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헌법재판소는 '자기낙태죄(형법 제269조 1항)'와 '동의낙태죄(형법 제270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1953년 형법에 낙태죄 관련 규정이 들어간 이후 66년 만에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건이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라고 주장하면서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간주하고 이등시민 취급하는 것에 투쟁해온 여성들은 헌재의 결정에 환호했다. 그런데 곧바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두고 큰 반발이 뒤따랐다. 이것만 봐도 그동안 낙태죄 폐지를 촉구해온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과연 이번 결정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있게 공유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낙태죄 폐지가 그저 여성들의 무제한 임신중단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라면, 헌재 결정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거리에서 춤을 추는 여성들의 모습이 얼마나 기괴할 것인가.
정의당이 발의한 법안은 임신 14주까지는 임산부 요청만으로, 14~22주까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임신을 중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투쟁을 이끌어온 쪽에서 이 법안을 반대한 이유는 법안 내용이 헌재 판결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도 폐지운동을 지속해온 사람들이 가슴 졸인 것은 과연 헌재가 내세울 명분이 무엇일지 예상하기 어려웠던 탓이 컸다. 단지 인공임신중단의 처벌 범위를 줄이는 것에 그치면 어쩌나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헌재의 판결문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면서 임신 기간 전체에서 여성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음을 명시한 것이다. 그러니 이미 낙태죄 폐지의 승리를 맛본 여성들이 낙태 허용 사유만을 확대한다든가 주수 제한을 두어서 허용하는 법안에 만족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번 낙태죄 폐지에 대한 헌재 결정은 어떤 의미인가. 일단 국가가 허용하는 임신중단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데 그치지 않음은 분명하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여러 언론이나 시민단체가 논평하면서 강조했듯이, 낙태죄가 폐지된다는 것은 낙태죄를 만들어낸 국가주의적 인구정책이나 우생학적 사고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뜻이다. 따라서 여성의 몸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며,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의 재생산권을 더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국가정책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청소년과 장애를 가진 개인의 권리 보장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이제까지 해온 성교육의 방향을 바꿔야 하며 의료보험의 적용문제도 생각해봐야 하고, 약물에 의한 자가 임신중단 도입도 고려 대상이다. 헌재 결정에 따르면, 국가가 당장 새로이 해야만 하는 일이 이렇게나 많은 것이다. 그저 임신중단의 권리를 주었으니 끝이라고 할 문제가 아니다.
특히 변화가 필요한 대목은 저출산정책이다. 사실 임신중단을 둘러싼 투쟁이 지금과 같이 격화된 것은 2010년 이후 국가가 그동안 거의 인공임신중단을 방임해오던 방침을 바꾸어 인공임신중단 처벌을 통해 인구증가를 모색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가임기 여성의 숫자를 전국 단위 지도로 표시하는 등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만 취급하는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고, 아이를 돌보며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현실은 재생산문제를 사회적 갈등의 핵심으로 올려놓았다. 실제로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임신·출산·양육은 물론 각 개인이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과 공간도 확보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원하지 않는 임신의 책임을 오로지 여성에게 지우면서 저출산문제 해결을 논하는 국가에 대한 분노는 널리 퍼져나갔으며, 결국 투쟁을 거쳐 낙태죄 폐지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단지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얻었다고 해서 임신을 원하기 어렵게 하는 사회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 것도 분명하다. 노동 문제, 교육 문제, 환경·생태 문제, 가족 문제 등 사회의 재생산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기존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새로운 지평이 열려야 함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국가로 하여금 생명의 가치를 평가하고 개인들의 성을 규율하며 가족을 통제해온 가장 중요한 무기 중 하나를 내려놓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태껏 실행된 다양한 국가정책들을 모두 재점검하고 여성을 포함한 개인들의 재생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의 전환이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더 많은 출산을 원한다고 해도 저출산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을 추진해서는 곤란하게 되었으며, 여성들의 임신 따위는 국가가 제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도 이제부터는 안 된다. 물론 국가가 여성을 통제할 수 있는 무기가 그것 하나일 리도 없고, 낙태죄 폐지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국가와 사법체계에 대해 장밋빛 환상을 품기에는 아직 개혁 과제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이 저절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운동이 바꾼 세상을 법이 반영하는 것이라 본다면 이번 낙태죄 폐지의 의미는 엄청나다. 헌재 판결 이후 화제가 된 정희진의 칼럼 '혁명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정하는 것이다'(2013년 5월 24일 자 <한겨레>)에서 천명하듯이,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더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점에서 이번 헌재 결정은 혁명이 틀림없다. 사실 이 승리가 더 대단한 이유는 면면히 이어진 물줄기를 틀어놓았다는 데 있다. 낙태죄가 폐지되는 것은 66년 만의 일이라고 하지만 여성의 몸을 국가 이익에 복속시키는 인구정책의 뿌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이어진 분단의 역사 속에서 형법이나 국가정책에 도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회운동 내에서도 여성의 임신중단을 사소한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만연해 있었고, 여성운동에서조차 오랫동안 우선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슈였다. 그런 면에서 이번 헌재 결정은 촛불혁명과 미투운동이 열어놓은 큰 흐름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먼 희망으로 보였던 낙태죄 폐지가 이미 시대의 상식으로 확인되었다. 이제 이성애 핵가족의 재생산만 인정받는 현실을 넘어 차별 없는 모두의 재생산권이라는 새로운 상식을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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