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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를 덮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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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를 덮자는 건가

<데스크 칼럼> 고건 총리와 강철규 공정위원장 갈등을 보며

'덮을 것인가, 열 것인가.'

SK 분식회계 사태로 우리나라 재벌그룹들에 대한 국제금융계 시선이 싸늘해지고 있는 가운데, 재벌개혁을 둘러싸고 정부내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져 주목된다.

***고건, "한꺼번에 기업을 몰아치지 않겠다"**

고건 국무총리는 12일 저녁 삼청동 총리공단에서 가진 경제단체장 초청 간담회에서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업투자나 경영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나 부당행위조사 등은 미국-이라크 전쟁 및 북핵문제로 인한 경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된 이후로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혔다.

고 총리는 이어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일제조사를 한다고 했는데 경제가 나쁜 상황에서 이런 조치들을 한꺼번에 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고 공정거래위의 6대 재벌 부당내부거래 조사방침을 공개비판하며 "한꺼번에 기업을 몰아치는 그런 일이 없도록 총리로서 국정조정을 해나가겠다는 것을 경제계 여러분께 말씀드린다"고 거듭 다짐했다.

고 총리는 또 "시장경제의 투명성 확립과 관련한 두가지 원칙, 즉 `시장친화적인 방법으로, 기업이 감내할만한 속도'에 맞춰 추진할 것이며 어디까지나 기업의 창의와 자율성을 존중할 것"이라며 "SK그룹에 대한 검찰수사로 인해 경제활동 의욕이 위축될까 우려되지만, 정부는 SK그룹 검찰수사에 특별한 의도를 표시하거나 개입하거나 압력을 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고 총리의 이같은 부당내부거래 조사 연기 방침은 청와대, 재경부 등과 사전조율을 거쳐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철규, "조사는 예정대로 진행하겠다"**

그러나 고 총리 발언에 대해 이날 간담회에 참석했던 강철규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자들에게 "조사는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상반된 입장을 밝혀 정부내 갈등을 표출했다.

강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고건 총리가 이런 방침을 정하는 협의과정에 공정위를 배제했고, 총리실이 이날 오전에야 이같은 결정사항을 공정위에 통지한 데 대한 강한 불만의 표출로 해석되고 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간담회 후 이영탁 국무조정실장은 기자들과 만나 "공정위는 조사시기를 가급적 2.4분기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지금 당장 조사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라고 양측 갈등을 무마하느라 애썼다.

이영탁 실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건 총리가 공정위의 부당내부거래 조사방침을 "한꺼번에 기업을 몰아치는 일"로 몰아부치며 정부 방침을 바꾸는 협의과정에 공정위를 배제하고, 이에 대해 강 위원장이 "예정대로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반발한 대목은 노무현 정부에 혼재돼 있는 '안정세력'과 '개혁세력'간 갈등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여러 모로 씁쓸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여기서 보다 중요한 대목은 정부내의 이같은 갈등이 SK 분식회계 사태후 한국경제를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국내외 투자가들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가이다.

***외국계, "판도라 상자를 덮자는 거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일 삼성, LG, SK, 현대자동차, 현대, 현대중공업 등 6개 기업집단 소속기업을 대상으로 2.4분기(4~6월) 중 부당내부거래를 조사하겠다고 밝혔었다. 공정위는 또 3.4분기(7~9월)에는 올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된 한국전력, 가스공사를 비롯해 도로공사, 토지공사, 주택공사, 수자원공사, 가스공사, 농업기반공사 등 7개 공기업들에 대해서도 부당내부거래와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불공정 하도급거래 등 불공정행위 전반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지난 11일 검찰 수사결과 SK가 1조5천5백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타 한국기업들에 대해서도 국내외 투자가들의 의혹어린 시선이 쏠리자, 고건 총리와 김진표 경제부총리 등은 서둘러 공정위의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연기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 총리 등의 이같은 방침은 가뜩이나 한국기업들의 투명성에 대한 외국투자자들의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와중에 공정위가 부당내부거래 조사까지 할 경우 수습하기 힘든 국면으로까지 외국투자가들의 불신이 깊어져 '셀 코리아(Sell Korea)'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검찰의 SK 수사 등으로 위축된 국내기업들의 투자마인드를 되살리기 위한 목적도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문제는 그러나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할 경우 국내기업들은 안도할지 모르나, 과연 국내외 투자가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이다.

이와 관련, 한 대형 외국계투자펀드의 펀드매니저는 "SK 분식회계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는 것이었다"며 한국기업의 신인도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SK는 그래도 한국기업들 가운데 투명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나름대로 해온 기업으로 외국투자가들 사이에서 인식돼 왔었다"며 "SK가 이런 정도니 다른 기업들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하지 않겠느냐는 게 지금 외국투자가들의 솔직한 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SK사태를 계기로 단기적으론 어렵겠으나 중장기적으로는 한국기업의 투명성이 제고되는 쪽으로 발전하리라는 생각을 갖고 지켜봤었는데, 정부가 재벌들의 부당내부거래 행위 조사를 연기하기록 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씁쓸하기 그지없다"며 "이는 결국 판도라 상자를 덮자는 게 아니냐"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판 엔론사태'**

지난해초 미국에서 엔론 분식회계 사태가 터졌을 때 부시 정부는 분식회계를 한 곳은 엔론뿐이라며 이를 조기에 덮으려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로 엔론외의 다른 기업들에 대한 시장의 불신의 확산이었고 주가폭락이었다. 결국 부시는 시장의 압력에 굴복,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교체하고 엄격한 회계기준을 도입해야 했다.

외국투자가들은 이번 SK 분식회계를 '한국판 엔론사태'라 부르며 이번 사태가 조기진화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벌써부터 시장 일각에서는 분식회계 의혹을 사고 있는 기업들의 리스트가 돌기 시작했다. 지난 97년 위기때 경험했던 '살생부'의 공포스런 출현이다.

또 정부의 조기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대그룹의 대북송금 의혹에 대한 특검제가 실시되면, 현대그룹의 분식회계가 드러나면서 또한차례 한국기업들에 대한 국제금융계의 의혹이 증폭될 게 확실시되고 있다. 이미 일부 외신은 특검을 이유로 "SK 다음 차례는 현대"라는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한 상태다.

"신뢰를 잃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나,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5년이상이 필요하다"는 게 시장의 경험칙이다.

SK 분식회계를 계기로 국내기업의 신뢰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과연 덮는 게 해법인지 아니면 오히려 위기를 증폭시키는 악수인지, 고건 총리 등 관료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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