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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한림 아석 김종대(金鍾大) 선생 석채례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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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한림 아석 김종대(金鍾大) 선생 석채례 봉행

4일 한림면 수조리 거연정(居然亭)서 그의 학문ㆍ덕행 정신 기려

"늦은 봄 서봉산 언덕에 정자 하나를 세우니/ 긴 대와 우뚝한 오동이 가장 사랑스럽다/ 밤들어 누웠노라면 서늘한 소리 비 오는 듯 하고/ 새벽창에 그늘이 짙으니 구름 지나는 듯 하네/ 몸을 감추니 한가한 중에 저절로 즐거운 데/ 어찌 세상에 아첨하여 분외(分外)의 이름을 구하리/ 금서(禁書)로 담박하게 삼십년을 지내왔으니/ 편안히 천석(泉石)을 사랑하며 여생을 보내리라."

아석(我石) 김종대(金鍾大) 선생의 학덕을 기리는 석채례(釋菜禮)가 4일 오전 10시 김해시 한림면 수조리 거연정(居然亭)에서 지역 유림들과 김해 김씨 문중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봉행됐다.
▲아석 김종대 선생의 학덕을 기리는 석채례 봉행 모습. ⓒ프레시안(조민규)
아석 선생(1873~1949)은 출세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학문 연구에 매진한 곧은 선비로 가난한 집 아이들을 모아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김해시 한림면 수조리 서봉산 기슭에 거연정(居然亭)을 건립해 후학 양성에 힘썼다.

뿐만 아니라 선생은 유학의 전통을 지키며 수신(修身)과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통하여 다듬어진 학문과 덕행으로 후학을 가르치면서 보인 품행은 많은 사람들의 사표(師表)가 되기도 했다.

특히 김종대 선생은 흥선대원군에게 애학(愛學)하여 당대의 명필로서 많은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거연정은 아석 김종대 선생의 강학서당이다.

선생은 1904년 법부주사에 임명되어 재직 중 1906년 단발령에 끝까지 불복하며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이 거연정에서 학덕을 연마하고 자연을 벗하면서 제자들을 길러 냈다.

이렇게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거연정에서는 매년 음력 3월 그믐에 예를 갖춰 석채례를 봉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아석 김종대 선생은 김해 상동면 대감리 외가에서 아버지 창수(昌壽)공과 어머니 분성 배씨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아석 선생은 서예도 뛰어나지만 사군자화는 '김해 문인화맥'의 전형적인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해서 김종대 선생은 만년에 고향인 한림면 수조마을에 강학 서당 '거연정'을 짓고 후학들을 양성한 것이다.

저서로 '아석유고'와 '서소만록' '금강산유람기'를 남겼다.

김효구 가락국 숭선전 참봉은 "김종대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석채례를 봉행하는 것은 집안의 영광스러운 일이다"며 "지역 주민으로서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자랑스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참봉은 "학문과 도덕을 겸비한 아석 선생의 높은 정신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며 본받아야 할 점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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