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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대통령' 장준하의 불꽃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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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대통령' 장준하의 불꽃같은 삶

[신간]타계 28년만에 '최초의 전기' 출간돼

오는 17일은 고 장준하 선생(1915-1975)의 28주기 기일이다. 그의 28주기에 맞춰 그의 삶을 다룬 최초의 전기가 출간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소설가 박경수씨의 <장준하-민족주의자의 길>(돌베개 간)이 그 책이다.

***타계 28년 후 나온 최초의 장준하 전기**

지금까지 고 장준하 선생의 치열했던 삶은 주로 자서전 <돌베개>(세계사 간)와 <장준하 전집>(세계사 간) 등을 통해 알려져왔다. 특히 1971년 장준하가 직접 집필한 <돌베개>는 그 후 20여년 동안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는 용기를 불어넣어준 명저로 꼽힌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 부대를 탈출해 충칭 임시정부까지 찾아간 '6천리 장정'과 광복군 시절에 대한 그의 기록은 치열했던 삶의 한 부분을 보여준다.

하지만 장준하의 삶 전체를 조망하는 전기는 타계한 지 28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번에 출간한 <장준하-민족주의자의 길>은 최초의 장준하 전기로서, 앞으로 장준하를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그를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을 듯하다.

이 책의 저자인 박경수씨는 1955년 장준하가 창간한 <사상계>의 창간 2주년 기념 현상소설모집에 당선되어 등단한 인연으로, <사상계> 기자, 국토건설본부(본부장 장면, 기획부장 장준하) 간사 등을 역임하면서 장준하가 타계할 때까지 그를 누구보다 가까운 지근거리서 지켜본 산 증인이다. 그는 장준하 타계 이후 한평생 그의 삶을 화두처럼 껴안고 살았다고 한다. 지난 1995년 <재야의 빛 장준하>로 나온 책을 7년이 넘도록 수정, 보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저항정신으로 일관한 장준하의 삶**

장준하는 일제시대 때는 독립운동가였고,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반독재 민주화 투사였다. 또 '자유와 민권'을 기치로 내걸고 독재 정권하 지식인들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던 월간 <사상계>를 창간해 시대를 선도한 언론인이었다. 그가 나라 안에서 독재 정권에 의해 "부패 언론인"으로 낙인찍힐 때, 나라 밖에서는 1962년 막사이사이 상(언론문화 부문)을 수여해 그의 업적을 기릴 정도였다.

또 일생을 두고 박정희와 상반된 길을 걸어온 그는 박정희 평생의 라이벌로 꼽히기도 한다. 그가 1967년 4월 통합신민당의 대통령 후보 윤보선을 당선시키기 위한 유세 과정에 "박정희씨는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군 장교가 되어 우리의 독립 광복군에게 총부리를 겨누었으니 이런 인물이 우리나라 대통령으로 있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수치입니다"라고 맹공을 퍼부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사람들은 박정희와 대비해 장준하를 '재야 대통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런 장준하의 저항정신으로 일관한 삶을 크게 세 가지 축을 통해 묘사한다. 기독교, 실천적 민족주의, 반독재 투쟁이 그것이다.

장준하는 조부와 부친이 모두 목사로, 기독교 환경에서 성장했다. 이것은 그의 고향 평북 의주가 일찌감치 기독교를 받아들인 곳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일생을 신념을 위해 살다간 그의 순교자적 자세나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감, 통일 지상주의를 주장하면서도 북한 정권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던 그의 태도는 이런 성장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강한 실천적 민족주의는 사실상 장준하의 일생을 꿰는 가장 중요한 축일 것이다. 청년기에 일제 강점기를 보낸 것과, 광복군 경험에서 형성된 이 실천적 민족주의는 해방 후에는 친일파와 손을 잡고 외세를 등에 업은 이승만 정권에 대해서 또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독재자로 군림한 박정희 정권에 대해 대응하는 그의 저항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그의 반독재 투쟁은 결국 실천적 민족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 책의 부제가 "민족주의자의 길"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대학생 등 40여명 장정 6천리 길 답사-묘역 방문도 늘어나**

유신독재에 맞서 아홉 번의 옥고를 치루면서도 굳건히 버티던 장준하는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의 실족사를 해 변사체로 발견됐다. 그가 의문사를 당한지 27년이 지난해 9월16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내려서, 그의 죽음은 영원한 역사의 미제로 남게 되었다.

장준하의 지인들과 '사상계' 동인들을 중심으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거행된 그의 추모행사는 올해도 8월17일 경기도 광탄리 소재 나사렛 공원묘지에서 열린다. 또 <장준하기념사업회>가 1999년부터 진행해 온 <돌베개>에 묘사된 장정 6천리 길을 따라가는 답사가 8월5일부터 15일까지 10박11일간의 일정으로 시작됐다.

아홉 번째인 이번 답사에는 총40명의 대학생 등이 참가해 장준하의 정신을 되새길 예정이다. 또 최근에는 그의 묘역을 방문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1975년 김수환 추기경이 영결미사에서 했던 다음 말이 현실화되는 듯하다.

"그의 죽음은 별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빛이 되어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기 위해 잠시 숨은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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