한 연구팀은 기업살인법이 법의 형식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기존의 법적 방법과 규칙의 지배를 강화한다는 점을 비판했다. 형법상 범죄를 형성하는 구성요건인 '범행 의도(mens rea)' 같은 이상적인 법률 개념이 기업살인법에도 온전히 남아서 기업살인의 심각성을 경시하고 법의 집행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캐나다와 영국 모두 기업의 과실에 따른 범죄는 "해당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표준에서 '현저하게 벗어난'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과실'을 증명하는 것이 한 개인이 상당한 주의 의무를 다했음을 결정하는 객관적 방법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이는 결코 중립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아니다. 과실이 실제로 증명되는 과정은 유동적이고 모호하며 경제적, 정치적, 도덕적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는다. 기업살인법은 "기업범죄에서의 과실"을 새롭게 개념화하려는 고민 없이 전통적으로 개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적용해 온 '과실' 개념을 여전히 따르고 있다.

그 결과, 노동자와 시민의 사망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기업살인법이 역설적으로 산업재해를 단발적 '사고'로 간주하고, (과실 증거가 충분하게 입증될 수 있는 기업 위계 구조의 말단에 위치한) 사고에 직접 연루된 사람들에게만 제한적 책임을 묻는 기존의 법적 추론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기업살인법은 소수의 기업과 실무자에게 형사상 책임을 지울 뿐, 기업의 운영을 결정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제한된 책임의 베일 뒤에 숨어서 법적 조사를 피하게 된다.

연구팀은 이 두 국가에서 기업살인법 제정으로 법이 주변화 되는 동시에 숭배를 받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정부가 기업살인법을 통해 노동자나 시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악덕 기업이나 사업주를 처벌하는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오히려 기업살인이 대중적, 정치적 관심에서 멀어지게(주변화 되게) 만든다. 또한 기업살인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법률 영역으로 옮겨가면서 기업살인을 발생시키는 자본의 근본적 모순, 착취적 자본주의 생산구조, 자본과 노동의 불균등한 권력 관계에 대해 질문하지 않게 되고, 법이 모든 걸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만연해졌다는 점에서 법이 숭배된다고 말할 수 있다.

논문을 읽고 나면, 한국보다 앞서 기업살인법을 제정한 캐나다와 영국의 사례가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기업살인법을 도입해도 별수 없더라"는 비관적 평가는 섣부른 것 같다. 오히려 이러한 해외 사례에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기업살인법 제정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기업살인'이 국가-기업-노동의 대결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둘러싼 갈등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서지정보
Harvey, D. (2004). The 'new' imperialism: accumulation by dispossession. Socialist register, 40(40).
Bittle, S., & Stinson, L. (2019). Corporate killing law reform: A spatio-temporal fix to a crisis of capitalism? Capital & Class, 43(2), 251-270. doi:10.1177/030981681878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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