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재계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박용성 두산중공업 대표회장 등 두산그룹 오너 일가가 참여연대의 공격 타깃이 됐다. 대다수 재벌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편법증여' 의혹이 문제가 된 것이다.
박용성 회장 등 두산 오너들이 이같은 의혹의 대상이 된 것과 관련해, 시장 그중에서도 특히 외국인투자가들은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동안 외국인투자가들은 IMF사태후 두산그룹이야말로 한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구조조정을 해온 최고의 기업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외국인투자가가 동시에 국내에서 가장 신뢰하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공격대상이 되자 외국인투자가들의 당혹감은 상당하며, 그 결과 앞으로 두산의 신인도 및 더 나아가 한국기업 전체의 신인도에도 적잖이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참여연대, "두산 오너일가 BW 통해 편법증여 의혹"**
참여연대는 28일 "두산그룹 지배주주들이 특혜성 신주인수권부 전환사채(BW) 발행을 통해 기존주주들의 지분율을 희석시키고 지배주주의 지배권 확대 및 편법증여를 시도했다"면서 "두산그룹의 지배주주뿐만 아니라 이사들을 상대로 조정규정 미공시에 따른 증권거래법 위반, 편법적인 증여를 통한 상속세 및 증여세에 관한 법률 위반, 외환관리법 위반 등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또 "특히 박용성 회장은 그동안 대한상의 회장의 자격으로 증권집단소송제도 도입 등 재벌개혁 조치에 반대하는 입장을 천명하여 왔는데, 이번 두산그룹의 불법행위야말로 증권집단소송제도가 왜 필요한 것인지를 입증해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에 따르면, 두산(주)은 99년 7월 해외에서 발행한 특혜성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통해 박용성 회장 등 두산그룹 지배주주 일가가 지배력 확대 및 막대한 시세차익 획득, 나아가 편법증여를 시도해 증권거래법, 외환관리법 및 상속증여세법 등을 위반한 혐의가 드러났다.
이같은 혐의는 참여연대가 기업지배구조 연구전문기관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조사보고서에서 최근까지 구체적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던 특혜성 BW의 발행.인수.이전 및 행사가격 하향조정 과정이 드러나면서 제기됐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두산그룹 지배주주 일가와 두산(주)의 이사들은 두산(주)은 지난 99년 7월15일 유로시장에서 해외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였고, 당초 박용곤, 박용오, 박용성 등 소위 두산그룹의 3세대들이 이 신주인수권을 인수하였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99년 9월 두산그룹 지배주주들은 이 신주인수권을 일제히 박정원 등 4세대들에게 이전하였으며, 현재는 박정원 두산(주) 상사BG부문 사장 등 지배주주 일가 25명이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대목은 4세대들에게 넘겨지는 과정에 두산의 지배주주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이 BW의 행사가격이 당초 발행당시 행사가격 5만1백원의 5분1에도 미치지 못하는 9천4백60원으로 낮춰졌다(2002년 10월 15일 조정)는 점이다. 그 결과 이 신주인수권이 모두 행사될 경우 지배주주 일가가 인수할 보통주의 숫자는 당초 1백59만5천56주에서 지금은 8백11만6천1백29주로 약 5.1배 늘어나게 된다.
***BW 행사가격 5분의 1로 낮추며 공시 안해**
이같은 과정에 참여연대가 우선 문제삼고 나선 것은, 신주인수권의 행사가격이 당초 5만1백원에서 현재 9천4백60원으로 하향조정될 수 있게끔 한 '행사가조정규정(Refixing Clause)'이 BW발행 당시 공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BW발행 및 인수계약시 두산은 신주인수권의 행사가격이 주식가격의 하락시 자동 하향조정된다는 "행사가조정규정"을 만들어놓고서도 이러한 중요한 규정을 공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BW발행에 따른 99년 7월12일자 공시에는 신주인수권 행사가격과 관련해 "추후 유무상증자, 주식분할 또는 병합 등으로 인해 행사가격이 조정될 수 있음"이라고 되어있을 뿐, 주식가격이 하락하였을 때 신주인수권의 행사가격도 연동되어 하락된다는 내용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참여연대는 이와 관련, "신주인수권행사가격을 시가에서 할인하지 못하도록 한 증권관련 법령을 회피하면서 공시의무까지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BW 행사되면 두산 오너지분 15%에서 39%로 급증**
이와 함께 BW가 두산그룹 대주주들이 자녀들을 위한 편법증여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라는 혐의도 받고 있다.
