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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임대APT 세우면 물 흐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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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임대APT 세우면 물 흐려져"

[데스크 칼럼] 개포동 주민들의 집단청원 파문

주말인 지난 5월30일 연합뉴스에 참으로 씁쓰름한 기사가 올라왔다. '강남에는 임대아파트도 못짓나'라는 제목의 고발성 기사였다. 기사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강남 개포동의 반란**

강남구 개포동 H아파트 주민 1천여명이 최근 인근 서울시 체비지에 서울시가 임대아파트를 세우려하는 데 대해 반대한다는 청원을 시의회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청원요지인즉 "고층의 임대아파트를 건립하면 교통대란과 환경오염 및 각종 도시문제가 발생되므로 도시계획시설상 연구시설로 그대로 놔두거나 공원을 조성해달라"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시의회 도시관리위원회가 심사해보니, 이곳에는 임대아파트가 25평형으로 겨우 89가구가 세워질 뿐이었다. 이는 청원을 낸 주민들이 사는 개포동 H아파트의 31~60평형 5백58가구의 6분의 1밖에 안되는 규모였다. 또 H아파트와 새로 지어질 임대아파트 사이에는 폭 5m의 도로가 있고, 인근에는 23만여평방미터의 근린공원 등이 있어 임대아파트가 세워진다고 주거환경이 열악해질 위험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요컨대 조사결과에 따르면, 청원인들이 낸 '교통대란'이나 '환경오염'이란 턱없는 빌미에 불과했고, 핵심요인은 마지막에 내건 '각종 도시문제'와 표면에 내세우지 않은 '아파트값 하락'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면 빈곤층이 개포동에 진입하면서 각종 치안불안이 예상되고, 집값도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물이 흐려질 것 같다'는 게 반대이유였던 것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같은 문제점 파악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도시관리위원회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들은 의견서 말미에 "청원대상 부지의 지역여건상 임대아파트 건설이 토지이용의 효율성 측면에서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며 대신 문화-체육시설, 사회복지시설 등의 건립을 권고했다.

청원인들이 내건 반대이유는 근거없으나, 더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청원인들 요구를 받아들이자는 식이었다.

***"두고 봐라. 내말이 맞나 틀리나"**

IMF사태가 터진 직후인 지난 1998년 중반의 일이다. 당시는 IMF의 살인적 고금리정책으로 대다수 기업이나 개인들은 큰 고통을 받고 있던 반면, 현금을 쥔 이들은 예기치 못한 불로 이자소득으로 희색을 감추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S모 시중은행행장이 기자를 포함한 몇몇 기자들과 식사를 하는 과정에 이런 얘기를 했다.

"앞으로 두고 봐라. IMF를 겪은 나라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목격될 것이다. 현금 쥔 이들이 장땡일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매일매일 재산이 불어나고, 좀 경기가 나아지면 주식투자, 부동산투자로 더 재산을 크게 부풀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부익부 빈익빈이 될수록 계층간 위화감은 한층 커질 것이다. 그 결과 치안상태가 좋은 아파트 등이 큰 인기를 누릴 것이다. 같은 아파트라 할지라도 도둑이 들기 힘든 고층아파트가 특히 인기를 끌 것이다. 두고봐라, 내 말이 맞나 틀리나."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IMF사태 5년후인 지금 부익부빈익빈은 더욱 커졌고, 특히 DJ정부 후반부부터 최근까지 펴온 정부의 '부동산 경기부양책'으로 빈부격차는 회복불능의 상태로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이 와중에 고도의 보안망에 의해 일반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상류층의 최고 인기상품으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부상한 데에는 신분과시나 투기 등의 요인이 있으나, 이면에는 고도의 치안이 주요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의 편중에 대한 잠재적 불안감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만의 리그'**

빌 클린턴 미정권 초기에 노동장관을 보낸 로버트 라이시 교수가 쓴 책중에 <국가가 할 일>이라는 명저가 있다. 클린턴이 1991년 대선운동 과정에 들고다녀 유명해진 책이기도 하며, 그는 이 책에 매료돼 당선후 라이시를 노동장관에 전격기용하기도 했다.

라이시 교수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가 팽배하면서 급속히 달라지고 있는 미국의 풍속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 적이 있다.

"신자유주의와 지식사회의 도래로 부의 편중현상이 유례없이 극심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진이들이 도네이션(사회기부)을 할 때도 자신들이 사는 부자동네에만 기부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현대식 도서관을 새로 짓는다거나, 미술관이나 체육시설을 짓는다거나, 자신이 사는 지역의 치안강화를 위해 기부하는 하는 식이다. 미자본주의를 버팅켜온 요인중 하나인 못가진이에 대한 인도적 배려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과연 치유가능할까. 불행하게도 나는 자신 못한다."

클린턴이 라이시 교수를 노동장관에 임명한 것도 부분적으로나마 이같은 '그들만의 리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미국 최대갑부들이 모여사는 베버리힐즈는 이런 미국적 병리현상이 가장 극명히 드러나고 있는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베버리힐즈는 민간부문에서는 세계최강의 치안을 자랑한다. 민간 경비대가 지역을 철통같이 감싸고 있으며, 이들은 장갑차까지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베버리힐즈 은행에 예치돼 있는 현찰만 1백억달러를 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신자유주의 도입후 우리나라도 미국을 급속히 닮아가고 있으며, 그런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가 다름아닌 이번 강남 개포동의 임대아파트 건립 반대 청원 소동인 것이다.

***"이미 너무 늦은 것 아니냐"**

노무현대통령은 취임 1백일에 즈음해 가진 2일 기자회견에서 "서민의 가장 큰 적인 부동산 폭등을 기필코 막겠다"고 다짐했다. 만시지탄이나 올바른 방향 설정이다.

하지만 많은이들이 "이미 너무 늦은 게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 정부의 뜻은 '더이상의 폭등'을 막겠다는 것이지, 이미 기형으로 부풀대로 부풀은 거품을 빼겠다는 얘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동산 거품이 꺼질 때 예견되는 공황적 사태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있는 탓이다. 요컨대 정부의 말은 더이상의 빈부격차 확대를 막겠다는 것이지, 빈부격차 해소의 해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북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조차 "남북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계층간 위화감은 심각한 상태다. 여기서 말하는 '남북문제'란 남한과 북한간 갈등이 아니라, 강남과 강북간 갈등을 뜻한다.

서민을 위한 임대아파트조차 땅주인인 서울시가 마음대로 못짓는 나라. 지금 이것이 대한민국의 적나라한 24시이자, '위정'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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