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渭城朝雨浥輕塵(위성의 아침 비, 거리를 적시니) 客舍靑靑柳色新(객사의 봄버들은 푸르고 푸르네) 勸君更進一杯酒(그대에게 또 한잔 술 권하니) 西出陽關無故人(서쪽 양관 벗어나면 아는 이조차 없다네)"
작년 가을이었다. 양관(陽關)을 막 벗어난 사막. 날 안내해주던, 둔황시에서 일하는 여성 공무원 네 명이서 특유의 성조로 시를 합창했다. 왕유의 <위성곡(渭城曲)>이었다. 둔황을 벗어나면 중국의 끝, 양관과 옥문관이 있었다. 실크로드의 시작과 끝이요, 죽음의 땅 사막이었다. 오늘날 옥문관은 여전히 폐허처럼 느껴지지만, 양관은 제법 출입국 관리소 모양을 갖추는 식으로, 관광지로 태어났다. 유홍준 선생도 이 시를 특별히 마음에 들어 하신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에서 몇 차례 언급하는 걸 보면.
2014년 여름, 간쑤성 방문단을 만나게 됐다. 초대해 차를 나누었다. 간쑤성과 둔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조명을 꺼 어둠을 끌어왔다. 미리 준비해둔 NHK 다큐멘터리 <실크로드>의 주제 음악 중 하나인 키타로의 'Caravansary(대상들의 행렬)'를 함께 감상했다. 절망의 근사치였을 외로움과 고향 땅을 향한 그리움, 신기루처럼 펼쳐지는 사막의 환영(幻影), 마치 낙타의 걸음처럼 반복되던 방울 소리의 재생. 그랬다. 둔황에 가고 싶었다. 30년의 꿈이라고 말했다.
두 달 뒤 중국 문화부의 초청장이 날아왔다. 그해 12월, 명사산 모래 언덕에 눈 살짝 덮이던 날, 둔황에 다녀왔다. 설산에서 녹아 사막의 땅속을 흘러 둔황의 오아시스에서 솟아나는 물로 만든 바이주 '둔황'에 취했다. 그 뒤로 두 차례 더 다녀왔다. 막고굴, 유림굴, 서천불동굴까지... 둔황 연구원에서 원하는 대로 열어주고, 지치도록 설명해줬다.
그런데 늘 그렇듯 묘한 인연이란. 지금 이 글을 보내는 시간은 네 번째 둔황이다. 존경하는 누군가에게서 비슷한 점을 찾아내는 일은 흥미롭다. 책에서 선생도 1984년 당시 <실크로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며 둔황의 꿈을 키우셨단다. 나 또한 그러했으니. 그냥 덧붙이는 흥미로운 사실 하나. 책에도 나오지만, 막고굴 제249굴 벽화의 사냥꾼은 뒤를 돌아보면서 활을 쏜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냥 장면과 같다. 둔황 연구원장과도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늘 문제의식을 갖던 차에 최근 도상을 하나 더 찾았다. 기원전 1000년 원통형 인장인데, 그림 속 초원지대 기수 또한 뒤로 화살을 쏜다. (피타 켈레크나, <말의 세계사>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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