99년 7월 당초 BW인수자들은 박용곤, 박용오, 박용성 등 두산그룹의 이른바 '3세대'였다. 하지만 이들은 BW인수 불과 2개월만인 99년 9월경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BW를 일제히 박정원 등 '4세대'들에게 넘겼는데, 이 시점은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의 조정이 이루어지기 전의 시점이었다.
즉 그룹 대주주들은 BW인수에 따른 자금을 자신들이 부담한 후 행사가격 하락에 따른 두산(주) 지분확대 및 시세차익 획득의 기회는 자녀들에게 넘겨준 것으로, 이는 특혜성 BW발행을 통해 편법증여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BW행사 만기일이 2009년이므로 지배주주 일가가 지금 당장 신주인수권을 행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향후 두산(주)의 주식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이미 낮추어진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은 다시 상향조정되지 않기 때문에, 지배주주 일가는 싼 가격으로 지금보다 비싸진 주식을 매입할 수 있고 그만큼 막대한 시세차익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현재의 행사가격으로 지배주주 일가가 신주인수권을 행사하더라도, 지배주주 일가의 지분율은 15.68%에서 39.09%로 대폭 상승하는 반면, 소액주주의 지분율은 40.28%에서 29.09%로 대폭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밖에도 두산(주)은 신주인수권과 사채를 분리되는 형태로 BW를 발행하고 발행후 1년만인 2000년 7월15일 사채에 대한 원금을 조기상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두산(주)은 1년짜리 자금을 얻기 위해서 2009년까지 장기간 행사가격을 하향조정할 수 있는 특혜성 신주인수권을 지배주주들에게 넘겨준 셈이다.
참여연대는 이에 대해 "두산(주)의 이사들이 과연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기존주주들의 이익에 충실한 자금조달수단을 선택하였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참여연대는 "특혜성 BW는 대주주 일가가 해외 공모발행에 참여하여 인수한 것으로, 그 인수자금을 어떻게 조달하였고 그리고 이처럼 좋은 조건의 BW를 어떻게 대주주가 대량 인수할 수 있었는가라는 점에서 외환관리법 상의 위반혐의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일반적 위기관리는 잘하나 후계상속 문제에만 이르면..."**
두산그룹은 IMF위기가 도래하기 직전부터 국내기업중 가장 먼저 구조조정에 착수한 '위기관리 모범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한 예로 당시 두산그룹의 구조조정 컨설팅을 맡았던 미국 맥킨지사의 컨설턴트 도미닉 바튼은 최근 출간한 <위험한 시장(Dangerous Markets)>이라는 저서에서 정부부문에서는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기업 부문에서는 박용오, 박용성 두산그룹 형제회장, 금융부문에서는 김정태 국민은행장을 '한국을 IMF위기에서 오늘날의 경제강국으로 도약시킨 3대 주역'으로 꼽기까지 했을 정도다.
실제로 박용성, 박용오 등 두산그룹 오너들은 당시 "썩은 걸레를 누가 사겠느냐"는 '걸레론'을 앞세워 돈되는 우량기업들부터 매각해 유동성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IMF위기에서 탈출함은 물론 그후 한국중공업 등을 인수하면서 승승장구를 거듭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편법상속' 의혹에 휘말림으로써 그 명성에 치명적 상처를 입을 위기에 몰리게 됐다.
한 외국계 대형펀드의 CEO는 이와 관련, "한국의 대다수 대기업들은 일반적 위기관리는 잘 하면서도 단하나 후계상속 문제에 이르러선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결정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이같은 편법증여 논란이 계속된다면 한국의 기업신인도는 현단계에서 더이상 오르기 힘들 것"이라며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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