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을 둘러싼 타협 없는 대립의 근원은 방사선에 대한 과도한 공포에 있다. 과도한 공포의 원인은 과학적 태도의 결여와 소통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과학적 태도의 결여는 새로운 근거에 대한 경직된 태도를 말한다. 핵폭탄, 체르노빌 및 후쿠시마 사고 등의 영향으로 핵에너지에 대한 공포가 있다. 이는 핵에너지의 단위 생산당 사망자 수가 가장 작다는 정보를 외면하게 하고, 저선량의 방사선의 영향에 대한 다양한 이론(문턱값 모형, 호메시스 모형)을 배척하도록 하고 있다.
방사선 방호원칙에 대한 메시지도 잘못 전달되고 있다. 특정 부분만 강조돼 왜곡 전달된다. 방사선피폭의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하게 낮은 수준"은 정확하게 기술한 표현이나 의도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가능하게 낮은 수준"만 강조돼, "방사선에 안전한 피폭량"은 제로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내용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보다 메시지가 의도대로 전달되는 게 더 중요하다. "초저선량의 방사선 위해는 무시할만한 수준"이라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
21세기 초 대한민국은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타협 없는 대립이 진행 중이다. 한쪽에서는 원자력발전소를 재앙의 근원으로 혐오하고, 다른 한쪽은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 공급원으로 선호한다. 언론 매체도 찬성 진영과 반대 진영으로 구분돼 있다.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조차 입장에 반하면 기고문조차 받아 주지 않을 정도다. '내편'과 '네편'으로 갈라 대립하는 양상이다. 에너지 영역이어야 할 원자력발전이 정치적 쟁점이 돼 가고 있다.
원자력발전소를 둘러싼 대립은 합리적이지 않다. 원자력발전이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원자력발전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 1월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원자력발전이 온실가스 배출이 가장 적은 에너지원 중 하나로서 기후변화 대응의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라는 사설이 실렸다. <뉴욕타임즈> 4월 16일자에도 같은 취지의 기고문이 실렸다. 원자력발전에 비판적인 ‘우려하는 과학자 연맹(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조차 지난해 12월 원자력발전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성명서를 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해서라도 원자력발전소가 값싼 화석연료에 밀려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여론 형성과정이 건강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핵에너지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원자력발전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심리, 특히 방사선에 대한 과도한 공포가 핵심 요인이다. 방사선의 실제 위해보다 지각하는 위해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 이는 원자력발전을 ‘통제 불능의 위험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도록 했다. 이미 결론을 내려 놓았으니 건강한 여론이 형성될 수 없다.
과학적 태도의 결여
건강한 여론은 과학적 태도가 필요하다. 과학은 논리와 근거를 통한 인식의 방법이다. 과학적 태도의 핵심은 오류가능성의 수용이다. 새로운 근거가 통념에 반하더라도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는 태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다. 우리 마음에 비친 그림자다. 실제를 향해 비춘 불빛으로 생긴 그림자를 통해 이 세상에 대해 인지한다. 그 불빛의 방향과 강도를 정하는 게 감정이다. 편도체 등으로 구성된 변연계는 환경에서 유입되는 정보와 뇌에 저장된 기억에 정서적 의미를 부여한다. 의제설정과 틀짓기(framing)가 발생하는 신경수준의 기제라 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에 대한 공포가 있다면, 이 공포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정보의 의미를 부여해 원자력발전에 대한 자료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된다.
핵폭탄, 체르노빌 및 후쿠시마 사고 등으로 핵에너지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리고 원자력발전에 의한 사망자 수는 주요 에너지원 중 가장 적다. 단위에너지 생산량당(TWh) 사망자 수를 보면 원자력발전에 의한 사망자 수가 모든 에너지원 중 가장 작다(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 포함). 원자력발전은 0.07명인데 가스는 2.82명, 석탄은 24.62명이다(그림1). 한국의 한해 전기 소비량이 약 500TWh(2016년 기준)이므로 만일 이 모든 에너지를 원자력발전으로 조달했으면 사망자가 35명이고, 가스화력으로 조달했으면 1410명, 석탄화력으로 조달했으면 1만2310명이다.
