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유통계에 일대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그동안 외지 자본의 백화점이 진입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대구에 오는 21일경 롯데백화점이 개점하기 때문이다.
경부선 철도와 지하철 1호선 환승역인 대구역사에 들어서는 대구점은 지하 2층~지상 8층에 연면적 3만3천평, 매장면적 9천4백평 규모로 대구지역 백화점 가운데 가장 크다. 롯데백화점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내년 4월에는 대구 상인에 제2백화점을 개장한다는 계획이다. '달구벌 유통전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불붙은 '달구벌 유통전쟁'**
롯데백화점이 등장하면서 가장 위기감을 크게 느끼고 있는 곳은 대구의 향토기업계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해온 동아백화점과 대구백화점이다.
대구백화점의 고위관계자는 10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대구의 향토산업인 섬유산업도 사양화됐고 건설업계도 청구와 우방 등이 부실화된 마당이라 대구.동아백화점이 대구의 거의 유일한 향토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롯데백화점의 진출에 대비해 신세계백화점과 기술제휴를 맺는 등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긴장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롯데백화점이 들어선 대구역사 주변은 중구와 북구의 경계선으로 지금은 쇠퇴한 옛 상권으로 입지가 좋지 않다”면서 “목 좋은 곳은 대구.동아백화점이 차지하고 있어 롯데백화점이 쉽게 우리의 아성을 허물지는 못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동아.대구백화점은 현재 1조원이 넘는 대구 백화점시장을 거의 반반씩 차지하고 있는 양대백화점이다. 이들 백화점은 전국적으로 유난히 토착기업에 대한 애향심이 강한 대구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데다가 대구 토착자본들의 강력한 방어전략에 밀려, 대구지역은 그동안 롯데백화점이 입성 못한 전국 유일지역이었다.
백화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백화점이 대구에 진출하려고 오래 전부터 애를 썼으나 토착자본의 연대전선에 밀려 백화점 입지 자체를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롯데백화점 대구 입성은 대구 향토업계로 볼 때 일대 사건”이라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부산을 뿌리로 하는 롯데백화점의 대구 진출을 ‘대구 토착자본과 부산 토착자본의 대결’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구.동아백화점 "수성 자신", 롯데 "공격 자신"**
대구 토착자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견제로 입지를 마련하지 못했던 롯데 백화점이 이번에 대구에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은 민영화 역사 입찰 과정에서 영등포 역사 등과 함께 대구 역사의 민영화권도 따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전국적인 유통망과 최고 수준의 유통 노하우로 무장한 롯데백화점이 진출한다고 하니까 대구백화점은 신세계 백화점과 기술제휴를 맺고 동아백화점은 일부 점포를 패션아울릿으로 업태를 변경하는 등 벌써부터 긴장하고 있다”면서 “올해 3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자신했다.
이에 대해 대구 백화점업계는 “일단 긴장은 하지만 첫해부터 무리한 목표를 잡은 롯데에게 대구에 뛰어든 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입증해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 대구 백화점 관계자는 “대대적인 상품공세와 판매요원 빼내가기 등 불공정한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이 걱정되기는 한다”면서도 “영등포역사의 롯데백화점이 강남 압구정동의 현대백화점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지역밀착형 백화점이 포진한 대구에서 입지가 불리한 롯데백화점은 변두리 상권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울산이나 대전 등 롯데가 진출해 성공했다는 지역은 기존 지역점포가 한 곳밖에 없고 매장 규모도 적어 상대적으로 입지가 좋지 않지만 상품구성이 좋은 롯데백화점으로 고객들이 이동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대구의 토착백화점들은 요지마다 점포들이 들어서 있는 지역밀착형 다점포 체계로 운영되고 있어 외래백화점이 경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IMF사태후 까르푸 등 외국유명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왔다가 지역화에 한계를 보인 것과 같은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동아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창사이래 6백억원이 넘는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당기순이익만 1백70억원에 이르는 등 자금력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다”면서 “올해가 아니라 롯데백화점 대구 상인점이 추가로 들어서는 내년 상반기가 되어서야 3강 구도가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95년 이후 신세계와 삼성물산 등 서울의 대형 유통자본은 대구 지역 땅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도 백화점보다는 할인점으로 업종을 선택했다. 대구백화점과 동아백화점의 아성이 워낙 탄탄하고 롯데의 진출이 예정돼있어 그 결과를 지켜본 후에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무한 경쟁시대의 도래**
하지만 롯데백화점측 주장은 다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그동안 대구지역은 경쟁이 없는 독점지역에 다름아니었다"며 "현대의 아성으로 현대백화점이 네곳이나 있는 울산에 롯데백화점이 들어가 가격경쟁, 제품경쟁 등을 일으키며 성공을 거두었듯 대구에서도 앞으로 롯데 선풍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요즘 같은 소비시대에 중요한 것은 애향심이 아니라, 누가 더 좋은 제품을 더 좋은 서비스로 제공하느냐는 '서비스 경쟁력'"이라는 게 롯데측 주장인 것이다.
과연 어느 쪽 주장이 맞을지는 앞으로 지켜보면 알 일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어느 지역보다 외지자본에 보수적이던 대구에서도 무한경쟁이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경쟁의 노도 앞에 안전지대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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