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1일 새만금 갯벌 살리기 삼보일배가 끝나던 날 시청 앞에는 일반시민들과 함께 기독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성직자들과 교인들이 다수 참여했다. 이들은 종교간 이견을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가로질러 65일간 장장 3백5km의 고행을 마다하지 않은 네 분 성직자들의 숭고한 실천을 가슴 깊이 새겼다. 종교간 화합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대조적으로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으로 불리는 이라크 전쟁을 개시할 때,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성전’의 개념을 들고 나와 ‘악의 축’에 맞서겠다고 했다. 부시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남부 보수 기독교 세력이 부시의 주요 지지세력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기독교 보수파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중동에 기독교를 전파할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 주장했다. 이런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의 시각은 한국의 보수적 기독교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일부 대형교회는 지난 이라크 전쟁 때 파병 찬성 시위에 신도들을 대거 동원했고, 그 뒤에도 보수 단체들의 집회에 열성적으로 참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1년 기독교를 뒤집어본 책 <예수는 없다>로 화제를 모았던 종교학자 오강남(캐나다 리지니아대 비교종교학과 교수)씨가 새로 낸 <세계 종교 둘러보기>(현암사 간)는 이런 한국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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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문맹을 깨우치는 명쾌한 안내서**
저자 자신이 25년 동안 세계 종교 전통을 직접 경험하고 가르친 것을 토대로 서술한 세계의 종교 전통에 대한 꼼꼼하고 알기 쉬운 설명은 교인의 숫자가 어떤 나라보다 많으면서도 정작 종교에 대해서는 무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무지를 깨우쳐준다.
저자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유대교, 도교, 신도, 조로아스터교, 유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동학 등 12개 종교의 창시 배경, 주요 경전, 핵심적인 가르침과 오늘날의 모습을 조목조목 살피고, 각 종교가 역사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고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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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면서 얻게 되는 결론은 “순수한 종교는 없다”는 단순한 깨달음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교는 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이 근원이지만 그 신학적 모태는 그리스 철학에 박고 있다. 또 유대교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와 만나 변모했고, 자이나교와 시크교는 힌두교의 줄기에서 뻗어 나왔다.
이런 종교의 혼합은 유교 공자의 사상이 칸트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든지, 맹자의 ‘성선설’이 소크라테스의 ‘산파술’과 견줄 수 있다든지 하는 각각의 종교 사상의 유사성을 낳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결국 세계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사랑’, ‘자비’, ‘어짊’의 이상을 강조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정작 종교인들이 이를 실천하기는커녕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불신을 부추긴다는 데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종교간 평화 없이 세계 평화는 없다”**
저자는 “종교간 대화 없이 종교간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간 평화 없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신학자 한스 큉의 말을 여러 번 인용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종교간 대화’를 자극하기 위한 것이라는 저자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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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에는 기독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의 여섯 분 여성 성직자가 삼보일배가 지나온 길을 거슬러 서울에서 부안까지 도보기도 순례를 출발했다. 생명평화를 위한 삼보일배 정신을 이어받고, 기왕 시작된 교단간 화합의 실천을 계속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력하지만 한국에서 ‘종교간 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신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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