공포는 과학적 태도로 극복할 수 있다. 열린 마음을 통해 불편한 마음을 뒤로하고, 논문에 제시된 논리와 근거를 꼼꼼하게 살피고 하자가 없다면 수용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보통 신념을 부정하는 새로운 근거가 제시하면 과학적 태도를 상실한다. 과학자도 예외는 아니다. 유전학자로서 노벨상을 수상한 허먼 멀러(Hermann Muller, 1890~1967)를 보자. 멀러는 1926년 X선 조사량에 비례해 초파리의 돌연변이가 증가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돌연변이를 처음으로 구현한 것이다. 이 업적으로 1946년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멀러는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방사선의 영향에 대한 문턱값 없는 선형(Linear Non-threshold, LNT) 모형을 제시했다. 선형비례는 방사선의 조사량이 늘어나는 만큼 신체손상도 비례해 증가한다는 것이다. 문턱값이 없다는 것은 방사선의 조사량에 관계없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신체에 손상을 준다는 의미다.
그런데, 멀러는 1946년 12월 스톡홀름으로 노벨상 받으러 가기 전인 11월 중순 언스트 카스파리(Ernst Caspari)로부터 논문 검토를 의뢰받았다. 일정 선량 미만에서는 방사선에 의한 돌연변이 증가가 관찰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4000r에서 25r사이에서는 방사선을 한 번에 조사하면 멀러의 연구대로 초파리의 돌연변이가 방사선량에 선형적으로 비례했다. 그런데, 방사선량을 1/10로 나눠 매일 2.5r을 21일간 총 52.5r 조사했더니 돌연변이 발생이 선량에 비례해 나타나지 않았다. 방사선 조사의 총량을 늘려도 결과는 같았다. 즉, 카스파리의 연구는 방사선 손상의 문턱값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서 멀러의 LNT모형에 반하는 근거였다. 멀러는 LNT모형의 반례를 무시했다. 심지어 이 논문이 투고된 학술지 <유전학(Genetics)>
이후 멀러는 LNT모형에 반하는 근거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수상자 권위를 업고 LNT모형을 설파하고 LNT모형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LNT모형 방어했다. 심지어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Radiological Protection, ICRP)에 허위정보를 제공해 BEIR I 보고서가 LNT모형을 채택하도록 부당한 영향을 행사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우리 마음 속에 비친 그림자이므로, 다양한 방향에 실제를 향해 빛을 비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세포수준, 개인수준, 인구수준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 결과가 일관되게 나온다면, 우리 마음 속의 그림자는 실제를 어느 정도 근접하게 반영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LNT모형에는 '문턱값 부재'와 '선형비례' 등 두 가지 요소가 있다. 0.5 시버트 이상의 선량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이 방사선량에 비례해 위해도가 증가한다. 문제는 '문턱값' 존재여부다. 학계에서는 문턱값이 없어, 선형비례가 0.1시버트 미만의 저선량 영역에도 선형적으로 비례하는지, 아니면 문턱값이 있어 일정 수준 미만에서는 선형비례가 적용되지 않는지를 두고 논쟁이 진행 중이다. 4가지 모형이 경합 중이다. (1) 저선량의 방사선이 더 위험하다는 초선형(Supralinear)모형, (2) 저선량에서도 방사선의 양에 비례해 위해성이 증가한다는 문턱값 없는 선형(LNT)모형, (3) 저선량에서는 위해성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미미하다는 문턱값이 있는 비선형모형, 그리고, (4) 저선량에서는 오히려 방사선이 이롭다는 호메시스 모형 등이다. 초선형(Supralinear) 모형을 제외하고 3가지 모형 모두 논리과 근거가 있다.
문턱값 없는 모형의 대표적인 근거는 INWORKS 연구다. 원전산업 근로자 30만명의 방사선 노출량과 백혈병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0.1시버트 미만에서도 선형관계가 나타났다.
문턱값 모형에 대한 근거로서는 2012년 학술지
이 논문의 저자는 "원격 DSB(DNA double-strand breaks)군집에 대한 우리의 발견은 전리방사선의 위험이 용량에 비례한다는 일반적인 전제에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our discovery of DSB clustering over such large distances casts considerable doubts on the general assumption that risk to ionizing radiation is proportional to dose)"라고 기술했다.
