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노무현 대통령의 부동산 투기억제 지시를 계기로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국세청 등 유관부처가 부산히 움직이고 있다.
이에 지난 8일 정부가 내놓은 대표적 대책이 투기과열지구에서의 '분양권 전매금지' 조치다. 정부는 이와 함께 9일에는 과표 현실화를 통해 오는 10월부터 부동산 보유세를 올리고, 현재 지방세로 돼 있는 까닭에 선거를 의식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반대때문에 번번이 인상하지 못하고 있는 재산세와 종합토지세 등 부동산 보유관련세금을 장기적으로 국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외견상 일련의 정부대책은 부분적으로 효과를 거두기 시작한 분위기다. 천안,대전 등 일부 투기과열지구에서 급매물이 출현하며 가격도 하락조짐을 보이고 있고, 남양주,용인 등에서도 비슷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잡겠다는 건지, 부동산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건지**
하지만 부동산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정부대책이 도리어 부동산값을 꿈틀거리게 하는 정반대 현상도 목격되고 있다.
대표적 예가 건교부가 9일 "공급을 늘려 부동산값을 잡겠다"며 내놓은 경기 김포, 파주 신도시 후보지의 움직임이다. 김포 등의 지역에서는 정부발표직후 시장에서 매물이 사라지고, 두배의 위약금을 물고 매매계약을 파기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뚜렷한 가격급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이들 신도시 후보지가 서울 서부권에 위치하고 있어 당초 정부가 신도시 건설의 명분으로 내세운 중상류층 전용 신도시 건설을 통한 강남 아파트값 하락 주장과 상치된다"는 비판이 일자, 건교부는 서둘러 "필요하다면 강남과 가까운 서울 청계산 주변 등 1~2곳을 연내에 신도시로 추가선정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후보지로 거명된 청계산 등 이들 지역 땅값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과연 부동산값을 잡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정반대로 '부동산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것인지조차가 구분 안되는 혼선의 연속이다.
***여기저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재경부**
하지만 혼선을 불러일으키는 건 건교부뿐이 아니다. 재경부도 마찬가지다.
재경부는 투기과열지구의 분양권 전매금지를 발표하면서, 유독 주상복합아파트 분양시장에 대해서만은 예외를 인정했다.
주상복합아파트란 타워팰리스로 대표되는 강남의 대표적 상류층 거주지다. "한국 상류층의 1%만이 살 수 있는 곳"이라 불리는 강남 도곡동의 타워팰리스의 경우 평당 가격은 일찌감치 3천만원을 훌쩍 뛰어넘은 상태며 지금도 상승곡선을 계속 긋고 있다.
일반 아파트에 살다가 얼마전 타워팰리스의 60평대 아파트로 이사왔다는 한 주부는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한달 전기료만 35만원이 나올 정도로 생활비가 너무 많이 든다"면서도 "그러나 계속 아파트값이 올라 이런 비용을 상쇄하고도 이익이 크게 남아 계속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지금 강남 아파트값 및 분양가 급등의 견인차를 하는 곳이 다름아닌 주상복합아파트다. 그러다보니 강남 곳곳은 물론 강북의 강변지구 및 분당 등 신도시에도 마천루를 연상시키는 60~70층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쭉쭉 하늘로 치솟고 있으며, 이들 주상복합아파트에는 분양때마다 수많은 투기세력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표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은 유독 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해서만은 "분양권 전매금지를 할 수 없다"고 고집하고 있다.
부동산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재경부의 일반 아파트 분양권 전매금지로 인해 도리어 주상복합아파트 분양시장은 앞으로 더욱 후끈 달아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경우 개발에 수천억원대 선(先)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자금력이 풍성한 재벌 건설사만이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라며 "김 부총리가 유독 주상복합아파트만을 전매금지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재벌을 의식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해석하기도 했다.
이밖에 정부의 불허방침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을 믿고 재건축 신청을 내놓고 있는 강남 요지의 아파트들도 아파트값 폭등의 시한폭탄으로 여겨지고 있고, 정부의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정작 아파트값 폭등의 진앙인 강남의 집값은 흔들림없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억제책인지, 부양산 경기부양책인지 헷갈리는 정책을 편 결과다.
