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5일,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투신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 고인은 자습시간에 책을 보고 있었는데, 교사가 해당 도서의 삽화를 보고는 "성인물을 봤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한 뒤 체벌인 '얼차려'를 20여 분간 모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시켰다. 이어진 체육시간에 고인은 운동장으로 나가지 않고 혼자 건물 5층으로 올라가 투신했다. 고인의 교과서에서 "무시 받았다. 죽고 싶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언론에 크게 보도되며 여러 논쟁을 낳았다. 왜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에 대한 추측과 설명도 이어졌다. 고인이 보고 있었던 책은 비주류 문화의 한 종류인 '라이트노벨'이었다. 취향에 위계가 있는 사회이니 서브컬처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낙인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잦다. 그래서 이 사건이 보도된 뒤 온라인에서는 서브컬처 향유자들이 처한 소수자적 위치에 관해 토로하는 논의가 다수 진행됐다.
누군가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타인이 완벽하게 추론하긴 어렵다. 이 사건의 고인에게, 투신하던 그날의 일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에게 학교는 어떤 공간이고 급우들과 교사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분명한 것은 그 날의 이전까지 그에게 쌓인 삶의 맥락이 있었고, '교사의 오해로 인해 공개적으로 비난받고 체벌을 당한' 그 사건이 트리거가 되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얼차려 받았다고 자살하냐" 고인 모독이 문제인 이유
사건을 보도한 언론은 여럿 있었지만, '얼차려'라는 체벌이 사람을 어떻게 모욕하고 존엄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지를 짚은 기사는 거의 없었다. 이 부분을 분석에서 빼놓은 결과 '얼차려 좀 받았다고 자살하냐' '요즘애들 연약하다'는 식의 기사 댓글이 다수를 이뤘다. 교사의 공개적 모욕과 체벌이 그가 자살하게 된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간과할 수도 없는 중요한 요인인데, 사건을 보도한 언론들은 "선생님에게 혼난 학생이 자살"했다는 식으로 본질을 은폐하면서 교사에 의한 공개적 모욕과 체벌이 학생의 존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언급을 피했다.
해당 사건에서, 교사는 먼저 고인이 "성인물을 봤다"며 같은 반 학생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비난했다. 고인은 성인물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교사는 해명을 수용하지 않고 20분간 반의 모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교탁 옆에서 체벌을 가했다. 2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신체의 고통도 만만찮았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해명이 아무런 효용을 갖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절망감, 오해로 인해 벌을 받는 자신의 신체가 모든 반 학생들 앞에 전시되는 상황을 견뎌야 하는 모욕감이 더욱 컸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고인은 유서에 "학교에서 따돌림당하기 좋은 조건으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구절을 남겼다. 교사가 교실 안에서 가지는 발언권과 권한은 조심스럽게 활용되어야 한다. 교사에 의해 개별 학생에 대한 평가나 모욕이 공공연히 이루어진다면, 이는 다른 학교 구성원들이 그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학생의 신체를 매나 손, 발 등으로 직접 때리는 '직접체벌'보다, 고통스러운 자세를 일정 시간동안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이른바 '간접체벌'이 덜 가혹한 체벌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있다. 직접, 간접이라는 수식 자체도 그런 뉘앙스를 제공하는 문제적인 언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얼차려 등 간접체벌로 인해 피부 괴사, 실신 등 상해를 입는 사건들은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상해를 입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행위를 유지·반복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간접체벌 가해자의 권력은, 어쩌면 직접적인 구타보다도 더욱 잔혹하다.
간접체벌의 잔혹성은 피해자의 신체가 공공에 전시되는 과정이 수반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된다. 일반적으로 교사가 학생에게 체벌을 가할 때는 혼자 있는 공간에서 가하지 않는다. 보는 눈이 많을수록, 고통 받는 신체를 구경하고 비웃는 관중이 많을수록 벌의 효과가 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교무실 앞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있게 하거나, 교탁 옆으로 나와 엎드려뻗쳐를 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와 같은 체벌의 '신체의 전시성'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그것을 당하는 사람의 위신과 평판을 손상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얼차려' 체벌을 견디는 시간은 신체의 고통만을 견디는 시간이 아니다. 그러한 행위를 강요할 수 있는 권력에 굴복한 자신의 신체가 공공연히 모욕당하는 것, 그리고 그 이후를 견디는 시간이기도 하다.
체벌의 완전한 금지가 필요하다
2011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학교의 장은 지도를 할 때에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라는, 체벌금지의 국내법적 근거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신설된 이 조항은 '직접체벌'은 금지하지만 '간접체벌'은 허용하는 것이라는 식의 악의적 해석을 낳았고, 심지어 당시 이명박 정부(교과부)에서는 간접체벌이 교육적 훈육으로 허용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엄연히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여선 안 된다"고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와 충돌하는 해석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의 경우(광주, 경기, 서울, 전북만 해당) 간접체벌도 학생인권침해의 한 종류로 피해구제 대상이 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경북과 같은 곳들에서는 여전히 간접체벌이 횡행한다.
UN아동권리위원회는 2006년 일반논평을 통해 "신체적인 처벌은 항상 굴욕적"이라며 체벌의 명백히 금지되도록 법률과 규칙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UN고문방지위원회 역시 "체벌은 잔혹하며 고문의 일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간접체벌은 허용한다는 식의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초·중등교육법'의 해당 부분을 보다 명시적인 직·간접체벌 모두 금지함이 명확하도록 개정하거나, 시행령의 내용이 간접체벌 허용을 뜻하지 않는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 발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