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군이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신청서를 14일 제출함으로써, 핵폐기물 처리장을 둘러싼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부안군내에서는 지방의회가 유치계획을 부결시켰으며 환경단체, 주민 등이 유치계획에 반대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어 앞으로 마찰이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부안군,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신청서 제출**
자율유치신청 마감시한인 15일을 하루 앞둔 14일, 김종규 부안군수는 김형인 부안군의회 의장과 함께 산업자원부를 방문,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신청서와 양성자가속기 기반 공학사업 유치신청서를 윤진식 장관에게 전달했다.
부안군이 부지로 신청한 지역은 격포로부터 14.4km 떨어진 위도로 면적은 4백28만평, 현재 11개 마을에 6백72가구 1천4백68명이 거주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 <해안선>을 촬영한 곳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1993년 10월에 섬 주민을 태우고 격포로 가던 서해 훼리호가 침몰해 2백92명이 사망했던 참사의 기억이 있는 곳이다.
부안군의 유치신청에 산자부 관계자들은 “위도 5곳에 시추공을 뚫고 기초 지질탐사를 벌인 결과 활성단층이 발견되지 않는 등 지질여건과 해양환경이 우수해 시설 부지로 적합하다는 판정이 내려졌다”면서 만족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안군이 최종 부지로 선정될 경우, 산자부는 부안군에 2003년까지 1천6백억원 상당의 양성자 가속기 시설, 테크노파크 조성, 산업단지, 배후주거단지, 관광 단지 등 2조원의 재정지원을 할 예정이다. 또 부안군이 추가로 제시한 새만금간척지 친환경 미래에너지 산업단지 건설, 특별 지원금 상향 조정,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조기 이전 등의 요구 역시 적극적으로 수용할 계획이다.
기존에 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됐던 군산, 삼척 등이 지역 주민과 지방의회의 반발로 사실상 신청 의사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부안군은 새만금 간척 사업을 둘러싼 갈등에 더해 핵폐기물처리장 갈등 역시 본격화될 전망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정성 확보'**
산자부와 한수원 등이 제시한 막대한 '당근'에도 불구하고, 유치를 염두에 뒀던 다른 지역들이 신청을 포기한 것은 핵폐기물 처리장의 '안전성 확보'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저준위 핵폐기물뿐만 아니라 중, 고준위 핵폐기물을 처리할 시설을 이번에 건설할 처리장과 연계해서 추진할 예정이어서 '안전성 확보'가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저준위 핵폐기물도 최소한 50년 이상 외부와의 격리가 요구되고, 고준위 핵폐기물 같은 경우에는 재처리를 한 후에도 최소한 1만년 이상의 격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세계의 거의 모든 핵발전 국가들은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의 추진 자체를 사실상 포기한 형편이다. 단적인 예로 에너지의 70%를 핵발전에 의존하는 프랑스(한국 약 30%)에서도 1980년대부터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추진해왔으나,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결국 2000년 7월에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의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다.
우리나라도 당장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급한 것은 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이다. 핵발전소나 의료기관에서 일상적으로 배출되는 작업복, 공구 등이 핵폐기물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핵폐기물들은 보통 50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방사성 물질이 자연붕괴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그 처리장은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 최소한 3백년 이상 지질학적으로 안정한 곳이 권장되고 있다.
***외국 핵폐기물 처리장도 잡음 끊이지 않아**
프랑스, 영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은 이미 건설되어 운영중이다. 하지만 그 안정성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프랑스의 경우 1969년에 조성된 라망슈 핵폐기물 처리장은 인근 지하수와 토양이 방사성에 오염된 것으로 밝혀져, 1994년 폐쇄된 후 새로운 로브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옮겨졌으나 2020년에는 이곳도 수명이 다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은 상태다. 최초의 핵 폐기물 처리장이었던 라먕슈 인근이 처리장 폐쇄 후에도 영구적으로 해당 부지 사용 금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국과 일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핵폐기물의 안정성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전인 1959년에 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을 만들었던 영국은 여러 차례에 걸친 핵폐기물 처리장 추가 건설 계획이 번번이 좌절된 후, 1992년에는 핵폐기물 처분 정책을 전면 백지화했다. 대신 영국은 2002년에 지방자치단체, 안전규제기구, 환경단체, 핵산업계, 노조, 일반 시민을 망라하는 광범위한 자문단을 만들어 핵폐기물 처리 정책을 담당할 '핵 사후처리기구'를 만들기로 결정한 상태다.
