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까지 6년 임기 중 15개월만에 도중 하차한 하비 피트 미 증권거래위원장(SEC)의 후임이 오랜 진통 끝에 10일(현지시간) 정해졌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무너진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엄선한 인물은 윌리엄 H. 도널드슨 전 뉴욕증권거래소 회장(90~95년)이다. 상원 인준을 거쳐야 하지만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도널드슨에 대해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SEC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담당하는 상원 금융위원회 소속 민주당(뉴욕) 챨스 슈머 의원조차 "SEC는 시장의 기능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반석같은 청렴성을 지닌 인물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면서 "도널드슨은 바로 그런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월가의 악몽 시작될 것**
반면 월가의 기업들과 회계법인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회계전문가들은 도널드슨에 대해 "기업들이 투자자들을 기만할 수 있게 한 금융제도의 허점을 이해하고 있는 다양한 실무경험의 소유자"로 판단하고 있다. 회계부정사례를 조사하는 웹사이트(AccountingMalpractice.com) 대표 마크 셰퍼스는 "도널드슨은 투자회사를 설립하고 에트나 같은 보험사도 경영해 봤기 때문에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널드슨은 기업들이 수익을 어떻게 조작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월가의 악몽'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까지 기대했다.
도널드슨은 "지난 몇 년 사이 "수없이 저질러진 중대한 비리로 미국 기업과 금융산업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임명 소감을 피력했다.
월가가 그의 말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은 올해 71세인 도널드슨이 정계와 재계에서 두루 존경받는 인물인 데다가 직업편력이 매우 다채롭다는 점 때문이다. 버팔로 출신인 그는 1953년 예일대를 졸업하고 58년 하버드대 MBA 학위를 받았다. 53~55년 사이 일본과 한국에서 해군 소대장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부시 가문과도 두터운 친분**
부시 가문과의 인연도 오래됐다. 예일대 시절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 조나단 부시와 함께 다녔고 첫 직장도 부시 전대통령의 삼촌 허버트 워커 부시가 운영하는 증권사였다. 이런 인연으로 부시 가문과는 오랜 친구사이다.
59년 그는 댄 러프킨, 리처드 젠레트 등 다른 두 명의 하버드 동문과 함께 DLJ(Donaldson, Lufkin & Jenrette)라는 증권사를 창립한 뒤 이 회사를 60대 중반 연기금 등 수십억 달러의 자산운용사로 키웠다. 그는 73년까지 회장 겸 CEO로 일하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행정부 경험도 풍부하다. 73~75년 국무부 부장관, 넬슨 록펠러 부통령 보좌관 등 닉슨, 포드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서 근무했다. 75~80년 그는 예일대의 종신 교수로 예일경영대학원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원장을 지냈다.
81년 다시 월가로 돌아간 그는 도널드슨 엔터프라이즈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한 뒤 90~95년뉴욕증권거래소 회장을 지냈고 최근까지 에트나 보험사의 회장 겸 CEO로 일해왔다.
***부시, 경제회복 차원에서 새 위원장에게 힘 실어줄듯**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새 SEC위원장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과제로는 회계감독위원장을 뽑는 것이 될 것"이라고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회계감독위원회는 미국의 분식회계사태 이후 회계감독을 강화하는 법안에 따라 설립된 기구다.
시민단체들도 하비 피트가 회계감독기구 초대 위원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러 물러나게 된 만큼 도널드슨이 취임 이후 가장 우선적인 과제를 회계감독위원장을 제대로 뽑는 일로 꼽고 있다. 투자자보호운동을 전개하는 비영리단체 PIRG의 에드 미어즈윈스키는 "회계감독위원장 임명이 도널드슨의 최우선 과제"라면서 "그것이 신뢰회복을 이끌 핵심조치"라고 주장했다.
하비 피트는 사기혐의로 소송에 걸려있는 기업에서 내부회계위원장을 맡았던 윌리엄 웹스터를 초대회계감독위원장에 임명했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으면서 둘 다 물러나게 됐다. 이 일로 하비 피트는 다음주 의회 조사까지 받을 예정이다.
하비 피트로 인해 큰 곤욕을 치른 부시 대통령은 경제회복을 위한 투자자의 신뢰회복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 차기 위원장 임명을 계기로 SEC의 예산을 2004년 예산을 현행 4억3천8백만 달러에서 두 배로 늘릴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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