인류의 존재 자체가 LNT모형에 대한 반례라고 지적하는 연구도 있다. 학술지
과학자들은 대체로 LNT모형보다는 문턱값 모형을 지지하고 있다. 학술지 <용량반응(Dose-Response)> 16권 3호(2018)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방사선의 암에 영향에 대해 과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19%가 LNT모형을 지지한 반면, 67%가 문턱모형을 지지한다고 했다(표1).
소통의 실패
소통(Communication)은 의미와 의도의 공유과정이다. 소통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을 하건, 안하건 메시지는 전달된다. 다만, 의미를 공유하는 소통의 성공과 의미 공유에 실패하는 소통의 실패만 있을 뿐이다.
저선량 방사선에 대한 학계의 합의된 이론은 없지만, 방사선방호 국제기구인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보수적으로 접근해 LNT모형을 채택하고 있다. 위해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불확실한 상황에서 위해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안전한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ICRP는 LNT모형에 근거한 3대 방사선방호원칙(선량한도, 정당화, 최적화)을 제시하고 있다. 선량한도의 원칙에 따라 방사선방호의 안전기준을 0.001시버트(1밀리시버트)로 제시했다. 정당화의 원칙에 따르면 자연방사선에 추가적으로 인공방사선에 피폭되어야 하는 경우 이를 합리화할 수 있는 혜택이 있어야 한다. 방호최적화의 원칙에 따르면 방사선의 피폭은 상황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달성가능하게 낮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ALARA, 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비록 ICRP가 LNT모형을 채택하고 있지만, 방사선에 피폭되는 상황을 무조건 낮은 수준을 유지하라는 게 아니다. 경제적 사회적 요인을 고려해 최적의 수준으로 낮게 유지하라는 것이다. 방사선을 회피하기 위해 투입하는 비용과 노력이 더 큰 해를 초래한다면, 이는 합리적으로 달성가능하게 낮은 수준이 아니다. 예를 들어, 초저선량(예를 들어 10밀리시버트 정도)의 방사선은, LNT모형을 적용하더라도, 1~2년 정도 피폭된다고 해서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초저선량의 피폭상황을 일주일 내에 해소하기 위해 방호작업에 투입한 근로자가 과로사 하도록 한다면 합리적으로 달성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또한 저선량 방사선에 대한 방호작업에 투입하는 비용이 과도해 보다 더 심각한 위해(석유화학단지나 LNG기지 화재 등)에 자원을 투입할 수 없도록 한다면 이 역시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ICRP의 방사선방호에 대한 메시지는 소통 실패를 초래한다. 과학자의 정확하고 정교한 설명이 너무나 복잡해 일반 대중에게 종종 왜곡돼 전달되는 과학소통(Science Communication)의 전형적인 실패사례다.
'허용한도'의 의미는 실질적인 위해가 되기 이전에 미리 준비하는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수신자에게는 '안전선'으로 받아들여진다. "합리적으로 달성가능하게 낮은 수준을 유지(ALARA, 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하라는 메시지에서는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reasonably achievable)"의 의미는 사라지고, 오직 "가능하게 낮은 수준(as low as)"처럼 단순하고 명료한 부분만 전달된다. 따라서 ICRP의 의도와는 달리 사람들은 극미량의 방사선에 대해서도 위험하다고 인식하게 되고, 방사선의 허용한도인 1밀리시버트를 초과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마치 사선을 넘는 것과 같이 느끼게 된다.
대안은
공포는 생명체의 생존에 필수요소이나, 실제를 과장해 지각하도록 한다. 방사선에 대한 과도한 공포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건강한 논의를 방해한다. 공포는 열린 마음으로 극복할 수 있다. 과학적 태도로 통념과 신념에 반하는 자료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소통의 목적은 성공적인 의미의 공유다. 정확한 내용의 표현이 아니라, 메시지가 의도대로 전달되는 게 더 중요하다. 정책으로 운용하는 언어를 그대로 사용해 공중과 소통하면 의도하지 않은 메시지가 전달된다. "방사선의 피폭은 합리적으로 달성가능하게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정책수행의 언어다. "초저선량의 방사선의 위해성은 무시해도 된다"는 일상의 언어로 소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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