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아들딸에게 경영권 주면 망한다"더니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아들딸에게 경영권 주면 망한다"더니

족벌경영 비판하던 박용성 두산회장의 일구이언

두산그룹은 SK그룹이 지난주 벤치마킹 대상으로 강연을 요청할 만큼 IMF이후 구조조정의 대명사로 알려져 왔다. 외국투자자 사이에서도 한국 재계의 건전성을 언급할 때 두산그룹은 주요 성공사례로 회자되곤 해왔다.

두산그룹의 전략기획실장이자 두산(주)을 이끌고 있는 박용만 사장은 지난 25일 제주에서 SK그룹 임원진을 대상으로 '두산그룹의 경영혁신 성공요인'이라는 특강을 통해 두산그룹 성장 모태가 돼 왔던 OB맥주를 매각하고 두산 중공업을 인수하면서 겪었던 난관을 극복하며 새로운 도약 계기로 삼은 과정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두산그룹이 OB맥주 등 핵심사업 매각이라는 엄청난 결단을 통해 쌓아온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룹의 핵심역량을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바꾼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기대와는 달리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와중에, 재벌 4세들에게 편법적인 지분증여로 구시대적인 대물림을 추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 족벌그룹으로 회귀하려는가**

참여연대가 '주식 편법증여' 의혹으로 민.형사상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자 두산은 크게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참여연대가 제기한 의혹 가운데 특히 두산그룹의 이미지에 큰 타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은 편법증여를 통한 시세차익 의혹과, 오너그룹의 지분 확장 의혹이다.

두산그룹이 발행한 신주인수권(BW) 행사 만기일은 2009년이므로 지배주주 일가가 지금 당장 신주인수권을 행사할 필요는 없으며, 두산측 해명대로 아직까지 이를 행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두산(주)의 주식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이미 낮추어진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은 다시 상향조정되지는 않기 때문에, 지배주주 일가는 싼 가격으로 지금보다 비싸진 주식을 매입할 수 있고 그만큼 막대한 시세차익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더욱 투자가들을 분노케 한 대목은 오너그룹의 지분 급증 가능성이다.

현재 두산그룹은 국내외 투자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면서 앞다퉈 주식을 사들이는 바람에 지배주주 일가의 지분율은 15.68%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BW 발행으로 인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현재의 행사가격으로 지배주주 일가가 신주인수권을 행사하더라도, 지배주주 일가의 지분율은 15.68%에서 39.09%로 대폭 상승하는 반면, 소액주주의 지분율은 40.28%에서 29.09%로 대폭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동안 오너그룹에서 시장참여자들에게 이동해온 지분율이 하루아침에 역전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족벌그룹으로의 회귀다.

***박용성 회장, "아들딸 요직에 앉히고 경영권 주면 망한다"더니...**

시장에서는 특히 얼마 전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오너일가의 부당한 지배권 행사'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한 바 있기에 한층 배신감마저 느끼는 분위기다.

두산그룹 오너 일가로서 신주인수권부사채(BW) 편법증여 의혹을 받고 있는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지난달 10일 대한상의 회장 자격으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아들딸을 요직에 앉히고, 경영권을 주면 망하기 딱 십상"이라며 '한국식 족벌경영'을 신랄하게 비판해 여론의 호의적 반응을 얻은 바 있다.

박 회장은 "우리 기업들은 '패밀리 비즈니스(족벌경영)'와 '비즈니스 패밀리(전문경영)'를 혼동하고 있다"며 특히 재벌의 족벌경영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했다.

그는 "환란 때 30대 그룹 중 16개가 무너진 것은 능력을 보지 않고 가족에게 회사를 물려준 가업경영 풍토 탓"이라며 "본인과 아들딸까지 회사에 들어가 실장, 사장, 회장하는 기업은 오래 못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참여연대가 제기한 의혹으로 박용성 회장의 발언은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져들게 됐다. 물론 이번에 BW방식을 통해 주식을 양도해준 '두산의 4세대'가 다른 족벌그룹과는 달리 '경영능력이 탁월하다면' 박회장의 말은 앞뒤 모순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4세대의 경영과정이라는 검증 과정을 통해 확인될 문제지, 지금 검증된 사안은 아니다. 따라서 "아들딸을 요직에 앉히고, 경영권을 주면 망하기 딱 십상"이라는 박회장의 말은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인자한 '바람 풍 바담 풍'의 자기모순을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게 일반적 지적이다.

***"위기의 터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다"**

설상가상으로 시장에서는 두산그룹의 구조조정 결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늘어나고 있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21세기 미래성장 엔진으로 중공업을 택했다. OB맥주를 매각하고 지난해 2월 한국중공업을 인수해 두산중공업을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재편성한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그룹 전체 매출(지난해 6조1천억원)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발전설비와 담수화 설비 수주에 총력을 기울여 오는 2006년까지 매출 5조 2천억원을 달성, 세계적인 중공업 업체로 성장한다는 중장기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5월부터 두산중공업 노조는 강력한 파업을 단행했다. 이 때문에 두산중공업의 영업은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박용성 회장은 지난 9월15일 두달여에 걸친 두산중공업 파업 사태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두산중공업을 고스톱쳐서 산 것 아니다. 할아버지가 세운 OB맥주를 팔아서, 그것도 주가가 주당 3천8백원 할 때 8천1백50원이란 큰 돈을 주고샀다"면서 두산중공업 노조가 공기업의 타성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주당 8천1백50원을 주고 사들인 두산중공업의 주가는 민영화 직후 1만원선을 넘는 급등세를 보이다가 현재 6천2백선으로 급락한 상태다. 상반기 실적도 파업 등의 여파로 지난해 동기에 비해 경상이익이 38.95%나 감소했다.

재계에서는 두산그룹이 그룹의 주력기업인 두산중공업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와중에 주식편법증여 문제가 불거지면서 조직 안팎에서 제기될 도덕성 논란으로, 앞으로 상당기간 곤욕을 치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두산그룹은 IMF사태라는 위기의 터널을 가장 모범적으로 통과한 구조조정 성공기업임에 틀림없다"면서도 "그러나 강원도를 가다보니 터널이 끊임없이 나오듯 위기의 터널도 여러 개라는 점을 두산그룹 오너들이 간과해선 안될 것"이라고 따가운 일침을 가했다. 두산그룹이 한번의 성공으로 인해 자만에 빠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두산그룹 사람들이 곱씹어 보아야 할 조언이 아닌가 싶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