***"안전하다" vs "안전하지 않다"**
산자부와 한수원이 핵폐기물 처리장의 모범 사례로 광고했던 일본의 로카쇼촌 핵폐기장도 사용후 핵연료를 식히는 저장소 3곳이 누설되고, 핵폐기물을 수송하던 노동자가 자연계 평균보다 170배 높은 방사선에 노출되는 등 안정성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단체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할 안전성 문제는 뒷전인 채, 산자부나 한수원은 당장 부지 확정을 위해서 지원금을 미끼로 내걸고, 지방자치단체 역시 별 고민 없이 지원금에만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더구나 발전소에서 장시간 도로와 해상으로 핵폐기물을 수송하는 과정 발생할 위험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의 학폐기물 처리장 대부분이 발전소와 연계돼 추진되는 것도 이 때문이란 주장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산자부는 유치 신청 마감 후, "보름 동안 신청 지역에 대한 지질, 해양 환경 등을 현장 조사해 최종부지를 선정하고, 선정 후에도 약 8개월에 걸쳐 4계절 환경영향평가, 정밀 지질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여전히 환경단체들이나 지역주민들은 "최소 30년 이상 길게는 몇백년 동안 관리되어야 할 처리장 부지 선정에 대한 조사 치고는 너무 졸속"이라면서 의혹을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2008년이면 포화" vs "20년은 더 버틸 수 있다"**
'안정성 확보' 문제 다음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핵폐기물 처리장 자체다. 산자부나 한수원은 현재 2008년이 되면 더 이상 기존 핵발전소 시설 내에 저장하는 것이 포화 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핵폐기물 처리장을 짓는 것은 "더 이상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환경단체는 여기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현재 한수원이 보유하고 있는 압축 기술 등을 활용할 경우 "현재 방식대로 10년 이상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압축 기술이 계속 발전할 것까지 고려한다면 20년은 더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핵폐기물을 발전소에서 처리장까지 운반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압축 기술을 활용해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양측의 주장에는 향후 우리 사회의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핵에너지" vs "대안에너지"**
환경단체들이 핵폐기물 처리장을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처리장이 건설될 경우, 정부가 핵에너지 정책을 계속 밀고나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즉 서구의 핵발전 국가들이 핵폐기물 처리장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핵에너지 정책을 포기한 전례를 우리나라가 배우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핵폐기물 처리장 포기-추가 핵발전소 건설 계획 백지화-태양, 풍력 등 대안에너지 추진"이 서구 핵발전 선진국들이 밟고 있는 궤적이라고 지적한다.
환경단체들은 현재 발전소에서 "핵폐기물을 임시 저장하고 장기적으로 추가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 뒤, 점진적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해, 발전소와 핵폐기물을 관리할 것"을 주장한다. 이 기간에 소요되는 30여년 동안 대안에너지 개발로 눈을 돌리자는 것이다. 이것은 태양, 풍력 발전을 하기 위한 자연 환경이 중부 유럽보다 우리나라가 더 유리하다는 조건도 한몫한다는 것이 환경단체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세계 에너지 정책의 변화는 환경단체의 주장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세계 에너지 협의회는 2050년까지 대안에너지 비율이 전세계 에너지의 3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OECD 국가 중 핵발전소 추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으며, 유럽연합(EU) 15개국 중 14개국이 핵발전소 건설을 포기하거나 발전소를 폐쇄하고 있는 현실도 힘을 실어준다.
독일은 현재 태양 에너지 등 재생가능에너지 비율을 해마다 10%씩 확대해 가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아예 핵발전소 폐쇄 후, 전력의 일부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환경단체들의 주장에 에너지 정책 입안자들의 상당수는 "대안에너지는 여전히 시기상조"라고 얘기한다. "에너지의 30% 이상을 핵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대안에너지는 먼 미래의 얘기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부안군의 유치 신청 후, 당장 반핵 단체들과 지역 주민들 일부는 강현욱 전북도지사와 김종규 부안군수에 대한 퇴진 운동에 들어갔다. 한편 전북대(총장 두재균)는 방사선 기술 학과와 연구소가 포진된 ‘전북대 제2캠퍼스’를 부안군에 설립하는 계획을 발표해 핵폐기물 처리장과 연계된 부가가치 창출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새만금 간척지를 둘러싼 갈등에 이은 부안군을 둘러싼 두 가지 풍경이다.
이제 핵폐기물 처리장과 관련된 결정을 일부 관료들과 지방자체단체에서 다시 국민들이 가져와 앞으로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논의까지 포괄하는 토론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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