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28일 기자 브리핑을 통해 올해 정기국회에 '주민투표법안'을 제출해 입법되는대로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의 계획이 실현될 경우, 내년 하반기부터 쓰레기매립장, 읍면동의 분리ㆍ합병과 같은 주요 현안을 주민들이 직접 투표로 결정하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김 장관은 이번 주민투표제 도입이 "지방분권에 따른 각종 권한이 민주적이고 책임성 있게 행사될 수 있도록, 행정의 최종 권한을 주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구구절절 맞는 얘기고, 참여정부에게 국민들이 바라던 올바른 정책방향이다.
하지만 이 좋은 소식을 국민에게 전하려고 하니, 매일 밤 촛불을 들고 "핵폐기장 반대"를 되뇌는 부안군민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만약 주민투표제가 앞서 도입되었다면 부안군민들은 "핵폐기장 반대"라는 머리띠를 묶지 않더라도 투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안군민들은 시쳇말로 '재수 더럽게 없는 군민'들인가?
***김두관, "김종규 군수의 고뇌에 찬 결단에 감사"**
김두관 장관은 지난 26일 위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종규 부안군수의 유치신청에 대해서 "지도자는 외로이 홀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면서 "김 군수의 고뇌에 찬 결단에 감사한다"고 김 군수를 격찬했다.
하지만 김장관의 이 격려 소식을 접한 많은 국민들은 실망스러워 했다.
김 부안군수가 어떤 자치단체장인가.
다수의 부안군민들이 반대하고, 군의회까지 부결시킨 핵폐기물처리장 유치를 혼자서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처리한 사람이다. 처리 과정도 의혹투성이여서, 내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다가 군산, 삼척 등 원래 후보지들이 다 포기를 한 시점에서 돌연 유치신청을 했다. 부안군민들 사이에서는 김 부안군수가 강현욱 전북도지사나 산업자원부, 한국수력원자력(주) 등과 모종의 야합이 있었을 것이란 음모론적 얘기까지 파다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행정의 최종 권한을 주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내년부터 주민투표제를 실시하겠다는 모습과 군민 대다수 의견을 무시하고 '나홀로' 결정을 내린 군수에게 감사하다고 얘기하는 모습, 둘 중에 어떤 것이 김 장관의 진짜 얼굴인지에 대해 국민들은 헷갈려 하고 있다.
***김두관 장관의 두 얼굴**
남해군수 시절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비해서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섰던 김 장관이 참여정부의 행자부 장관이 되었을 때,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다수 국민은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우리나라의 행정 문화에도 개혁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를 걸었었다.
그런데 5개월이 지난 지금 김 장관이 보이고 있는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핵폐기물처리장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이 그렇다.
김 부안군수의 돌발적 유치신청과 산자부의 밀어붙이기식 부지 확정이 이어졌을 때, 상당수의 국민들은 김두관 장관이 김 군수의 행위에 제동을 걸어주기를 기대했다. 26일 군청앞에서 부안군민들이 김두관 행자부 장관 면담을 요청하면서 "김두관 행자장관"을 외쳤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부안군수의 결단'에 대한 격려였고, 산자부 장관이 위도 주민들에게 현금 직접보상 운운할 때의 '들러리'였다.
민주주의는 제도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서, 지방의회가 존재한다. 부안군수는 지방의회의 견제를 거부하고 명백한 전횡을 저질렀다. 김두관 장관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시한 행동이다. 주민투표제가 시행되더라도, 이처럼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시하는 관행이 계속된다면 주민투표제 역시 이름뿐인 유명무실한 제도로 남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17년이나 기다렸는데 1년 더 기다린다고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다. 어차피 1년 이상 위도를 대상으로 각종 부지 적합성 조사를 해야 하는 산자부나 한수원의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다. 주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충실한 조사를 할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
김 장관은 핵폐기물 처리장을 내년에 주민투표제 입법후 부안군민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라. 역사적인 주민투표제의 시행 첫 의제로 17년 이상 끌어온 핵폐기물처리장 문제가 다뤄진다면,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일보전진'이다.
기왕이면 이번처럼 선정위원 명단도 밝히지 않는 식이 아니라, 전문성과 중립성을 동시에 갖춘 인사들을 공개리에 선정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를 하면 더 좋을 것이다. 이번처럼 짧은 시간에, 산자부나 한수원의 "안전하다, 문제없다" 자료만 내밀어서는 결코 주민투표 때 좋은 결과가 나올 리 만무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김두관 장관이 남해군수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 더 늦기 전에 제동을 걸어주길 바라고 있다. 방패에 찍히면서도 "김두관 장관 면담"을 외친 부안군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여는 김 장관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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