***"8학군을 공동학군으로 바꿀 정도 대책은 나와야지"**
강남 도곡동 모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 의사는 정부의 부동산투기 억제책이 발표된 며칠 전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정부가 세금을 좀 높이고 신도시를 개발한다고 강남 아파트값이 잡힐 것 같나? 천만의 말씀이다. 세금을 높여봤자 지금보다 연간 몇십만원 더 내면 된다. 집값이 수천만원, 수억원씩 오르는 판에 세금 몇십만원이 대수겠냐.
중상류층 전용 신도시 개발을 통한 강남 아파트값 진정? 그것도 웃기는 얘기다. 왜 지금 도곡동, 대치동 일대 아파트가 집값 폭등을 주도하고 있나. 핵심요인중 하나가 교육문제다. 8학군을 그냥 두고는 판교, 청계산 등에 아무리 중상류층 전용 도시를 만들어도 도곡, 대치동 일대의 아파트 거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정말로 아파트값 거품을 잡으려면 대책도 원인에 맞춰 나와야 한다. 한 예로 강남 아파트값을 잡으려 한다면 내 생각에 교육부가 8학군을 공동학군으로 바꿔야 한다. 이렇게 되면 명문고교와 명문학원이 운집해 있어 아파트값 급등의 큰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8학군의 아파트값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한차례 난리가 일고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내 자신에게도 손해가 돌아오겠으나, 정부가 정말로 아파트값 폭등이 망국병이라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관련이 있는 정부부처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도 쉽지 않은 판에 부처마다 따로 한건주의로 대책을 내놓고 있으니, 강남 아파트값이 잡힐 리가 있겠나."
병의 원인에 맞는 치료법을 내놓아야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사다운 지적이었다.
***필요하다면 서울대라도 옮겨야**
정부가 아파트값 폭등을 잡기 위한 대안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수도권 신도시 건설도 과거 2백만호 건설과 같은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우려되기란 마찬가지다. 실제로 80년대말 노태우 정부가 부동산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분당, 일산 등 5대 수도권 신도시 건설은 도리어 부동산투기를 확대재생산하고 결과적으로 배드타운만 양산해 수도권 비대화만 초래했을 뿐이다.
90년대초 노태우정부 후반기의 경제수석을 맡았던 김종인씨는 얼마 전 기자에게 그 무렵 정부내에서 극비리에 논의됐던 특단의 대책을 말했다.
"2백만호 건설이 아파트값만 급등시키고 수도권 비대화만 초래하자, 당시 정부내에서는 극비리에 서울대학교를 지방으로 옮기는 방안이 깊숙이 논의됐었다. 지방경제를 활성화하고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 유럽의 대학도시들처럼 자족기능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서울대를 지방으로 옮겨 자족적 대학도시를 만드는 게 효과적이지 않겠냐는 취지에서였다.
실제로 정부내에서는 서울대를 옮길 후보지를 여러 곳 검토했었고, 서울대를 지방으로 옮길 경우 서울대라는 이름이 적합치 않으니 '한국대학' 등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논의까지 진행됐었다. 정권 후반기라 끝까지 추진하지는 못했으나, 지방분권화를 표방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라면 한번 심도깊게 고민해볼 만한 주제가 아닌가 싶다."
김종인 전 수석의 지적처럼 지금 노무현 정부는 경기침체라는 복병을 만나 대선때 주요공약의 하나로 내놓은 지방분권화에 역행하는 수도권 집중심화 정책을 펴고 있다. 수도권 일대의 공장부지 규제 완화를 비롯해 골프장, 스키장 신설 규제 완화, 수도권 신도시 개발 등 모두가 지방분권화와는 역행하는 정책들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상황논리에 끌려가다가는 한마리 토끼도 못잡고 경제만 망가트릴 위험이 농후하다. 금리인하 같은 부작용 많은 미봉책에 연연하지 말고 사회의 근간을 바꿀 특단의 대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