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년부터 1937년까지 프랑스 신문 <르 프티 파리지앵>과 <르 프티 주르날>이 묘사하고 기록한 중국이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중국인의 이미지는 상당히 누추하고 쩨쩨하며, 얼굴도 너무 혐오스럽게 그려져 있다. 프랑스인의 중국에 대한 편견이 영국인보다 더 심한 것 같다.(선훙(沈弘))" 그럼에도 한국인의 눈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역사 그림책이다.
누구나 인정하듯 근대 중국의 100년 역사는 중국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대변혁기였다. 당시 중국 문명은 완전히 농업 문명이었다. 도시도 없었고, 공업도 없었고, 사농공상을 제외한 새로운 계급이나 계층도 없었다. 중국은 두 차례의 아편전쟁을 거친 후 서양을 학습하기 시작했지만, 연이은 좌절과 고난을 겪어야 했다.
일찍이 프랑스 언론과 판화 작가들은 이런 중국에 주목했다. 각기 독특한 예술적 발상으로 청말의 인물들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책은 그때 언론에 실린 컬러 석인판화와 컬러 사진 등 400여 점을 선정한 후 삽화와 함께 실린 기사를 편역했다. 특히 1884년 청불전쟁 이후 중국에 대한 프랑스인의 관찰과 기록, 상상을 비교적 온전하고 구체적으로 펼쳐 보인다.
당시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밀접함에 비추어 볼 때 우리 모습 또한 제외될 수는 없었던 것. 넉 장의 그림이 있다. '청일전쟁 : 서울에서의 동요', '노략질 : 카자크 기병이 조선의 마을에 들이닥치다', '조선에서의 첫 교전 : 정주 전투', '압록강 전투 : 러시아 군악대의 영웅적 기개'.
중국 학자들의 평가를 인용하는 게 더 낫겠다. "프랑스 매체가 보여주는 중국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정도는 중국인이 지금껏 의식하지 못하던 것들로, 동시기 중국의 서양에 대한 이해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사료로서의 가치 또한 넘쳐난다. "위로는 푸른 하늘에서 아래로 황천에 이르기까지(上窮碧落下黃泉) 되찾아오고 싶어 했던 것에 속한다." 역사적 진실을 재구성하려면 초월적인 입장도 요구되지만, 그보다 더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자료를 구해야 한다. 소동파의 시가 동원됐다.
"내려다보면 산줄기이되, 올려보면 봉우리니(橫看成嶺側成峰)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에 따라 모습이 제각각이네.(遠近高低各不同)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까닭은(不識廬山眞面目)
이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라네.(只緣身在此山中)"
참고로 우리에겐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자료총서 17’로 편찬된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인이 본 한국>(국립중앙박물관, 2017)이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