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울산의 한 공립 고등학교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학생에게 처음 의견을 물어본 것이 '급식 만족도 조사'였다. 사회가 더 민주적으로 바뀔 거라는 학생들의 기대감은,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더 존중할 거라는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설문 조사였기에 학생들은 급식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남겼다. 하지만 교사가 설문지를 취합하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로 급식에 대한 만족도를 물은 객관식 설문 문항에 뭐라고 답했는지 공개적으로 손을 들게 시켰다. 그리고 급식 만족도 조사에 부정적으로 답한 학생들에게 타박을 주었다. 타박을 받은 한 친구가 "이런 방식이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지" 도리어 질문했지만 그 발언은 쉽게 무시되었다.
'기타 의견' 문항에 대한 답도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요구해서 결국 의견을 밝힐 수 없었다. 대부분 학교에서 급식에 대한 학생들이 유일하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창구는 '급식 만족도 조사'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했듯 그 과정에서도 학생들이 의견을 표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설문 내용도 맛이나 기존 메뉴 중심으로 의견을 묻기 때문에 단편적인 입장만 전달할 수밖에 없다.
학교를 다니거나 다녔던 많은 사람들은 학교 급식에 대해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에 공감할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많은 일에 대해 의견을 내기 어렵지만, 급식에 있어서도 학생들의 선택권은 없다. 많은 학교에서 외부 음식의 출입을 금하며, 교문 앞에는 "교육부 훈령에 의거 모든 음식물(배달음식 포함) 반입을 금지 합니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밖에 나가서 밥을 먹고 온다거나,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온다거나, 도시락을 싸온다거나, 배달을 시키는 선택지 모두 없다. 이렇듯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급식밖에 없다.
학생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급식
학생들은 다양한 이유로 음식을 가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한 음식 재료에 알레르기가 있을 수도 있고, 종교적 이유로 특정한 음식을 안 먹을 수도 있다. 학교 급식은 가능한 한 다양한 학생들의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 급식은 학생의 취향(맵기, 당도, 염도 등), 질병(알레르기 등), 신념(채식, 종교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제공되는 급식을 먹지 않으면 유별난 학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창원의 한 공립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며, 채식을 하는 청소년인 A 씨는, "평소 김을 들고 다니며 밥과 김만을 먹는다. 하지만 면이나 볶음밥이 나올 때 볶음밥에는 대부분 스팸이 들어가 있고, 면에서는 사골 육수나 해물을 넣어서 만들어서 먹을 게 없는 날이 있다. 영양사 선생님께도 말해 보니 소수이기 때문에 의사를 반영할 수 없다고 한다. 식단표가 나올 때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체크해보면 심하면 밥 한 가지 그나마 괜찮은 날은 두 가지 정도밖에 없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들고 다닌 적이 있다. 영양사 선생님께 찾아가서 중식을 도시락으로 안 먹는다고 하자 학교에서 무상으로 주는 건데 왜 안 먹느냐고 하며, 급식을 먹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이상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식품 알레르기 질환을 갖고 있는 이들은 "먹으면 낫는다"라는 잘못된 미신으로 인한 밥상머리 교육에 시달리곤 한다. 언론 보도로 알려진 사례들을 보면, 한 '우유 알레르기' 환자는 초등학교 때 우유 급식이 나오면 못 먹었는데 이를 교사에게 들켜서 우유를 마실 것을 강요당했다가 구토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2013년에는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초등학생이 학교 급식에서 우유가 든 카레를 먹고 숨지는 일도 벌어진 적이 있다.(☞관련기사 : "알레르기 좀 있다고 이런 것도 못 먹어? 배부른 소리 한다! 참 유별나네!!")
이처럼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들에 대해서도 억지로 음식을 먹을 것을 강요하는 일이 학교에서 일어난다. 알레르기 등의 사유를 편식이나 예민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도 문제이다. 2019년 5월 부산시교육청은 '학교 급식 식품 알레르기 대체 식단 시범 사업'을 전국 최초로 실시하였다. 환영할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사업이 이제야 '최초'로 실시되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 하는 존재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이 급식을 직접 먹고 싶은 만큼만 담거나 거부할 수도 없다. 학교 급식은 자신이 먹을 양을 정할 수도 없고 정해진 양을 먹는 것이 의무처럼 여겨진다. 많은 초등학교나 유치원에 급식 지도를 할 때 억지로 급식을 먹을 것을 강요하여 '아동학대'로 입건이 되곤 한다. 올해도 경기도 남양주 한 어린이집에서도 교사가 급식시간에 밥을 먹기 싫어하는 어린이의 목이 뒤로 젖혀질 정도로 숟가락을 욱여넣는 사건이 있었다. 다른 학교 곳곳에서도 학생들에게 급식을 강압적으로 먹게 하는 일은 빈번하다. 이외에도 학교에서 '잔반 없는 날'을 지정하여 잔반 통의 수를 줄이거나 아예 두지 않는 학교도 있다. 배식 과정에서 처음부터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묻지도 않으며 '남기지 않을 것'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만일 학생들이 스스로 먹고 싶은 만큼 음식을 가져가게 하면, '학생들이 무질서해서 음식량이 맞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음식의 절대적인 양이 부족한 측면도 있다. 교육부의 2017년 학교 급식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은 음식의 제공량, 급식 의견 수렴, 음식의 맛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만족스럽지 않다는 답변이 높았다. 특히 고등학생(20.2%)과 중학생(15.4%)은 양이 적어서 불만족스럽다고 하였다.
학교와 달리 회사에서는 기본적으로 자율 배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음식량이 넉넉하며, 양이 한정되어 있고 인기가 많은 메뉴에 대해서는 몇 개까지만 가져가라고 안내, 지도한다. 옮겨 담는 과정이 위험한 메뉴만 보호 장비를 착용한 사람이 나누어 준다. 학교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자율배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의 경우 무조건 주는 대로, 정해진 대로 받아먹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학생들을 급식의 주체로 보지 않는 생각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
학생·청소년을 인간으로 존중하는 급식
현재 학교 급식은 이처럼 학생 개별의 상황과 조건을 무시하며, 학생을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학교 급식을 개선하자는 논의는 학생의 입장과 상황에 대해 얼마나 고려하고 있을까. 학교 급식과 관련해서 국회 입법 제안 등을 살펴보면, '친환경 급식', '무상 급식'에 관한 논의가 대다수이다. '무상 급식' 등은 물론 학생들이 차별 없이 눈치 보지 않고 급식을 먹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진전이다. 그렇지만 급식비를 무상으로 하여 모든 학생이 급식을 먹을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 급식이 학생의 권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급식 과정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온전한 복지 제도라고 할 수 있을까. 복지는 실제로 필요로 하는 사람의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 필수적이어야 한다.
보통 급식에 대한 논의는 무상 급식 논의 그리고 '건강한 음식'을 먹게 해야 한다는 데 그친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건강한 음식을 먹을 것을 강요받을 때도 있다. 학생들이 원하는 음식을 먹게 하자고 하면, '학생은 골고루 먹어야 한다', '편식하지 않아야 한다' 등의 반론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식사는 단순한 영양섭취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조건이고 삶의 과정이다. 급식시간이 즐거운 시간이 아니라 억지로 다 먹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면 안 된다. 급식을 운영하고 먹는 과정에서 학생들을 존중하고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학생을 취향과 신념이 있는 존재로 대우해야 한다. 학생·청소년을 인간으로 존중하는 급식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급식', '무상 급식'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좀 더 섬세한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이 글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준) 공현 활동가가 함께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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